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9(2020)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3호구

변 일 문

(제 2 회)

2

 

나의 박사론문 《새 계렬의 온도변색재료에 대한 연구》는 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모교의 권위있는 첨단과학기술연구소에서는 내가 박사원을 졸업하자마자 그리 크지는 않으나 높다란 금빛현관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날 나의 앞가슴은 갖가지 아름다운 꽃송이들로 꽃바구니가 되였다.

소장동지가 내 잔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색시를 얻을 때까지 기숙사에 있으라구. 집이 아직 안된것두 있지만. 내가 소개를 해줄가?》

격식이란 꼬물만큼도 없는 그 말에선 진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에 대한 연구소의 기대와 믿음도 헤아려졌다. 나는 그날 밤 한잠도 자지 못했다.

딱 한번만이라도 평양에 가보고싶어 몸살을 앓던 지방도시의 철부지는 오늘 수도시민이 되였다. 차표가 뭔지도 모르던 소년이 박사가 된것이다.

기숙사생활기간에 쓰고산 모든것, 옷장이며 원탁이며 텔레비죤 등 모든것이 새롭게 보여왔다. 창밖을 내다보면 이날까지 내가 걸어온 그 모든 길들이 마치 지도처럼 축소되여 한눈에 보일것만 같았다.

나의 오늘에 무시할수 없는 방조와 도움과 채찍을 내려준 선생님들, 전우들, 부모님들과 학우들이 손저어 반기며 어서 오라 불러줄것만 같다.

밤하늘을 불태우는 고층건물의 휘황한 무지개불빛은 나의 앞날에서 비쳐오는 찬란한 후광이 아닌가. …

그러나 새로운 성공은 새로운 난관을 불러온다. 나는 멋스럽기도 하고 겸손하기도 한 이 말을 언젠가 수첩장에 옮겨베끼면서도 그의 참의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진 못했었다.

…다음날 나는 소장동지에게 다음번 연구목표에 대하여 말하였다.

《생물모방기술에 의한 초소수성표면화》라는 나의 새 연구목표의 종자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련꽃잎면을 확률높은 특수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구조가 마치 무수한 가시선인장들이 가로세로 질서있게 배렬된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선인장》의 넙적한 몸통은 마이크로구조요 그 《가시》는 나노구조이다. 합쳐지면 나노-마이크로결합구조이다. 물은 바로 이 《가시》들사이에 차있는 공기분자의 작용으로 퍼지지 못하고 방울지며 기울어진 쪽으로 굴러가면서 겉면에 쌓여있던 모든 오물을 걷어가버린다.

이것을 산업화한다면 각이한 형태와 용도의 반도체소자들과 집적소자들의 질제고를 실현할수 있으며 그 수명을 몇배로 늘이고 각종 전자제품의 안정성과 정밀성을 개선하며 매우 특수한 효과도 얻을수 있었다.

그런데 소장동지는 나의 열정에 찬 설명(그것은 다소 웅변적인 색채를 띠고있었음.)을 듣고도 왜서인지 눈을 꾹 내려감은채 뜨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열을 올리다가 그만 실망해버렸다. 조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는지 꾹 내려감긴 그의 눈은 언제건 그렇게 감겨만 있을상싶었다. 나는 제풀에 흥분이 사그라지고말았다. 다음에는 은근한 모욕감을 느꼈고 그러자 까닭모를 불안이 찾아들었다. 생물모방기술과 나노과학을 배합해야 하는 나의 연구는 조건보장을 위한 각종 첨단기재와 적지 않은 자금을 전제로 하고있었다.내가 실정을 모르고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것인가? 한참후에야 소장은 감았던 눈을 뜨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 따라오시오.》

나는 영문을 모르고 소장동지를 따라갔다. 그는 나를 국가망열람실로 이끌었다. 콤퓨터앞에 마주앉은 그는 망상에서 《남산》홈페지를 펼치고 거기서 《국내학위 및 학술론문》 항목을 펼쳤다. 《201×년》을 선택한 그는 하나의 전자화일을 펼치더니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보오. 이틀전에 석사학위를 받은 론문이요.》

론문의 제목을 읽고나서야 나는 소장이 눈을 감아버린 리유를 알아차렸다.

《생체모방형 초소수성》!

(이게 뭐야?!)

론문에서는 나노-마이크로결합구조형성의 플라즈마법, 화염방사법, 도금법 등 다섯가지 방법과 그 기술적특성이 상세하게 서술되여있었다. 또한 일반독자들과 애호가들의 리해를 도모하기 위해 자연계의 여러가지 초소수성재료들에 대해서도 실례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있지 않는가. 소장동지의 손은 다름아닌 나에게로 향한것이였다. 더욱 놀란것은 마지막에 올라있는 《최림송》이라는 론문집필자의 이름이였다.

