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1(2022)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량심
강경애
(제 1 회)
제1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나는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학과경연을 몇달 앞둔 어느날 분과실에 홀로 앉아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고있었다.
리혁범… 이름우에 그의 갸름한 얼굴이 겹쳐진다.
전과목 최우등생이며 조직생활에서도 모범이고 품행도 단정한 우리 학급의 학급반장이다. 혁범의 얼굴뒤로 다른 또 하나의 얼굴이 보인다.
자식에 대한 관심도 높고 학교사업에도 열성인 그의 어머니다.
혁범의 성장과 모든 면에서 학교적인 본보기로 되고있는 학급의 사업을 그의 어머니의 적극적인 후원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수향선생, 물리시험채점을 하나?》
사무실들을 돌아보던 교장선생님이였다. 거쿨진 몸을 숙이며 시험지를 내려다본 그는 혈색좋은 얼굴에 웃음을 담으며 말하였다.
《혁범이가 또 10점이구만. 이번에도 1등이겠는걸. 선생네 학급장이 그만하면 괜찮아. 공부도 잘하고 부모도 학교에 열성이 높고…》
《그렇지 않아도 혁범의 학습정형을 알아보려고 어머니가 또 왔었습니다.》
《혁범이 어머니야 그저 우리 선생님, 우리 선생님 하지. 선생이 학급관리도 그래, 학부형들과의 사업도 잘하니 학교사업에 큰 도움이 되오.》
《아이참, 저야 뭘.》
《그래도 선생이 수고했지. 거 선생이 맡은 물리학과경연대상자는 물론 혁범이겠지?》
《글쎄… 혁범이가 시험성적은 제일 높은데 문제풀이를 하는걸 보면 응용능력이 약합니다. 응용능력이 좀 높았으면 좋겠는데…》
《어찌겠소, 혁범이도 그렇고 그의 어머니를 봐서라도… 선생이 도와야지.》
참말 그랬다. 교장선생님은 나갔지만 그의 마지막말은 여운을 가지고 뇌리를 파고들며 언제인가 있었던 일을 눈앞에 펼쳐놓았다.
×
저녁이였다.
다음날 교수경연준비때문에 학생들의 과외학습지도를 서둘러 마친 나는 분과실에 들어와 거울앞에 마주섰다.
(래일 도안의 숱한 교원들앞에 나선다. 내가 과연 잘할수 있을가?)
새세기의 요구에 맞는 실리있고 우월한 새 교수방법창조의 열풍속에서 현대적인 다매체제작기술과 가상, 증강현실기술을 도입한 나의 교수방법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여 도에서 진행하는 교수경연에 출연하게 된것이다.
거울에 비쳐진 나의 모습은 다시 해빛밝은 교실에서 학생들과 교감하며 정열적으로 수업하는 모습으로 바뀌여 안겨왔다.
(오늘 저녁 준비를 더 완벽하게 하여 래일 정말 잘해볼테야.)
이렇게 마음다지며 나는 콤퓨터에 마주앉았다.
다매체편집물조작과 함께 교수흐름을 맞추어보면서 미흡한점을 찾느라 시간가는줄 몰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손전화기호출음이 방안의 정적을 깨치며 울리였다.
《전화받습니다. 아니, 혁범이 어머니가 어떻게?》
《지금 어데 계십니까? 혁범이한테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데 이제 백화점앞에서 만날수 없습니까? 기다리겠습니다.》
혁범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걸가, 전화로 말 못할 딱한 사정인가.
백화점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곳에 있었다.
착잡한 생각을 누르며 나는 학교를 나섰다.
백화점앞에서 손전화기로 신호하니 기다렸다는듯 물결모양의 짧은 파도머리에 약간 풍만할사한 몸매에 어울리는 자주빛 양복차림의 혁범이 어머니가 정열적인 빠른 걸음으로 오고있었다.
《무슨 일이예요?》
혁범이 어머니는 피복공장의 부원으로서 늘 바삐 다니였다.
《우리 공장제품이 여기에서도 판매되거던요. 판매정형을 료해하러 나왔던 길에… 선생님, 혁범이에겐 아무일도 없으니 마음놓고 저와 함께 갈데가 있어요.》
내가 영문도 모르고 혁범이 어머니에게 이끌려간곳은 백화점의 옷매대였다.
