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1(2012)년 제7호에 실린 글

     실화문학      

                                                               임 순 영

저녁이였다.

함박눈이 펑펑 내려쌓이는 큰길로 깊은 생각에 잠겨 걷는 한 녀인이 있었다. 연하늘색의 누비솜옷에 까만 목도리를 두르고 발에는 깜찍해보이는 솜신을 신은 그는 이따금 겁먹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군 하였다. 운하리 남새작업반장 정명숙이다.

명숙은 낮에 있은 일로 하여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회의뒤끝에 관리위원회에서는 명숙을 작업반장으로 추천한다는것을 알려주었다. 모든 눈길이 일시에 명숙에게로 쏠려졌다.

순간 사람들의 관심사로 되여버린 명숙은 당황함과 부끄러움으로 몸둘바를 몰라했다. 관리위원장이 나서서 의견을 물었을 때 사람들은 모두 박수로써 대답했다. 명숙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으로 많이 도와주십시오.》

《우린 명숙동무를 믿겠소.》

리당비서의 크고 거쿨진 손이 아직도 어깨에 묵직하게 올라있는것처럼 느껴졌다. 내리는 눈마저 무거웠다.

믿는다?… 믿음이 실망으로 되지 말아야 할텐데.… 저도 모르게 작업반으로 향하던 명숙은 집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뜨락에 들어서니 밥잦는 구수한 냄새와 함께 남편의 서툰 칼장단소리가 울렸다. 뜨락또르의 부속품을 깎으러 기계공장에 나간다고 신새벽부터 부산을 피우더니만 일찌감치 돌아온 모양이다.

명숙은 늘 자기를 도와 부엌일을 맡아주는 남편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작지도 않은 체격에 어색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썩둑거리며 감자를 썰던 남편이 명숙을 보자 싱긋 웃었다.

《기계공장에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요?》

《응, 잘됐소. 허― 이거 당신이 반장된걸 축하해서 뭘 좀 차리려는데 잘 안되누만.》

《난 당신이 해주는건 아무거나 다 맛있어요. 그런데… 성일이 아버지생각엔 내가 꽤 반장사업을 할것 같애요?》

남편은 칼질을 멈추고 안해를 바라보며 말했다.

《반장이라는게 수십정보의 땅을 책임지고 그 땅을 다루는 사람들을 책임지고 생산계획을 책임진 사람인데 그게 쉽지 않소. 하지만 당신은 해낼거요. 한번 한다 하면 무조건 해내고야마는 성미가 아니요.》

《정말 그렇게 믿어요?》

《당신은 강한 녀자지, 그건 내가 잘 알지.》

두사람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지금 꼭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는데 그것은 결혼하던 때의 일이였다.…

어느해인가 명숙이 일하는 남새작업반에 제대군인청년이 뜨락또르운전수로 배치되여왔다. 땅색같은 얼굴, 두툼한 입술, 구두솔처럼 수북하게 덮인 눈섭이며가 첫눈에도 묵직한 인상을 주었다.

《많이 배워주십시오.》

반원들과의 첫인사를 이렇게 나눈 그는 근면하게 일을 제껴나갔다. 뜨락또르정비며 가동은 물론 그의 손이 가닿는 곳은 어디나 일자리가 푹푹 났다.

반원들은 그를 두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듯 말없이 성실한 청년에 대해 야릇한 질투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한 처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선동원 정명숙이였다.

청년이 오기 전까지는 반원들의 그 칭찬이 모두 명숙의것이였던것이다. 마치도 유치원시절 자기가 타게 됐던 빨간 별을 다른 애에게 뺏긴것처럼 스스로 어이없는 생각이 들면서도 명숙은 괜히 그 청년이 미워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런데 밉다면 깨꼬한다고 그 청년은 무슨 작업도구가 필요하다거나 알고싶은 문제가 있으면 꼭 명숙을 찾군 했다. 명숙은 그것이 이상하면서도 왜서인지 싫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청년은 명숙에게 꼭 할말이 있으니 퇴근후에 동뚝길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그것 또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하필이면 점심시간도 있는데 퇴근후 저녁길에 만나자고 하며 장소까지 정하는걸 봐선… 여기까지 생각해본 명숙은 혼자 웃고말았다. 혹 자기 예감이 빗나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촉각을 세우게 되는건 처녀들의 어쩔수 없는 병인가봐.)

