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9(2020)년 제9호에 실린 글

 

수 필

첫자리

                                                                       강서애

 

나는 대학시절 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해드리기 위해 꽃다발을 안고 궤도전차에 올랐다.

차창밖으로는 평양종합병원건설장이 흘러갔다.

건설장에서 울리는 방송선전차의 힘찬 노래소리를 들으며 나는 당창건 75돐을 뜻깊게 맞이하려는 온 나라 인민들의 벅찬 숨결을 뜨겁게 느낄수 있었다.

이때 나의 곁으로 쉰살쯤 돼보이는 중년의 사람이 다가왔다.

《여기 앉으십시오.》

중년사나이는 미안한 포정을 지으며 잠시 망설이다가 처녀의 거듭되는 양보에 할수 없다는듯 의자에 앉았다.

《고맙소. 역시 새 세대 청년이 다르구만.》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주위사람들이 칭찬하는 목소리가 달리는 전차의 동음과 함께 궤도전차안을 꽉 채워주었다. 그 모습은 마치도 주위의 모든것을 끌어당기는 자석과도 같은 강한 인상을 주었다.

얼마후 궤도전차는 다음정류소에 도착하였다.

나이가 퍼그나 든 할머니가 올랐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년사나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할머니, 여기에 앉으십시오.》

할머니는 목소리임자를 보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구, 난 일없네. 임자나 앉으라구.》

중년사나이는 할머니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혀드린후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웠다.

서로가 양보하는 자리! 궤도전차나 뻐스에 많은 사람들이 앉는 의자이지만 오늘은 그 의자가 새로운 의미를 안고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자리를 양보하였다고 하여 그 어떤 표창이나 평가를 받는것도 아니며 양보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 누구로부터 추궁을 받는것은 더욱 아니였다. 허나 처녀도 중년사나이도 모두가 자리를 웃사람에게 양보하였다.

그것을 순수 양보라고 할수 있을가? 아니다. 그것은 도덕이나 륜리에 앞서 우리 후배들이 혁명선렬들에게 드리는 자리이며 인생을 옳바로 이끌어준 선배들에게 내여주는 첫자리였다.

첫자리! 그에 대해 생각해보느라면 제일먼저 위대한 수령님따라 백두의 생눈길을 헤치고 풀뿌리를 씹으면서도 조선혁명만세를 소리높이 웨치던 항일혁명선렬들과 조국해방전쟁시기 한치의 땅을 지켜 적의 화점을 몸으로 막은 유명, 무명의 영웅전사들, 전후복구건설시기에 빈터우에서 천리마속도를 창조한 로동계급 그리고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위대한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승리한다는 철석같은 신념을 지니고 변함없이 한길만을 걸어온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세대들이 떠오른다.

변함없이 자기 수령만을 받들어온 이런 혁명의 전세대들을 어찌 첫자리에 내세워주지 않을수 있으랴.

나는 손에 들리여있는 꽃다발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내가 가는 이 길, 그것은 단순히 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제자가 가는 그런 길이 아니다. 스승과 제자사이의 륜리나 의무로부터 출발하여 가는 길은 더욱 아니다.

어린시절 연필을 쥐여주던 나의 첫 스승들인 아버지, 어머니, 소학교시절 수학계산보다도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을 먼저 키워주던 선생님 그들은 생활의 첫 자욱을 새기는 나를 참다운 길로 이끌어준 고마운 스승들이였다.

자기자신보다도 집단을 먼저 생각하고 조국을 먼저 생각하라고 가르치시던 스승들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이 내 마음속에 언제나 첫자리에 있는것이다.

그렇다. 이 길은 오로지 한평생을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해 늘 첫자리에서 달리고 달린 혁명선배들에 대한 후대들의 존경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한것이다.

나는 꽃다발의 무게를 가늠해보았다. 꽃다발은 비록 크지 않지만 우리 후대들의 마음이 담긴것으로 하여 무거웠다. 그것은 우리 새 세대 청년들이 온 나라 혁명선배들에게 드리는 꽃다발이였다.

나는 궤도전차안에서 서로가 양보하던 자리를 다시한번 마음속에 새기며 걸음을 옮겼다.

 

 (평양시 중구역 동안고급중학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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