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1(2022)년 제6호에 실린 글
수필
끝나지 않을 노래
로성찬
《따르릉.》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종소리에 송수화기를 든 나의 귀에 반가움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신문에 난걸 축하합니다.》
김동무의 목소리였다.
내가 무엇을 했기에 신문에까지 난단 말인가?
《신문에 전국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심사결과가 실렸는데…》
아하, 거기서 내 이름을 보고 기쁜김에 이렇게… 나는 그가 고마왔다. 그런데 그 고마운 일들이 계속 이어질줄이야.
한아빠트에서 사는 사람들이 또 친우들과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바로 그 신문을 들고 우리 집에 찾아와 한바탕 떠들썩이며 축하를 해주는것이였다. 내가 뭐라고, 내가 무슨 큰 위훈을 세운것도 아닌데. 그날 나는 내가 살고 우리 가정이 안겨사는 고마운 그 품에 대한 생각으로 밤깊도록 잠들수 없었다.
군사복무시절 임무수행중 뜻밖의 일로 부상을 당하여 영예군인이 된 그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은혜로운 해빛은 우리 집에 비쳐들어 따뜻한 정과 사랑으로 나를 포근히 감싸주었다.
다정한 이웃들과 의사선생님들이 하루일과처럼 집에 찾아왔고 구역당일군들이 친부모가 되여주었다. 그들의 손에 이끌려 오늘은 이렇게 고마운 우리 당을 노래하는 글을 써서 전국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에 당선된것이다.
아, 우리모두가 어머니라 부르는 고마운 우리 당의 품.
얼마 안있어
우리 당의 고마움을 새겨볼수록 나의 부모들이 걸어온 지난날들이 영화화면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어린시절 나의 눈에 새겨진 아버지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바없는 너무도 수수하고 평범한 모습이였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아버지가 남들보다 더 나아보였으면 하고 생각할 때도 없지 않았다.
나는 남들앞에서 아버지에 대한 자랑을 한번도 못해보고 학창시절을 마치였다. 그렇게 살아오던 아버지가 60돐생일상을 받던 날이였다. 가족들과 친척친우들의 축하속에 생일상을 받는 아버지의 가슴에는 많은 훈장과 메달들이 빛을 뿌리며 빛나고있었다.
우리 당은 아버지의 그 마음을 귀중히 여겨 아버지의 한생을 빛내여주었다.
나의 어머니의 삶도 그러했다.
어머니의 청춘시절은 과수원의 사과나무와 함께 시작되였다.
어느날 관리위원회에서는 어머니를 과학기술을 겸비한 일군이 되라고 대학으로 떠밀어주었다. 이렇게 걸음걸음 손잡아 내세워주고 키워주는 고마운 당의 품에 안겨 어머니는 한생을 보람있게 살아올수 있었다.
평범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한생을 빛내여준 품, 그 품은 정녕 우리 인민모두가 한목소리로 어머니라 부르며 운명과 미래도 다 맡기고
따르는
그렇다. 그 품이 있어 나의 삶도, 우리 인민모두의 참된 삶도 있는것이다.
백두에서 안고온 붉은기폭에 마치와 낫과 붓을 아로새기고 혁명의 년대와 년대를 승리와 영광의 세월로 빛내여온
가슴뜨겁게 안아볼수록 눈앞에 어려오는것은 당을 인민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우리당으로 되게 하여주신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며 끝없는 영광을 주시고 행복을 주신
오늘은
우리 어찌 그 사랑을 대를 이어 노래하지 않으랴. 우리 인민은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은 어머니 우리 당과 영원히 운명을 함께 하며 세월이 다할 때까지 변함없이 따르며 사랑의 노래,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리라.
(선교구역 장충1동 84인민반 특류영예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