주체97(2008)년 제5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단편소설

 

향          기         

                                                                                                                                        김  혜  경            

                                                                 

1

 

김수정은 아침일찍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밤새 조용한 정적속에 파묻혔던 거리는 첫 출근하는 사람들만 눈에 뜨일뿐 아직은 붐비지 않았다. 여름내 푸르싱싱함을 자랑하던 가로수의 나무잎들도 락엽이 되여 하나둘 떨어진다.

그 락엽들이 마치도 사람들에게 겨울이 다가오고있음을 알려주는듯싶었다.  

그의 눈길은 습관처럼 창턱우에 놓인 화분에로 옮겨졌다.  순간 그의 고운 눈이 반짝 빛났다.

어제까지만도 망울이 잡혔던 백일홍이 자기의 꽃잎새를 터친것이다.

아직 만첩은 아니여도 제가 품들여 피운 꽃을 보는 기쁨이 커서 그는  호실동무들을 두들겨 깨웠다.

아직 잠내가 풍기는 이불속에서 나온 처녀들은 때아닌 철에 피여난 꽃송이에 고개를 수그리고 향기를 맡아보느라 야단이다.

방금 망울을 터친 꽃에서 무슨 향기가 짙게 풍기랴만 그들은 벌써 방안에 진동하는 꽃향기를 페부속깊이 감수하는것이였다.

《언닌 정말 꽃가꾸는데서 이거야.》

엄지손가락을 내흔드는가 하면 어깨를 부여잡고 동동 발을 구르는 처녀가 있었다.

수정은 남달리 꽃을 사랑하였다. 창턱에는 달마다 꽃이 피여나게끔 심고 가꾸는 화분들이 피여날 차례를 기다리며 주런이 놓여있었다.

그 꽃들을 피우기 위해 꽃가꾸기책을 통달하다싶이 하였고 식물원문턱이 닳도록 넘나들었다.

호실처녀들은 수정의 통제로 창문을 마음대로 열지 못하였다.

이렇게 달마다 피여난 꽃들은 국가적인 명절이나 기념일이면 공장에 세워진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지도사적비앞에 정히 놓여지군 하였다. 그 심정을 아는 처녀들도 이제는 어디에 갔다가 질좋은 부식토가 있으면 아무리 값비싼 수건이나 가방에라도 서슴지 않고 담아오군 하였다.

역시 꽃은 처녀들의 어여쁜 마음이며 향기인것이다.

《자, 이젠 빨리 출근준비나 하자.》

호실은 분주해졌다. 부지런히 화장을 하던 향순이가 《언니, 내 얼굴 좀 봐줘요.》 하며 머리를 빗고있는 수정이앞으로 다가앉는다.

수정의 얼굴엔 락심해하는 표정이 어리였다.

《아니, 넌 언제까지나 화장하는 법을 배워줘야겠니?》

《언니처럼 살색이 고우면야 무슨 화장이 필요하겠어요. 나야 본바탕이 그런걸 어쩌겠어요.》

향순이가 샐쭉해한다. 흘려들을 말이 아니다.

처녀애들은 천성적으로 어려서부터 맵시를 부린다는데 이건 어떻게 된 일인지 학교를 졸업하고 3년가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몸가꾸는데는 영 락제다. 숯덩이로 그려놓은듯 한 눈섭과 얇은 입술이 넘쳐나게 두툼하게 연지를 바른 향순이의 모습은 소학교아이들의 그림같았다.

《야, 정말 넌 아무래도 미술공부를 다시 해야겠어. 녀성의 아름다움은 마음이나 일솜씨에만 있다고 생각지마. 겉볼안이라고 우리는 외모도 마음도 다 고와야 한단다. 자, 이리 와.》

수정은 새까맣게 그려놓았던 향순의 눈섭과 두툼하게 발라놓았던 빨간 연지를 지웠다.

그러자 향순이는 두손을 휘저으며 일어났다.

자기는 본래 그렇게 생겼기때문에 아무리 화장을 해도 고와지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수정은 그러는 향순이를 조용히 나무랐다.

《향순아, 아무리 좋은 꽃나무도 가꾸지 않으면 향기론 꽃을 피울수 없듯이 사람의 모습도 가꿀수록 아름다와지는거야.》

향순이는 멋적게 웃으며 수정이의 손에 다시 이끌리여 주저앉았다.

