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7(2008)년 제12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혁명전설

백상루에 나타난 흰새

 

 

《관서8경》의 하나인 백상루가 있는 등방산을 언젠가는 방등산이라고도 불렀다. 한것은 산의 모양새가 방등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주지방에서는 이 이름과 관련하여 흥미있는 전설이 전해내려오고있다.

옛날 북쪽오랑캐들이 불의에 자주 침노하군 하여 백성들의 피해가 막심하였는데 어느날 하늘에서 커다란 방등이 청천강가에 내려왔다고 한다. 헌데 그 방등이 하도 신기하여 적들이 침입해오면 절로 불길이 타올라 나라에 생긴 변을 미리 알려주어 피해를 막게 하였다고 한다.

바로 이 전설적인 방등산마루에 고려시기 군사지휘처인 장대를 세웠는데 그것이 백상루이다. 그래서인지 백상루는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나날이 신비화되면서 점점 더 유명해졌다. 그것은 방등산에 깃든 전설과 함께 《백상루》라는 이름에 이 고장 사람들의 념원이 담겨져있기때문이라고 한다.

가난과 천대속에 살아오던 이 고장 사람들은 나라의 안녕을 지켜주는 안주에 장대를 지으면서 백가지 상서로운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백 《백》자에 상서로움이라는 뜻을 가진 《상》자와 다락《루》자를 써서 《백상루》라고 지었다고 한다.

절절한 념원은 전설을 낳기마련이여서 백상루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여기 백상루에서 군사를 지휘하며 북을 울리면 웬일인지 쳐들어오던 적들이 갑자기 귀머거리가 되고 팔다리가 까드라져 오금을 쓰지 못하여 싸움을 언제나 쾌승으로 끝냈다고 한다. 허지만 등방산의 경치가 어찌나 절승이였던지 백상루는 군사지휘처로보다도 백가지 경치를 한눈에 다 볼수 있는 《관서제일루》로 인정되여 당시는 물론 후세에도 절경으로서 명성이 자자하였다.

거울같이 맑은 강물우에 돛배가 떠다니는 청천강의 풍경도 희한하고 황홀하기 그지없거니와 일망무제하게 펼쳐진 열두삼천리벌과 송악벌의 전경도 눈을 한번 주면 좀처럼 뗄수가 없고 저 멀리 아련히 바라보이는 박천의 칠악산과 녕변의 약산동대, 옛 장수들의 무훈담과 전설이 깃들어있는 오도산과 말대가리같이 생긴 마두산 그리고 서산과 청산의 경치는 그 어느것 하나 절경중의 절경 아닌것이 없으니 《백상루》라는 말뜻을 백가지 경치를 볼수 있는 루대라고 풀이한것도 과히 틀린것은 아니다. 오죽하였으면 14세기초 고려의 한 왕이 백상루에 올라 황홀한 경치에 매혹되여 이런 시를 남기였겠는가.

 

청천강상 백상루

만경삼라 불이수

초원장제 청일면

천저렬수 벽천두

금병영리 비고목

옥경광중 점소주

미신인간 선경재

밀성금일 견영주

 

(청천강가 백상루에 오르니

이 세상 온갖 경치 한눈에 바라보이네

저 멀리 긴 뚝은 푸른 옷 떨쳐입고

천만메부리 하늘을 떠이고 우중충 솟았구나

비단병풍 그늘속으로 따오기 한마리 훨훨

밝은 해빛 받으며 작은 배 떠가네

인간세상에 신선의 땅 있는줄 몰랐건만

내 오늘 여기서 신선의 땅 보노라)

 

그런가 하면 《허백당집》, 《용재총화》 등 많은 저서를 남긴 15~16세기 성현은 백상루에 올라 주변경치를 부감하며 청천강에서 배타고 낚시질하고 백로가 고기를 잡는 풍경을 시에 담아 노래하였고 16세기말~17세기초에 이름을 날린 시인 권필은 《백상루의 달밤》이라는 시를 남기였다. 력사의 매 시기마다 당대의 명인재사들은 거의다 백상루를 찾았을뿐아니라 지어 외국의 저명한 문인들까지 수많이 찾아와 이곳의 일만경치에 넋을 잃었다는 일화와 사화들이 허다하게 전해지고있으니 백상루의 경치가 얼마나 유명하였는가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이런 백상루를 우리 조상들은 1753년에 와서 다시 더 호화롭게 개축하였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자랑인 백상루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의 야수적인 폭격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되였다.

