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7(2008)년 제7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청춘의 목표는 10대, 20대의 영웅!

 

수 필

 

일요일에 대한 생각

 

                                                                                                                 송 영 민

                     

무릇 사람들은 평범하고 례사롭게 흘러가는 생활속에서도 귀중한 생활의 진리를 가슴속에 새겨안게 되는 그런 때가 있다.

오늘 행군길에 올랐을 때였다.

아침일찍 행군길에 오른 우리가 산을 하나 넘고 군가를 높이 부르며 어느 한 공원옆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대렬앞에서 《노래 그만!》하는 중대장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왔다.

우리는 영문을 모른채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조용히 행군을 하게 되였다.

나의 머리에 떠오른 의문은 공원을 가까이 해서야 풀리게 되였다.

공원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차고넘쳤다.

아버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깡충깡충 깨금질을 하며 걸어가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장훈이야.》, 《멍훈이야.》하면서 장기를 두는 로인들의 모습도 보여왔다.

또 어떤 곳에서는 공원의 의자에 앉아 남들이 들을가 저어하듯 소곤소곤 속삭이는듯 한 청춘남녀들의 모습도 눈에 안겨왔다.

일요일의 하루를 휴식하며 즐겁게 보내려고 사람들이 공원에 나온것이였다.

아마 중대장동지는 우리가 부르는 노래소리로 그들의 흥취를 깨고싶지 않았을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는 나의 눈앞에는 고향에서 있었던 일요일들이 선히 안겨왔다.

수도 평양에서 나서자란 나는 일요일이면 동무들과 함께 중앙동물원이며 대성산유희장을 즐겨찾기도 했고 부모님과 함께 모란봉에 오르기도 했었다.

그중에서 제일 인상깊은것은 내가 초소로 떠나오기 전 일요일이였다.

그날 아침 우리 집에서는 내가 며칠 안있으면 초소로 떠나게 된다고 휴식일의 하루를 즐겁게 보내려고 휴식장소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조선인민군대로 나가는 나를 축하해준다며 고모들과 이모들도 모여와서 우리 집은 휴식장소의 선택으로 더 한층 활기를 띠였다.

소학교에 다니는 내 동생은 대성산유원지에 가서 동물원과 유희장을 돌아보자고 내 손을 잡고 졸라댔고 맏고모는 뭐니뭐니해도 휴식장소로는 모란봉이 제일이라고 준비해온 음식들도 쳐들어보였다.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옥류관에 다니는 막내이모는 또 저대로 어머니까지 껴들어가며 평양의 이름난 평양랭면을 옥류관에서 꼭 먹여보내야 한다고 우겨댔다.

서로 자기 주장들의 정당성으로 합의가 되지 못하고 계속되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있던 아버지가 손을 들어 그들의 이야기들을 중단시켰다.

그리고는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초소로 떠나게 될 우리 영민이를 기쁘고 즐겁게 해주기 위해 애쓰는 그 마음들은 정말 고맙구나.

내 생각에도 모두의 의견이 다 좋다고 본다.

하지만 난 어쩐지 의견을 달리하고싶구나.

우리 영민이가 왜서 군복을 입고 초소로 떠나겠니. 그것은 우리모두의 행복과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꽃피워주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겠니. 또 우리가 영민이에게서 바라는것이 무엇이겠나. 그건 군사복무를 위훈으로 빛내이고 영웅이 되여 돌아오는것이구…

그래서 난 우리모두가 다같이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을 먼저 돌아봤으면 한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의견대로 합의가 이루어지고 그날 우리는 온 가족이 전승기념탑을 참관하게 되였다. 그리고 승리상앞에서 온 가족이 사진도 찍었던것이다.

그날을 눈앞에 그려보는 나의 머리엔 당시 남조선주둔 미군사고문단장이였던 로버트놈이 줴쳤다는 넉두리가 문득 떠올랐다.

《우리가 왜 6월 25일을 택하게 되는가? 25일은 일요일이다. 그리스도교국가인 미국이나 남조선은 일요일을 안식일로 정하고있다.

우리가 일요일에 전쟁을 개시하였다는것을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것이다.…》

이 얼마나 철면피하고 파렴치한 넉두리인가.

이런 철면피한 무리들이기에 6월 25일 이 땅에 전쟁의 불을 지른 그날부터 3년간의 전쟁과정에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짐승도 낯을 붉힐 가장 야만적인 방법으로 학살하고 공화국 전령토를 재더미로 만들고도 조선은 백년이 걸려도 결코 일어나지 못할것이라고 줴친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불법무도한 침략의 무리들이기에 오늘은 지난날의 쓰디쓴 참패에서 교훈을 찾을대신 또다시 이 땅에 침략의 불을 지를 《제2의 일요일》을 연출하려고 책동하고있는것이 아니겠는가.

그후 나는 군사복무의 나날에 초소로 떠나오기 전의 일요일에 어찌하여 아버지가 모란봉이나 옥류관보다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을 참관하도록 했는지 더욱 가슴깊이 느끼게 되였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 침략의 불을 지를 《제2의 일요일》을 연출하려고 책동하고있는 미제가 아직도 저 남녘땅에 있어 전화의 그날을 언제나 마음속에 안고 전화의 영웅들처럼 살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당부, 아니 그것은 아버지의 당부이기 전에 조국의 당부가 아니겠는가.

휴식일의 하루하루를 마음껏 즐기며 인민이 기쁨과 행복을 한껏 붉게 무르익혀가라고 조국이 붉은색으로 표시해준 일요일!

그 일요일에 넘쳐나는 인민의 기쁨과 행복의 노래소리를 없애보려고 피묻은 칼을 갈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미제가 날뛰고있는 한 인민의 행복을 지켜선 병사, 나는 오늘도 행군길을 가고있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조국이 붉은색으로 표시해준 일요일은 피로써 찾아 지키고 일떠세운 조국땅우에서 날마다 커가는 인민의 행복을 피로써 지켜가라고 조국이 병사! 나에게 명령하는 날인것이다.

하기에 이 땅우에 또다시 미제의 도발로 《제2의 일요일》이 되풀이된다면 미제를 영영 이 땅우에서 쓸어버리는 결전에서 영웅이 될 맹세로 가슴을 불태우면서 나는 무기를 억세게 틀어쥐고 행군길을 힘차게 다그쳐간다.

 

〔조선인민경비대군사우편 제888―406(운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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