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7(2008)년 제9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수   필

오산덕에서 만난 처녀

                       

                                       김  명  원

                                                                                                                                              

백살구가 한창 무르익어가던 회령의 여름날이였다.

오산덕으로 향한 길을 거닐던 나는 허리를 굽히고 풀숲을 헤치고있는 한 처녀를 보았다.

흰 저고리에 깜장치마를 받쳐입은 처녀는 아침이슬에 치마자락을 적시면서 무슨 풀인가를 찾고있는것 같았다.

(저 처년 대체 뭘 하고있을가?)

나는 문득 호기심이 들어 걸음을 멈추고 처녀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처녀는 풀을 살피는데 골똘하여 앞에 내가 서있는줄도 모르고 가까이 다가왔다.

그제야 인기척을 느낀 처녀는 머리를 들었다.

처녀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어리였다.

나는 짐짓 느슨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처녀는 새별같은 두눈을 반짝이며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여기서 무얼 하오?》

나는 처녀를 안심시키려고 부드럽게 물었다.

《저… 산나물을…》

처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놀라운 눈길로 처녀를 바라보았다.

《?!》

나지막한 오산덕의 정점에 올라서니 회령의 전경이 한눈에 안겨왔다.

오산덕의 기슭을 따라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고 봄이면 연분홍진달래와 하얀 백살구꽃이 만발하여 오산덕은 꽃속에 묻히군 한다.

여기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눈물겨운 어린시절이 흘렀다.

김정숙어머님의 작은 짚신자욱이 새겨져있는 오산덕 여기서 어머님께서는 때식을 이을 나물도 캐시고 이삭주이도 하시였다.

여기서 어머님께서는 나라를 빼앗겨 고향도 집도 잃고 살길찾아 두만강을 건너가던 류랑민들의 처량한 모습을 보시며 왜놈들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시였다.

하기에 어머님께서는 손에 총을 잡으시고 백두의 전장에서 원쑤왜놈들에게 복수의 불벼락을 무섭게 안기시였고 조국해방의 혈전만리 눈보라 천만리를 헤치시였다.

숙영지의 우등불가에서 어머님 그려보시던 회령고향집, 꿈결에도 오르시던 오산덕!

하지만 새 조국 건설을 위하여 낮과 밤을 이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업을 보좌해드리시느라 끝끝내 고향에 와보시지 못한 어머님이시였다.

오산덕에 핀 연분홍진달래를 보면 항일의 그 나날 김정숙어머님께서 한가슴에 부둥켜안고 볼을 비비시던 삼지연못가의 진달래가 떠오르고 하얀 봇나무를 보면 백두밀영고향집이 떠오른다.

보이는것, 들리는것 모든것이 김정숙어머님의 한생과 이어져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가 더없이 소중해지는 오산덕이였다.

오산덕을 내리며 산나물을 살펴가는 처녀에게 나는 《동문 어데서 왔소?》라고 무뚝뚝한 어조로 물었다. 처녀는 잠시 머밋거리다가 두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김정숙사범대학에서 왔습니다.》

나의 의문은 점차 커졌다.

그 대학은 회령보다 산이 더 많은 고장에 있다.

(그런데?…)

나는 홍조가 비낀 처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보름달같은 얼굴에 샘처럼 그윽한 정서가 비낀 크고 시원한 두눈…

처녀는 퍽 숙성해보였고 얼굴생김도 똑똑해보였다.

《그런데 산나물은 왜 그리 유심히 보는거요?》

《필요해서 그럽니다. 저… 이 풀이 졸방나물이 맞습니까?》

(엉?)

나는 얼떠름해서 두눈을 끔쩍거렸다. 그가 가리키는 풀은 처음 보는 풀이고 이름도 처음 듣는 이름이였다.

《졸방나물?!》

갑자기 처녀의 큰눈이 실망으로 가득찼다.

《졸방나물을 모르십니까?》

나는 솔직하게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의아한 눈길로 나를 지켜보던 처녀의 얼굴에 실망의 그늘이 비껴들었다.

어쩐지 미안스러워진 나는 처녀에게 물었다.

《졸방나물은 어디에 쓰려고 찾소?》

처녀는 발밑을 내려다보며 잠시 망설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졸방나물은 어린시절 김정숙어머님께서 여기 오산덕에서 메와 달래, 길짱구와 함께 캐신 산나물이라고 합니다.》

《?》

나는 입을 항 벌리고 놀랍게 처녀를 바라보았다.

《저는 래년 봄에 대학을 졸업합니다. 그래서 풀잎이 마르기 전에 오산덕에서 자라는 풀들을 정확히 기억했다가 앞으로 제가 맡아 가르칠 학생들에게 김정숙어머님의 어린시절을 이야기해주면서 이 산나물들의 생김새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처녀의 얼굴을 놀라운 눈길로 지켜보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꿈을 간직한 처녀인가. 훌륭한 꿈을 안고 오산덕에 오른 처녀의 마음을 미처 다 모를번 한 자신이 부끄러워 머리를 숙였다.

처녀는 내곁에서 물러나 다시금 풀숲을 헤치기 시작했다.

아마 어머님께서 캐시던 풀들을 모두 기억해가지고 대학에 돌아가려는것 같았다.

아, 졸방나물!

나는 이날껏 오산덕에 새겨진 김정숙어머님의 어린시절에 대하여 잘 알고있은듯이 자처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망양동에 살림집들이 하루가 다르게 일떠서고있다. 회령천기슭을 따라 고층살림집들이 우뚝우뚝 키돋움하며 솟아오른다.

푸른 하늘을 떠이고 높이 솟아오르는 이 창조물들을 볼 때마다 나는 회령땅에서 일하는 건설자의 긍지를 가슴벅차게 느끼군 한다.

허나 오늘 나는 이른새벽에 오산덕에 올라 이슬에 치마자락을 적시며 어머님의 자욱자욱을 더듬는 처녀대학생앞에 머리를 숙였다.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오늘의 행복에 취해 지난날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졸방나물에 대한 표상을 새겨주며 김정숙어머님의 빛나는 한생을 심어주려는 처녀의 그 마음.

기껏해야 그 크기가 한두뽐밖에 안될 졸방나물,

이 나라의 산과 들 그 어디서나 찾아볼수 있는 수수한 풀이였으나 한포기의 풀에 스민 우리 혁명의 넋을 심장속에 간직하는 처녀의 마음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가.

그렇다. 우리는 오산덕의 나물맛을 알아야 하며 페부로 간직해야 한다.

오산덕에 대하여 잘 모른다면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시고 그 사랑으로 혁명의 미래를 가꾸어오신 김정숙어머님의 한생에 대하여 안다고 말할수 없다.

오산덕을 심장속에 영원히 간직하고 살아야 우리 조국땅에 펼쳐진 위대한 전변의 력사를 알게 되고 우리가 딛고선 이 땅을 더욱 아름답게, 풍요하게 가꾸어가려는 애국의 일념도 커지게 되는것이다.

그리고 피로써 찾은 이 땅을 끝까지 지켜갈 선군시대의 공민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여 경애하는 장군님을 높이 받들어갈 한마음도 불타게 되는것이다.

나는 흥분된 심정을 안고 졸방나물을 찾는 처녀를 도와 이슬맺힌 오산덕의 풀숲을 헤치기 시작했다.

(무산광산련합기업소 로천분광산 로동자)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