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4호에 실린 글

 

혁명전설

하늘이 준 상봉

 

 

우리 인민들속에는 60년전에 죽은 누이가 동생앞에 나타난 기적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동생이 한살때 잃은 누이를 60이 되여 만난 남매의 감격적인 상봉은 말그대로 《하늘이 준 상봉》이였다.

이 이야기는 지금 전설로 되여 사람들속에 널리 전해지고있다.

20년전 항일혁명투사 김철호동지가 서거하였을 때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고인을 추모하여 깊은 추억에 잠기셨다가 문득 자식들에게 물으시였다.

《너희들한테 누이가 있었지?》

느닷없는 물으심에 누구도 선뜻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형제의 심중을 헤아려보시고 혼자말씀처럼 뇌이시였다.

《너희들은 어렸으니까 잘 모를수 있지. 집에 누이사진이 있겠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사진이라도 보고싶구나.》

형제는 이번에도 이렇다할 답변을 드리지 못하였다.

그들은 누이의 사진을 본 기억이 없었다.

언젠가 어린시절에 어머니한테서 자기들에게 손우누이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뿐이였다.

그리고 후날 철이 들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읽고 적후전선에서 최고사령부를 찾아온 아버지 최현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 딸의 희생을 두고 몹시 가슴아파하시며 위로하시였다는 사실을 안 이들이였다.

형이 갑자르던 끝에 말씀드렸다.

《사진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이야기하시기를 전쟁때 두번씩이나 폭격을 맞았는데 그때 집에 있던 사진들이 모두 없어졌다고 합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몹시 아쉬워하시면서 너희 누이가 어렸을 때 김정일동지와 군사놀이를 하면서 같이 놀았지, 김정일동지가 기관총수를 하면 부사수가 되군 하였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의 말씀 마디마디에는 애틋한 정이 슴배여있었다.

그이께서 다녀가신 후 형제는 누이사진을 찾으려고 사방에 수소문을 하며 무진애를 썼다.

누이가 잘못된 때로부터 어언 40년세월이 지나고보니 사진을 찾기가 조련치 않았다.

누이의 얼굴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설사 누이사진이 앞에 있다 해도 형제는 알아볼수조차 없었다.

형도 동생도 누이에 대한 표상이 전혀 없었다.

년년이 세월은 흘러 만나본 기억조차 없는 누이에 대한 생각은 점차 희미해지면서 망각의 락엽에 묻히기 시작하였다.

수령님께서 누이의 사진을 찾으실 때 그이앞에 내놓지 못한 형제의 가슴에 맺혔던 자책의 응어리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것 같은 대국상을 당한 이후 저도모르게 사라지고말았다.

되돌아설줄 모르는 세월은 살같이 앞으로만 흘러갔다.

누이에 대한 생각이나 사진에 대한 생각을 까맣게 잊고있던 어느날이였다.

한 일군이 동생을 찾아왔다.

그 일군은 만나자바람으로 이렇게 물었다.

《집에 누이사진이 있습니까?》

동생은 첫 순간 그 일군의 말뜻조차 제대로 리해하지 못하였다.

50이 되도록 살아오면서 입에 누이라는 말조차 별로 올려본적이 없는 그였다.

만나본 기억도 없고 사진을 본 기억도 없으니 그럴수밖에 없었지만 동생은 이 순간 자기 어머니 장례식에 오신 수령님께서 누이사진을 찾으시던 생각이 부지중 떠올랐다.

《왜 그러십니까?》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고 되묻는것은 실례였으나 왜 사진을 찾을가 하는 의문이 앞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장군님께서 최동무 누이의 사진을 찾으십니다.》

《예?》

동생은 당황했다.

모닥불이라도 뒤집어쓴듯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찾으실 때도 내놓지 못했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찾으시는데도 누이의 사진을 내놓을수 없는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내가 왜 그동안 누이사진을 찾지 않았을가?)

아무리 숲속에서 바늘찾는격이라 해도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동생은 심한 자책과 함께 장군님께서 누이사진을 왜 찾으실가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 자책과 의문도 흐르는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말았다.

세월은 빨리도 흘렀고 할일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동생은 중임을 맡게 되면서부터 사사로운 생각과 감정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깡그리 가시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누이사진을 찾으시던 때로부터 스무해가 되던 어느날이였다.

동생은 위대한 장군님을 한자리에 모시는 영광을 지니였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시였다.

《동무네 집에 누이사진이 있소?》

동생은 이 순간 어머니장례식때 수령님께서 누이사진을 찾으시던 일이며 10년전 어느날 한 일군이 찾아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누이사진을 찾으신다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수령님께서 누이사진을 찾으시였고 장군님께서도 저의 누이사진을 찾으신다는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는 얼굴을 붉히며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죄스러워하는 그의 마음을 풀어주시려고 빙그레 웃으시였다.

《내가 동무 누이사진을 찾은것은 그때 전선시찰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오다 동무 아버지를 보았기때문이요. 그때 차안에서 깜빡 잠들었댔는데 동무 아버지가 내앞에 나타나는게 아니겠소. 최현동지는 나에게 거수경례를 하더니 〈최고사령관동지! 죄송스럽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하는것이였소. 펄쩍 놀라 눈을 떠보니 꿈이였소. 동무 아버지모습이 너무도 생동해 꿈이 아닌것 같기도 하고…

동무 아버지가 나를 찾아와서 왜 죄송스럽다고 했을가 하는 생각이 잠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소. 동무 아버지가 하던 말이 너무도 귀가에 쟁쟁해 나는 당중앙위원회청사에 돌아와서도 의문을 버리지 못했소.

