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7(2008)년 제6호에 실린 글
김철이
가렬한 전투의 낮과 밤은 계속되고있었다. 1211고지 우측 문등고지에서도 적아간에 치렬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산세가 유연하여 아군 공격서렬에서는 마치 언덕처럼 보이는 고지였다. 미제놈들은 1211고지를 주타격하면서 문등고지에 강한 방어선을 구축하여놓았다. 아군참모부에서는 1211고지를 방어하는 동시에 문등고지를 탈환하여 적들의 기도를 파탄시키고 쏙새골까지 공격계선을 확장할 계획이였다. 그 임무가 박철민중대에 하달되였다. 시인 석광희는 《호랑이중대장》으로 소문난 박철민중대에 가서 취재할것을 결심하고 전선사령부에 제기하였다. 그의 제기가 쾌히 수락되여 그가 중대에 온지 하루가 지났다. 중대장은 체격이 우람하고 관자노리가 약간 도드라진데다가 구레나룻까지 꺼칠하여 삼십이 훨씬 넘어보이는 지휘관이였다. 어데선가 꼭 본듯 한 인상이였으나 그는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초면에 물어볼수도 없어 기회만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옹근 하루가 지나도록 그런 기회는 마련되지 않았다. 전날 문등고지습격전투에서 희생된 전우들로 하여 중대의 분위기가 몹시 갈앉아있었던것이다. 중대장 박철민은 어쩐지 석광희가 온것을 못마땅해하는 기미였다. 하필 이런 때 와서 취재할건 뭐람. 중대의 현상태를 신문에 내서 괜히 망신시키자고 하는게 아닌가 하는 태도였다. 석광희는 생각되는것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중대장과 별로 이야기를 나누고싶지 않아 전사들과 전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것이다. 《작가선생님, 무슨 글을 씁니까?… 우리 중대장동지에 대하여 써주십시오. …싸움도 잘하지만 우리 전사들을 무척 아낀답니다. 보기에는 뚝하지만…》 전사들은 중대장을 좋아하였고 존경하였다. 그런데 석광희는 중대장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함께 종군한 동무들은 벌써 좋은 노래를 지어 병사들의 호평을 받고있는데 나는 아직 창작중에 있는 가사 《돌격가》를 완성하지 못하고있지 않는가. 석광희는 흘러가는 시간이 안타깝기만 하였다. 전방중대에 나와서 전사들과 함께 침식도 하고 전투도 하면서 《돌격가》의 가사를 훌륭하게 완성하리라 결심하였지만 어쩐지 잘되지 않았다. 원고지를 마주하고앉으면 김창걸영웅의 최후모습만 안겨올뿐 시의 전투적인 감정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 그의 가슴에는 재진격당시 양구 서남쪽 고지탈환전투에서 불뿜는 적의 화구를 몸으로 막은 김창걸영웅소대장에 대한 목격과 《작가선생님, 이런 때 높이 부르며 달려가 원쑤를 요정낼 <돌격가>를 지어주십시오. 복수의 노래를 말입니다.》 하고 가슴을 치던 부소대장의 절절한 웨침이 자리잡고있었다. 그래서 쓴것이 합평회에서 가사의 전투성이 부족하고 너무 비장성에만 치우쳤다고 평가되였던것이다. 고지에는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면서 예상외로 정적을 가져왔다. 1211고지쪽에서 이따금 소총소리가 나고 전선은 조용하였다. 격전의 밤이 이렇게 조용하기는 드물었다. 박철민은 가설엄페부안에서 두무릎우에 전투가방을 올려놓고 무엇인가 쓰고있었다. 석광희는 지금처럼 조용한 기회에 중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다. 박철민은 석광희가 다가오는것을 느끼자 쓰던 글을 그만두고 앉음새를 바로하며 먼저 말을 건네였다. 《소좌동진 왜 쉬지 않습니까?》 석광희가 이때까지 보아온 인상하고는 너무도 대조적인 좋은 표정이였다. 순간 무겁게만 느껴지던 마음이 대번에 가벼워지고 정겨운 감정이 스며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구만. 중대장동문 무슨 글을 쓰오?》 석광희는 정찬 눈길로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뭐 별게 아닙니다.》 중대장은 스스럼없이 흰종이를 내보이였다. 