명숙은 더 복잡하게 생각할것없이 퇴근후 동뚝길에 나섰다. 리적으로 제일 일찍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는데가 남새반이여서 반원들이 이미 퇴근한 동뚝길은 호젓하기 그지없었다.

여름밤은 몹시도 무더웠다. 명숙이 작은 손으로 연방 부채질을 해가며 지정된 장소에 이르니 청년이 기다리고있었다.

명숙은 우정 제 먼저 쾌활한 어조로 물었다.

《절 왜 만나자고 했어요?》

그러자 청년은 어줍게 웃으며 손에 들고있던것을 천천히 내밀었다.

《이걸… 동무에게 주고싶어서.》

달빛에 비쳐진것은 뜻밖에도 단물이 파랗게 오른 생신한 오이였다.

《오이를요?!》

놀라우면서도 어처구니없는듯 한 명숙의 물음에 청년은 허허 웃고말았다.

《이게 어디 오이요? 고추지.》

《사람을 놀리지 말라요!》

짐짓 화가 난 명숙은 그의 손에서 오이를 홱 뺏아들었다. 그다음 심술궂게 한입 뚝 베여먹던 명숙은 얼굴을 찡그렸다. 매운 맛이 순간에 입안을 짜릿하게 자극했던것이다.

《진짜… 고추구만요.》

청년은 이번엔 웃지 않았다.

《난 실없는 롱을 하지 않소.》

이 말에 명숙은 얼굴이 확 붉어졌다. 허나 그것은 순간에 불과했다. 불로 지지는듯 한 매운 입술을 감빨며 손에 든 고추를 유심히 살펴보던 명숙은 방금전의 부끄러움도 잊고 청년에게 따지듯 물었다.

《이 고추 어디서 난거예요?》

《어제 인민군부대부업장에 갔다가 고추가 하도 크길래 따가지고 왔소. 이번에 우리 남새반고추작황이 시원치 않은걸 가지고 동무가 몹시 상심하기에 동무 생각이 나서 가져왔소.》

순간 명숙은 가슴이 뭉클했다.

(아, 고마운 사람!)

명숙은 한입 베여문 고추를 손에 꼭 감싸쥐였다. 어쩐지 그의 진정을 아프게 깨문것 같은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느끼며…

명숙은 뜻밖에 매운 폭탄을 맞았던것이다. 입안은 매웠지만 가슴은 뜨거움으로 얼얼해났다. 오이만 한 고추는 두사람을 단단히 붙들어놓고 한가정을 이루게 했던것이다.

이튿날 작업반마당에 쌓인 눈을 쳐내던 명숙은 반원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였다.

《새 반장이 임명됐으니 작업반이 볶일거예요. 명숙이가 키는 작아도 보통이악쟁이가 아니니 이제 두고보라요, 죽을 짬두 없지 않나.》

왕드살이라고 불리우는 1분조의 감나무집녀인이였다. 누가 그런 별명을 붙여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문엔 그가 남 좋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것이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냐만…

《에그― 그런건 그 집이나 걱정하라구요. 이젠 그 좋은 곶감장사도 다 해먹었수다. 시장에 다니라구 새 반장이 가만놔둘가?》

영순아주머니의 걸걸한 목소리이다.

《그럼 반장이 새로 됐다구 해서 올해 우리 작업반이 일등 할것 같애요? 어쨌든 명숙이가 고생하겠어요. 그 고생값이 얼마나 되겠는지…》

명숙은 이 순간 평시엔 관심밖에 두었던 작업반구성문제에 대해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남새농사는 알곡작물과는 달리 잔손질이 많아야 하는 일이여서 로력의 70프로이상이 녀성들이였다. 녀인들이 모인 집단이 대개 그러하듯이 남새작업반 역시 빈번히 말밥에 오르는 일이 잦았다.

명숙은 이런 조건에서 반장사업이 결코 헐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숙의 우려는 괜한것이 아니였다.