1970년대초 어느해 12월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눈보라치는 맵짠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숫눈길에 거룩한 자욱을 찍으시며 몸소 여기 백상루에 오르시였다.

그이께서는 빈터만 남은 백상루를 돌아보시고 매우 가슴아파하시면서 옛 도시인 안주에 있는 이 유적을 원상복구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터자리까지 잡아주시였다.

그후 원상복구된 백상루를 또다시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잘 복구하였다고 못내 기뻐하시면서 안주에 깃든 유구한 력사를 깊이 헤아리시고 안주가 있어 평안도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되였다고 하시였다. 원래 안주는 고구려시기부터 편안하게 쉴수 있는 고을이라는 뜻에서 《식성》으로 불리워왔으나 고려시기에 와서 《팽원》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931년부터는 나라의 북쪽을 편안하게 하는 고을이라는 뜻에서 《안북》이라고 불렀다. 그후 983년에는 나라의 안녕에 이바지하는 고을이라는 뜻에서 《녕주》라고 하였다. 안주라는 이름은 1369년부터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그것 역시 북방을 믿음직하게 지켜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고을이라는 뜻을 담고있다.

백상루가 옛모습 그대로 복원되자 신기하게도 등방산마루에 핀 꽃들이 유별나게 더 진한 향기를 풍기였고 하늘가엔 고운 꽃구름이 자주 피여나는가 하면 온갖 새들이 날아와 우짖는 소리가 창공을 가득 채우군 하였다. 더우기는 백로를 비롯한 흰새들이 가끔 무리로 나타나 하늘가를 날아예군 하였는데 그러면 그때마다 안주땅엔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군 하였다. 이것이 그대로 전설로 되였는데 그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주체96(2007)년 봄 어느날이였다.

모내기정형을 알아보려고 청사를 나선 안주시의 한 책임일군은 어디선가 《과아― 과아―》하는 백로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걸음을 멈추고 귀를 강구니 분명 백상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백상루의 하늘가에는 여러마리의 백로들이 날아예고있었다. 빙―빙― 원을 그리며 날아도는가 하면 하늘높이 솟구쳐올랐다가 아래로 내려꼰지기도 하고 네댓마리씩 무리를 지어 날다가는 갑자기 흩어지기도 하였다. 눈처럼 희디흰 백로들의 날개깃이 퍼덕일 때마다 해빛에 반사되여 눈이 부시였다.

《저게 백로들이 아니요?》

책임일군은 한 일군에게 물었다.

《예, 백로들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저렇게 많은 백로들이 나타났소?》

《글쎄 참 이상합니다.》

사실 백상루에 백로나 따오기와 같은 흰새들이 무리로 날아예는것은 보기 힘든 일이였다.

충숙왕이 지은 옛시에도 《비단병풍 그늘속으로 따오기 한마리 훨훨》이라고 썼었고 성현도 백로 한마리가 고기를 잡는 모습을 시에 담았을뿐 이렇게 떼를 지어 백로들이 무리로 날아옜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것이다.

일군은 책임일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40년전에도 저렇게 많은 흰새무리들이 백상루에 나타났댔는데… 그때 참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신기한 일이라니?》

책임일군은 안주태생인 그 일군을 호기심어린 눈길로 돌아보았다.

일군은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해는 1967년이였다.

그때 8월 20일은 몹시도 쾌청한 날씨였다.