수류탄깍지로 만든 등잔불빛에 비치는 흰종이의 글은 뜻밖에도 전사들의 이름과 집주소였다. 《아니, 이건…》 《희생된 전사들의 집주소입니다.》 중대장은 비감에 잠긴 어조로 말했다. 석광희는 더 묻지 않았다. 어제 고지습격전투에서 적의 화구를 몸으로 막고 희생된 중대장련락병 최성진, 중대취사원아바이 김칠성… 석광희는 깊은 감회에 잠겼다. 《이 동무들의 고향에 〈전사통지서〉를 보내야지요?》 《?…》 의아한 표정으로 석광희를 쳐다보는 중대장의 눈에는 차분히 눈물이 고여있었다. 석광희는 묻지 말아야 할 말을 물은 때처럼 죄된감이 들고 마음이 옹송그려졌다. 전사들의 희생으로 인한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그의 가슴에 아픔을 더해준것 같은 느낌이 쩌릿하게 스쳐지났던것이다. 《전쟁이 끝난 다음 제가 직접 고향에 찾아가서 이들의 위훈을 전해주려고 합니다.》 중대장의 두툼한 입술이 바르르 떨리였다. 순간 석광희는 형언할수 없는 뜨거운 격정이 가슴을 치며 그의 고결한 정신세계에 끌려들었다. 싸움의 순간마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 전쟁에서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희생된 전우들을 못 잊어하는 그의 마음이 더없이 귀중하게 느껴졌다. 석광희는 중대장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다. 그래서 망설이다가 《중대장동문 장가들었겠지요?》 하고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물음을 던졌다. 중대장은 히죽이 웃어보이며 태연히 반문했다. 《내가 장가간것 같습니까?》 《음―》 석광희는 내친 말이라 머리를 끄덕이며 중대장을 바라보았다. 《소좌동진 그걸 어떻게 압니까?》 숨겨둔 비밀이 드러난 때처럼 그는 난처한 기색을 지으며 어스벙거리기만 했다. 《왜 모르겠소. 나야 시인이 아니요.》 석광희는 짐짓 시침을 떼고 말하였다. 《글쓰는 사람들은 속이지 못하겠구만요.》 《그래 정말 장가들었소?… 하하…》 석광희는 호탕하게 웃었다. 중대장도 수집어하며 따라웃었다. 밤하늘에 때아닌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허… 내가 소좌동지의 전술에 넘어갔군요.》 중대장은 어이없다는듯 석광희의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순간 이상한 예감이 스쳤다. (그때 그 작가선생이?…) 중대장은 석광희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러는 중대장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석광희는 담배를 권했다. 《중대장동무, 한대 피우오.》 담배대를 쥔 석광희의 두번째와 세번째 손가락끝에 노랗게 물든 담배진, 뾰족한 턱에 가늘게 보이는 눈, 작은 키에 체소한 몸매… (옳구나!) 틀림없는 그때의 작가선생이였다. 다만 군사칭호만이 달랐다. 《전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중대장은 사양하면서 무슨 말인가 물으려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는 등불심지를 돋구면서 느슨하게 말하였다. 《장가야 큰상두 받구 말두 타봐야 장가간것 같지요. 그런데 나는… 허 이거 소좌동지, 절대로 비밀을 지켜줘야 합니다. 우리 중대동무들이 내가 장가간걸 모릅니다.》 중대장은 석광희에게 비밀을 담보할것을 약속하고서야 추억속에 묻어둔 지나온 이야기를 천천히 꺼냈다. …중대장의 고향은 함경남도 단천이였다. 당시 일본의 노구찌놈이 장진땅에 발전소를 세운다고 하면서 숱한 인부들을 모집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막벌이로동을 하다가 그 소문을 듣고 어린 철민이를 데리고 장진군으로 갔다. 그곳에 보짐을 푼 아버지는 철민이를 부자집 머슴으로 남겨놓고 공사장으로 갔다. 그해 물란리로 언제가 터져 아버지의 시체도 찾지 못한채 철민은 머슴으로 잔뼈가 굳어졌다. 발전소언제공사가 끝나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지자 오갈데 없는 철민은 외동딸을 데리고사는 어느 홀어머니의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갔다. 