립춘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아침에 분조장들에게 작업지시를 주고난 명숙은 농장원들의 개별거름무지들을 돌아보고있었다.

그러던 그는 어느 한 무지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맨꼭대기에만 진거름이 살짝 덮였을뿐 거의 마르다싶이 한 북데기라는것이 헨둥했다. 감나무집의 이름이 씌여진 표쪽이 눈에 안겨들자 그는 머리를 돌려버렸다. 이거야 너무하지 않는가.…

며칠전 명숙은 사람들앞에서 포전별에 따르는 거름을 수십톤씩 내여 거기서 최고수확년도이상의 남새를 생산할데 대한 높은 목표를 내걸었던것이다. 이를 위한 대책으로서 작업반에선 집짐승우리를 크게 짓고 매 집집마다 두마리이상의 돼지를 기를데 대해서도 강조했었다. 그 즉시 분조장을 찾아 감나무집에 돼지가 몇마리나 되는가고 물으니 그 집에서는 돼지보다도 수입금이 높은 닭을 많이 친다는것이였다. 명숙은 더 묻지 않았다.

생각던 끝에 명숙은 작업반축산에 도움이 되라고 어머니가 보내준 다섯마리의 새끼돼지중에서 제일 실한 놈을 골라가지고 감나무집을 찾아갔다.

밤중에 돼지를 안고 나타난 반장을 본 감나무집녀인은 대번에 낯색이 새파래졌다.

《난 반장이 왜 이러는지 알아. 하지만 자기 가정의 실리에 맞게 사는거지…》

《물론 그 말도 옳아요, 그러나 작업반일이 잘 되여야 가정살림도 편하게 잘 꾸려나갈게 아니예요.》

명숙은 이렇게 말하며 안고온 돼지를 그에게 안겨주었다.

《어디 이 돼지를 한번 길러보세요. 종자가 참 좋아요.》

《아니, 이건…》

인사말을 남기고 총총히 멀어져가는 반장의 뒤모습을 바라보는 감나무집녀인은 어찌할바를 모르고 서있었다.

명숙은 그달음으로 지게를 찾아들고 포전에 나갔다. 구름에 싸여 희뿌연 달빛에 더미더미 쌓아놓은 거름무지들이 어슴푸레 드러났다. 명숙은 문제의 거름무지앞에 다가갔다. 도적놈처럼 웅크리고있는 시커먼 그 무지를 들어내지 않고서는 이밤 잠들것 같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없어진 거름무지를 두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거참, 조화다. 어제 밤에 태풍이 불었는가?》

《아니면 뉘집 닭들이 몰려와서 한입씩 물어갔겠지요. 둥지를 틀려구요.》

빈땅에는 표쪽만이 댕그랗게 남았다. 사람들과 떨어진 저쯤 멀리에는 머리를 들지 못한 감나무집녀인이 서있었다.

명숙이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을 때 그는 눈물이 그렁한 눈을 들었다. 가책?… 노여움?… 아니 원망일것이다.

《그래요, 제가 축산분조에 날라다넣었어요.》

《난… 반장이 그렇게까지 나올줄은 몰랐어. 나두 인간이구 고만한 량심쪼각은 남아있어.》

《?!…》

찬바람이 윙― 고막을 스치고 지나갔다. 머리가 어지러워났다. 수십톤의 거름생산과 최고수확년도 이상의 남새생산, 이것이 과연 꿈일가?

명숙은 그 목표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자신을 보았다. 아니, 머리를 흔들었다. 가까이 가야 해! 가까이!

그것이 어버이수령님께서 걸으신 길에 자신을 따라세우는 길이고 위대한 장군님을 마중하는 길임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명숙은 눈을 들었다. 수령님 오셨던 길이 한눈에 밟혀온다. 그 길에 떳떳이 나설수 없는 자신이 안타깝고 원망스러웠다.

그래 일을 해야 한다. 빈손으로야 어떻게 우리 장군님을 마중할수 있단 말인가.

