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1호에 실린 글

   

수 필

 

우리 집 가풍

                                              홍 충 성

   

가풍!

이 말을 외우느라면 왜서인지 마음속에 묵중한 느낌이 얹혀진다. 묵중한 느낌이란 이 말이 가지고있는 무게일것이다.

이 무게야말로 시대에 대한 사명감을 인식하게 한다고 생각하게 된것이 며칠전 어느 평범한 날의 저녁부터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느라니 지난 100일전투기간에 더욱 몰라보게 달라져 산뜻하고 아름다와진 우리 거리의 새로운 면모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거리의 면모에서뿐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의 활력있는 표정들에서도 올해공동사설과업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영웅이 되고 위훈의 창조자가 될 의기양양한 기상들이 안겨온다.

집안에 들어서니 또 류다른 광경이 펼쳐져있다.

온 방안 가득히 장갑이며 어깨받치개, 지함들이 널려있는 속에 아버지, 어머니가 분주하게 서성대고있었다.

《무슨 일이예요? 어머니.》

《오, 충성이냐? 래일 희천에 가는 차편이 있다누나. 그래서 두루두루 좀 준비하는 길이다.》

《아니, 희천발전소에야 우리 온 가족이 열흘전에 지원갔댔잖아요?》

나의 물음에 이번에는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희천발전소지원이야 어디 한번, 두번 셈으로 셀 일이냐?  힘자라는껏, 기회가 닿는껏 암만이구 해야 할 일이지.》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그만 짧은 내 생각을 탓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장갑들을 간종그리며 계속해서 말하였다.

《충성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설계하시고 펼치시는 중요건설대상들을 성의껏 지원하는건 이때까지 지켜온 우리 집안의 가풍이 아니야. 너도 자라오면서 아버지, 어머니를 좀 작게 따라다녔니?…》

그랬다.

생각해보면 나는 유치원시절 그때부터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뻐스를 타고 때로는 몹시도 들추는 화물차 적재함에 앉아 지원의 길을 많이도 다녔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가 아마 내가 소학교에 입학하여 제일 처음으로 소년단에 입단한 자랑으로 붉은넥타이를 뻐기며 다니던 시절인것 같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처음 먼길을 걸어 안변청년발전소건설장을 찾았었다.

인민군군인형님들이 그때 얼마나 반가와하고 나를 고와했던지 모든것이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그 무거운 착암기를 한쪽어깨에 가볍게 척 메고 드나드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 나도 사내랍시고 메보자고 떼를 쓰다 그 무게에 오히려 내가 메보기는커녕 넘어질번 했던 일도 있었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관철하기 전에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보지 말자는 구호를 보며 무슨 뜻이냐고 내가 묻던 일도 생각난다. 그리고 저녁어스름이 짙게 낀 밤의 장막아래 천막가에 펼쳐진 오락회시간에 울리던 손풍금소리가 귀전에 쟁쟁하고 군인들의 요청으로 아버지, 어머니가 혼성2중창을 부르던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스운것은 그때 안변청년발전소건설장을 다녀온 후 약간 음치인 어버지의 목청때문에 창피해서 혼났노라며 저녁마다 어버지를 붙들어놓고 노래련습을 시키던 어머니의 열성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철들기 전부터 당의 부름따라 일떠서는 건설장들마다에 성심성의껏 애국의 한마음 바쳐오신 아버지, 어머니의 걸음을 많이 쫓아다닌셈이다.

철도 들지 않은 장난꾸러기총각애를 왜 부디부디 우리 부모님들은 데리고 다녔겠는가.

그것은 아마도 아버지장군님께서 구상하시고 우리 당이 펼치는 일이라면 이 땅에 태를 묻고 자라난 사람들중에 그 누구도 결코 외면시해서는 안된다는것을, 그것이 바로 이 나라 모든 가정의 대로, 가풍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을 사진기같은 유년의 눈에 새겨두고 깨끗한 소년의 심장에 간직하길 바라서였을것이다.

그렇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나에게 애국심을 말로 심어주려 하지 않으신것이다.

그 어떤 풍족한 재산이나 사회적명예가 아니라 조국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받아들일줄 알고 조국이 느끼는 무게를 자기 어깨에 사심없이 얹어놓을줄 아는 순결한 애국심을 후대들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그러한 애국적인 가풍을 지닌 가정들이 얼마나 많은가.

바로 이러한 가정들의 훌륭한 가풍이 세계에 함부로 건드릴수 없는 강국의 위용을 지니고있는 내 조국의 사회적풍조를 이루고있다. 이러한 가정들, 이러한 인민들이 바로 오늘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상과 의도를 심장에 받아들이고 이 땅에 변이 나는 해의 수많은 기적적인 변천을 창조하고있는것이 아닌가.

가풍! 나는 이 말의 무게를 다시금 무겁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내 마음이 어느새 흠썩 자란것처럼 느낀다.

분주히 서성대는 아버지, 어머니와 지함들을 번갈아보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 가정의 작은 성의가 깃들어있는 이 물자가 며칠후면 《희천속도》가 창조된 저 멀리 희천땅에 가닿겠지… 내 마음도 가득 담자.

《그럼 난 무얼 할가요?》

누구에게라없이 묻는 나의 말이였다.

 

(평성외국어학원 문학반 학생)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