일찌기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품에서 자란 철민이는 주인어머니가 마음에 들었고 그 집 딸 순애가 사랑스러웠다. 하여 어린 나이에 감자밥 한그릇에 절인 고등어 한토막을 놓고 장가를 들었던것이다. 철민이는 살아보자고 무진 애를 썼다. 이듬해 봄 철민이는 장모와 함께 묵은 화전을 뚜져 감자 몇알을 심었는데 그것이 죄가 되여 일본인산림간수놈한테 뭇매를 맞아 장모가 자리에 눕게 되였다. 약살 돈 한푼없는 철민이는 장모를 살리기 위하여 일본놈이 부설하는 철도공사장으로 돈벌이를 떠났다. 그는 떠나면서 임신된 안해에게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를 잘 돌봐야 한다고 몇번이나 당부하였다. 안해는 그 이듬해 봄에 아들을 낳았다. 남편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겠는데 안해는 물론 동네에 글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편지를 쓰자면 읍에 가서 글을 아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써야 하는 기막힌 세상이였다. 안해는 생각다 못하여 빨간 인즙을 얻어 갓난애기의 손바닥에 발라 편지종이우에 찍고 주소만 돈을 주고 봉투에 썼던것이다.… 《소좌동지, 이런 까막눈들을 우리 장군님께서 눈을 틔워주시고 오늘은 이렇게 중대장으로까지 내세워주시지 않았습니까?》 중대장은 지난날 눈물겹던 이야기를 하면서 몇번이나 경련을 만난 사람처럼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석광희는 중대장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진실한 이야기속에서 나라를 찾아주시고 인간의 존엄과 자주권을 되찾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의 정을 다시한번 가슴뜨겁게 절감하였다. (내가 이 중대에 오기를 잘했구나.) 석광희는 중대장에 대한 지금까지의 고까운 생각이 사뭇이 없어졌다. 그래서 이야기에 끌려들며 스스럼없이 물었다. 《그런데 그 편지를 보고 아들인지 딸인지는 어떻게 알았소?》 《허허…》 중대장은 허거프게 웃고나서 《인즙으로 꼬토리를 이렇게 그려놓았더군요.》 하며 손가락으로 형용까지 하였다. 《하하하.…》 석광희는 배를 그러쥐고 웃었다. 《중대장동무, 정말 괜찮은 안해요. 나도 그쯤한 녀자를 얻어야겠는데…》 《소좌동지두 참… 소좌동지야 이제 더 훌륭한 녀성을 얻게 될텐데요. 이제 두고보십시오.》 《아니, 난 그런 녀성이면 되오.… 그래 지금은 아들이 퍽 컸겠구만.》 석광희는 부러운듯 물었다. 《지금쯤 소학교에 다닐겁니다. 책가방을 메고…》 《아니?… 그럼 지금 중대장동무의 나이가…》 《예, 27살입니다.》 《그럼 열아홉살에 장가를… 하하…》 《그래서 내가 중대동무들에게 장가간걸 비밀로 붙이고있습니다.》 《아니, 이야기해야 하오. 지난날 그 쓰라린 과거를 온 중대전사들이 다 알게 말이요. 그래야 조국이 얼마나 귀중하며 그 조국을 찾아주신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이 얼마나 고마운분이신가를 우리 전사들이 더잘 느낄수 있을게 아니요. 그래야 이 전쟁도 이길수 있는거구…》 석광희는 흥분되여 말하였다. 《소좌동지, 우리 전사들도 그것은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치는게 아니겠습니까?》 중대장의 말은 옳았다. 피맺힌 과거생활과 작별하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속에서 새삶을 누려온 전사들의 가슴속엔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고마움이 끓어넘치고있는것이다. 석광희는 중대장의 그후 이야기를 더 듣고싶었지만 어쩐지 주저되였다. 혹시 가슴아픈 사연이라도 있다면… 그러나 중대장은 스스럼없이 밝은 얼굴로 말하였다. 《내가 편지를 받고 집에 오니 장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다음해에 조국이 해방되였습니다. 