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8(2009)년 제11호에 실린 글  

 

 

연 단

 

시다운 시―철학성이 있는 시문학을 위해

 

        

최 희 건

 

《청년문학》잡지는 우리 청년들의 사상교양사업에 이바지하는 힘있는 무기, 문학창작의 후비를 키워내는 훌륭한 교재이다.

최근의 《청년문학》잡지의 지면을 통해 나는 선군시대 시가문학의 창창한 《하늘》에 뜬 《푸른 별》들이 더욱 빛나고있음을 보았다.

이 충격으로 하여 나는 서둘러 붓을 든것이다.

 

1. 시는 생활의 철학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문학은 예술적화폭을 통하여 인간의 운명문제에 해답을 주는 생활의 철학이다.》

문학의 한 형태인 시가문학도 객관현실과 그 현실에 살고있는 인간들의 생활과 사상감정을 반영한다.

《청년문학》잡지 주체97(2008)년 11호에 실린 시초 《신천의 결산은 끝나지 않았다》(조광원 작)에는 생활의 진리, 생활의 철학이 있으며 아직까지 누구도 펼치지 않은 새로운 시세계가 있다.

시초 《신천의 결산은 끝나지 않았다》의 첫 시 《피의 지층》을 보자.

지층이란 말그대로 땅을 이루는 층을 말한다. 흙층, 그밑에는 바위층 또 어떤데는 화석층…

그런데 땅속에 피로 이루어진 그런 지층이 있다고 하였으니 그것이 시에서 본 신천땅의 지층이다.

이것이 시인이 새로운 눈으로 본 시적발견이다.

시 《피의 지층》에서 시인이 딛고사는 땅속에 또 하나의 지층이 있음을 가슴저리게 느끼며, 고생대의 유적도 아닌 20세기 미제의 학살흔적인 처참한 유해들을 다시금 보며 소스라친다고 할 때 나 역시 몸서리를 치기는 하였으나 시인의 그 다음 말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물어보자 야만의 시대가

이렇듯 새 세기 가까이에 있었던가

미제가 조선에서 저지른 학살만행은 고대가 아니며 현세기이다. 이것은 우리가 생활을 통하여 본것이며 체험한것이다. 물론 야만의 시대는 고대에도 중세기에도 있었다. 아메리카대륙이 발견된 후 미국식인종들은 인디안들을 살륙하고 그 시체우에 미국이라는 죄의 땅덩이를 세웠다. 그러한 야만들이 현세기에까지 남아있다. 시초에 씌여있는것처럼 그런 야수들은 결코 인간으로 진화시킬수 없다.

문학은 이처럼 알고있는 생활을 그리지만 그 형상을 통하여 생활을 재인식한다. 문학은 모르고있는 생활을 알게도 하지만 기본은 알고있는 생활을 새롭게 느끼게 한다. 시 《피의 지층》은 이 땅에 피의 지층을 만들어낸 미제에 대한 저주, 증오의 사상감정을 새롭게 다시 감득하게 하였으며 복수의 감정을 더욱 예리하게, 서슬푸르게 벼리였다.

지금껏 이렇게 찾아낸 유골은 얼마고

찾지 못한것은 또 얼마일가

봉분에도 들지 못한 억울한 목숨들이

하나의 지층을 이룬 땅아

 

죄스럽구나

내 날마다 이 땅을 밟고 다니며

행복한 래일을 꿈꾸어온것이

이 피의 지층을 잊고

누가 무심히 보습을 대여 씨를 뿌리며

아름다운 창조물의 기둥을 박으랴

 

아 이 한겹 피의 지층을 잊는다면

우리가 쌓아가는

행복의 그 모든것을 잃게 되나니

내 이 지층을

이 땅의 력사

계급사에 피의 교훈으로 새겨넣으리라

후대들이 대를 이어 영원히 읽도록!

 

시 《피의 지층》은 물론 미제가 신천땅에서 감행한 인간도살, 인간살륙만행에 의하여 신천땅에 하나의 피의 지층이 생겼다고 규탄, 단죄하였지만 이 한편의 시를 통하여 가깝게는 우리의 남녘땅이 피의 지층을 이루었고 미제의 피묻은 구두발이 가닿은 세계의 그 어느곳이나 피의 지층이 생겼음을 말해주고있다. 이것이 이 시의 시사성이다.

