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8(2009)년 제2호에 실린 글  

 

   벽소설

《 보 약 》

 

                            

                              고 정 옥
 

 

《옆집 처녀 믿다가 장가 못 가는 격 되겠군.》

영농자재준비정형을 가지고 분조장들의 총화를 하려던 작업반장 성근은 두툼한 작업일지뚜껑을 신경질적으로 탁― 덮어버리며 언성을 높였다.

탁― 하는 소리가 가뜩이나 타오르는 불에 부채질을 하는듯싶다.

그는 마치도 은별이가 안에 들어앉아 단발머리카락이 닿을듯 한 어깨를 달싹이며 웃고있는듯 작업일지를 바라보았다.

영농준비정형을 총화해야 하는 지금 이 시각까지도 은별의 분조에서는 활창대며 말짱이 계획대로 들어오지 않은것이다.

새해공동사설을 높이 받들고 올해알곡생산목표를 점령하는데 총력을 집중해야 하고 더우기 며칠 있으면 흙보산비료생산에 들어가야겠는데 이게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걱정마십시오, 반장동무. 좀 기다려봅시다. 말굴이쪽으로 갔으니 좀 늦어지겠지요.》

세포비서가 성근의 단가슴을 식혀주려는듯 한마디했다. 그는 달구지를 앞세우고 여적 나타나지 않은 은별이보다 속이 달아가지고 애타하는 반장이 더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은별은 분조원들을 데리고 니탄채취를 위해 말굴이골쪽으로 갔다고 한다. 딩굴 자리보고 씨름판에도 나서랬다는데 도대체 그는 어떻게 타산을 하고 말굴이골을 타고앉을 생각을 했는지…

옛날에 고개를 넘던 말이 굴렀다고 하여 이름을 붙인 말굴이골에는 많은 량의 니탄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이 욕심은 굴뚝같았으나 그것을 정작 끌어내기란 배보다 꼭지가 더 큰 격이여서 누구나 선뜻 마음먹기를 주저했다. 뜨락또르를 댈수 있는 소로길까지 끌어내자고 해도 작업량이 간단치 않은것이였다.

다년간 농사일로 손바닥을 굳혀온 반장자신도 밀어놓은 그림의 떡을 은별이가 척 타고앉으려 하는것이다. 텅 빈 방안에서 성급히 왔다갔다 하던 성근은 종시 밖을 나섰다.

사납게 불어치는 눈보라도 의식하지 못하고 자전거에 올라 발디디개를 연방 눌러가는 그의 머리속에는 3분조농사에 대한 위구심이 불막대기마냥 솟구쳐올랐다. 어쩐지 후회가 났다.

올해 23살이 잡힌 그를 분조장으로 추천한 사람이 바로 자기였던것이다.

순간 그의 머리속엔 재작년 가을날이 떠올랐다.

진창에 박힌 강냉이이삭, 이삭에 게발린 흙을 나무꼬챙이로 쑤셔대던 은별이, 그리고는 물에 말끔히 씻어 적재함우에 올리는 그에게 성근은 아물거린다고 꽥 소리쳤었다. 고양이손도 빌려야 할판에 언제 밥먹고 입가심까지 할판인가 하는 불만이였다. 그런거야 돼지사료에 던지면 그만인걸…

성근의 우두두 하는 인상이 우스웠던지 은별은 커다란 깜장눈을 곱게 치뜨고 깔깔 웃었다.

성났던 사람같지 않게 성근은 그의 맑고 명랑한 웃음소리와 어울려 그의 깐진 일솜씨가 어쩐지 마음에 꼭 들었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는 말이 옳은것 같았다.

은별의 어머니는 성근이와 함께 호미쥐는 법을 함께 배우며 일해온 농장적으로 손꼽히는 실농군이였다.

성근은 아직 분조살림을 맡기기엔 나이도 경험도 어린것 같은 은별을 놓치기가 아쉬웠다.

하지만 락락장송도 근본이 종자라고 아직은 여리지만 잘 키우면 작업반의 믿음직한 기둥감이 되지 않겠는가. 하여 성근은 마음속에 은근히 새겨두고있다가 이번에 분조장으로 추천했던것이다. 그런데…

《아이쿠나!》

갑자기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웬 녀인이 앞에서 얼씬했다.