마을에 성인학교가 서고 나와 안해는 난생 처음 우리 나라 글을 배웠습니다. <가갸거겨…> 하면서 말입니다. 나이먹어 좀 부끄럽긴 해도 재미있더군요. 그게 다 뉘덕입니까.… 그래서 희생된 전우들 생각이 더 나고 가슴이 아픕니다. <세포위원장동무, 내가 저 화구를 막고 쓰러지면 나를 조선로동당원으로 불러주오.> 하던 2소대장동무와 저 고지에 쓰러진 전우들을 생각하면…》 중대장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울먹이였다. 잠시 동안이 흐른 뒤 중대장은 말했다. 《소좌동지는 이제 날이 밝으면 돌아가십시오.》 그의 두눈에서는 금시라도 증오의 불길이 쏟아져나올듯 이글거렸다. 석광희는 그의 심중을 리해할수 있었다. 《이거 죽으라는 말보다 가라는 말이 더 섧다는데…》 석광희는 너스레를 부렸다. 《소좌동지, 그게 아닙니다. 이제 한시간만 있으면 또 싸움이 시작됩니다.》 격노한 마음을 참기 어려운듯 그의 얼굴은 피빛으로 검붉어졌다. 《중대장동무, 난 싸움을 구경하러 온게 아니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 작가, 예술인들에게 전선에 나가 전사들과 함께 자며 밥도 함께 먹고 총도 함께 쏴봐야 한다고 하시면서 전선으로 종군하도록 하시였소. 그러니 나도 전사란 말이요. 군사칭호는 소좌이지만…》 석광희는 중대장이 뭐라고 해도 탓하고싶지 않았다. 《소좌동지가 내 명령에 복종하겠습니까?》 《복종하구 안하구가 있소? 병사는 오직 <알았습니다> 말밖에 없지 않소.》 《소좌동지는 좋은 노래나 써주십시오. 그게 총포탄보다 더 낫습니다.》 《노래도 전투속에서 나오는거요. 중대장동무, 전사들의 이 사품을 좀 볼수 있겠소?》 석광희는 아까부터 희생된 전사들이 남기고간 사품에 관심이 갔던것이다. 중대장은 아무런 응대도 없이 묵묵히 빈 수류탄상자우에 놓여있는 첫번째 배낭을 풀어헤쳤다. 《보십시오. 이게 우리 전사들의 숨결입니다.》 중대장이 배낭속에서 마분지로 만든 네모난 곽을 꺼내여 뚜껑을 열었다. 호기심에 넘쳐 곽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석광희는 깜짝 놀랐다. 너무도 생각밖의 물건들이였다. 전쟁시기라는 엄혹한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그것은 벌레들이였다. 곽안에는 검은범나비, 무당벌레, 노랑말벌 등 각종 곤충들이 강선에 꽂혀있었다. 《?…》 석광희는 의아스런 표정으로 중대장을 바라봤다. 《곤충표본들입니다.》 중대장은 표본이라는 말에 힘을 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내 련락병의것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생물학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를 습격조에 내보내지 말아야 했지요. 그는 중학교를 채 졸업하지 않고 나이를 속여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그런데 습격조에 나가 적화구를 가슴으로 막고…》 중대장은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희생된 련락병에 대한 생각이 가슴을 모질게 허비였던것이다. 석광희도 가슴이 뜨거웠다. 어린애들처럼 벌레를 잡아가지고 노는 그런 천진한 어린 병사가 불뿜는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는 그런 용감하고 대담한 희생정신이 어데서 생겨난것인가.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명령으로도 집행하기 어려운 전투임무가 아닌가.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것을 알면서도 서슴지 않고 죽음을 결심하는 그 정신력… 석광희는 많은 전투들과 영웅들의 위훈을 통하여 이것을 모르는바는 아니지만 오늘 더욱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그래 영웅으로 내신했소?》 《아직은…》 중대장은 무슨 피치못할 사연이라도 있는듯 다음말을 얼버무렸다. 《내가 련락병에게 처벌을 줬댔습니다.》 《처벌이라니?…》 석광희는 《처벌》이라는 뜻밖의 말에 놀랐다. 영웅이 되여야 할 전사에게 처벌을 주었다는것은 무슨 말인가. 