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8(2009)년 제1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수   필

겨울속에 안아본 가을
 

                                                      정  연  희

 

겨울방학을 보내기 위해 대학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다음날 할아버지를 찾아뵈우러 떠나게 되였다.

나의 할아버지는 읍에서 수십리 떨어져있는 명현리에서 군사복무를 마치고 작업반장, 관리위원회 부원을 거쳐 관리위원장으로 한생을 땅과 함께 살았다.

나이가 많아 관리위원장자리를 내놓은 후 아들딸들이 저마다 모셔가려고 하였지만 할아버지는 굳이 만류하였다.

아들딸들중에는 도시에서 공장 지배인을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식료공장 지배인도, 또 우리 아버지처럼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자기의 땀이 스민 땅을 떠나지 않겠다면서 굳이 집을 뜨려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늘 우리를 만날 때면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고 하면서 농사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주었다. 그때문인지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도에 있는 농업대학을 지망하게 되였다.

녀자들은 사범대학이나 교원대학이 적합하지 않는가고 동무들이 나에게 권고할 때면 나는 도리머리를 젓군 하였다. 결국 할아버지처럼 한생을 땅과 함께 살 결심이 나를 농업대학으로 떠밀어주게 되였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는 나를 만날 때마다 우리 손녀가 제일이라고 등을 두드려주군 하였다.

할아버지의 집을 가까이 하자 나는 《할아버지!》하고 반갑게 소리치며 뜨락안에 들어섰다.

그런데 집안은 조용하였다.

여느때같으면 방문이 벌컥 열리며 달려나와 《우리 막내손녀가 왔구나.》 하고 반갑게 맞이할 할아버지였었다. 서두르며 달려가 방문을 열고 할아버지를 다시 찾아보았으나 역시 응답이 없었다.

서운한 마음을 안고 서있는 나에게로 다가온 옆집아주머니가 할아버지는 이른아침부터 지게를 지고 집을 나섰다고 조용히 알려주는것이였다.

할아버지의 집을 나서 몇사람에게 물어봐서야 할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볼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마을의 몇몇 로인들과 함께 밭들에 거름을 져나르고있었다.

년로한 몸에도 쉬지 않고 농사일에 마음쓰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나의 머리에는 지난해 설날 할아버지를 찾아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설날을 즐겁게 보내고난 다음날 아침 내가 잠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할아버지의 자리가 비여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데 가셨나요?》

나는 부엌에서 아침밥을 짓고있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새해의 첫 전투날인데 너희 할아버지가 집에 가만히 있을게 뭐냐? 벌써 이른새벽에 벌로 나갔다.》

《그래요?!…》

나는 서둘러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늙은이로부터 젊은이, 소년들에 이르기까지 손달구지며 소랭이에 거름을 담아 끌고 이고 벌로 향하는 모습이 나의 눈에 비쳐들었다.

새해 첫날부터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지 못하는 지각생이 된것만 같아 나도 급히 손달구지에 거름을 싣고 따라나섰다.

산과 들은 물론 농장벌로 나가는 큰길에도 흰눈은 다복다복 덮여있건만 그 큰길우로 거름을 실은 뜨락또르며 자동차가 발동소리 높이 울리며 지나가고 왁자지껄 떠들며 거름을 나르는 사람들의 행렬이 눈에 안겨왔다.

우리 당의 뜻을 가슴속에 깊이 새기고 새해 로동일의 첫날 이른새벽부터 알곡생산을 위해 떨쳐나선 이들의 모습은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주었다.

나는 그 행렬에 섞여 할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저쪽 밭 한가운데에서 거름을 부리우고 로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환히 웃고서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안겨왔다.

나는 할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가까이 다가가느라니 로인들속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동갑이, 어떤가. 지난해보다는 거름을 낸 실적이 많지?》

《암, 그렇구말구. 이만하면 가을은 벌써 먹어논셈이지.》

순간 나에겐 무엇인가 쿵― 가슴을 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새해공동사설을 높이 받들고 너도나도 농장의 주인이 되여 이 땅을 가꾸어가는 이들, 아니 저기 이른새벽부터 거름을 실어나르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엔 과연 무엇이 있었던가.

그것은 바로 오곡이 무르익어가는 가을이였다.

한겨울의 추위속에서도 간직한 그 가을이 있어 봄이 오면 곡식과 함께 이 땅에 땀을 묻고 여름이면 알뜰한 정성으로 오곡을 자래우며 안아오는 가을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가을은 벌써 이 겨울속에 마련되여가는것이였다.

그날을 돌이켜보는 나의 가슴속엔 벌써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이 안겨져있었다.

뜨거운 마음들에 받들려 소리치며 달려올 이해의 가을이…

나는 주저없이 손달구지를 끌고 할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이해의 가을속에 나의 땀도 바치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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