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6(2007)년 6월 1일 《청년전위》에 실린 글

 

      기   행

영원히 타오르라 선군승리의 불길이여

보천보혁명전적지를 찾아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보천보전투가 가지는 가장 주요한 의의는 조선이 다 죽었다고 생각하던 우리 인민들에게 조선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것을 보여주었을뿐아니라 싸우면 반드시 민족적독립과 해방을 이룩할수 있다는 신심을 안겨준데 있다.》

항일전의 나날 칠칠야밤과도 같이 이 땅에 무겁게 드리운 암흑의 장막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민족재생의 밝은 앞길을 환히 밝히며 활활 타오른 보천보의 불길!

력사의 그날로부터 70돐이 되는 뜻깊은 기념일을 맞으며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보천보혁명전적지를 찾은 우리는 가림천가에 정중히 모셔진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경건히 우러르고 또 우러렀다.

포연짙은 항일의 군복차림으로 한손을 높이 드시고 인민들을 조국해방을 위한 성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는 절세의 애국자, 전설적영웅,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동상을 숭엄한 마음으로 우러르는 우리에게 강사는 보천보전투가 진행될 무렵의 정세에 대하여 상세히 이야기하는것이였다.

당시 우리 나라에 조성된 정세는 매우 엄혹했다.

일제는 조선사람의 말과 글, 성과 이름까지 빼앗아 우리 민족을 저들의 영원한 노예로 만들려고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참으로 일제침략자들의 야수적인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사람 못살 생지옥으로 변한 조국땅에서는 가장 무서운 비극이 매일같이 빚어지고있었고 인민들의 원한과 신음소리는 하늘에 닿았다.

조성된 정세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6(1937)년 3월 서강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며 전반적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대부대에 의한 국내진공작전을 벌릴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국내진공작전의 주공목표를 보천보로 정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6(1937)년 6월 2일 장백현 19도구 지양개에서 조선인민혁명군 7련대와 8련대, 경위중대에서 선발된 원정대를 이끄시고 력사적인 조국진군을 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진두에 모신 대오는 6월 3일 밤 적들이 1선, 2선, 3선도 모자라 4선으로 철통같은 경계진을 치고있다는 삼엄하고 조밀한 국경경비망을 뚫고 김운신동지를 비롯한 선발대성원들이 마련한 구시물동의 떼목다리로 압록강을 건넜으며 곤장덕등판에서 여유있게 하루밤을 숙영하였다.

다음날 아침부터 부대는 인민들을 반일항전에로 불러일으킬 격동적인 포고와 삐라, 격문도 준비하고 지휘관회의도 열고 정찰도 조직하면서 전투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어나갔다.

날이 어두워진 다음에 곤장덕을 내린 대오는 여러 단위로 분산되여 지정된 위치를 차지했던것이다.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있는 답사대오와 함께 우리는 어둠이 깃든 보천보의 밤하늘에 멸적의 신호총성 높이 울리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형상한 모자이크벽화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강사는 우리에게 거리입구에 있는 이 지휘처로부터 적경찰관주재소까지의 거리는 불과 100m안팎이라고 이야기하는것이였다.

바라보니 정말 돌로 담장을 둘러막고 포대까지 쌓아놓은 경찰관주재소건물이 바로 지척에 있었다.

100m! 세계전쟁사의 어느 갈피에 시가전을 하는 경우 지휘처와 시가와의 거리가 이처럼 가깝고 순간순간마다 위험이 조성되는 전장한복판에 지휘처가 자리잡은 실례가 있었던가.

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백두의 담력과 영웅남아다운 배짱, 천재적인 령군술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의 절세의 위인상이 가슴뜨겁게 안겨와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걸음을 옮기는 우리의 생각은 력사의 그 순간으로 거슬러올라갔다.

6월 4일 밤 10시!

삼라만상이 모두 잠들어버린 보천보의 밤 10시,

위대한 수령님께서 울리신 공격의 신호총소리와 함께 경찰들의 소굴이며 온갖 폭압의 아성인 경찰관주재소를 비롯한 섬나라 오랑캐들의 소굴을 향해 사방에서 복수의 불벼락이 날아갔다.

경찰관주재소는 총탄에 벌둥지가 되였고 우리 인민들의 피와 땀을 빨아먹던 면사무소, 산림보호구, 소방회관, 우편국, 농사시험장 등 적통치기관들에서는 삼단같은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여기저기에 포고문과 격문들이 나붙고 삐라들이 흩날렸다.

강사의 안내를 받으며 시내를 돌아보는 우리의 눈앞에는 70년전에 타올랐던 불길이며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독립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며 이 골목, 저 골목에서 터져나오는 인민들의 환희에 찬 모습들이 금시 보이는듯싶어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

그 밤의 장엄한 총성, 충천하던 그 화광을 그지없이 장쾌한 마음으로 그려보며 우리는 복수의 불을 뿜던 기관총이며 구멍이 숭숭 뚫린 경찰관주재소 그리고 분노의 불벼락을 맞아 재더미로 변하였던 적통치기관들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이어 우리는 뒤따라오는 적들을 족치고 혁혁한 승리를 거둔 구시산과 간삼봉전투에 대한 해설도 깊은 감동속에 들었다.

기관총을 비롯한 중무기로 무장하고 포사격과 파도식공격으로 악착스레 발악을 하던 2,000명의 무력중에 200명가량의 패잔병만을 겨우 건지고 황황히 도망쳤다는 조선주둔군 함흥74련대에 대한 이야기며 《호박대가리》전설이 생겨난 유래 등 감동없이, 통쾌한 웃음없이는 들을수 없는 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의 생각은 깊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조직지휘하신 보천보전투와 구시산전투, 간삼봉전투는 조선과 만주대륙에서 제왕처럼 행세하며 세계제패를 꿈꾸던 일제를 보기좋게 후려갈긴 참으로 통쾌한 전투였으며 일제의 식민지통치기반을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은 일대 사변이였다.

참으로 이는 위대한 군사전략가이신 경애하는 수령님의 독창적인 전략전술과 탁월한 령군술의 빛나는 승리였다.

간악한 강도 왜놈들에게 준엄한 철추를 내린 항일의 격전장을 감회깊이 돌아보는 답사자들의 얼굴마다에는 백두의 위대한 령장을 영원한 주체의 태양으로 높이 모신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이 어리여있었다.

보천보의 밤하늘에 활활 타오르던 불길!

그것은 정녕 수난많던 우리 민족이 결코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그 어떤 강적도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승리의 신심을 북돋아준 신념의 홰불, 승리의 불길이였다.

그렇다.

오늘도 우리 인민의 심장속에서 세차게 타오르는 그 불길은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령도밑에 우리 공화국의 존엄과 명예를 건드리는자들은 추호도 용서없이 짚검불이나 북데기처럼 불태워 재가루로 날려버릴것이며 김일성민족의 기상을 만방에 떨치며 선군조선의 하늘가에 영원무궁토록 타오를것이다.

 

특파기자   전  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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