석광희는 리해가 되지 않아 중대장의 얼굴만 덤덤히 지켜보았다. 중대장은 곽에서 검은범나비를 집어들고 희생된 련락병을 못 잊어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놈때문에 내가… 성진동무는 련락병이 되지 않겠다는걸 내가 억지로 임명했습니다. 중대에서 나이가 제일 어리고 또 똑똑하고… 그런데 임명하는 날 나하구 약속할게 있다구 하면서 련락병이 되면 1211고지에 있는 곤충들을 다 잡아 표본을 만들수 있게 시간을 주겠는가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약속했습니다. 그후 중대가 이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성진이가 이놈을 보자 정신없이 따라다녔지요. 전호턱으로 뛰여올라 이놈을 덮치려는 순간 놈들의 비행기가 달려들어 폭탄을 떨구고 기총사격을 하였습니다. 위급한 순간에 정치부중대장동무가 성진이를 잡아끌며 자기 몸으로 덮었습니다. 그 바람에 정치부중대장동무가 팔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중대장의 권한으로 처벌을 줬습니다.》 석광희는 중대장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야 그의 말이 리해되였다. 그것은 응당한 처벌이며 군사규률문제였다. 그런데도 중대장은 그에게 처벌준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그래 이 범나비는 누가 잡았습니까?》 《폭격이 끝난 다음에 중대가 달라붙어 잡았습니다. 그날 밤에 성진이가 습격조에 내보내달라고 억지를 썼지요.…》 석광희는 중대장의 말을 들으면서 억제할수 없는 충격이 갈마들었다. 《소좌동지, 이런 성진이가 저 고지에 누워있습니다.》 《…》 석광희는 차마 무엇이라 말할수가 없었다. 그 어떤 위로도 보상도 중대장의 아픈 가슴을 달래줄수 없었다. 다만 석광희의 뇌리에 감겨드는것은 창작적열망 하나만으로 영웅들의 위훈을 노래하려고 한 자기의 가사창작이 얼마나 허망한것인가를 느끼게 되였다. 그래서 석광희는 김창걸영웅의 최후를 목격하고 흥분에 들떠서 《돌격가》를 짓던 그때를 그려보았다. …석광희가 《돌격가》의 가사를 썼을 때의 일이였다. 재진격의 길에 올랐을 때 한 분대장이 석광희를 찾아와서 《선생님은 시인이라지요? 선생님이 쓴 글이 있으면 좀 보여줄수 있겠습니까?》 하며 자기도 고급중학교에 다닐 때 시공부를 좀 했다는것이였다. 그래서 그는 금시 추고를 끝낸 《돌격가》의 가사를 보여주었다. 분대장은 가사를 거듭 읽어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원고를 돌려주며 시무룩해하였다. 석광희는 찬사의 목소리가 나오길 기대하였는데 너무도 뜻밖의 표정이여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막 옥죄여들었다. 분대장은 실망한듯 《선생님, 이 가사에는 어쩐지 우리 병사들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고 한마디 하고는 주밋거리다가 떠나갔던것이다.… 석광희는 그때를 생각하며 지금에야 그것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였다. 병사들의 숨결, 이것은 곧 사랑과 잇닿아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이 없이는 이 어려운 싸움을 이겨낼수 없는것이다. 바로 이 곤충표본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는것이다. 석광희에게는 곤충표본함에 들어있는 그 모든것들이 한 전사의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리상과 잇닿아있고 그것이 조국애로 감수되였다. 석광희는 시인의 즉흥적인 감정에서 오는 창작적령감을 다잡으며 다음배낭우에 놓여있는 주먹만 한 주머니를 집어들었다. 《이건 무엇입니까?》 《흙주머니입니다. 우리 중대의 제일 나이많은 김칠성아바이가 토지개혁때 분여받았던 땅에서 싸가지고 온 흙이랍니다. 아바이는 어제 습격전투에 나가면서 이 흙주머니를 나에게 주며 <중대장동무, 내가 혹시 저 고지에 쓰러지면 이 흙주머니를 건사했다가 전쟁에서 이긴 다음 고향에 있는 우리 마누라에게 전해주시우.