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8(2009)년 제1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련   시

분노는 잠들지 않는다


― 한 병사의 어머니가 쓴 수기 ―

 

김    령


분노를 알게 한 날

 

아침까지만 해도

제꺽 마을을 한바퀴 돌고 와서

밥 먹겠노라며

싱긋 웃던 그가

쓰러졌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나선김에 한배미 제끼고 오다나니

늦었노라며

배고프다고 정지방으로 내려서던

나의 그 오빠가 죽었다

 

어떤 놈이냐

《소년추수돌격대》를 이끌고

후방가족 집집의 가을걷이 돕는다고

그렇게도 펄펄 뛰던

다 자란 그 소년을 죽인 놈이

 

어머니를 끌어안을듯

부엌문쪽으로 뻗쳐진 손에

꽉 틀어져있는 낫가락엔

한오리 벼검불이 아직도 생생한데

가마안엔 그가 좋아하는

조밥에 고추찌개가 그대로 있는데

 

아, 어떤 놈이냐

어느놈이냐

정지문을 박살내고

나의 지연오빠를 쏘아 맞힌 놈이

그 좁다란 가슴팍에

사정없이 구멍을 뚫어놓은 놈이!

 

그날은

하늘을 째는 굉음과 함께

어느 집 어느 토방 어느 부엌바닥에나

걸쭉한 붉은것이 랑자했던 그날은

조국의 동해기슭의 한 농가

열세살소년을 련발로 쓸어눕힌

오, 그날은

 

1950년 6월!

자식들이 잘되길 바라던

나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 나의 오빠를 잃은 날

미국놈을 알게 한 날이였다!

분노를 알게 한 날이였다!

 

 

눈물은 어떤 때 흘리는가

 

생때같은 아들을

생때같이 잃으시고도

어머니는 어째서

눈물을 모르실가

 

해방된 이듬해

오빠의 생일날

당콩을 놓은 조이떡을 꿰여들고

그리도 벙글거리던 오빠를 보며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더라

 

첫 민주선거를 앞둔 날

학생가창대의 맨 앞장에서

구호를 웨치는 오빠의 장한 모습을 보며

저 애가 내 아들이 맞는가

하시며 아침 쌀 일던 손으로

어머니는 눈굽을 훔치셨더라

 

또 생각나라

소학교졸업식날

온 리가 다 모인 학교운동장에서

아버지도 없는 지연이가 공부 제일 잘했다고

면당위원장아저씨가 상장 줄 때

어머니의 여윈 볼로 흘러내리던 그것이

 

그런데 어째서 오늘은

눈물을 모르실가

잠뱅이를 입고도

최우등만 땅땅 하던 오빠가 죽었는데

엄마, 일없수―

늘쌍 이런 말로

어머니를 위로하던 그 오빠가 죽었는데

 

아 아들의 행복에서 자주 흘리시던

어머니의 뜨거운 그 눈물

미국놈들이

미국놈들이 졸지에 앗아간 이 순간엔

아,어머니 그 눈에선

불, 불이 뿜어나오는게 아닌가!

 

 

분노는 잠들지 않는다

 

― 초소에 서있는 아들에게 ―

 

네 외삼촌을 죽인

악당놈들을 끌어가던 날

두눈에 시퍼런 불을 켜단 외할머니를 말리며

보안원아저씨는 말하였다

이놈들이나 죽인다고

원한이 풀리는게 아니라고

 

정말 그랬다

미제의 야만적인 폭격에

하루에도

수백명씩이나 쓰러졌다

 

남진하는 군대들의 밥을 지어준

외할머니앞에서

단벌이불이건 종자돼지건

눈에 보이는건 다 태워버렸다

 

그 미제살인귀들때문에

치마끈을 질끈 동인채

벼가을하던

너의 고모가 목숨 잃었다

 

미국놈들이 망하는걸 보고야말겠다며

두눈을 번쩍 뜨고

너의 외할아버지도

그렇게 숨지였다

 

아, 증오의 눈길 번뜩이며

적진을 노리고있을 아들아

미국놈들이!

미국이라는 저주로운 땅덩어리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이것은 한갖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거니

 

지금도

이 순간도

나라의 절반땅을 타고앉아

대가리를 쳐든 그 야수의 무리들이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있기에

핵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오고있기에

 

아, 지면에만 실을수 없는

나의 이 수기를

총잡은 내 아들아

너의 총창끝에

복수의 총창끝에 실으려 하나니

 

아들아

너의 눈동자에

증오의 불을 황황 켜다오

원쑤 미제를 모조리 소멸하는 날까지

이 원한 순간도 잊지 말아다오

 

아 분노는 잠들지 않는다

이 지구상에 원쑤의 무리가 있는 한

우리의 분노는 잠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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