나는 눈앞이 아찔해지며 맥이 탁 풀렸다. 자부심이 높았던만큼 좌절감도 이만저만 아니였다. 뛰던 사람이 나는 사람을 발견한 심정이였다. …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심과 긍지가 모래에 부은 물처럼 발밑으로 잦아버렸다. 내가 박사의 명예를 보다 빛내줄수 있는 하나의 도약대로 생각했던 연구과제가 친구에게는 석사론문이였다는것이 나의 량심에 둔중하고도 예리한 충격을 가했다. 림송은 항상 나보다 반박자가 빨랐다.

날자는 살같이 흘렀다. 그러나 나에게 가해진 그 충격이 어찌나 심대한것이였던지 나는 새 연구과제를 잡을 엄두조차 못내고 공연히 연구소와 기숙사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며 무의미한 출퇴근만 거듭했다. 사람들의 눈빛에서 나는 동정비슷한 실망을 읽었다.

어느날 누군가로부터 소장동지가 찾는다는 련락을 받은 나는 마음속준비를 갖추었다.

나는 심호흡을 길게 하고 방을 나섰다.

…의외로 소장동지의 얼굴은 밝았다.

《동무에게 새 집이 배정되였소.》

《예?!》

소장의 손에는 살림집리용허가증이 들려있었다. 나는 책상우에 놓인 큼직한 새 열쇠뭉치도 보았다. 갑자기 화끈 단 쇠망치같은것이 가슴에서 머리를 향해 쭉 올려뻗쳤다. 코끝이 쩌릿해났다.

나는 묵묵히 서있었다. 나에 대한 비판은 욕이 아니라 사랑이였다. 그런데 나는 그런 비판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전 자격이 없습니다.》

소장은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자기로서도 이 시각에 웃음이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어쩌면 그것이 나에게 모욕으로 감수될수도 있다는것을 의식했는지 인차 미간을 찌프렸다.

《동문 자격이 있소. 그리구 동무의 량심에도 꺼리지 않게 해주겠소.》

그는 책상서랍을 열더니 거기서 몇장의 종이를 꺼내 내쪽으로 내밀었다.

《읽소.》

나는 종이묶음을 받았다. 그것은 어느 건설사업소의 지배인을 하는 소장동지의 친구로부터 온 편지였는데 《겨울에도 지장없이 건설을 할수 있게 하는 그런 첨가제가 없는가. 계절의 영향을 세게 받는 건설장에서 제일 난문제가 바로 이건데 자네는 큰 대학연구소의 소장으로서 응당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한절반 훈시투의 어찌보면 우습기도 한 편지였다.

《난 그 편지를 보구 상당한 충격을 받았소. 그래 좀 생각해봤는데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닐것 같소. 동무가 이걸 종자루 한번 연구해보지 않겠소?》

(그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확실히 난도급의 연구과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경제적효과성은 상당히 클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기 힘들었다. 사실 이쯤한 연구과제라면 재학중에 있는 대학생에겐 좀 베찰지 모르나 박사원과정안을 흔치 않게 마친 나에게는 그리 힘든 문제가 아니였다. 이 분야에서는 이미 이룩한 성과도 많다.

하지만 나는 거절하고싶었다.

(왜?)

석사쯤이라도 모르겠다. 나는 박사였다. 박사는 박사다와야 하지 않을가?

대학기간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박사원기간에는 첨단급의 연구과제인 새 계렬의 온도변색재료(주위온도에 따라 색갈이 가역적으로 변하는 색감재료)를 연구하여 박사가 된 내가 아닌가.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박사가 되자마자 편안하고 손쉬운 일거리를 맡아 현상유지나 한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중에는 대학때나 박사원때는 노력하다가 졸업하여 어느 정도 학위를 받으면 제자리에서 발전없이 답보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는것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자기밖에 모르는 배은망덕하고 경멸스러운 존재이다. 사람들이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지 않을가? 그러나 한편으론 딱히 맡은 연구과제도 없이 앉아뭉개면서 철부지 밥타발하듯 과제타발을 한다는게 주제넘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껏 부탁하는 소장동지에게도 미안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소장동지의 지꿎은 시선을 느끼며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편지를 제게 주십시오.》

소장동지는 편지만이 아니라 허가증과 열쇠뭉치까지 함께 넘겨주었다.

