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5호에 실린 글

 

령도자와 작가

빛나는 총화작이라고 하시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오늘 우리의 주체혁명위업은 새로운 높은 목표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고있으며 인민을 끊임없는 위훈과 혁신에로 부르고있다.》

1990년대는 우리 나라 력사에서 류례없이 준엄한 시련의 시기였다.

피어린 격전의 폭풍우를 뚫고 《고난의 행군》길을 헤쳐온 나날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역경이였다.

이때 세계는 사회주의 붉은 기치를 들고나가는 주체조선을 지켜보았다.

이런 엄혹한 시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선군정치를 만능의 보검으로 틀어쥐시고 혁명적군인정신, 강계정신을 창조하시여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시였다.

그리하여 강성대국건설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해놓으시였다.

주체88(1999)년 1월 1일이였다.

지나온 《고난의 행군》길을 감회깊이 추억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고난의 행군》나날에 겪은 피눈물나는 력사를 영원히 잊을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창작가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사상을 노래에 담아볼 결심을 다지였다.

불타는 자각과 흥분을 안고 인민군협주단의 한 시인은 만수대언덕에 올라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잊지 않으리》라는 제목을 달고 심장의 격정을 터치였다.

단숨에 4절까지 엮어놓은 가사를 본 작곡가는 《우리는 빈터에서 시작하였네》처럼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릴수 있는 좋은 노래가 될수 있겠다고 하면서 《고난의 행군》로정을 담은 가사 2, 3절을 합하여 한절로 만드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시인이 가사를 함축하자니 중요한 내용이 빠지는것 같기도 하고 또 수정안이 떠오르지 않아 안타까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시인의 번민을 가셔주고 창작의 나래를 펼쳐주신분은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주체88(1999)년 10월 11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군부대의 장병들과 함께 조선인민군 공훈국가합창단(당시)의 공연을 보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를 지키고 《고난의 행군》을 락원의 길로 이어놓으려 지금까지 철령을 7번 넘고 강계를 7번 찾아갔다고 하시며 잊을수 없는 그 나날들을 깊이 추억하시였다.

철령과 강계!

시인은《고난의 행군》 전 력사가 집대성되여있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말씀에서 가사수정의 명확한 방도를 찾게 되였다.

감격도 새로운 주체88(1999)년 12월 24일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뜻깊은 공연무대에서 공훈국가합창단은 노래 《우리는 잊지 않으리》를 불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 좋은 노래가 나왔다고 하시면서 선률을 좀 더 친숙하게 하여 국보적인 명곡으로 완성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후 장군님의 정력적인 지도를 받으면서 노래는 드디여 명곡으로 완성되여 온 나라에 널리 보급되였다.

그러던 주체89(2000)년 6월 19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우리는 잊지 않으리》가 아주 좋습니다, 이 노래는 우리 당과 인민이 력사에 류례없는 《고난의 행군》을 어떻게 승리적으로 단행하였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주고있습니다, 누구나 이 노래를 들으면 가장 준엄하고 간고하였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령도자를 받들어 신심과 의지의 힘으로 난관과 시련을 이겨온데 대하여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게 될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요 《우리는 잊지 않으리》는 《고난의 행군》의 총화작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라고 하시였다.

《고난의 행군》의 총화작!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편의 노래를 이처럼 높은 지위에 올려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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