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7(2008)년 제3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작가소개

 

리덕무와 그의 진보적인 시창작          

 

 

우리 민족의 실학파문화유산은 봉건사회의 페단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동경하는 개혁적인 견해와 문학예술활동으로 하여 우리 나라 민족문화유산중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실학파는 량반사대부들의 부패성과 공리공담, 무너져가는 봉건국가의 후진성을 개탄하고 〈실사구시〉의 구호밑에 사회적진보와 문명발전을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우수한 문학예술작품을 창작하여 우리 나라 근대문학의 려명기를 개척하는데 기여하였다.》

모든 실학파문인들이 그러하듯이 18세기에 활동한 리덕무도 사회적진보와 문명발전을 위한 진보적인 견해를 내놓고 그를 구현한 시문학작품들을 많이 창작하였다.

량반가문의 서자로 출생한 리덕무는 신분적천대와 멸시,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진보적인 시들을 많이 창작하여 당시 국내외에  《사가》(네명의 한 시대가)의 한사람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후에는 미천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뛰여난 재능과 학식으로 벼슬길에도 나선 사람이였다.

리덕무의 시들은 자기 개성이 뚜렷하고 인민성이 풍부한것으로 하여 량반사대부들로부터 《순정치 못한》문체로 비난을 받았지만 진보적인 문인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름난 실학파문인이며 리덕무의 스승이였던 연암 박지원은 《영치고서문》이라는데서 리덕무의 시에 대해 《우리 나라에서 나는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도 많이 알게 되고 조선남녀의 감정세계를 능히 볼수 있으니 조선의 가요라고 해도 좋을것이다.》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리덕무는 실학파가 내든 실재한 사실에서 진리를 탐구해야 한다는 《실사구시》의 구호밑에 실지 처해있는 자기 나라 현실에 눈을 돌리고 자기 나라의것을 잘 알며 그것을 시창작에 구현하기 위해 애쓴 시인이였다. 우리 나라의 현실과 력사, 풍속 등을 즐겨 노래하였기때문에 그의 시는 《조선의 가요》로 호평을 받았고 《사가》의 한성원으로 우리 나라는 물론 중국에까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리덕무의 시에서 진보적인것은 무엇보다도 내 나라의 산천과 풍물, 조선사람의 인정세태생활을 긍정하고 거기에 애착을 담아 진실하게 노래하고있는것이다.

그는 자기의 시 《과천으로 가는 길에서》에서 《농사집의 가을이란 볼것이 많구나/당콩은 늘어지고 수수는 알알이 굵구나/춥길래 날아오는 기러기떼 그림자가 구부러졌네/장승은 무슨 벼슬하였기에 머리에 모자를 썼느냐/돌부처 남자같건만 입술에 연지를 발랐구나/석양이 잦아든다 하늘소야 어서 가자/우궁잠쪽에 한길이 나서리라》라고 읊고있다.

시에서 볼수 있듯이 시인은 과천으로 가던 도중에 보이는 농촌풍경을 섬세하고 생동하게 노래하고있다. 이 시를 통하여 시인의 섬세하면서도 회화적인 예술수법도 뛰여나지만 그보다도 시가 모두 우리 인민들이 즐겨 사용한 어휘들로 엮어진것으로서 민족적색채가 짙은것이다.

당콩과 수수, 기러기, 리정표인 장승, 돌부처같은것은 모두 우리 나라의 풍물이고 인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 사물현상인것이다. 리덕무의 시들중에는 회화성이 짙은 산천풍물시들이 많은데 어느것이나 다 우리 나라에 존재하는 사물, 풍경들을 시에 담고있고 우리 인민들의 인정세태생활을 긍정, 찬양하고있다. 리덕무의 이러한 시들은 당시 사대주의에 물젖어 다른 나라의 시문들을 우상화하고 그것을 도습하는데 매달리던 반동관료문인들의 모방주의와 형식주의적시풍과는 다른 매우 진보적인것이였다.