대중할수 없는 표정이 소장의 얼굴에 비껴있었다.

나는 그길로 재료학과학생인 석진을 찾아갔다. 그는 나의 군사복무시절 전우였다. 그에게 나는 소장동지에게서 받은 편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얼굴에 감출수 없는 흥분의 열파가 일기 시작하는것을 온몸으로 의식하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석사론문감이 될거네. 아무때건 도움이  필요하면 날 찾게. 내 힘자라는껏 도와주지. 내 손전화번호는 알겠지?》

《그야 물론. 고맙네. 저녁에 우리 집에 가서 식사하지.》

그의 집은 강안동이였다.

그날 밤 늦어서 나는 호실로 돌아왔다. 소장동지와 석진이사이에서 그만하면 편안하게 일처리를 했지만 마음은 하나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명백한것은 전문연구기관의 연구사가 재학중의 대학생도 해낼수 있는(물론 쉽지는 않을테지만) 연구과제를 맡는다면 1중학교부터 박사원까지(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중 절반임.) 수재교육, 련속교육을 준 조국앞에 얼굴을 들수 없다는것이였다. 소장동지가 이것을 모른단 말인가. 알면서도 떠본것일가? 순간 나는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서 모순을 발견하였다. 혼합물첨가제를 량심때문에 못하겠다면 박사로서 내가 해야 할 량심에 걸맞는 연구과제란 과연 무엇인가.

물론 첨단과제이다. 그러나 너는…

벌써 두달째나 연구소에서 공밥을 먹고있지 않는가. 실천이 따라서지 못하는 진리만큼 불쌍한 진리는 없다. 아니, 진리를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만큼 나약한 인간은 없다고 해야 정확할것이다. 진리가 실천으로 증명되자면 그 과정에 어차피 제기되는 그 모든 객관적인 난관들과 주관적인 동요들을 이겨낼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강한 정신력과 고도의 과학기술지식이 결합된 실력이다. 온도변색재료는 결국 나의 실력의 한계점이였다. 나는 이때처럼 자신이 나약해보이고 무능해보이기는 처음이였다. 그런데 나는 다름아닌 박사가 아닌가.

나의 행동은 각이한 사람들속에서 각이한  반응을 일으켰다.

《학성동무가 혼합물연구과제를 석진이라는 동무에게 주었다누만. 전우라던지.》

《흠. 잘 나는 사람한테야 기는 재간이 필요없지.》

《하긴 박사야 큰걸 연구해야지 뭐.》

나는 기가 막혔다. 그들은 정말 나를 잘 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가? 아니였다. 사람들은 나의 고민을 일종의 교만성으로 보고있는것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부정할만 한 현실적인 론거가 나에겐 없었다. 혹시 내가 사람들이 말하듯 정말로 교만해진건 아닌지.

번민은 더더욱 깊어만 갔다. 날자도 갔다. 이사도 했다.

8년동안 이렇게 생기고 저렇게 구해서 나도 놀랄만치 불어난 사품트렁크들과 침구류들을 배정받은 새 집으로 옮긴 그날 저녁 나는 비록 혼자였지만 소박하나 지성담아 주문해온 음식들로 집들이를 했다.

연구소사람들이 모두 돌아갔을 때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시간에 걸치는 나의 고민과 방황을 속속들이 들어준 아버지의 대답은 이러했다.

《새로운 성공은 보다 새로운 시련을 낳는다. 하지만 무조건 이겨내야 할 시련이다. 소도 언덕이 있으면 힘낸다고 하지 않니. 이겨만 내면 좀더 큰사람이 될게다.》

《아버지!》

《며칠내로 내가 한번 올라가마. 참 이달말에 림송이가 결혼식을 한다더라.》

《그래요?!》

반가운 소식이다. 어느새 벌써 우리 나이가 그렇게 되였는가.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자는지 안다. 신비로운 가정의 세계…

《알겠어요. 아버지, 림송이에게 내 인사를 전해줘요. 이젠 시간도 퍼그나 갔는데 쉬세요.》하고 나는 전화를 놓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목소리는 계속 지릉지릉 울리는듯 했다. 림송의 훤칠한 모습도 떠올랐다. 고향 신의주가 못 견디게 그리워났다. 림송이와 함께 망둥어낚시질에 여념이 없던 압록강수로뚝이며 《습격》의 쾌감이 사과맛보다 더 좋았던 교외과수농장의 키낮은사과나무밭도 보여온다.

나는 알았다, 이밤 나처럼 아버지 역시 잠들지 못하리라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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