어디선가 쩡쩡― 얼음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봄이다.… 들판엔 달래가 실오리같은 머리를 갸웃이 내밀었다. 푸근히 와닿는 봄의 훈향을 느끼며 명숙은 생각했다.

이해 할일이 참으로 많다. 영농준비, 집짐승우리건설, 거름생산, 창고수리, 수로뚝공사, 목욕탕건설… 물론 힘들것이다.

《우린 명숙동무를 믿소.》

그랬다. 당조직은 명숙에게 믿음을 주었다. 힘을 주었다. 명숙은 바로 그 힘으로 첫해를 이겨낼것이다.

×

봄은 세번이나 바뀌였다. 그사이 작업반은 많은것이 변모되였다.

종자보관실과 분조창고들이 더 멋있게 일떠서고 집짐승우리도 종전보다 두배이상 더 확장되였다. 아담하게 꾸려진 목욕탕앞에는 고운 꽃들이 피여났다.

하지만 남새농사에서만은 아직까지 이렇다할 전변이 일어나지 않았다. 농사군에게서 농사를 내놓고 다른 더 큰 기쁨이 있을수 없는것이다.

명숙은 이 나날에 웃음조차 잃어버린듯싶었다.

그가 반장으로 부임된 첫해에 세웠던 남새생산목표는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언제한번 떠나본적이 없었다. 이것은 명숙에게 있어 가장 큰 고민이 아닐수 없었다.

작년에도 그만하면 큰 성과를 보았다고 떠들긴 했어도 스스로가 세운 목표를 넘지 못했다.

명숙은 올해 어떤 일이 있어도 다모작남새재배를 실행해야 한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였다. 그러자면 주체농법에 기초한 새 농사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새땅을 찾아야 했다.

그 첫시작이 두둑을 넓히는것이였다. 명숙은 모든 밭의 두둑을 더 높이고 종전보다 대담하게 넓히도록 했다. 아무것이나 새것에 대해선 믿음과 함께 의심이 따르는 때도 있다.

《반장, 두둑이나 넓힌다구 생산목표를 수행할가?》

가래줄을 당기며 감나무집이 묻는 말이다.

《두고봐야지요.》

《그러지 않아두 반장밑에서 사람들이 일하기 무척 힘들어해. 겉으로 내색을 안해 그러지 보나마나 속으론 욕많이 할거야. 되기나 할걸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이야. 언젠가두 반장이 한해농사를 물로 되게 하지 않았나.》

그 말에 명숙은 하던 삽질을 뚝 멈추었다.

《허리 좀 펴고 하자요.》

명숙은 밭이랑에 맥없이 주저앉아버렸다. 온몸이 그대로 땅속에 잦아드는것만 같았다. 그해를 어떻게 잊을수 있단 말인가.

반장일을 시작한 첫해 명숙은 계획을 잘못 세운탓에 남새농사에서 큰 손해를 보았다. 고추농사를 크게 계획하고 많은 면적에 고추를 심게 했다가 그해 무더기장마로 하여 모두 녹아버렸던것이다.

그때 물파를 재배하여 수입금을 높이자는 의견을 내놓았던 일부 사람들은 일이 이렇게 되자 명숙을 반장자리에서 떼자고까지 제기했다. 반장이라면 한개 작업반을 책임진 호주로서 응당 나이도 어지간히 있고 경험도 많아야 한다는것이다.

명숙은 한마디 항변도 하지 못했다. 한숨과 뜬눈으로 밤을 보내던 명숙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난 이젠 어쩌면 좋아요? 어떻게 사람들앞에 머리들고 나서겠어요. 차라리 다른 농장으로 가고말겠어요.》

쓰러지다싶이 한 안해의 정상앞에서 기두는 그때 처음으로 성을 냈다.

《당신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가겠다는 말이 당신 입에서 나오는가 말이요. 다시 주어담소. 주어담으라지 않소!》

《?》

명숙은 놀란 눈길로 남편을 그저 올려다보기만 할뿐이다.

《명숙이! 이자 그 말 마음이 아파서 해본 소리지? 헛소리였다고 말해. 그런 말은 함부로 흘리는게 아니야. 우리가 한 사랑의 약속이 무엇이였소?》

남편의 목소리는 떨리고있었다.