리덕무의 시에서 진보적인것은 또한 우리 민족이 반침략전쟁에서 발휘한 애국적인 투쟁정신에 기초하여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할데 대한 사상을 시적으로 잘 일반화하고있는것이다.

리덕무가 활동하던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상처를 가시고 이른바 《왕조중홍》(쇠퇴한 봉건왕조를 부흥시킨다는 뜻)을 운운하던 시기였다. 바로 이 《왕조중흥》의 미명아래 량반사대부들은 전란피해를 입은 교훈과 원인에는 관계없이 승산이 없는 《북벌론》(병자호란때 당한 수치를 씻자는 명목밑에 청나라를 치자는 무모한 주장)을 부르짖었고 한편으로는 뿌리깊은 당쟁만을 일삼고있었다.

리덕무는 그 시기 피해를 입고 거기에서 수치를 당한 원인이 바로 나라의 군사적힘이 약한데 있다고 보았으며 군사적힘을 키우는데서 기본은 나라안의 문무관료, 백성들이 모두 조국방위에 하나와 같이 떨쳐나서려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다. 리덕무는 시 《벽제점》에서 임진전쟁의 교훈을 상기시키고 자라나는 새 세대들이 그것을 잊지 말고 원쑤를 갚아야 한다는것을 제시하고있다.

《호미끝에 이따금씩 철탄환이 부딪치면/마을의 처녀애들 꿰여차고 곱다 하네/태평할 때 나서자란 그 애들이 어이 알랴/그 탄환이 갑옷 뚫고 장사들을 해친줄》이 시는 임진전쟁시기 벽제점이라는 곳에서 용감히 싸우다 숨진 우리 군사들에 대한 추모의 감정을 노래한 동시에 이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가 어른이건, 아이이건 막론하고 민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투철한 반침략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귀중한 사상을 호소하고있다.

그는 또 《연안부》라는 시에서 《미리 짐작있어 신공이 쌓아올린 성/리월천은 마침내 여기서 원쑤 무찔렀네/보루에서 삼대베듯 왜구를 베여눕혔구나/거북등에 서있는 비석 승리한 그날을 말하여주네》하고 읊고있다. 이 시는 임진전쟁을 예견하고 연안성을 쌓아 《연안대첩》을 안아오게 한 신각과 연안성에서 왜놈을 무찔러 대승리를 거둔 리정암의 공적을 노래한것이다. 시인은 시에서 앞으로 또 있을지 모르는 전란에 대처하기 위한 방비책을 강구하였고 나라를 지키는 싸움에서 공적을 세운 사람은 먼 후날에 가서도 그 이름이 길이 빛날것이라는것을 구가하였다.

나라의 국방력을 강화할데 대해 호소하고있는 리덕무의 이러한 시들은 실학파의 《부국강병》(나라를 부유하게 하자면 군대를 강화해야 한다.)사상에 근원을 두고있으며 그 사상은 시적일반화를 통하여 명백하면서도 정서적여운이 있게 표현되고있다.

리덕무의 시는 사회현실의 불합리에 대한 비판이 강렬하지 못하고 정론성이 미약한것 등 일련의 제한성도 내포하고있다. 실례로 시 《과천으로 가는 길에서》와 같은 작품들은 농촌의 정경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데 그치고 작품에 내재된 사회의 불합리에 대한 시인의 견해가 미약하다. 이것은 시인의 세계관 및 시대력사적제한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것으로써 작품의 진보적인 측면에 일정하게 손상을 주고있다. 하지만 남의 나라가 아닌 내 나라의것을 시에 담아 노래하고 외적들의 침입과 간섭으로부터 내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상을 교훈적으로 노래하고있는것은 아주 진보적인것이다. 이처럼 리덕무는 진보적인 시창작으로 우리 나라 18세기 애국적시문단을 더욱 풍부히 하는데 기여한 선진적인 실학자, 시인이였다.

 

                                                                                                                                                              김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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