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0(2021)년 제6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나는 나팔소리를 듣는다
곽금철
(제 3 회)
3
따따- 따따-
다음 날 아침 나팔소리가 울렸다. 남자들이 부는것처럼 박력이 느껴졌다.
늦잠꾸러기이던 총일이도 나팔소리를 듣고 일찍 깨여났다.
아침부터 소대가 흥성이기 시작했다.
송향의 나팔소리에 뛰여나온 대원들이 사과나무에 배가 달린것만큼이나 희한해하였다.
나는 병실마당에 서있는 송향에게로 다가갔다.
《좋구만!》
이렇게 말하며 그의 손에 들려진 나팔을 보니 얼굴이 비쳐질 정도로 알른알른했다.
송향이가 살풋이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그에게 소대의 일과표가 씌여진 종이를 주고 돌아섰다.
총일이는 작업나팔소리가 나기 바쁘게 소대와 함께 세멘트를 부리는 작업장에 달려갔다.
송향이와 함께 걸으며 무엇인가 열성스레 설명하는품이 총일이가 구대원행세를 하기 위해 몹시도 애를 쓰는 모양이였다.
소대의 작업장은 세멘트를 실은 화차방통들이 있는 곳이였다.
경사가 25도정도인 작업장은 열흘전에 철길을 더 늘여 만든 곳인데 차도 사람도 한번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작업장에 이르니 재빠른 대원들이 화차문을 제끼고 세멘트를 부리우고있었다.
나도 지워주고 받아주며 대원들과 함께 일하였다.
얼핏 눈길을 돌려보니 송향이가 소대의 작업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더니 우리가 일하는 화차로 올라왔다.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동문 올라오지 말고 그곳에서 마대개수나 세오.》
그러나 송향은 총일이의 도움을 받으면서 끝내 올라왔다.
송향은 말없이 세멘트마대를 지워주고 자기가 나르기도 하였다.
한동안 작업을 하고 좀 쉬는데 송향이가 내곁으로 다가왔다.
《소대장동지, 눈이나 비가 올 때는 어떻게 일합니까?》
《다 대책이 있소. 눈비가 올 때에는 화차방통 네귀에 각자를 박고 그우에 비닐박막을 씌우군 하오.》
내 말을 듣고난 송향은 천천히 고개만 끄덕이였다.
《이렇게 하루종일 일하고나면 힘들겠습니다.》
《우린 땀을 아끼지 않소.》
나의 대답이 좀 퉁명스럽게 들렸는지 송향은 더 다른 말이 없었다.
다음날이였다.
따따따- 경쾌한 모임나팔소리를 울린 송향이가 작업장에 먼저 와있었다.
그는 작업장을 눈여겨보기도 하고 경사가 급한 산중턱의 밑을 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는 이마에 손채양을 하고 저 멀리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였다.
(집이 그리운게지.)
이런 생각속에 나도 하늘을 바라보니 먹장구름이 밀려오고있었다.
작업을 시작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미 예견했던 나는 서둘지 않고 분대장들에게 지시했다.
《1분대장, 빨리 박막! 2분대는 각자를 세우시오.》
그날 작업을 끝낸 시간은 22시였다.
《소대 철수!》
일은 이때 터졌다. 화차에서 내려오던 총일이가 《앗, 내 안경!》 하고 소리쳤다. 전등이 없는 반대켠에서 떨구다보니 안경이 보이지 않았다.
대원들이 동원되여서야 안경을 찾았다. 그런데 높은 곳에서 떨구다나니 안경알 하나가 깨졌다. 나는 울상이 된 총일을 그러안고 달래듯 말했다.
《내가 새 안경을 구해주마. 어서 내려가자.》
이 모든 광경을 송향이가 지켜보았다. 소대에 온지 삼일째 되는 날 아침 그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나를 찾아왔다.
《소대장동지, 제가 생각한것이 있는데 함께 토론을 했으면 합니다.》
그의 말은 작업장을 새로 꾸리자는것이였다.
철길밑 산중턱을 깎고 10메터정도너비로 량옆에 말뚝을 세우고 그우에 방수포를 씌우자고 했다. 그런 다음 그밑에 차가 들어올수 있게 하자는것이였다. 그러면 화차와 자동차와의 높낮이가 생기는데 그걸 리용하여 수채구멍원리로 세멘트를 헐하게 부릴수 있다는것 그리고 송풍기를 작업장 한쪽면에 설치하자고 하였다. 그렇게 되면 대원들이 마스크가 없이도 일을 하고 어깨받치개들이 더는 필요없게 된다고 하였다.
혁신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였다.
열정적으로 손세까지 써가는 그를 보는 순간 나는 부끄러웠다. 소대에 온지 며칠밖에 안된 처녀가 생각해내는것을 나는 왜 생각하지 못했는가 하는 자책에서였다.
철판이며 방수포 등 자재도 소대에 있는것을 리용하고 다른 소대들과 련계하면 얼마든지 보장할수 있다. 송풍기는 대대에 쓰지 않고 건사해둔것이 있었다. 우리 소대힘으로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것이 실현되면 소대실적도 몇배로 올라갈것이다.