명숙은 남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래요. 이 간석지농장에… 흐뭇한 남새풍작을 마련해서 장군님 오시는 날… 기쁨의 꽃다발을 드리자고 약속했어요. 성일이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명숙은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밖으로 달려나갔다. 어둠이 짙은 하늘에선 찬비가 내리고있었다.

그는 수령님 오셨던 길에 나섰다. 그날 서해기슭의 외진 곳에 자리잡은 온천군 운하리를 찾아오신 수령님께서는 갈대숲 무성한 진펄을 헤치시며 대규모의 간석지를 개간할 휘황한 전망도를 설계해주시였다. 그 설계도에 따라 천여백정보의 옥토벌이 펼쳐져 명숙의 고향은 살기 좋은 고장으로 전변되게 되였다.

수령님께서는 해마다 가을이 오면 이곳 농사작황이 보고싶으시여 바쁜 현지지도의 길에 계실 때에도 우정 먼길을 에돌아가군 하시였다. 그 나날의 수령님발자취가 어린 이 고향땅에 태를 묻은 명숙이 과연 달리 살수 있단 말인가.…

명숙은 순간이나마 나약했던 자신을 아프게 후회했다.

사랑과 정으로 이어진 길, 고향땅의 미래와 행복이 담보되는 그 길을 명숙은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지나간 그해는 그렇듯 힘들었다.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던 해였다.

명숙은 그 지겨운 생각에서 어서빨리 벗어나고싶은 충동으로 하여 삽자루를 꽉 틀어잡았다. 그런 해를 두번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힘주어 박아가는 그의 삽날에 검은 토양이 책장처럼 번져졌다.

이해의 봄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명숙은 억척스럽게 일을 해나갔다. 그의 모습은 어디에나 있었다. 맨먼저 일손을 잡고 마지막까지 포전에 남아있는 사람이 명숙이였다.

작업반장부터가 앞장에 서다나니 반원들은 팔짱끼고 구경할리 없었다. 더구나 바빠난것은 분조장들이였다. 휴식을 선포해도 저마다 눈치만 볼뿐 먼저 허리를 펴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명숙이쪽에서 《이젠 그만들 하고 들어가 저녁 짓자요.》 하고 소리소리 치다못해 애매한 분조장들에게 화를 낸다. 그러다가 누구네 집에서 기다리다 지쳐 어머니를 찾아나온 아이들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와야 별수 없다는듯 그때에야 일손을 놓고 집으로 가는것을 서두르군 했다.

명숙은 그들이 눈물나게 고마왔다. 드디여 반원들은 자기네 반장을 리해하기 시작했던것이다. 명숙이 남새작업반에 첫 출근을 하던 날을 그들은 누구나 기억하고있을것이다.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한 명숙은 관리위원회에서 붙잡아두려는것을 한사코 우겨서 남새작업반에 왔던것이다. 명숙은 하필이면 왜 힘든 남새반에 왔는가고 묻는 반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문학교시절 오류리혁명사적관에서 보았던 한장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였다. 베개통같은 배추가 꽉 들어찬 오류리남새포전을 돌아보시며 너무도 기쁘고 만족하시여 환한 미소를 짓고 서계시는 수령님의 밝은 영상이 모셔진 그 사진앞에서 명숙은 선뜻 걸음을 뗄수가 없었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의 식탁에 사철 신선한 남새를 떨구지 말아야 한다고, 그러자면 남새농사에서 다모작을 받아들이며 그 영농방법을 적극 개선할데 대해서도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던것이다.

(우리 고향에도 저런 남새풍작을 펼쳐놓을수 없을가?)

이것이 명숙의 소박한 꿈이였다.

그날 명숙은 파아란 머리수건을 날리며 감자꽃이 하얗게 핀 밭머리에서 정든 산천 고향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입가에 늘 조용한 웃음을 띠우고 물앵두같은 귀여운 두볼에선 홍조가 사라질줄 몰랐던 명숙이였다. 그러나 지금 명숙에겐 그때의 모습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는듯 했다.