수정은 복스러운 그의 얼굴을 다정스럽게 들여다보며 눈섭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진하지도 않고 연하지도 않게 그리면서 눈섭꼬리를 뾰족하게 그려주니 어딘가 모르게 매력이 있어보였다. 연지도 입술선이 선명하게 살아나도록 발라주니 향순이의 덜렁하던 성격이 한결 사라진듯싶었다.

수정이 하는대로 얼굴을 맡긴 향순이는 호 하고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대된 우리 오빤 말이예요. 언제나 나를 보고 고구마처럼 생겼다고 하지요 뭐.》

《뭐 고구마처럼?… 그럼 넌 가만 있니?》

《아 내가 가만 있을게 뭐예요. <아니 오빠, 고구마를 많이 심는 고장에서 고구마를 많이 먹고 자랐으니 고구마처럼 생기는것이 당연하지요.>하고 한수 더 떴더니 우리 오빠 한다는 소리가 <얘얘, 그저 고구마처럼 생겼으면 말도 안하지. 너 삶은 고구마를 아래방에서 웃방으로 던졌을 때 어떻게 되지?> 하는게 아니겠어요.》

향순의 《아래방에서 웃방으로 던진 고구마》라는 말표현뜻을 뒤늦게야 깨달은 수정은 그만에야 호호호 소리내여 웃었다.

《아니, 그럼 네가 삶은 고구마 찌그러진것처럼 생겼단 말이니?》

《글쎄 말이예요. 우리 오빤 참 한심해.》

향순은 연지바른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모양이 더욱 귀여움을 자아냈다.

수정은 향순의 얼굴을 새삼스레 쳐다보았다.

뜨거운 해볕에 땀흘린 체육선수들처럼 감실감실한 얼굴, 쌍까풀진 실눈, 언제나 웃음과 롱질을 터놓지 못한듯 반쯤 열리여 웃음이 남실거리는 입술, 수정은 그런 향순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명랑해지군 하였다.

기능공학교를 졸업하고 작업반에 배치되여서는 오랜 기능공 못지 않게 혁신자로 소문나고 지금은 세명의 견습공을 키워내고있는 미더운 향순이다. 그런 향순이를 고구마에 비기다니…

아마 향순이 오빠 역시 동생과 짝지지 않을 익살군인 모양이다.

지금 수정은 오빠의 말을 듣고 분해서 씩씩거렸을 향순이의 모습이 떠올라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바로 어제저녁만 해도 수정이의 손목을 잡고 제 형님이 되여달라고 졸라대던 향순이다.

(진짜로 내가 향순이 형님이 되여준다면 그 남자는 날 보고 뭐라고 놀려줄가? 도마도? 사과?)

수정은 아직은 알수 없는 미지의 그 청년을 제나름대로 그려보았다.

(잘 생긴 인물이라니 영화에 나오는 누구처럼 생겼을가?)

이때껏 그 어떤 총각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어보인적이 없는 수정이로서는 자기자신이 잘 리해되지 않았다. 얼굴생김도 성격도 알수 없는 향순이의 오빠를 두고 왜 자꾸 생각하게 되는것인지…

롱담도 세번을 하면 진담이 된다는 그것때문일가, 아니면 친동생처럼 정을 쏟아붓고싶은 향순이때문에 그의 오빠에게도 정이 가는것일가?

수정이는 탐스러운 향순이의 머리를 빗겨주며 살래살래 머리를 저었다.

지금은 그 형체를 알수 없으나 시간의 흐름을 타고 한발자국 다가오는 그 생활, 약간 두려웁기는 하나 누를수 없는 호기심으로 마중하게 되는 처녀의 래일이다.

 

2

마가을치고는 날씨가 푸근하였다.

날이 좀 풀리자 외투를 벗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집집의 처마밑에는 빨간 고추타래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이 모든것이 산촌의 정서를 한층 더 돋구어주었다.

수정은 오래간만에 보는 산촌마을의 전경을 휘둘러보며 이끌리듯 집으로 오고있었다.

그의 집은 시내에서 퍼그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곳에 수정이 학창시절을 보낸 모교도 있고 동창생들도 있다.