> 하고 떠나갔습니다.》 석광희는 그 말에 코마루가 찡해나고 온몸이 전기에 닿은 때처럼 쩌릿하였다. 얼마나 소박한 병사들의 말인가. 그 말속에 땅에 대한 그리움과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응축되여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제땅에서 마음껏 농사를 지어보는것은 우리 나라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이였다. 그 숙망을 풀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해 이 한줌의 흙을 가슴에 품고 원쑤격멸의 길에 나선 아바이전사. 석광희는 전사들이 남기고간 배낭에서 병사들의 값높은 넋을 읽을수 있었다. 이때까지 무심히 보아온 병사들의 배낭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이 깊어지는것이였다. 땀에 젖고 파편에 찢겨 기운 자리는 있어도 조국에 바치는 병사들의 깨끗한 량심이 들어있는 배낭, 여느때는 례사로이 보아온 병사들의 작은 배낭이 오늘은 조국이라는 귀중한 품과 잇닿아있어 더없이 귀중한 보물로 여겨졌다. 석광희는 《돌격가》가사창작에서 체감하지 못한 병사들의 숨결을 병사들이 남긴 배낭속에서 찾아보는것 같았다. 이때 대대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중대장이 얼른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의 전화말소리가 어찌나 우렁우렁한지 곁에서도 다 들리였다. 《…시인선생을 잘 돌봐야 하오.… 절대로 전투에 인입시켜서는 안되오. 알겠소?》 《그런데 돌아가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중대장은 석광희를 넌지시 바라보며 들으라는듯 큰소리로 말하였다. 《…시인선생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치게 했다간 중대장동무가 처벌받을줄 아오.…》 중대장은 송수화기를 놓으며 히죽이 웃어보였다. 너부죽한 얼굴에 피여나는 미소, 한떨기 장미꽃같이 열렬하고 뜨거운 인간애가 피여나는 웃음이였다. 갑자기 1211고지에서 요란한 총포소리가 나고 놈들의 조명탄이 공중에 고무풍선처럼 매달리면서 문등고지를 대낮같이 환하게 비쳤다. 엄페부밖에서는 정치부중대장이 공개당총회를 준비하고있었다. 《소좌동지, 이제 10분만 있으면 중대공격이 시작됩니다.》 중대장은 위엄있게 말하고나서 엄페부를 나섰다. 석광희도 따라나섰다. 정치부중대장이 람홍색공화국기발을 비스듬히 비껴들고 말하였다. 《… 동무들! 우리에게 조국보다 더 귀중한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조국이 우리의 운명이고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이시기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땅을 주고 인간의 참된 삶을 안겨주신 김일성장군님을 위하여 문등고지를 기어이 점령합시다.》 정치부중대장의 말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한마디한마디 말이 전사들의 심장을 높뛰게 하였고 피를 끓게 하였다. 한 전사가 불쑥 일어섰다. 《동지들! 나는 민청원입니다. 내가 결사전에서 쓰러지면 나를 조선로동당원으로 불러줄것을 제의합니다.》 전사의 토론은 마치 입당청원서를 읽는듯 숭엄하였다. 또 다른 전사가 일어섰다. 《정치부중대장동지, 공화국기발을 나에게 맡겨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중대장 박철민이 토론하였다. 《전투원동무들! 가렬한 전투의 저기 저 고지에 피흘려 쓰러진 전우들이 있습니다.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결사전으로 나갑시다.…》 순간 아군 련포군의 일제 포사격이 시작되여 문등고지를 뒤흔들어놓았다. 석광희는 전사들의 불같은 토론과 중대장의 열화같은 호소가 그대로 시상이 되여 가슴을 쳤다.
가렬한 전투의 저기 저 언덕 피흘린 동지를 잊지 말아라 …
가사의 구절이 새겨졌다. 《이것이다!》 석광희는 흥분되여 전투가방에서 원고지를 꺼내여 단숨에 써나갔다.