한동안 가문데다가 앞으로도 인차 비가 오지 않을것이라는 일기예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을 지어주었다.

그러한 때 여러 부문을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을 찾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앞으로 큰물이 날수 있는데 청천강의 제방뚝을 더 높이 쌓고 배수양수장들을 하루속히 잘 정비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큰물피해방지를 위한 방도와 대책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일군들은 놀랐다.

치산치수는 물론 국사중의 국사임이 틀림없다.

만물의 근원인 물은 잘 다스리면 음료수를 비롯하여 그 덕을 볼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그 물에 빠져죽거나 커다란 재앙을 입을수 있는것이다. 그렇지만 일군들은 날씨가 맑고 비가 올 기미가 전혀 없는데 왜 제방뚝과 배수양수장부터 빨리 보수정비하라고 하시는지 그 깊은 뜻을 인차 리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그대로 귀중한 진리여서 그들은 즉시 청천강가로 달려나갔다.

현지로 달려나간 그들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난데없이 수많은 백로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백상루의 하늘가를 날아예더니 서둘러 제방뚝우에 군데군데 내려앉는것이였다.

《엉?!》

모두 영문을 알수 없어 머리를 기웃거리였다.

자세히 보니 백로들이 앉은 곳은 물곬이 큰 곳들이여서 위험지대들이였다. 보면 볼수록 백로들의 거동은 신기하기만 하였다. 더우기는 백로들의 마리수가 많이 내려앉은 곳일수록 그곳은 더 위험한 물곬이였다.

그들은 내려앉은 백로들의 마리수에 따라 공사의 순차를 정하고 제방뚝과 배수양수장들의 정비보강계획을 치밀하게 작성하였다.

낮에 밤을 이어 온 안주가 떨쳐나 긴장한 전투를 벌려 백로들이 내려앉았던 곳마다 뚝을 더 높이 쌓고 배수양수설비들에 대한 정비보강작업을 며칠사이에 와닥닥 해제끼였다.

그런데 이런 신기한 일도 있는가?

보수정비작업이 방금 끝난 그 다음날인 8월 27일 뜻밖에도 전국적으로 100년래에 처음 보는 큰물이 났다. 바다를 꺼꾸로 기울인듯 폭우가 마구 쏟아져내렸다. 삽시에 강물이 불어나 아름드리나무들이 뿌리채 뽑혀 떠내려가고 귀청을 째는 천둥이 련이어 울리였다. 그런데 때마침 뚝을 보강하고 물곬이 큰 곳들의 배수설비들을 제때에 정비해놓아 안주지방에서는 큰물피해를 적지 않게 막을수 있었다.

며칠후 구름이 걷히고 해빛이 비치자 사람들은 밖으로 달려나가 하늘을 바라보며 서로서로 손을 붙잡고 신비감에 휩싸여있었다.

어쩌면 우리 수령님께서 이처럼 큰 장마가 질것을 아시고 큰물피해방지대책을 미리 세워주셨을가? 예로부터 천지조화는 불가항력이란 말이 있다. 하기에 수수천년 인류는 천지조화로 인한 불행을 두고 《신의 계시》요 《하늘의 벌》이요 하면서 행운을 학수고대하여 빌고 또 빌었다.

100살을 바라보는 한 로인은 가슴노리에까지 내리드리운 수염을 슬슬 내리쓸며 이렇게 말하였다.

《예로부터 천지조화는 하느님이나 알지 일반사람들은 알지 못한다고 하였거늘 우리 수령님은 천기를 타고난분이시여서 그분의 뜻은 곧 하늘의 뜻일세.》

사람들은 수령님께서 백로들을 보내주시여 위험개소들을 미리 알려주시고 큰물피해대책을 세우게 해주시였다고 하면서 평양쪽하늘을 바라보며 그이께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드리였다.