앞날의 소중한 꿈을 함께 키워오던 동무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봄이며 향미 그리고 싱글거리며 제법 롱담을 걸어오던 남동무들…

뒤이어 그 중학교동창생들 못지 않게 정이 든 향순이의 모습도 떠오른다. 향순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새로 작업반에 배속된 양성공들의 기능이 빨리 올라가야 작업반계획도 넘쳐하겠는데… 조급한 마음에 키질이라도 하듯 향순이가 엇드레질을 하군 하였다. 호실에서는 꼭꼭 반장동지라고 부르는 향순이다.

그런 때에는 말투마저도 딱딱스러워진다.

《반장동지! 난 정말 양성생들을 배워주지 못하겠어요. 잘 돌아가던 기대도 몽땅 고장을 내군 하니 이거야 어디 천을 짜겠어요. 나의 생산실적은 점점 떨어지지. 이젠 신경질이 다 나요.》

수정은 향순이의 말이 십분 리해되였다.

향순이는 이악한 일솜씨로 하여 작업반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를 따를만 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양성생들을 맡자 그의 실적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기능도 높고 또 제일 믿음이 가는 향순이에게 양성생을 맡겨야 빨리 기능이 오르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이렇게 나오니 안타까왔다.

(엎친데덮친격으로 어머니는 왜 갑자기 앓으신다는걸가?)

다급한 마음처럼 걸음도 빨라졌다.

저녁시간이라 집집의 굴뚝마다에서 연기들이 몰몰 피여올랐다.

잎떨어진 복숭아나무들이 늘어선 수정이네 집굴뚝에서도 연기가 나왔다.

(어머니가 앓으신다더니 누가 불을 땔가?)

수정은 불안스러운 마음으로 대문을 열었다.

마당안에 들어선 그는 반쯤 열려져있는 부엌문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불을 때고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어머니였다.

《어머니! 어떻게 된 일이예요. 앓으신다기에 바쁜 시간을 내서 왔는데.》

《네가 너무 보고싶어서 그랬다. 그래야지 천짜는 일밖에 모르는 네가 오라면 오겠니. 원 직기와 영영 살려는지…》

혀를 차는 어머니에게 수정은 곱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참, 어머니두. 뭐 직기와 살라면 못살줄 알아요?》

《얘 수정아, 네나이 지금 몇살이게 아직도 그런 소릴 하냐?》

어머니의 목소리는 사뭇 엄하게 울렸다.

수정이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가는 딸을 놓고 늘 걱정이였다.

그런데 며칠전에 한동네에서 사는 수정이의 동창생인 향미가 시집을 가서 떡돌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듣자 어머니의 마음은 조급해났던것이다.

어머니는 수정이가 실내옷을 바꿔입기 바쁘게 사진 한장을 들고 다가왔다.

《수정아, 내 보기엔 이 청년이 멀끔하게 생긴게 나무랄데가 없는것 같은데 네가 보고 어느 정도 마음에 들면 아예 매듭을 짓자꾸나. 너의 외삼촌이 며칠전에 이 사진을 들고 왔더구나.》

어머니는 수정이의 손에 사진을 쥐여주었다.

수정은 어망결에 사진을 보았다.

사진에는 하얀 와이샤쯔에 산뜻이 넥타이를 맨 청년이 웃음을 짓고있었다.

《그래 수정아, 어떻니?》

어머니는 수정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며 물었다.

《참, 어머니두, 일이 바빠 그러는데 이런 일로 날 부른단 말이예요?》

투정질이 섞인 수정의 말에 어머니는 맥을 놓으며 주저앉았다.

《그만큼 잘 생긴 총각도 본척않으니 네 눈은 정말 눈섭우에 가붙었니?》

수정이는 어머니앞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얼굴에 주름살이 한결 많아진듯싶은 어머니, 하지만 수정은 어머니의 말에 선뜻 응할수 없었다. 사람은 결코 인물만을 보고 살수 없는것이다.