… 쓰러진 전우의 원한 씻으러 나가자 동무여 섬멸의 길로 …
안타깝게 모색하던 시상이 병사들의 숨결을 타고 떠올랐던것이다. 화광이 번쩍이고 폭탄이 문등고지를 팥죽끓듯 만들 때마다 린접중대가 돌격하는 모습이 영화화면처럼 보이였다. 석광희는 판가리싸움을 앞두고 전호에 가슴을 대니 여느때 느껴보지 못한 안온한감이 들고 구수한 흙냄새가 감미롭게 안겨왔다. 어느 시에선가 《한줌의 흙, 그것은 삶의 젖줄기, 그것은 조국의 품이여라…》라고 쓴 구절이 떠올라 그래서 바로 우리 전사들이 조국을 위해 청춘도 사랑도 목숨도 아낌없이 바치는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강렬하게 머리를 쳤다. 두발의 붉은 신호탄이 포물선을 그으며 문등고지 정점으로 날아올랐다. 박철민중대에 공격을 명령하는 신호탄이였다. 중대장은 오른손에 권총을 빼들고 전호턱우에 우뚝 올라섰다. 그의 두눈에서는 섬광이 번뜩이고 약진할 자세로 딛고있는 두다리는 앞발을 벋디딘 호랑이의 기상같았다. 중대장은 권총을 쳐들고 우뢰치듯 웨쳤다. 《동무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위하여 돌격 앞으로!》 중대는 《만세!》의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였다. 중대장은 몇발자국 내딛다가 돌아서서 《소좌동진 이 전호를 넘어서면 안됩니다.》 하고 선언하듯 말했다. 마치 녀자애들이 돌차기놀음을 할 때 땅에 금을 그어놓고 계선을 가르듯 석광희의 돌격을 불허하였다. 《중대장동무! 이건…》 《명령에 복종하십시오.》 중대장은 한마디 내던지고 달려갔다. 그러나 그는 그 명령에 복종할수 없었다. 자신도 병사였고 전사들과 함께 싸우는 종군작가였기때문이였다. 더구나 중대장이 미더웠고 또한 걱정되였다. 석광희는 권총을 빼들고 중대장의 뒤를 따라 공격서렬에 들어섰다. 포연과 흙먼지속에서 중대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걸음을 다그쳤으나 놈들이 쏘아대는 화력때문에 발길이 자주 떠졌다. 중대의 공격은 적들의 제2참호계선에서 잠시 멈춰섰다. 놈들이 비밀리에 굴설한 영구화점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하였기때문이였다. 공화국기발을 들고 앞장에서 돌격하던 전사가 쓰러졌다. 다른 전사가 공화국기발을 넘겨받고 달리다가 또 쓰러졌다. 정치부중대장이였다. 석광희는 입술을 피나게 깨물었다. 이때 한 병사가 수류탄을 빼들고 적화점을 향하여 접근하는 모습이 화광속에서 언듯 나타났다. 첫번째로 토론한 전사였다. 《쾅―》 수류탄이 폭발하자 중대는 《만세!―》소리와 함께 다시 땅을 차고 일어섰다. 그런데 죽은줄만 알았던 화점에서 다시 불을 뿜었다. 순간 《김일성장군 만세!》의 웨침과 함께 그 누군가가 달려가며 불뿜는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았다. 《중대― 돌격 앞으로!》 중대장은 성난 호랑이처럼 부르짖었다. 서리발비낀 총창들이 《만세!》를 웨치며 미제놈들을 사정없이 쏘고 찔렀다. 석광희도 총을 쏘고 또 쏘았다. 어느 사이에 중대장이 공화국기발을 넘겨받았는지 중대의 맨 앞장에서 기폭을 날리며 달리고있었다. 중대가 적들의 제2참호를 점령하고 고지정점으로 치달으자 예상치 못했던 좌측릉선에서 적화점이 또 나타났다. 돌격은 다시 좌절되고 공화국기발도 보이지 않았다. 석광희는 이상한 예감이 들어 중대장이 달리던 언덕으로 접근하였다. 중대장이 적탄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져있었다. 《중대장동무! 중대장동무!…》 석광희는 중대장을 껴안았다. 얼마만에 석광희를 알아본 중대장은 숨을 몰아쉬며 《소좌동진 내 명령을… 끝내 복종하지 않았군요.… 여긴 왜 왔습니까? 어서… 돌아가십시오.…》 하며 몸을 일으켜세우려고 하였다. 《안되오, 중대장!…》 석광희는 중대장을 총탄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옮기려 하였으나 그는 막무가내로 뻗디디였다. 중대장은 땀이 배고 포연에 그슬린 얼굴에 가느다란 미소를 짓더니 석광희의 손을 잡아쥐며 띠염띠염 말하였다. 《소좌동지…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겠습니까?》 《들어주겠소. 다 들어주겠소. 어서 말하오.》 석광희는 성급하게 말하였다. 중대장은 군복앞섶을 헤치고 무엇인가 찾았다. 《중대장동무, 왜 그러오?…》 《아… 이거… 이겁니다. 내 안해가… 보내준 편지입니다.… 이걸 꼭… 안해에게 전해줬으면… 합니다.》 석광희는 중대장이 내미는 수첩의 갈피에서 편지를 꺼내보았다. 보풀이 일고 모서리가 닳은, 색마저 누렇게 바랜 편지. 석광희는 아연해졌다. 글자는 한자도 없고 갓난애기의 손바닥이 빨간 인즙에 찍힌 자리, 오랜 세월과 함께 인즙기름이 내배여 얼룩진… 석광희는 저도 모르게 두손이 후두둑 떨리였다.