예로부터 안주사람들은 백상루가 있는 이 등방산을 명산으로 신성하게 여기였다. 그래서 조상들은 여기 등방산에 기념비들을 많이 남기였다.

1627년 후금침략자들이 안주성에 침입하였을 때 성방어를 책임지고 싸우다가 희생된 군사지휘관들의 공적을 찬양하여 세운 충민사당과 비도 여기 등방산기슭에 있고 19세기 중엽 나라를 위해 헌신한 장수들의 공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공적비도 백상루에서 불과 100여메터 떨어진 곳에 세웠었다.

1910년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여러차례 안주에 오시여 광범한 대중을 반일애국사상으로 교양하신 안흥학교와 동례배당도 바로 등방산기슭에 자리잡고있었다. 여기에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혁명사적이 깃들어있어 등방산은 신성하고 숭엄한 봉우리로 거연히 솟아 찬연히 빛을 뿌리고있는것이다. 이런 산이여서 사람들은 여기서 신기한 조화가 일어나는것을 당연하게 여기고있었다.

책임일군은 일군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그때로부터 꼭 40년이 되는 이해에 백상루상공에 그 새들이 또 나타났으니 어찌 범상하게 여길수가 있겠는가.

일반적으로 흰새는 천조로, 하늘나라 새라 하여 길조로 여겨왔은즉 백상루에 나타난 백로들을 결코 무심히 볼수가 없었다.

흰빛은 밝음을 뜻하는것이요 밝음은 해빛이다.

흰백(白)자를 보아도 태양을 뜻하는 날일(日)자우에 빛을 가리키는 한획을 내리그어 이루어진것이다. 그래서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즉 흰새의 조화는 곧 하늘의 조화라고들 인민들이 일러왔다.

《정말 신기한 일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주에서는 지금도 그때 일을 두고두고 이야기하고있습니다.》

《우리 수령님은 하늘이 낸 위인이심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책임일군의 가슴은 더욱 뜨거워졌다.

그는 금수산기념궁전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생전에 우리 안주시를 얼마나 사랑하시였던가. 얼마나 안주시를 사랑하시였으면 그처럼 바쁘신 수령님께서 여러차례나 찾아오셨을가.

며칠후 책임일군은 어버이수령님을 뵙고싶어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았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진정을 담아 그이앞에 다진 불타는 맹세를 방문록에 이렇게 썼다.

《동트는 이른새벽에도, 은하수흐르는 깊은 밤에도 절절한 그리움속에 그려보던 주체의 최고성지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뵈오니 경애하는 장군님을 해와 달이 다하도록 높이 모시고 순결한 량심과 의리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세상 끝까지 따를 신념의 맹세가 바위처럼 더욱 굳어집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책임일군은 꿈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또다시 만나뵈왔다.

그이께서는 책임일군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고 청천강의 제방뚝을 더 높이 쌓고 배수양수장들을 잘 보수정비하며 치산치수사업에 언제나 관심을 돌려야 하겠다고 당부하시였다. 너무도 생시와 같아 도무지 꿈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깨여났으나 아직도 그이의 다정하신 음성이 귀전에 울리였다.

백상루에 나타난 백로무리, 꿈에 뵈온 위대한 수령님께서 40년전 그때처럼 큰물피해방지대책을 철저히 세우라고 하신 간곡한 당부.

밖은 아직 어둠속에 잠겨있는데 희미한 달빛이 창문으로 흘러들고있었다.

책임일군은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빨라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른새벽 안주에 오시여 자기를 찾으시는것만 같았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셨던 칠성못가로 향하였다. 그 옛날 누군가가 여기에 와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을 룡왕에게 편지로 보내여 소란스럽던 개구리울음소리를 그치게 하였다는 전설이 깃들어있는 칠성못주위는 물밑처럼 고요하였다.

칠성못을 돌아보고 사무실에 들어선 그는 책상에 마주앉았다. 책임일군은 청천강제방뚝과 배수양수장들에 대한 실태를 료해하였다.