시의 철학성은 이러한 보편성과 일반성을 가질 때 생활철학으로서의 시의 가치를 가지는것이다.

철학이 있고 사색이 있는 시, 하나의 시어, 시구절속에 깊은 뜻이 담겨져있는 그런 시가 시다운 시이며 문학다운 문학일것이다.

명백히 말하거니와 생활의 진리, 생활의 철학이 없다면 그것은 례외없이 시로 될수 없다.

시가작품에서 철학성을 말할 때에는 그 시의 전반을 두고도 말하지만 시의 어느 한 시구절, 시적세부 하나를 놓고도 철학적인 시구절이나 철학적인 시적세부라고도 할수 있다.

시초 《신천의 결산은 끝나지 않았다》에서 다음과 같은 시구절들이 그러한 례로 된다.

어른들은

이 한을 다 못 푼채

해마다 먹은 나이를 아프게 세고

아이들은

이 봉분에 꽃을 놓으며

해마다 증오의 나이를 먹나니

(시 《혈붙이》중에서)

 

피의 년륜을 감고있는 저 나무

우리 정녕 베일 날이 있다면

마지막판가리의

총가목을 만들리라!

신천이여 네가 있는 땅에서

우리 세대는 계급의 탈선을 모른다!

단두대의 층계를 오르면서도

고개들어 받들어올린 우리의 하늘

(시 《증오의 단시》중에서)

 

오, 인두겁을 쓴 야수는

세월도 진화시킬수 없나니

새 세기라고 이 야수들을

인간으로 만들었더냐

야수없는 행성을 기어이 만들고야말

우리의 복수에는 한계가 없다!

(시 《경계선앞에서》중에서)

 

일렁이는 벼바다

생각깊은 밭머리에서

신천의 농민은 낫을 간다

써억_ 써억_

이 땅의 주인은

수호자의 의지를 서리차게 벼린다!

(시 《주인에 대한 생각》중에서)

 

   …

   그냥은 누구도 못 지나

   평범한 날에도

   준엄한 그날을 걷게 하는 다리여

   넥타이를 날리는 소년단원아이들도

   네우에선 나이를 앞질러

   계급의 키를 자래우거늘

   …

   뜨락똘에 가득실은 알찬 이삭들도

   네우에선 복수의 무게로 계산되거니

   …

   비록 네가 비좁다 해도

   너 아닌 새 다리를

   우린 결코 놓지 않으리라

   …

   변하고 또 변하라

   마을이여 들이여 산천이여

   허나 석당교

   너만은 서있으라 50년대 그 기슭에

   오, 신천의 결산은 끝나지 않았다!

(시《우리는 새 다리를 놓지 않는다》중에서)

 

시초의 매 시편들에서 몇개의 시구절과 시련들을 골랐을뿐이다.

례의 시구들에는 매개 시편들에 담겨진 사상주제적내용이 집적되여있거나 시적종자가 담겨져있거나 시인의 주장들이 깔려있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그 시구나 시련들이 시인으로 하여금 붓을 들게 한 동기나 계기가 되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실제적으로 상기의 시구들과 시련들에 이 시초의 기본주제와 사상이 있다고 말할수 있다.

다시말하여 이러한 철학성이 담겨진 시어, 시구들이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낳게 한다.

이것이 시형상을 이루는 생리이다.

명시는 창작년조가 오랜 시인들만이 창작해내는것이 아니다. 청춘에 한생을 살도록 질주해야 한다.

명시창작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신인이란 새로 문학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만 해석해서도 안되며 그렇게 해석할수도 없다.

신인이란 철학이 있는 새로운 시를 들고 문단에 등단하는 그런 《혜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문단을 놀래우고 인민이 새롭게 알게 된 시를 가진 신인이 되자! 모든 문학신인들은 이런 배짱, 이런 야심, 이런 피의 맹세를 안고 심장을 바치고 넋을 태우고 살을 저미고 뼈를 깎아 명시창작으로 주체시가문학의 후비로, 주인으로 맹활약하여야 하며 질주하여야 한다.