그것은 바로 수난의 력사에 대한 증거물이였다. 일제놈들의 착취와 억압속에, 몽매와 암흑속에 시달리던 우리 인민들이 아니였던가. 몇백마디 말보다 이 편지 하나가 중대장의 지난 생활을 잘 말해주고있는것이다. 《소좌동지, 용서하십시오.… 제가 바로 돌격가를 지어달라고 부탁한 그때 부소대장입니다. 그런데…》 《?…》 석광희는 얼없이 중대장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중대장은 혼몽한 상태에서 다시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소좌동지, 우리 전사들을 위훈에로 부르는 훌륭한 노래를 부탁합니다.》 《알겠소. 내 꼭…》 중대장은 전투가방을 석광희에게 넘겨주고 허리에 찬 수류탄을 뽑아들었다. 《중대장동무, 안되오!…》 석광희는 중대장을 막아나섰다. 《소좌동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 저놈의 화점을…》 《안돼! 내가… 내가 하겠소.》 《소좌동진 이… 공화국기발을…》 불사신처럼 일어선 중대장은 석광희가 앞을 막을 사이도 없이 적화점을 향하여 달려갔다. 《김일성장군 만세!… 중대 돌격 앞으로!…》중대장의 웨침소리와 함께 요란한 흙기둥이 밤하늘을 들었다놓았다. 《중대장동무!…》 석광희는 피타게 웨치며 땅을 차고 일어섰다. 쓰러진 전우의 복수를 위하여 공화국기발을 휘날리며 미제놈들을 쏘고 또 쏘았다. 그러면서 심장의 뜨거운 피를 찍어 2절가사를 가슴에 새겼다.
원쑤의 불구멍 몸으로 막은 전우의 죽음을 헛되게 말라 …
중대장이 웨친 호소 그대로였고 싸움의 결전장 그대로였다. 석광희는 돌격의 앞장에서 기수가 되여 달리면서 병사들의 영웅적위훈과 그들의 뜨거운 숨결을 더욱 가슴깊이 느끼였다. 최후의 그 순간에도 원쑤의 불구멍을 몸으로 막은 희생정신, 그것은 병사들이 피로써 지켜가는 이 길이 사랑하는 부모처자들이 있는 고향에 잇닿아있고 나라를 찾아주시고 주인으로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 다진 맹세가 있기때문인것이다. 석광희는 중대장의 부탁을 생각하며 가사의 3절을 심장속에 새겼다.
피로써 승리해가는 이 길이 그리운 고향에 뻗치고있다 수령께 맹세한 붉은 맘으로 나가자 동무여 섬멸의 길로 …
석광희는 고지우로 치달아오르면서 오늘에야 그처럼 모대기던 병사들의 숨결을 페부로 느꼈다. 전사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진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 그 사랑이 있어 전사들은 죽음앞에서도 자기의 심장을 서슴없이 바치는것이 아닌가. 승리한 고지에서는 병사들의 만세소리가 하늘땅을 진감하였다.
만세 만세 만세 높이 부르며 원쑤의 화점을 짓부시며 앞으로 …
석광희는 고지우에 공화국기발을 휘날리면서 병사들이 웨치는 만세소리를 들으며 가사의 후렴구를 달았다. 이렇게 화선에 나온 석광희는 《돌격가》대신 《섬멸의 노래》를 썼다. 그후 1211고지를 찾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병사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시고 원쑤를 족치는 결전의 길에 나선 전사들의 심정을 반영한 전투성이 강한 좋은 노래라고 높이 평가하여주시였다. 노래는 이렇게 완성되여 《결전의 길로》로 이 세상에 태여났던것이다. 오늘도 시인 석광희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속에 영생의 언덕우에서 《결전의 길로》와 함께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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