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8(2009)년 제1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수   필

우리가 만나는 곳

                                                          한  철  순

 

나는 창작실습기간에 현실체험을 위해 고원탄광으로 갔다. 고원탄광은 규모가 큰 탄광이기도 하지만 내가 대학으로 오기 전에 일하던 잊을수 없는 일터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나는 탄광로동계급을 형상한 단편소설을 명작으로 창작해낼 야심을 가지고있었다.

탄광에 도착한 다음날 저녁 나는 박동무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갔다. 그는 나의 탄광로동생활에서 가장 가까왔던 친구였다. 널판자로 울타리를 치고 회칠을 산뜻이 한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의 어머니가 나를 반겨맞아주었다.

《이게 누군가? 〈작가선생〉이 언제 왔나?》

《참, 어머니두… 지난 시기처럼 그저 진주 아버지라고 불러주십시오.》

박동무의 어머니와 간단한 인사말이 오고간 후 나는 박동무가 있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그가 지금 밤교대 나갔다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렇습니까?》

아쉬운 어조로 내가 되묻자 박동무의 어머니가 내 마음을 리해시키려는듯 말을 이었다.

《새해 첫 전투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있네. 온 탄광이 부글부글 끓지. 나도 가두녀맹원들과 함께 지원물자를 가지고 탄광에 가야 한다네.》

나는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수그렸다. 탄광마을녀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석탄생산을 위해 남편들과 자식들과 함께 마음과 뜻을 같이하고있는것이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탄광에 도착한 순간부터 느끼고있는것이지만 언제나 석탄생산을 위하는 탄부들의 숨결이 뜨겁게 맥박치고있었다.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다시 박동무의 집으로 갔다. 밤일을 하고 지금쯤 집에 있을것이다. 박동무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노란털의 복슬강아지가 뽀르르 달려나와 발에 칭칭 감겨들었다. 마중나온 어머니에게 나는 박동무가 들어왔는가고 속삭이듯 물었다.

《지금 자고있네. 깨울가?》

《아, 됐습니다. 피곤하겠는데… 후에 오지요.》

나는 또다시 돌아섰다. 박동무의 어머니가 미안해하며 따라나와 바래주었다.

나는 탄광사무실에 나가 일군들을 만나려고 하였으나 방마다 비여있었다. 회계원처녀에게 물으니 일군들이 막장에 들어갔다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석탄이 가득 쌓여있는 탄장으로 내려갔다.

탄차들을 길게 단 전차가 질풍같이 달려간다.

전차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운전공처녀의 머리에서 빨간 수건이 기폭처럼 나붓긴다. 석탄을 미느라 용을 쓰는 불도젤소리, 역으로 나가느라 부르릉거리는 자동차의 경적소리… 탄부들의 드세찬 열의가 한눈에 안겨오는 탄장에 서니 선군시대의 한복판에 선것 같아 가슴이 뿌듯해졌다.…

나는 저녁때쯤 되여 박동무의 집으로 다시 갔다. 그런데 그는 없었다. 아직 일나갈 시간이 안되였는데… 나의 의문을 그의 어머니가 풀어주었다. 착암기 예비부속때문에 나갔는데 그길로 그냥 작업장에 들어간다는것이였다. 나는 손맥이 풀려 돌아섰다. 박동무를 만나 밀렸던 회포도 나누고 나의 소설의 주인공으로 될만 한 인물에 대해서도 방조받자던 계획이 또 미루어졌다. 가슴이 알찌근했다. 온 탄광이 전투를 하느라 만나기가 조련치 않았다. 밤에는 일나가고 낮에는 피곤해서 쉬고…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갑자기 뇌리를 치는 생각에 우뚝 멈춰섰다. 나는 왜 그를 만나려고 하는가? 단순히 우정을 나누고 회포를 풀자고?

그것도 옳다, 하지만 그보다 석탄생산을 위해 뛰고 또 뛰는 탄부들의 숨결을 느껴보며 나의 작품의 주인공의 원형을 찾으려는것이 아닌가. 그런데 물우에 뜬 기름방울처럼 밖에서 헤매다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서둘러 준비를 갖추어가지고 막장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를 쓰니 감회가 새로왔다. 막장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었다. 기본갱도를 지나 간선막장에 들어서니 비릿하고 슴슴한 막장특유의 냄새가 물씬 코를 찌른다.

《쉭―쿵, 쉭―쿵》가락맞게 울리는 압축기소리가 정답게 들려온다. 나는 압축기실을 지나 박동무의 막장에 이르렀다. 막장에서는 발파를 위한 착암작업이 긴장하게 진행되고있었다. 나는 세차게 요동치는 착암기를 틀어잡고 앞을 바라보는 박동무에게 다가가며 소리쳐 불렀다.