더군다나 수정에게는 자기의 리상과 목표가 있었다. 자기가 맡은 작업반성원모두가 일을 잘해서 영예의 혁신자작업반이 되였을 때 그는 어머니에게 말하고싶었다. 선군시대에 사는 청춘들의 가장 아름다운 미는 용모나 외모에 있는것이 아니라 부강한 내 조국건설에 자기의 깨끗한 구슬땀을 바쳐가는 거기에 있는것이라고…

수정은 그런 청년이라면 인생의 머나먼 길을 나란히 함께 걸어가고싶었다.

수정은 자기의 그 마음을 어머니도 언젠가는 꼭 리해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수정은 날씬한 몸매에 윤기도는 까만머리, 동그스름한 얼굴에 쌍까풀진 고운 눈과 입술선이 선명한 꼭 다문 입, 그리고 탄력있는 걸음씨로 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매력있는 처녀였다.

그런 그가 28살이 되도록 왜 출가하지 않는지 의문부호를 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눈이 높아서인지 아니면 어디에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는것인지.

 

3

수정은 하루밤이라도 자고 가라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뻐스를 놓치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느라 했지만 시내에 와닿기전에 서쪽으로 기울어졌던 해는 어느덧 자취를 감추었다.

수정의 마음은 조급해났다. 구두를 신은 발에 물집이 생겼는지 아파나기 시작했다.

수정은 걸음걸음 무겁게 옮겨디뎠다. 작업반동무들에게 주라고 어머니가 싸주는 음식을 배낭에 넣다보니 짐이 무거워서 계속 어깨를 내리눌렀다.

밤공기는 찼지만 수정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잠간 멈춰서서 흐르는 땀을 씻느라는데 인기척이 났다. 돌아보니 웬 사람이 뒤를 따라오고있었다.

《처녀동무, 어디까지 가는지 함께 갑시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쩍 버그러진 다부진 몸매며 시원시원한 성격에서 대뜸 군인다운 기질이 엿보이는 청년이였다.

《날이 어두워오는데 그렇게 걸어서야 언제 목적지에 가닿겠습니까?》

청년은 홀로 어두운 길을 걷는 수정에게 동정이 갔던지 배낭을 빼앗아지고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배낭을 벗으니 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한참동안 말이 없던 청년이 수정에게 물었다.

《동문 왜 이렇게 혼자 밤길을 떠났습니까?》

수정은 집에 왔다가 공장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수정이가 방직공장에 다닌다는것을 알게 되자 청년은 몹시 반가와했다.

《아, 그렇소. 나도 그 공장에 배치를 받았소.

이제 출근을 하면 동무를 만날수 있겠구만.》

《그래요?》

수정이도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환성을 올렸다.

《이렇게 된바엔 동무의 이름까지 알고 지냅시다.》

《수정이예요. 김수정.》

수정의 이름을 들은 청년은 《김수정이요?》하고 되묻는듯 하더니 이내 입을 다물어버렸다.

어느덧 그들은 합숙정문을 가까이 하였다.

《자, 잘있소.》

청년은 짤막하게 인사말을 남기고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것이였다.

수정은 그 청년이 고마왔다. 그리고 미안했다.

자기의 목적지를 지나쳐서 합숙까지 함께 길동무가 되여준 그 청년의 이름석자도 미처 알아두지 못한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수정은 어둠속으로 사라져가는 청년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4

《아니, 가다니요. 그럼 선자리에서 돌아섰다는거예요?》

향순은 수정이네집 마당가에 그만 아연해서 서있었다.

《언제 이렇게 우리 집엘 또 와보겠니. 자, 어서 들어가 하루 놀고가라구.》

수정이 어머니가 이끌었으나 향순은 도리를 저었다.

《아니, 난 그럴 사이가 없어요. 교대작업이 끝난 다음 내처 왔더니 그만 수정언니와 길이 어긋났군요.》

향순은 수정이가 집에 간 다음에도 양성생들을 데리고 기대를 돌렸다. 그런데 양성생들이 또 계속 고장을 내놓고 날실을 끊어놓으니 나중에는 짜증이 났다.

《난 정말 더는 너희들을 배워줄 능력이 없어.》

향순은 아무리 생각해도 안될것 같았다. 이러다간 자기의 생산실적이 제일 뒤떨어질것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양성생들을 다른 기대공에게 넘겨주었으면 좋겠는데 수정이가 어머니때문에 집에 갔다니 인차 돌아오지 못할것은 뻔했다.