날이 밝자 그는 전문일군들과 함께 청천강가로 나갔다. 차에서 내려 제방뚝을 바라보던 그들은 저저마다 눈이 커졌다. 제방뚝의 여기저기에 백로무리들이 모여앉아 그 누군가를 기다리는듯 목을 빼들고 사방 두리번거리는것이 보였던것이다.

책임일군은 무슨 예감이 들었는지 사람들을 백로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였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갔으나 백로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있다가 손에 잡힐듯 한 거리에 이르렀을 때에야 푸드득 날개짓을 두어번 하고는 불과 서너걸음앞에 내려앉는것이였다.

백로들의 거동이 이상하여 머리를 기웃거리던 사람들은 일시에 무릎을 철썩하고 쳤다.

40년전의 일이 떠올랐던것이였다. 신통히도 그때처럼 백로들이 내려앉은 곳은 제방뚝과 배수양수설비들을 시급히 보수정비하여야 할 곳이였던것이였다.

책임일군은 청년들로 돌격대를 조직하고 치렬한 전투를 벌려 제방뚝과 배수장들의 설비들을 전면적으로 보수정비보강하는 공사를 진행하였다.

이해따라 날씨는 몹시도 변덕스러웠다. 6월초 어느날 밤에는 때아닌 우박이 내렸는데 어찌나 컸던지 아빠트유리창까지 깨버렸다. 이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우박이 왕밤알만 하다고도 했고 닭알만 하다고도 하였다.

7,8월장마가 시작되기도 전인 6월초에 《우박세례》를 받았으니 안주사람들의 걱정은 여간 아니였다. 청천강물이 범람하여 물이 제방뚝을 넘으면 시소재지는 물론 송도리와 룡연동, 남칠리, 원풍리 등 많은 농장의 옥토가 삽시에 물에 잠길수도 있었다.

책임일군은 잠자리에 누웠어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제방공사에는 시안의 로동자들과 농장원, 사무원들은 물론 군인들과 학생들까지 총동원되였다. 온 시가 떨쳐나 밤을 새우며 큰물피해막이전투를 벌려 8월초까지 계획했던 공사를 완전히 끝내였다.

공사를 끝낸지 며칠 안되던 8월 중순 어느날 갑자기 전국적으로 력사에 없는 대홍수가 들이닥쳤다. 40년전 그때보다 훨씬 더 큰 파국적인 홍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배수양수장들의 보수정비가 끝난 때여서 양수기들을 만가동으로 돌려 고이는 족족 물을 청천강으로 퍼넘기였다.

허나 이해의 홍수는 한두시간사이에 100미리가 넘는 폭우가 잠시도 끊치지 않고 며칠동안 련이어 쏟아져내리는 너무도 혹심한 큰물이여서 아무리 양수기들이 퍼내고 퍼내여도 미처 그 많은 물을 다  퍼낼수가 없었다. 게다가 바다에서 밀물까지 올리밀어 청천강의 물은 눈에 띄게 갑자기 높아졌다.

이때 뚝 저쪽에서 《물이 넘는다!―》하는 웨침소리가 울리였다. 사람들이 그쪽으로 우르르 달려가는데 이번엔 또 반대쪽에서 《물곬이 터졌다!―》 하는 새된 고함소리가 났다. 쏟아지는 비에 물참봉이 된 사람들은 어쩔줄 몰라 갈팡질팡하면서 폭우속을 뚫고 이쪽저쪽으로 헤덤비며 뛰여다녔다.

뚝을 넘기 시작한 강물은 송도리, 남칠리, 원풍리를 비롯한 일부 농장의 논밭들을 침습하였다.

사람들은 너무도 안타까와 하늘을 원망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바로 이때였다.

백상루의 하늘우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눈처럼 흰 수십마리의 백로들이 비발속을 뚫고 원을 그리며 날아돌았다.