《선생님, 저 옷이 어떻습니까? 내 보기엔 저 옷이 품위도 있고 또 색갈도 선생님에게 잘 어울리는듯한데…》
판매원과 이미 약속해놨는지 그는 진렬대의 제일 웃쪽에 있는 연록색의 봄가을양복을 내리우며 다짜고짜 입어보란다.
《아니, 이건…》
의아해하는 나의 귀전에 《선생님은 입어만 보면 됩니다.》 하고 낮고 빠른 말씨로 속삭이는 혁범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건 어찌겠다는건가.
나는 당황해졌다. 사람들의 눈길이 많은 백화점에서 영문모르게 남의 손에 이끌려 옷을 입어보아서인지 몸자세가 부자연스러웠다.
《아이, 이 손님은 용모도 몸매도 꼭 표준인데 왜 어색해할가. 긴장을 풀고 옷매무시를 보세요.》
판매원이 상냥하게 말하며 새옷을 입은 나를 거울앞으로 이끌었다.
《참 잘 어울리는군요. 판매원동무, 포장해주세요.》
《또 오십시오.》
판매원의 인사와 눈길을 뒤에 남기고 나는 혁범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백화점을 나섰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선생님, 미안합니다. 제가 거짓말을 해서.》
혁범이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옷을 안겨주는것이였다.
《혁범이 어머니, 이러면 오히려 제가…》
내 말이 끝나기도전에 그는 얼굴에 온화한 빛을 띄우며 말을 이었다.
《어제 혁범이가 선생님이 교수경연에 참가하게 된다고 자랑하더군요. 선생님은 우리 애들의 얼굴이나 같은데… 제일 좋은 옷을 입혀 내세우고싶어서 이렇게… 제가 애를 맡겨놓고 선생님에 대한 관심이 적었습니다.》
오히려 미안해하는 혁범이 어머니를 보니 참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도 교육자이기전에 녀성이다. 한가정의 주부이고 자식을 가진 어머니이다. 학교일로 바삐 지내다가 집에 돌아오게 되면 가정생활로 다망하고 그로부터 생기는 고충도 있다. 그때마다 나를 리해해주고 이렇게 도와주는 혁범이 어머니였다.
《선생님이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있어야 우리 아이들의 눈빛이 밝아지고 선생님의 얼굴에 그늘이 지면 아이들의 마음도 어두워질겁니다.》
정말 고마왔다. 이런 학부형들의 마음을 안고 학생들을 나라의 훌륭한 인재로 키우는 사업에 지혜와 정열을 아낌없이 바치리라.
참으로 그는 자식에게 관심이 높은 훌륭한 어머니였으며 학교와 선생의 사업을 적극 뒤받침해준 학부형이였다. 그래서 학급의 많은 학생들을 이끌어나가면서도 자연히 혁범이에게 왼심을 기울이였고 혁범이도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기대에 맞추어 앞자리에서 공부를 잘해나갔던것이다. …
추억의 갈피를 서둘러 접으며 나는 다른 시험지들에 대한 채점을 계속해나갔다.
시험지내용을 잽싸게 내리훑으며 박력있게 점수를 매기던 나의 시선이 어느 한 시험지에서 멎어섰다.
문제풀이방식이 내가 배워준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것이였기때문이다.
무척 고심한듯 시험지는 란잡하였고 정답이 나오지 않은 문제들도 있었지만 독특한 풀이방식의 그 시험지는 해면마냥 나의 온 정신을 빨아들여 눈길은 어느새 시험지의 주인을 더듬어찾았다.
김진성… 크지 않은 키에 말쑥한 얼굴, 곧게 그어진 숱많은 눈섭밑에서 부리부리한 눈이 숫지게 껌벅이는 학생의 단정한 모습이 시험지우에 자리잡는다.
언제 봐야 늘 말이 없고 맡겨진 공부만 수걱수걱 하여 욕할 일도 없고 애태우는 일은 꼬물만큼도 없었다. 수업시간에도 혁범이와 같은 학생들처럼 눈을 반짝이며 교원과 교감하는 형이 아니여서 눈에 잘 띄우지 않았던 평범한 학생이였는데 시험지는 나를 놀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