못해도 이삼일은 걸릴것 같은데 향순에게는 하루가 새로왔다. 그래서 급기야 수정의 집까지 찾아왔는데 정작 와보니 그는 없었다.

어쩔바를 몰라 서있는데 수정이 어머니가 말했다.

《사실 수정이를 집에 오라고 한건 총각사진을 보이고싶어 그랬단다.》

《예?》

향순은 속이 뜨끔해났다. 수정언니가 누구의 사진을 본단 말인가. 우리 오빠를 두고…

향순이 쩍하면 수정에게 형님 삼자고 롱담조로 말하군 했지만 그것은 진담이였다.

일에서나 용모에서나 늘 사람들의 호평을 받는 수정이를 꼭 자기 오빠와 짝을 무어주고싶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빠에게 수정이에 대한 소리를 자주 하군 하였다.

그런데 수정이를 다른 총각에게 소개하려 했다니 은근히 걱정이 되였다.

수정이가 어머니에게 어떤 대답을 주었겠는지 궁금했다. 그러는데 수정이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수정인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모르겠다니까. 이번에도 또 싫다고 하지 않겠니. 대체 그 애가 바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도 모르겠다.》

공장으로 돌아오는 향순이는 수정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어째서 그가 그렇게도 시집갈 생각을 하지 않는지 향순이로서도 의문이 갔다. 이제 오빠를 보라고 해도 도리머리질을 하지 않겠는가 하는 위구심까지 갈마들었다.

향순은 함께 생활하면서 지금껏 보아온 수정의 모습을 되새겨보았다.

호실에 한 동무가 앓아누웠을 때에는 세찬 눈보라길을 헤치며 가서 약을 구해왔고 향순이가 처음으로 합숙에서 생일을 쇨 때에는 오붓한 생일상까지 차려주었었다. 향순은 불쑥 수정이가 보고싶어졌다. 불과 하루를 못 보았는데 며칠을 만나지 못한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공장에 다달은 향순은 급히 현장으로 들어갔다.

자기 기대로 다가서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수정이가 양성생들에게 천짜는 일을 배워주고있었다.

그가 무엇이라고 차근차근 가르쳐주면 양성생들은 인차 알아듣고 기대를 돌리는것이였다.

수정은 기뻐서 웃으며 그들의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그 모습을 보느라니 향순의 귀가에는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전 집에 들렸을 때 양성생들을 맡아놓고 애가 탄다는 향순이의 말을 듣고 오빠가 하던 그 소리.

《우리 인민군대에선 신입병사라고 해서 전호의 뒤선에 세운적이 없었다. 그건 매 병사가 조국앞에 지닌 의무가 꼭같기때문이야. 양성생들을 하루빨리 키워 기대앞에 세워주는것은 향순이가 조국앞에 지닌 의무이다. 타발말고 일을 잘해라. 너도 자주 말하군 했지. 너를 키워주느라 애쓰던 언니이야기 말이다. 그 수정이라는 녀동무처럼 너도 일해라. 사심없이 양성생들을 키우거라.》

오빠의 그 말이 과연 옳은것 같았다. 그런데 자기는 안타까운 나머지 수정이네 집에까지 달려가지 않았던가.

안타까와하는것과 애쓰는것과는 벌써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런데 수정언니는?…

향순은 수정에게로 달려갔다.

《아니 향순이로구나. 양성생들을 버리고 어딜 갔댔니?》

《언니, 내가 막 밉지요. 언니가 그렇게 양성생들때문에 애쓰는데 난 저 하나의 실적만을 생각하였으니…》

《향순아, 뭘 그러니, 너야 원래 일을 잘하지 않니. 향순아, 너 혼자의 실적으로 작업반실적이 높아지는것도 사실이겠지만 양성생들의 기능을 빨리 높여주어 작업반원들모두가 혁신자가 될 때 부강조국은 더욱 빨리 건설될거야. 우리 함께 마음을 합쳐보자.》

이렇게 말하는 수정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여있었다. 향순의 눈앞에는 그의 모습이 한떨기 향기로운 꽃송이처럼 안겨왔다.

문득 호실의 창문가에 피여난 꽃송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겨울의 추위에도 억세게 피여 향기를 풍기는 그 꽃처럼 우리 작업반원들모두가 혁신의 꽃을 피워갈 때 그 향기는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향순은 수정이앞에 마주선 자신이 부끄러웠다.