반장이 남몰래 돌아앉아 눈물을 흘리는것을 보았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가 소리내여 웃는것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집에 들어가서까지도 그러랴싶어 남편인 기두에게 슬쩍 물어보니 그가 웃으며 안해가 한 말을 들려주는것이였다.

《난 하루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와 잠자리에 누우면 무언가 귀중한것을 잃었을 때처럼 서운하고 마음이 허전해져요. 어떤 땐 밤이 없었으면 하기도 해요.》

안해가 잠자리에서 남편에게 기껏 한다는 말이 일에 대한 소리이니 명숙에겐 남편보다도 일이 더 중하다는게 아닌가. 다른 남자들 같으면 열번도 더 화를 냈으련만 리기두는 그런 안해를 둔 자신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였다. 그래서 자기에겐 안해가 더 소중해지고 커보인다는것이였다.

이것이였다. 일을 세상에서 제일 큰것으로 보는 사람, 이런 사람이 누구보다 큰 사람이 아닌가.

사람들은 명숙에게서 이것을 보았다. 비록 말은 적고 웃음은 없지만 마음속에 큰것을 안고사는 인간, 그가 바라는것은 과연 무엇인가.

매미가 귀따갑게 울어예는 김매기철도 어느새 지나가버리고 처녀총각들이 즐겨찾는 버들방천에는 누렇게 색바랜 나무잎들이 애처롭게 흩날렸다.

명숙을 비롯한 반원들의 피타는 노력, 지혜와 열정은 끝내 다모작남새농사에서의 성공을 가져왔다. 이들은 거름원천이 갖추어진 토대에서 과학적인 영농방법에 기초하여 여러가지 남새작물을 배치하였다.

고추앞그루로 봄통배추를, 사이그루로는 양배추와 올감자를 심어 세가지의 남새가 4월초에는 다 들어가게 되였다. 이렇게 작물을 배치하면 김매기, 병해충구제, 물대기 등 비배관리가 동시에 진행되여 긴장한 로력과 비료의 효과성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그다음 봄통배추를 수확하고 그 자리에 꽃망울진 고추모를 6월 중순에 옮겨심었다. 모판에서 튼튼하게 단련된 고추를 밭에 옮겨심으니 모살이가 잘되여 인차 고추가 맺히기 시작하였다.

고추와 함께 파도 잘 자랐다. 고추를 영양단지할 때 파씨를 함께 묻어 한단지안에서 부부처럼 키웠던것이다. 고추를 파와 함께 심으니 독특한 파냄새로 하여 고추에 벌레가 전혀 꾸리지 않아 고추의 품질이 좋아져 수확이 높았다.

또한 파에는 잔뿌리가 많아 한창 장마철시기에 물기를 많이 받아들여 습기를 싫어하는 고추의 부담을 덜어주게 되며 작물호상작용에 의해 생육이 더 좋아지고 장마철에 고추가 죽는 률이 적었다.

그리고 파밭을 따로 정하지 않아도 고추밭만 한 면적의 파밭을 공짜로 얻게 되여 땅의 리용률도 높아지게 되였다.

올감자는 6월 중순에, 양배추는 7월초에 수확한 다음 골바닥을 깊숙이 쳐주고 고추두둑량옆으로 가을무우를 두줄로 심었다. 이렇게 7월말현재 여섯가지 남새가 다 들어갔다. 고추밭은 그야말로 립체농사였다.

그러면서도 이 여섯가지 남새모두가 완전한 옹근수확을 거두게 되였으며 오히려 품질이 더 좋아져 정당수확고를 최대한 높일수 있었다.

정을 주고 사랑을 묻은 이 땅에서 명숙이네들은 끝내 최고수확년도이상의 남새를 수확하였다. 군적인 남새농사총화에서 1등을 하고 명숙이 주석단에 올라 표창장을 수여받을 때 반원들은 모두 울었다.

《반장! 이 땅에 절을 해야 할가부네.》

《아니예요. 땅은 우리에게 보답한거예요.》

명숙은 웃고있었다.

×

첫 봄비를 걸탐스레 들이마신 대지는 풍만해진 가슴에 어린 생명들을 품어안았다.