《박동무!》

그러나 그는 응답이 없었다. 아마 착암기소리때문에 듣지 못한 모양이였다. 그의 곁에 다가간 나는 그의 어깨를 쳤다. 뒤를 돌아보던 박동무의 얼굴에서 두눈이 반갑게 웃는다.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잠간만 기다리게. 10㎝만 더 뚫으면 되네.》

나는 옆에서 호스를 당겨주며 일손을 거들었다.

이윽고 착암작업을 끝낸 박동무가 착암기를 세웠다. 불시에 찾아든 정적으로 하여 귀가 멍멍했다.

《왔다는 소릴 들었네. 당장 자네에게로 달려가고싶었지만 바쁜 일들이 꼬리를 무는통에…리해해주게.》

《별소릴… 오자바람으로 막장에 들어와야 하는건데 오히려 내가 미안하구만.》

나는 착암기를 쓸어만졌다. 내 가슴속에는 웬일인지 후더운 감정이 따뜻이 차올랐다. 이 착암기는 몇년전에 내가 쓰던것이였다. 제대배낭을 풀어놓은 그날부터 10여년세월을 나와 마음도 뜻도 같이한 착암기다.

《그래 창작이 잘되나?》

박동무의 물음에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힘드네. 인간생활을 탐구한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아.》

이것은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속에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보니 나의 능력이 부족한것 같이 생각되였다. 그래서 몹시 안타까왔다.

《그래? 내 이거 〈작가선생〉에게 훈시하는것 같지만 친구로서 한마디 하지. 작가는 인간정신의 기사인데 생활을 그리자면 현실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자네도 여기서 일할 때 느껴봐서 잘 알겠지만 석탄으로 하여 웃고 울고 말하는 우리 굴진공들과 채탄공들 그리고 압축기운전공과 전차운전공에 이르기까지 탄부들의 생활을 그대로 그리면 되지 않을가? 지하의 세계를 헤쳐가는 우리 탄부들을 말이네.》

순간 나는 심장이 후두둑 뛰는것을 느꼈다. 지하의 세계를 헤쳐가는 탄부! 그렇다, 이들은 분명 지하의 미지의 세계를 헤쳐가는 전초병들이고 개척자들이다. 횡포한 자연의 도전에 맞서 석탄밭을 찾아 끊임없이 암벽을 찌르는 착암기정대는 탐측바늘이라고 할가… 예상치 못했던 가지가지 일들도 생길수 있다.

하지만 탄부들은 자기의 직업을 탓하지 않는다.

나라의 재부를 한삽이라도 더 퍼올려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한 오늘에 이바지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들이 캐낸 석탄으로 발전소가 돌고 집집마다 밝은 불빛이 흘러나오고 인민들이 뜨뜻한 방에서 달콤한 잠을 잔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더없는 긍지와 보람으로 생각하는것이 이들이다.

고상한 량심과 불같은 진정으로 당을 받들고 동발처럼 묵묵히 조국을 받드는 탄부들이야말로 선군시대의 애국자들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이들의 생활을 그려보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막장안에 들어와 이들과 함께 일하며 호흡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밖에서 친구를 만나 《취재》하는 식의 체험을 하려 하였다. 벌써부터 탄부의 열정과 패기와 넋을 잊어버린 책상앞의 《생원님》이 되였단말인가. 나는 얼굴이 뜨거워올랐다. 그러면서도 새삼스러운 눈길로 발파심지에 불을 달고있는 박동무를 바라보았다. 이제 저 발파구멍마다에 장약된 폭약들이 터지면 우뢰같은 소리가 막장을 진동시킬것이다. 그리고 탄부들의 진정을 내 조국땅우에 터쳐놓을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그들과 함께 일하며 생활하였다.

착암도 하고 버럭적재기운전도 하고 영양제식당에서 식사도 함께 하며…

그 과정에 나의 머리속에는 작품의 주인공과 여러 인물들의 형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 주인공들은 나를 유혹시켰고 자꾸만 붓을 들지 않고서는 못 견딜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어느덧 현실체험기간이 끝나 나는 탄광을 떠나게 되였다. 헤여질 때 박동무가 나의 손을 꽉 잡으며 미안해하였다.

《한동무, 와서 일만 하다가 가누만. 정말 수고많았네. 다음번에 오면 우리 저기 차가덕등판에 야유회를 가자구.》

《그러자구.》

나는 그와 인사를 나누며 생각했다.

우리가 이제 만날 상봉의 지점은 어데인가 하고.

나는 확신한다. 그것은 나의 단편소설이 발표되여 사람들속에 읽히우는 날이며 상봉지점은 책의 지면우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박동무이다. 사람들이 나의 작품을 통해 탄부들의 영웅적인 투쟁모습을 보고 격찬해마지않을 때 우리의 상봉으로 될것이다.

박동무는 지하의 세계로! 나는 그 인간들이 숨쉬는 생활의 세계로!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도 강성대국건설의 길에서 다시 만날것이다.

(김형직사범대학 작가양성반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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