현세계, 현시대를 경탄케 한 인공지구위성 《광명성2호》를 20대, 30대의 우리의 청년과학자들이 저 아득한 우주에 그것도 단번에 성공적으로 쏘아올리지 않았는가! 《광명성2호》와 같이 세상을 놀래울수 있는 창조물시를 내놓자!

나는 《청년문학》잡지발행 600호기념 특간호에 실린 신인들의 시작품들, 특히 시초 《신천의 결산은 끝나지 않았다》를 읽고 우리 당의 손길아래 더욱 휘황찬란할 위대한 주체시가문학의 래일을 락관한다.

 

2. 창작적사색과 생활철학의 발견

 

시가작품에서 새로운 생활철학을 발견하는것은 금광석을 녹여 금덩이를 얻어내는것과는 다른 획득이며 발견이다. 시에서 생활철학의 발견은 시인의 깊고도 인내성있는 사색과 탐구로 얻어낸 결정체이다. 창작적사색, 심오한 철학적사색만이 시에서의 깊이있는 생활철학을 발견해낼수 있다.

실제적으로 시인의 창작적사색, 심오한 철학적사색은 시문학작품의 철학적깊이를 보장하기 위해 모색하는 창작적로동과정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시인의 창작적사색이 무엇을 목표로,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사색이 진행되여야 하는가.

시인의 창작적사색은 형상적사유과정인데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내용도 없이 이루어질수 없는것이다.

철학적심도가 있는 시작품을 위해 사색하는것이다. 철학적깊이가 있는 시는 깊은 사색을 전제로 한다. 그러면 창작적사색에서 시인은 어떤것을 목표로 하고 내용으로 삼아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문학작품의 철학적깊이에 대해 말할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 불후의 고전적로작 《주체문학론》에서 가르치신바와 같이 종자의 철학적무게, 사상의 철학적심오성, 사회적문제의 예리성, 생활의 새로운 탐구, 깊이있는 분석적인 세부묘사와 언어구사를 통하여 보장되는 창작과정의 총체라고 규정한 바로 그것이므로 시인의 창작적사색은 거기에 의거하여야 한다. 그것이 시인이 사색하게 되는 출발점 또는 자리점인것이다.

시초 《신천의 결산은 끝나지 않았다》의 첫 시인 《피의 지층》을 착상할 때 시인은 바로 자기의 창작적사색의 자리점을 우에서 규정한 철학적사색의 목표로 정하였다.

시 《피의 지층》의 종자의 철학적무게도, 사상의 철학적심오성도, 사회적문제의 예리성도, 생활의 새로운 탐구도, 깊이있는 분석적인 묘사와 언어구사도 바로 시인이 문학작품의 철학적깊이가 포괄하고있는 그 내용에 사색의 자리점을 두고 진행한 사색의 산물이며 결정체인것이다.

시 《피의 지층》의 시적종자는 신천땅에 《피의 지층》이 생긴것은 세월이 만든것이 아니고 인간살륙의 원흉 미제야수들이 만들어냈다는것이다.

앞에서도 말한바이지만 실제로 땅이 생길 때 피로써 형성된 지층은 없었다. 그러나 미제야수들이 신천의 수천수만의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하여 땅속에, 물속에 던졌고 생매장하였고 총창으로 찔러죽이고 쇠몽둥이로 때려죽였으니 신천은 피의 바다, 시체의 더미로 쌓이고쌓여 《시체의 지층》,《유골의 지층》《피의 지층》을 이루었다.

신천땅의 《피의 지층》의 무게를 달수 있는 《저울》은 이 행성에는 없다. 이 원한서린 《지층》이 시 《피의 지층》이 안고있는 시적종자의 철학적무게이다. 이 시의 사상의 심오성, 예리성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시인이 땅의 지층에는 피로써 형성된 지층이 없다고 감히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신천땅에는 실제적으로 피의 지층이 있음을 확인한것, 시인이 새롭게 생활과 현상을 투시한것이것이 바로 생활의 새로운 탐구이고 종자의 철학적발견을 가져온것이다.

《저 멀리 고생대의 유적도 아닌/20세기 미제의 학살흔적》, 《봉분에도 들지 못한 억울한 목숨들이/하나의 지층을 이룬 땅아》하며 너무도 절통하여 땅을 치는 피의 절규, 심장의 벽을 아프게 두드리는 복수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그런 피타는 시어, 시구들도 시 《피의 지층》의 철학성을 더욱 깊이있게 느끼도록 한 시적언어구사인것이다.