《좋소, 당장 하기요!》
분대장들에게 토의를 붙였더니 모두가 쌍수를 들었다.
온 소대가 떨쳐나섰다. 그날 밤부터 홰불이 타오르고 산중턱 경사면에 말뚝들이 세워졌다.
한밤중에도 성수가 나서 일손을 다그쳤다.
《우리 소대장동지의 궁냥이 깊거던.》
대원들속에서 들려오는 말에 나는 허거프게 웃었다.
다들 이 창안은 내가 한것으로 알고있었던것이다.
(난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가? 그것도 소대장이라는게…)
송향은 보기와는 다른 처녀였다. 대대장이 열명, 스무명을 대신할수 있다던 말이 거짓말이 아니였다는 생각이 서서히 갈마들었다.
나는 대대장에게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어느날 병실에 누워있는 총일이에게 눈약을 넣어주고 나와보니 23시였다. 대원들속에서 송향이를 찾으니 그가 없었다. 분대장의 말이 송풍기를 가져오는 문제때문에 방금 갔다고 한다.
처녀가 일하는품이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송향이가 송풍기를 싣고왔다.
《소대장동지, 송풍기를 가져왔습니다.》
《수고했소, 정말 수고했소.》
적재함에 실은 송풍기를 흐뭇한 심정으로 보고 돌아서느라니 송향이가 입을 가리며 혼자 웃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인데 그러오?》
송향은 이내 손을 내리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소대장동지에게서 수고했다는 말을 처음 듣습니다.》
그 말에 나도 《허허.》 하고 웃었다.
《저, 소대장동지.》
《왜 그러오?》
나의 눈에서는 시종 기쁨이 늠실거렸다.
《시내에 좀 갔다오면 안되겠습니까?》
《무슨 일루?》
잠시 고개를 숙이던 그는 이내 눈길을 들었다.
《볼일이 있어서… 빨리 돌아서겠습니다.》
한동안 생각해보고나서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오.》
이럴 때 손전화기의 신호음이 울렸다.
소대후방물자를 타러 오라는 후방참모의 전화였다.
나는 후방물자를 타러 대대부로 갔던 길에 총일이의 안경을 구하려고 온 읍지구를 참빗 훑듯이 했다. 허나 강한 근시에 란시까지 겹친 총일이의 눈에 맞는 안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안경이 없어 눈을 끔벅거리며 나를 기다리고있을 총일이를 그려보니 온몸의 힘이 쑥 뽑히워 달아나는것 같았다.
며칠간의 낮과 밤작업을 벌려 우리는 작업장을 멋지게 전변시켰다.
아무리 눈비가 와도 끄떡없고 화차방통을 열고 쑥쑥 밀기만 하면 철통구멍을 통해 세멘트가 화물차로 적재되였다. 송풍기까지 설치해놓았을 때 대원들은 환성을 올렸다.
먼지가 없는 작업장, 활기띤 대원들의 청신한 모습… 대대장이 와서 나의 등을 두드렸다.
《괜찮아, 아주 멋있어!》
그리고는 작업장을 돌아보다가 나에게 돌아서며 나직이 물었다.
《새로 온 처녀가 어때?》
나는 사기가 나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악도 하지만 아는것이 많은 동무입니다. 이번에 작업장을 새로 꾸리자고 한것도 그 동무가 발기한것입니다.》
대대장은 만족한 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잘해보라구.》
송향은 다음날 점심무렵에야 소대에 왔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난 그는 잠시후에 작업장으로 나갔다.
내가 작업장에 이르니 뜻밖에도 총일이가 나와있었다. 어디서 났는지 새 안경을 끼고 다른 대원들과 웃고 떠들면서 작업을 하는 그를 나는 막 달려가 붙잡았다. 다짜고짜로 그에게 물어보니 송향이가 새 안경을 주었다는것이다.
《송향이가?》
저도모르게 눈섭이 솟구쳤다.
송풍기의 동작상태를 보고있는 송향이를 보는 나의 귀전에는 운수대대의 동갑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안돼! 운전칸엔 후방물자가 꽉 찼지, 적재함엔 온통 세멘트지 어데 탈자리가 있소?》
그래도 송향은 지꿎게 달라붙었다고 한다.
《적재함에 타겠어요.》
《적재함엘? 흥, 아마 시내에 도착하면 온몸이 세멘트가루가 될걸!》
《어쨌든 좋아요, 만약 그래도 안 태워주겠다면 다신 우리 소대에 나타날 생각말아요. 설사 나타나도 맨 마지막에 실어주겠어요. 우리 소대장동진 내 말이라면 꼼짝못하니 잘 생각해보세요.》
단수있게 위협까지 해대는 송향의 기세에 운전사는 두손을 들었다.
(내가 자기 말에 꼼짝못한다! 허참.)
생각해보면 우스운일이지만 처녀의 진정에 머리가 숙어졌다.
송향은 이렇게 총일이의 새 안경을 얻으러 시내에까지 갔다왔던것이다.
오늘은 려단적으로 진행된 소대별사회주의 경쟁총화에서도 우리 소대가 단연 1등을 했다는 가슴벅찬 소식이 대대장에게서 날아왔다.
작업을 하면서도 송향이를 마주보면 절로 마음이 흥겨워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