이른새벽 포전을 돌아보는 명숙의 입가에 알릴듯말듯 연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포기사이간격을 일매지게 보장하며 빈포기가 없이 꽉 메워나간 포전은 마치도 한폭의 수예작품을 보는듯 선명하게 안겨왔다. 이해에도 풍작을 예고하며 봄우뢰는 힘차게 울었다.

《그래, 우리 꼭 풍작을 마련하자.》

금방이라도 우줄우줄 키를 돋구며 살진 손바닥을 펼쳐들것만 같은 어린 배추모들에게 명숙은 속삭이듯 말했다.

그는 등뒤에 남편이 와선것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여보!… 여보!》

거듭 불러서야 명숙은 남편을 돌아보았다.

《미안하오, 감정을 깨뜨려놔서…》

멋적게 웃으며 다가앉는 남편에게 명숙은 우정 고운 눈을 감빨았다.

《아, 그러지 마오. 아침식사에 초청하러 온 사람을 그렇게 대하는 법이 어데 있소? 난 운전수직업에 이젠 싫증이 났소. 밖에 나가면 뜨락또르운전, 집에 들어오면 가마뚜껑운전…》

《아이, 남 들으면 큰일나겠어요. 내가 시켰나? 제가 하구싶어 하지. 그럼 오늘부터 운전은 내가 맡을테니 지휘만 하세요.》

《그럴가? 어― 이거 벌써 시간이… 어서 들어가기요. 오늘 군에서 운전수모임이 있소.》

몹시 아쉬운 마음으로 따라서는 안해를 바라보던 기두는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 했다.

《정 헤여지기 싫으면 사진을 찍어두고 보면 되지 않소.》

《사진을요?! 정말 그렇군요. 올해농사작황을 사진으로 모두 남기겠어요. 난 얼마든지 신심이 생겨요.》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안해의 모습앞에 리기두는 코마루가 찡해났다. 그는 지금에 와서 청춘시절로 다시 되돌아간 기분이다. 딸애라면 담쑥 안아 목마에 태워주고싶도록 사랑스러운 안해… 안해의 정든 얼굴, 고운 웃음이 기두에겐 그대로 정열이 되고 힘이 되였다.

사진을 찍어 남기자는 명숙의 제의에 반원들은 모두 찬성하고 기뻐하였다. 하여 영양단지 옮길 때부터 가을까지의 남새6모작실현은 사진으로 남게 되였다. 후날 이 사진들이 전국의 농촌들에서 보게 되리라고는 그때 그 누구도 몰랐다.

작업반은 끓었다.

분조별경쟁도표까지 내걸고 마라손주로에 나선 선수들처럼 열의가 대단하다. 어느 포전에 가보아도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넘쳤다. 길가에 내다세운 농장속보판에는 감나무집녀인의 이름도 크게 났다.

《농장의 주인된 자각안고》라는 제목아래 빨간 색갈로 두드러지게 씌여진 이름이 류달리 눈길을 끌었다.

김봄순… 얼마나 유순하고 부드러운 이름인가.

이렇듯 좋은 이름이 왕드살이라는 별명에 가리워 자기의 모습을 잃고있었던것이다. 남의 일에는 손발이 저려 몸을 사린다던 어제날의 왕드살은 이젠 더는 우리 작업반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은 김매기전투에서 앞장선 성실하고 근면한 김봄순이 사람들앞에 떳떳이 서있다.

명숙은 무등 기뻤다. 맑은 하늘엔 명숙의 마음처럼 가벼운 새털구름이 하얗게 떠있었다.

손을 뻗치면 금시라도 줌안에 들것 같은 구름사이로 종달새가 날아예고있었다.

명숙은 지나가버린 모든 일이 아득한 옛일처럼 생각되였다. 모판에 온도가 내려가 솜옷을 벗어씌우며 안타까와하던 일, 모닥불앞에서 졸고앉았다가 솜바지를 태운거며 거름을 찾아내자고 여기저기 도랑들을 파헤쳤다가 그곳 사람들의 비난을 받던 일… 그뿐인가, 일이 힘들어 농산반으로 가겠다는 사람들을 설복하고 교양하느라 울며 애타던 날들이며 포전에서 지새운 밤은 또 그 몇밤이랴.

