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7(2008)년 제12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수   필

병사의 노래

 

김  충  국

 

오늘 저녁에 있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가슴이 울렁거림을 진정할수 없다.

군중문화오락시간이였다.

텔레비죤으로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졸업생들의 공연을 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뜻밖에도 중학교동창생 유정이가 나오는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기뻐 벌떡 일어나 발을 동동 구르며 옆에 앉아있는 부소대장의 넙적한 어깨를 두손으로 쾅쾅 두드려대기까지 하였다.

손으로 금선을 뜯기도 하고 누르기도 하는 유정은 연주하는 자세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로련한 배우처럼 가야금을 탔다.

(유정동무, 멋있구나. 나도 너와 함께 대학에 갔으면 아마… 축하한다!)

나는 유정이에게 진심어린 인사를 보냈다.

옆에 있던 부소대장이 나의 얼굴변화를 유심히 살피더니 귀속말로 조용히 물었다.

《충국동무, 아마 동창생인게지?》

나는 기쁨과 자랑을 담아 힘있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헌데 동무는 왜 군복을 입었소?》

그의 물음에 나의 눈앞에는 중학교졸업때의 그날이 펼쳐졌다.

중학교졸업을 앞두고 학교에서는 조국해방전쟁참가자들과의 상봉모임을 가지게 되였다.

전쟁시기 간호원으로 싸운 로병할머니의 이야기는 참가자들의 가슴을 틀어잡았다.

전쟁전에 남달리 노래를 사랑했던 그는 어느 극장의 무대에서 관중의 인기를 독차지하였던 이름난 배우였다.

지난날 지주집 부엌데기로 눈물과 한숨속에 살던 자기를 인민들이 사랑하는 배우로 화려한 극장무대우에 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껏 노래하던 그.

하기에 전쟁의 불구름이 밀려오자 그는 조국이 있어야 무대도 있고 행복의 노래도 있다고 하면서 전선으로 떠났고 전선에서 《조국보위의 노래》를 부르며 용감히 싸웠다.

세월의 흐름속에 처녀시절의 윤기도는 검은 머리는 희슥해졌어도 어제날의 포연서린 군복에서 번쩍이는 훈장은 군공의 자랑과 위훈을 그대로 노래하고있었다.

나는 50년대의 세대옆에 자기를 세워보았다.

감히 얼굴을 들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총대로 받들어달라고 절절히 당부하는 로병앞에서 자신의 마음속 결의를 다지였다.

하여 나는 대학추천서를 조선인민군입대증으로 바꾸었다.

나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났다.

중대의 모든 병사들이 새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충국동무, 훌륭하오. 난 동무가 손풍금만 잘 타는줄 알았더니 그 가슴속엔 큰것이 차있었구만.》

《충국이, 난 이번에 동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중대예술소조공연에 내놓을 종자를 찾아냈소. 우리의 노래는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그것을 지키고 가꾸어가는 전호에 있다고 말이요. 동무들, 어떻소?》

열광적으로 호응하는 동무들의 박수소리.

나는 지금 비행기를 타고 구름우에 떠있는듯 한 심정이였다. 화려한 무대에서 관중들의 절찬을 받으면 이보다 더 기쁘랴.

병사들이 사는 곳 여기야말로 내가 서야 할 청춘의 활무대가 아닌가!

벌써 교대시간이 되였다.

근무를 교대하며 울리는 구령소리가 고요한 밤하늘에 울려퍼져가고있다.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의 심장을 세차게 때린다.

유정이의 노래를 지키고 이 땅에 넘치는 행복을 지키는 이 소리, 그것은 손에 쥐여진 총의 무게를 가늠하게 하고 청춘의 영예로운 사명을 되새기게 하고 병사의 긍지를 자랑하게 하는 병사의 노래였다.

〔조선인민경비대 군사우편 제777001호(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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