생각에서 깨여난 성근은 급해맞아 비틀거리다가 종시 눈우에 자전거와 함께 딩굴고말았다.

《이걸 어쩌나, 반장이댔구만.》

자전거를 일으켜세우며 미안한 기색으로 아부재기를 치는 녀인은 은별이 어머니이다.

그는 옆에 떨어진 약봉지를 주어 내밀었다.

《아니, 반장은 어데 아프오? 약봉지까지 가지고 다니니?》

《내 처가 만든 무슨 보약이라는지…》

《허, 그러구보니 반장두 이젠 늙은것 같수다.》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섰던 성근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흥, 늙지 않게 됐소? 헌데 이 저녁에 어딜 가시우?》

《작업반엘요. 그런데 회의가 끝났는가요?》

딸을 찾아오는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편에서 물어봐야 할 말을 제켠에서…

잔뜩 심사가 뒤틀린지라 성근은 뚱딴지같은 말이 곱지 않게 삐여져나갔다.

《제 어미도 모르는걸 낸들 냄새맡고 알겠소?》

《예?》 녀인은 어리둥절해져서 성근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제야 성근은 피씩 웃었다.

《3분조장이 안 와서 회의는 시작도 못했수다.》

《그래서 꿩대신 닭이 오댔지요. 분조장들의 총화모임에 못 참가할것 같다면서 날 먼저 내려보냈수다. 자요.》

그는 쪽지편지를 쥐여주고는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뒤돌아 반달음을 쳤다.

급히 편지를 펼치니 뜨락또르를 보내달라는것뿐이였다. 영문을 알수 없어 저만치 가는 은별이 어머니를 찾으니 그는 찾는 리유를 제나름으로 짐작하고 손으로 무슨 흉내를 내며 소리쳐 대답한다. 눈바람이 우우 하는 소리에 말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령너머라는 말은 잘 들리였다.

《뭐? 령너머… 그럼? 아하!》

머리속에 떠돌던 의문부호가 순간에 없어졌다.

성근은 아마 지금쯤 골안에 령너머 군대들이 쫙 깔려있으리라고 확신했다. 바쁜 때마다 힘든 모퉁이를 도맡아주던 땅크중대장이랑 은별이의 말을 듣고 가만있을수가 있겠는가.

은별이는 군인들의 도움을 받을 《신통한 타산》을 했을것이다.

(정말 철이 없지.…)

다른 사람들에게 매달려 농사를 지으려고 생각한 은별이보다도 그를 보증한 자신이 철없는 사람처럼 생각되였다.

군대가 없으면 어떻게 농사를 지으려는가, 아이가 엄마찾듯이 그저 군대, 군대…

하긴 작년에 령너머에 있는 군인들이 아니라면 어쩔번 했는가. 짧게 잡아 며칠은 충분히 걸려야 한다던 수십t용량의 강냉이창자를 군인들이 해체하지 않고 단 6시간동안에 통채로 옮겨놓았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말려놓은 숱한 강냉이를 억수로 퍼붓는 비에 홀랑 싹틔울번 했다.

그때 성근은 집채같은 창자를 통채로 옮겨놓는 군인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보며 작업반원들이 모두 저 군인들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공상도 해보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성근은 회의때마다 령너머 군인들의 투쟁정신을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고 한두번만 강조하지 않았다.

더구나 올해는 자체로 농사를 짓자고 새해부터 잡도리를 단단히 하지 않았는가.

하루 드티면 열흘 밀리는게 농사일인데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앉아있을수는 없다. 만사는 불여튼튼이라고 지금부터 준비를 착실하게 해야 뒤탈이 없을게 아닌가.

얼마 못 가서 그는 자전거에서 내리고야말았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뻣뻣해졌다. 뿌득뿌득 눈이 암팡지게 소리를 내며 그의 발을 끌어당기는것 같았다.

(정말 나도 이젠 늙었나보군.)

그제야 처가 주머니에 넣어준 보약생각이 났다.

약이나 먹는다고 늙음을 막으랴만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입에 넣으며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로화란 어쩔수 없는것이라고 속으로 개탄하며 그는 자전거를 끌고 령을 오르기 시작했다.

헉―헉― 단김을 내뿜으며 발을 옮기던 그는 갑자기 앞에서 깔깔 웃음소리가 날아듦과 동시에 발구가 쏜살같이 내려오는 바람에 얼결에 옆으로 비켜섰다. 씽― 옆을 스치며 얼마동안 내려가다가 멎어선 발구를 바라보던 성근은 놀랐다. 니탄이 가득 실린 발구였던것이다.