이제는 그것이 추억으로만 남았다. 모든것이 달라졌다. 아니, 보다 새로와졌다. 명숙이 자신부터가 새 모습으로 성장한듯 한 느낌이 들었다.

새 모습들이 일하는 땅에선 일욕심도 서로서로 달라야 한다. 4모작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낡고 뒤떨어진 사람들이다 하여 5모작을 주장했고 5모작도 성차지 않아 6모작을 심었던것이다. 다음해에는 7모작을 낳을것이다.

그러면 우리 다같이 6모작의 작황을 펼쳐보자.

…《아유, 숨이 차라. 어디 앞이 보여야 길을 걷지.》

비게같은 속이 하얗게 들어앉은 통배추를 안은 영순아주머니의 둥실한 얼굴은 배추잎에 가리워 보이질 않는다.

《이런 배추 다섯통이면 김치 한독을 담그겠어요. 하하…》

그의 걸걸한 웃음소리에 배추잎이 흐늘거린다.

몇키로나 될가?

바람찬 고무공같은 양배추를 들여다보며 머리를 기웃거리는 영순아주머니의 모습이다.

《에라, 네키로 오백!》

큰맘 먹고 추를 눈금에 가져가니 저울대가 휙 뒤집혀지면서 하마트면 머리를 맞을번 하였다.

한숨을 호― 내불고나서 저울추를 조금씩 옮겨보던 영순아주머니의 눈이 왕눈이 되였다. 눈금은 다섯키로그람을 가리키고있었던것이다.

《이럴수가 있나? 도끼를 좀 가져와요. 이놈을 빠개봐야겠어요.》

올감자밭에 앉은 감나무집녀인은 어찌된 영문인지 한자리에서 앉아뭉개고있다.

《아니, 저 봄순아주머니 혁신자로부터 도루 왕드살이 되는게 아니우? 암만 봐야 전진이 없으니 말이요.》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다. 포기마다 큼직큼직한 감자알들이 한소랭이씩이나 되게 매여달렸으니 입을 다물지 못한 그는 지금 한창 속구구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감자종자로부터 시작하여 언제 심었으며 거름은 어느 정도 들어갔는가, 그동안 비는 얼마나 왔으며 김을 맨 회수는 몇차였던가 하는것까지 낱낱이 타산해보고는 이 많은 감자를 캐는데 며칠이나 걸릴가 하는 흐뭇한 걱정을 또 하고있다.

고추와 파라는 서로 다른 종자를 형제처럼 한 영양단지안에 함께 심어 같은 날 수확한다는것은 호기심을 끄는 문제였다. 상상해보라!

고추뿌리와 파뿌리가 결합되여 뗄래야 뗄수 없는 사이로 엉켜붙어 자라는 모습은 이곳 운하리남새작업반에 태여난 하나의 새 풍경이다. 오가는 사람마다 꽃밭을 보는것만 같다고들 한다. 빨갛고 파란 열매들이 가지마다 탐스럽게 열린 고추포기가 정히 엮은 꽃다발이라면 길고 실한 파잎은 꽃다발을 받쳐든 장식이였다. 이 꽃다발을 마련하기까지엔 또 얼마나 많은 사연이 깃들었던가.

지게다리를 건너가는 무우라면 충분히 짐작할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해 작업반은 최고수확년도이상을 넘어서 자기들이 내세운 목표를 더 돌파했다.

명숙은 반원들과 함께 사진을 들여다보며 환히 웃고있다. 지금은 다 자라 조국보위초소에 선 두 아들 성일이, 명일이의 첫돌사진을 받아안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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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군 운하협동농장 남새작업반이 거둔 성과와 경험은 전국적인 보여주기를 비롯하여 신문과 방송을 통해 널리 소개되였으며 작업반장 정명숙동무는 선군시대의 일군으로 성장하였다.

정명숙동무는 농업부문의 큰 대회에까지 불러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고마운 믿음에 실적으로 보답하기 위해 오늘도 포전에서 자기의 진정을 다 바쳐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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