꽃은 곱게 피여 향기를 풍긴다지만 수정은 늘어가는 천필에 자기의 구슬땀을 바쳐가는것으로써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려 하고있다.

향순은 그런 수정이가 부러워서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난 언제면 저 언니의 생각을 따라설가?)

수정이의 모습뒤에 나란히 오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오빠가 저 언니와 나란히 설수 있을가?)

그럴수록 수정을 형님으로 삼고싶은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다.

 

5

눈이 내리고있었다.

이것이 12월의 마지막눈이 될는지도 모른다.

정말 계절은 빠르기도 하다.

온갖 식물들이 파랗게 움트던 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모든것이 무르익는 가을도 지나가고 이해도 다 저물어가고있었다.

수정은 향순이와 함께 퇴근길에 나섰다. 요즘 그의 마음은 하늘을 날을듯 하였다.

양성생들도 당당한 기능공대렬에 들어섰고 향순이는 얼마전에 영예의 혁신자사진까지 찍었다.

공장속보판에는 《매일 계획을 120%로 넘쳐수행하는 김수정작업반의 혁신자들을 열렬히 축하한다》라고 크게 나붙었다.

드디여 수정이의 작업반은 천생산계획을 넘쳐수행하는 혁신자작업반이 되였다.

그와는 반대로 요즘 향순은 수정의 눈치를 살피며 늘 그의 곁에서 맴돌았다.

어디를 다녀오려 해도 어디로 누구를 만나러 가는가 꼬치꼬치 캐묻기가 일쑤였다.

수정은 처음엔 향순의 행동을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대했는데 그렇게만 스쳐지날 일이 아니였다. 아직은 이런 문제에 대해 크게 생각한것은 없었지만 아무튼 한번은 부딪쳐야 할 일인것만은 사실이다.

향순의 오빠가 누구일가 하는 호기심도 없지 않았다.

양성생들때문에 애를 먹는 향순에게 했다는 그의 말을 들어보면 속이 깊은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수정은 향순이와 함께 퇴근길에 올랐다.

공장정문앞 영예게시판앞을 지나는데 몇몇 처녀들이 오구작작 떠들며 사진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수정이와 향순이도 이끌리듯 그앞으로 다가갔다.

올해계획을 넘쳐 수행한 혁신자들의 모습이 꽃목걸이속에서 웃고있었다.

하나하나 그들의 모습을 더듬어보던 향순이 환성을 올렸다.

《어마나 수정언니, 여기 우리 오빠사진이 있어요.》

수정이 바라보니 《공무직장 리영운》이라는 이름우에서 웃음짓는 청년의 모습이 안겨왔다.

한순간 수정은 놀랐다. 날이 선 인상적인 코마루, 웃음이 넘치는 실눈!

바로 지난 가을밤 수정을 동무해 밤길을 함께 걸어준 고마운 청년이였다.

그런데 그 청년이 향순이가 그토록 입에 올리고 외우던 오빠라니!

수정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서 향순이 들여다볼세라 슬며시 얼굴을 돌려버렸다.

《아이 수정언니, 우리 오빠사진을 좀 보라는데요!》

《애두 참, 이제 보지 않았니.》

향순은 신바람이 나서 속살거렸다.

《언니, 난 오늘을 기다렸거든요. 우리 오빠가 저렇게 혁신자로 되는 날을 말이예요. 어때요. 이젠 우리 오빠가 언니와 어깨나란히 설만 하지요.》

수정은 왜서인지 가슴이 두근거려짐을 느꼈다.

사진속 청년의 눈길이 따라오며 지켜보는것만 같았다.

(한 공장에 있으면서 왜 여태 몰랐을가?)

언젠가 향순에게 오빠가 어디에 있는가고 물으니 샐쭉 웃으며 《아주 가까이예요. 이제 만나게 될거예요.》하던것이 생각났다.

향순은 계속 뒤쫓아오며 조잘됐다.

《그런데 왜 저렇게 잘 안된 사진을 붙였을가. 실지는 좀더 멋있게 생겼는데…》

수정이 들으라는듯이 한 말인데도 응대가 없으니 늘 하던 습관대로 입을 삐죽 내밀어보인다.