《백로다!― 흰새들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소리지르자 사람들은 백상루의 하늘우를 날아예는 백로들을 바라보았다.

백로들은 《과아!― 과아!―》 하고 서로 찾고부르며 하늘우를 열바퀴도 넘게 날아돌다가 운학리와 남칠리쪽으로 방향을 잡더니 검은구름속으로 이내 자취를 감추고말았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검은구름이 갈라지면서 그사이로 푸른빛이 새여나왔다. 비발은 점점 가늘어지기 시작하였다. 때때로 심술궂은 검은구름이 기승스레 비를 뿌려대긴 하였으나 그것은 신병에 시달린 로인의 맥없는 기침처럼 한두번의 우뢰를 터치고는 사라지군 했다. 이어 올리밀던 바다물도 쫓겨가듯 서둘러 밀려나가는것이였다.

청천강의 물은 순간에 낮아지고 배수양수장마다에서 동음이 우렁차게 울리였다. 고인물은 눈깜짝할 사이에 다 빠지고말았다.

사람들은 《야!―》 하고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백로들이 갑자기 나타났댔을가?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만 하였다.

장마가 끝난 다음 큰물피해형편을 알아보기 위해 중앙에서 조사단이 안주시에 내려왔다.

시내 여러곳의 피해정형을 알아본 그들은 뜻밖의 사실에 놀라 의아해하였다.

안주시는 청천강을 끼고있고 지대가 퍼그나 낮아 큰물피해를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받기가 십상이였다. 그것도 이번 장마는 엄청나게 큰것이여서 피해가 많을것은 자명한 일인데 생각보다 피해가 너무도 적으니 놀라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이해에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던지 오죽하였으면 《삼복철강행군》을 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 들리셨을 때 자신께서는 길을 따라 온것이 아니라 물을 헤쳐온것 같다고 하셨겠는가.

사실 안주시소재지만 보더라도 그리 크지 않은 비가 내려도 시내의 도로에 물이 넘쳐나서 며칠씩 차들이 다니지 못하군 하였는데 이해에는 한번도 물에 잠긴적이 없었다고 하니 선뜻 믿을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들은 조사과정에 이 고장 사람들에게서 백상루에 나타난 백로의 조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어느 정도 리해하기는 하였으나 이런 전설같은 사연을 조사보고서에 그대로 쓸수가 없어 몹시 전전긍긍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죄다 사실일진대 어찌하겠는가.

책임일군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수령님은 하늘이 낸분이 분명하십니다. 하늘이 낸분이시여서 천조인 백로를 보내여 큰물피해방지대책을 미리 세우도록 해주시였습니다. 금수산기념궁전에 계시는 우리 수령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래일도 영원히 우리들을 보살펴주고계십니다.》

수령님께서 꿈에 나타나 하신 말씀은 그대로 하늘의 계시였다.

지금 안주사람들은 우리 수령님대, 장군님대에 와서 지난날 량반들과 부자들의 놀음장소로 되여있던 백상루가 말그대로 백가지 복을 안겨주는 루대로 되였다고 말하고있다.

지난날 기껏해서 우리 나라와 외국의 사신들이 오갈 때마다 역참이 있어 여기에 들려 쉬면서 오르군 하였다는 백상루, 선조왕이 임진왜란시기 의주로 파천할 때 들리였다는 백상루는 상서로움을 준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더없이 힘겨운 부담을 주었고 참기 어려운 고역을 안겨주었다.

그러니 백상루가 백가지 좋은 일만 가져다주는 루대라는것은 한갖 꿈이요 백성들의 소원이고 념원일뿐이였다.

오직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속에 안주시가 나날이 번성하니 오늘에야 비로소 백상루는 백가지만이 아니라 천가지, 만가지의 온갖 기쁨을 주는 루대로 되여 이름그대로 참뜻을 찾게 된것이다.

백상루에 나타난 흰새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그대로가 전설이 되여 지금 우리 인민들속에서 날을 따라 널리 전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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