오늘 어떻게 되여 최현동지가 꿈에 나타났고 그가 왜 나한테 죄송스럽다는 말을 했을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일력을 보니 그날이 바로 동무 어머니가 돌아간 날이더란 말이요.

동무 어머니가 서거한 날이여서 동무 아버지가 비몽사몽간에 나타났던것 같소. 그런데 동무 아버지가 나한테 왜 죄송스럽다고 했을가 하는 의문은 좀처럼 풀길이 없었소. 수령님께서 동무 어머니 장례식에 가셨던 생각이 나서 그때 일을 알아보니 그날 수령님께서 동무 누이사진을 보시겠다고 하셨는데 없어서 보여드리지 못했더구만.

그래서 과업을 주어 동무네 집으로 사람을 보냈던거요. 그사이 동무가 혹시 찾았나 해서…》

동생은 이때에야 10년전에 한 일군이 자기 집에 불쑥 나타나 누이사진을 왜 찾았는지 알수 있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였으니 벌써 그 일도 까마득한 오래전 일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추억깊은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 아버지가 나한테 죄송스럽다고 한건 수령님께서 동무 어머니 장례식때 동무 누이사진을 보고싶어하시였는데 사진을 내놓지 못했으니까 최현동지가 나한테 죄송스럽다고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구만.》

10년째 풀지 못했던 의문이 풀렸으나 동생은 죄스러움이 점점 커만 갔다.

형제들도 잊어버린지 오래되는 누이를 두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이하여 그토록 못 잊어하시였고 장군님께서도 추억하시는것일가.

부모님들이 모두 가고 형들도 다 가서 이제는 집안에 자기 혼자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는 죄책감이 더 컸다.

자신의 불찰로 어버이수령님께 아쉬움을 끼쳐드렸고 장군님께 오늘까지 걱정을 끼친다는 자책으로 가슴이 조여들었다.

주사야몽이라고 낮에 있은 일이 꿈에 나타난다고 하였으니 장군님께서 얼마나 마음쓰셨으면 전선시찰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차안에서 잠시 드신 쪽잠에서마저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래되는 전사의 모습을 보셨을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책으로 얼굴을 들지 못하는 동생에게 힘을 주시듯 말씀하시였다.

《내 동무 누이사진을 찾았소.》

《예?!》

동생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장군님께서 어떻게 누이사진을 찾으셨을가.

《내 일군들한테 과업을 주어 동무 누이사진을 찾으라고 했는데 무척 애를 써서야 겨우 찾았소.

동무 누이사진을 찾은 후 금수산기념궁전에 가서 어버이수령님을 뵈올 때 내 마음속으로 보고를 드리였소.

〈수령님! 최현동지의 딸사진을 찾았습니다.〉

수령님께서 생전에 동무 누이사진을 못 보시고 가셨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서 말이요. 수령님께서 보셨으면 기뻐하셨을텐데…》

장군님의 어조엔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수령님 생전에 기쁨을 한가지라도 더 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한껏 어려있었다.

《동무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벌써 20년이 되누만. 비록 늦게나마 동무 누이사진을 찾았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 누이사진이 두장인데 한장은 우리 어머니가 여러명의 투사들과 동무 누이를 데리고 찍으신 사진이고 다른 한장은 수령님께서 동무 누이와 여러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찍으신 사진이요. 그 사진들을 동무에게 보내주겠소.》

《장군님!―》

그는 끓어오르는 격정을 누르지 못하였다.

며칠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사랑어린 그 귀중한 사진을 금빛나는 액틀에 넣어 최현동지의 아들에게 보내주시였다.

그날 아들은 누이사진을 가져온 당중앙위원회 일군을 통해 비로소 사진을 찾은 사연을 알게 되였다.

장군님으로부터 사진을 찾을 과업을 받은 일군은 사진이 있을만 한 기관들과 항일투사들의 집은 물론 해방직후 수령님과 연고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다 찾아다녔으나 그 어디서도 사진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어느 항일투사의 집에 찾아가보라고 이르시였다.

사실 그 일군은 그 집에도 이미 가서 많은 사진들을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왔었다.

찾아가보라는 장군님의 분부를 받고 그는 다시 그 집으로 갔다.

사진을 한장한장 번지며 눈여겨보던 일군은 자그마한 사진 두장을 골라냈다.

일군은 사진이 작고 또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머리를 기웃거리며 기연가미연가하다가 그 사진들을 장군님께 올리였다.

장군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바로 이 사진이요! 이 어린이가 최현동지의 딸이란 말이요! 수령님께서 보고싶어하시던 그애, 최현동지의 딸이요.》

일군은 신비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장군님께서 아셨을가?

《나는 그때 정말 꿈을 꾸는것만 같았습니다.》

그때의 흥분이 되살아난듯 일군은 얼굴이 붉게 상기되였다.

희귀한 보물과도 같은 뜻깊은 누이사진을 부여안고 동생은 목메여 말하였다.

《누님! 수령님과 장군님의 덕으로 60년만에 누님을 보게 되였습니다.》

이것은 정녕 하늘이 준 상봉이였다.

그 하늘은 수령님이시고 장군님이시였다.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사람들은 말한다.

《수령님께서 보고싶어하시니 세상에 없다던 사진도 나타났다. 그이께서 바라시는것은 장군님 계시여 무엇이나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것은 실지 있은 일이다.

하지만 전설로 생겨난것은 후세의 사람들한테도 길이길이 전해야 할 이야기이고 력사의 귀중한 재부로 천년만년 사적을 전하고싶은 인민들의 념원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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