시인의 이러한 깊이있는 철학적사색이 무게있는 철학적종자를 발견하게 하는것이다.

이 시초에 들어있는 다른 시편들의 경우를 두고도 마찬가지로 설명할수 있을것이다.

이처럼 시인의 창작적사색은 문학예술작품의 철학적깊이가 포괄하고있는 그 내용에 의거하여 진행해야 하며 바로 그 내용에 의거하여 사색의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로 지향해야 한다. 창작적사색은 철학적깊이가 포괄하고있는 내용에 사색의 출발점, 자리점을 두어야 창작적사색이 목적의식적으로 진행되며 시의 철학적깊이를 보장할수 있다는것을 시 《피의 지층》의 창작적사색과정이 뚜렷이 실증해주고있다.

나는 여기서 다만 시적종자의 철학적무게를 보장하기 위한 시인의 창작적사색문제를 개괄했을뿐이다.

시가작품의 철학적무게, 철학적깊이를 보장하기 위한 전제로서의 작가의 창작적사색문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설명할수 있다. 그 측면이란 작품의 철학성이 포괄하고있는 내용이다. 례하면 시의 사상성의 철학적깊이를 위한 창작적사색, 시문학의 사회적문제의 예리성, 생활의 새로운 탐구, 시적세부를 구체적으로 생동하게 표현하기 위한 시어, 시구를 얻어내기 위한 창작적사색 등이다.

시인의 창작적인 사색이 어떻게 진행되든지 문제는 시인이 현실생활을 어떻게 보고, 느끼고, 분석, 판단, 평가하는가 하는 능력이 중요한것이다.

그 능력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것은 시인의 정치사상적안목이며 그런 안목에 기초를 둔 시인의 투철한 작가적《시력》인것이다.

작가적《시력》은 현실을 보는 시적능력이라고 말할수 있다.

현실을 보는 시인의 눈이란 사물과 현상을 사진처럼 복사하여 현상해내는 생리적눈이 아니다. 자연이나 사회의 변화발전모습을 정치사상적으로 보고 분석, 판단, 평가하고 철학적으로 음미, 해석하며 미학적으로, 예술형상적으로 보는 눈이다.

시문학은 문학예술의 한 형태이다. 현실반영의 특수한 의식형태로서의 문학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시가작품은 현실을 보는 시인의 이 눈이 가지는 《시력》에 따라 시의 철학성, 그 사상미학적가치가 결정되게 된다. 그런 까닭에 시인들이 오늘의 선군시대의 벅찬 현실, 강성대국건설을 위한 새로운 혁명적대고조가 일어나는 조국의 현실을 시인답게 보는 작가적 《시력》을 가지는 문제는 시가작품의 철학성을 보장하기 위한 창작적사색과 떼여놓을수 없는 필수적요구이다.

시초 《신천의 결산은 끝나지 않았다》에서 신천땅이 미제에 의하여 《피의 지층》이 생겼다고 세계앞에 인류앞에 소리친것이나 세상이 변하고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신천의 그 석당교만은 50년대의 그 기슭에 그대로 남겨두고 력사가 남긴 피의 교훈을 세대를 이어가며 보여주리라는것을 굳게 확신하면서 철천지원쑤 미제와의 결산, 신천의 결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웨친 그 선언은 현실을 보고 판단, 평가한 이 시인의 투철한 시적투시력, 작가적《시력》이 투명하고 예리하기때문이다.

시초 《신천의 결산은 끝나지 않았다》는 우리 시문단에 나타난 새로운 《꽃》이다.

은혜로운 태양의 빛발이 있어 주체시가문학의 화원에는 이채롭고 향기로운 《시의 꽃》들이 더욱 만발할것이다. 시다운 시철학성이 있는 시문학을 위하여 신인들이여, 분발하고 또 분발하여 완성에서 더 높은 완성에로 치달아오르자! 하고싶은 말들이 더 있어 붓을 놓고싶지 않으나 오늘은 이만 쓰련다. 다시 마주앉을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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