영문모르고 서고만 있는 성근의 귀전에 은방울 굴리는듯 한 은별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호호― 반장동지, 어때요?》

발구에서 내린 은별이가 어느새 달려와 반장의 손을 흔들어댔다.

《반장동지, 성공이예요, 성공.》

자세히 보니 말짱과 활창대로 조립한 발구였다.

앞에는 방향조절을 할수 있게끔 십자모양의 운전대가 달려있었다.

성근은 속으로 탄성을 올렸다.

《반장동지, 우린 이 〈발구차〉로 래일모레까지면 계획을 다할수 있어요.》

《〈발구차〉? 래일모레까지?》

작업반이 총동원되여서도 20일나마 걸려야 할 작업량을 이틀이면 된단말이지. 20일과 2일이라…

20일을 압축하는 소리를 내며 《발구차》들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성근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발구차》에는 군인들이 아니라 분조원들이 있었던것이다.

(아하!) 그제야 성근은 깨도가 되였다.

이제 저 《발구차》들을 뜨락또르에 쭉 련결하여 끌고갈 심산인것이다. 기관차가 화차들을 달고 달리듯이…

성근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은별이를 바라보았다.

저 애리애리한 처녀가 어떻게 이렇게 어벌이 커졌을가. 언제 산악같은 담이 들어앉았는지 놀랍기만 했다.

《은별아, 어떻게 된거냐?》

은별은 생글거리며 대답했다.

《아이참, 반장동진 늘 말씀하시다가도… 령너머 군대동무들의 투쟁정신으로 일해야 한다구 말이예요.

창자밑에 〈통나무바퀴〉를 깔고 통채로 옮겨가던 군인정신으로 올해농사를 잘해보자고 하시지 않았나요?》

성근은 잊지 않았으나 잊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실지 생활에서는 잊고 살았다.

그는 로화현상이란 나이가 주는것도 아니고 보약이나 먹는다고 방지할수 없는것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발구차》! 바로 이것이였다. 《발구차》가 진짜 《보약》을 실어오지 않았는가.

은별이같은 《어린》이도 로장으로 만들고 자기와 같은 《늙은》이도 젊은이로 만드는 오늘의 《보약》이 무엇인가를 명명백백하게 보여주고있지 않는가.

그렇다, 혁명적군인정신은 바로 오늘의 난관을 극복하고 강성대국건설을 힘있게 떠밀고나갈수 있게 하는 정신적량식인것이다.

성근은 별로 오늘따라 의젓해보이는 은별이를 정겹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을 일별한 은별의 두볼은 순간에 사과알이 되여버렸다.

《저… 사실은 중대장동지가…》

마지막《발구차》에서 내린 땅크중대장이 기운차게 말했다.

《아닙니다, 반장동지. 〈발구차〉는 분조장동무랑 분조원들이 발기한것입니다. 전 그저 이 운전대가 말썽이라기에…》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근은 그를 와락 포옹했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역시 군대가…》

얼마나 미더운 청년들인가. 바로 이런 청년들이 있어 강성대국의 그날은 바야흐로 이 땅우에 펼쳐질것이다.

성근은 손수건을 찢어 감은 은별이의 손을 보고 흠칫했다.

《발구차》를 만드느라 얼마나 고심했을텐가.

그런데 나는…

그는 자전거에 씽 올라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반장은 고구마를 들지 않구 어델 가시우?》

급히 올라온 은별의 어머니가 머리우에서 김이 문문 나는 고구마바구니를 내리며 하는 말이였다.

《젊은이같다구? 〈보약〉을 써야 늙지 않는다니.》

동문서답으로 자기 생각을 두서없이 비치며 성근은 자신을 질책하고있었다.

작업반의 영농공정이 과연 누구때문에 드티여질번 했는가. 은별이? 아니, 믿지 못할건 《옆집의 처녀》가 아니라 《늙은》반장자신이였다.

빨리 뜨락또르를 끌고와야 한다.

어느새 자전거는 산굽이를 돌아 쏜살같이 달리고있었다. 지금 그는 《발구차》를 타고 나는 심정이였다.

(황해북도 수안군 상덕리 농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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