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4호에 실린 글

 

령도자와 작가

혁명적신념의 노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투쟁이 있는 곳에는 노래가 있고 노래가 있는 곳에는 혁명적랑만이 차넘치고 전투적열정이 끓어번지기마련이다.》

창작가들이 혁명적신념에 대한 노래를 쓰기 시작한것은 주체69(1980)년말부터였다.

여러가지로 모색해보았으나 우리 인민이 간직한 불타는 신념을 깊이있게 보여주지 못하고 다만 신념에 대한 철학적개념만을 서술하였다.

그러던 주체71(1982)년 4월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 하시고 여러가지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다가 문득 한 일군에게 혁명적신념이 무엇인가고 물으시였다.

그 일군은 일어나서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영원히 모시고 끝까지 따르려는 우리 인민의 충정의 마음이라고 정중히 말씀올렸다.

그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가 그건 너무 일반적인 대답이라고 하시면서 혁명적신념이란 엎어놓아도 쇠소리가 나고 뒤집어놓아도 쇠소리가 나며 행복한 날에도, 준언한 시련의 날에도 오직 한길을 가면서 한가지 말만 하는 인간의 억센 마음입니다, 한번 다진 맹세, 한번 찾은 혁명의 진리를 목숨보다 귀중히 여기고 한번 택한 혁명의 진리를 목숨보다 귀중히 여기고 한번 택한 혁명의 길을 순간의 동요도 없이 걸어가는 사람을 두고 혁명적신념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라고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귀중한 말씀은 신념의 노래를 지으려고 애쓰던 창작가들의 눈을 밝게 틔워주었다. 창작가들은 《한번 다진 전사의 맹세》, 《한번 찾은 혁명의 진리》, 《한번 택한 혁명의 길》을 핵으로 하여 가사를 쓰고 거기에 맞추어 곡을 붙이였다.

주체71(1982)년 8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창작가들이 올린 가요 《우리의 신념은 하나》를 들으시고 곡을 몇개 더 써보라고 하시였다.

그후 창작가들은 새로 몇곡의 노래를 더 짓고 그가운데서 제일 잘되였다고 인정되는 두곡을 골라 장군님께 올렸다.

그 노래를 듣고 또 들어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두곡을 다 미루어놓으시면서 처음에 올린 가요 《우리의 신념은 하나》를 신념에 대한 노래로 고착시키자고 하시였다.

주체71(1982년) 9월 어느날 합창으로 형상한 노래를 들어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창작가들에게 합창곡 《우리의 신념은 하나》가 아주 잘 되였습니다, 노래가 명곡입니다, 나는 합창곡 《우리의 신념은 하나》를 열다섯번이나 들어보았는데 웅장하고 무게있게 잘되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가사에서 《당중앙》이라고 한 표현은 《우리당》이라고, 《일편단심 우리 당에 자기 운명 의탁하리》라고 한 표현은 《일편단심 우리 당과 자기 운명 함께 하리》로 고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창작가들은 노래의 매 절에서 마지막단을 《일편단심 우리 당과 자기 운명 함께 하리》로 통일시켰다.

이렇게 하여 가요 《우리의 신념은 하나》가 완성되였다.

그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노래를 두고 더없이 만족해하시며 노래 《우리의 신념은 하나》가 잘되였습니다, 1, 2절가사도 좋지만 3절가사가 더 좋습니다, 3절가사는 이 노래의 핵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특히 《영광의 날엔 이 길을 가고 준엄한 날엔 딴길 가랴》라는 대목이 좋습니다, 그 가사에는 혁명의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앞으로 노래 《우리의 신념은 하나》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널리 부르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이 신념의 노래는 온 나라에 울려퍼지게 되였으며 오늘도 천만군민의 가슴속에 혁명적신념을 안겨주며 강성대국건설대전의 참전자, 위훈자로 힘있게 이끌어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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