수정은 그러는 향순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었다.

《그래, 너의 오빤 미남이다. 겉모양도 그리고 마음까지도…》

향순은 어떻게 그걸 다 아는가 하는 눈길로 수정을 바라보았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향순이와 함께 출근길에 오른 수정은 바로 그 사진속의 주인공과 마주치게 되였다.

향순은 벌써 먼발치에서부터 제 오빠를 알아보고 마주 달려갔다.

《언니, 우리 오빠예요!》

《오빠, 내가 말하던 그 언니예요. 수정언니!》

수정이와 오빠가 만날 기회가 마련된것이 참 기쁜듯 향순이는 이쪽저쪽을 뛰여다니며 소개를 하느라 야단이다.

수정이가 먼저 나서며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향순이 오빠도 우선우선한 표정으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수정동무, 우린 이미 구면이 아닙니까. 우린 지난 마가을에 밤길을 함께 걸었지요. 난 향순이에게서 동무의 이름을 자주 듣군 하였습니다.》

수정은 그때 밤길에서 신세를 지고 이름도 알아두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정말 그날은 고마웠습니다. 저때문에 우정 밤길을 더 걸으면서까지 저의 짐을 져다주던 그 고마운 사람의 이름도 알지 못한것이 늘 마음에 걸렸댔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줄은…》

수정은 말끝을 얼버무렸다.

옆에서 두사람의 대화를 듣고있던 향순이가 두눈을 깜박거리다가 웃으며 말했다.

《수정언니! 정말 엉뚱하군요. 내가 우리 형님 되여달라고 할 때는 아닌보살하더니 어느새 나도 몰래 만나보았군요. 호호호…》

향순은 유쾌하게 웃으며 어디론가 뛰여갔다.

수정은 청년에게 어째서 그날 밤 자기가 향순이 오빠라는것을 말하지 않았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더 많은 천생산으로 어머니 내 조국을 받들어나가려고 아글타글 애쓰는 수정동무에 비해볼 때 자기의 동생은 너무도 뒤떨어져서 선뜻 말할수 없었다는것이다.

그의 시원시원한 성격과 말투로 하여 수정의 긴장했던 마음도 점차 풀리였다.

공장구내길을 걸어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차츰 활기를 띠였다.

총각은 자기의 군사복무나날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2000년 1월 28일! 이날은 날씨가 몹시도 추웠다. 그날 텔레비죤을 마주하고있던 병사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대소한의 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고향도시의 방직공장을 현지지도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을 우러르게 되였던것이다.

고향도시에 대한 긍지로 병사의 가슴은 부풀어올랐다.

초소를 찾으실 때마다 병사들이 추워할세라 입고있는 솜옷의 두터이를 가늠해보시는 어버이장군님의 사랑이 가슴가득히 안겨들었다.

그래서 이제 제대되여 고향에 가면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사적이 깃들어있는 영광의 일터에서 그이의 뜻을 받들어나가리라 마음다졌던것이다.

수정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말씀을 받들어가는 로동계급으로 살겠다는 각오가 있었기에 공장에 온지 얼마 안되여 혁신자의 대오에 당당히 설수 있게 된것이 아닌가. 이런 사람이 바로 수정이가 바라고 기다려온 사람이였다.

별안간 길옆의 나무우에서 눈송이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언제 앞질러왔는지 향순이가 나무를 세차게 흔들고있었다.

《수정언니! 이 눈은 우리 오빠와 언니의 앞날을 축하하여 자연이 뿌리는 눈꽃보라예요.》

정말 그의 말대로 소리없이 내리는 눈은 더 많은 천생산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령도를 받들어나가려는 그들을 축복해주는듯 어깨우에 포근히도 내려앉는다.…

향순은 나란히 함께 걸어가는 그들의 뒤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호실창문가에 놓여있는 꽃화분을 애지중지 가꾸던 수정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꽃은 곱게 피여 아름다운 향기를 풍긴다.

그 꽃은 자기의 향기를 감추지 못한다. 아무데있건 하나로 풍기는 청춘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향기는 언제나 합쳐지기마련인것이다.

 

                                                                   (1청년직포직장 로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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