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1(2022)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량심

강경애

(제 4 회)

 

시원스레 불어오는 강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나는 저녁어스름이 깃드는 강변을 따라 걷고있었다.

진성의 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가 며칠째 소조공부에 빠졌던것이다.

어머니가 앓는다며 공부가 끝나면 일찌기 가군 했던것이다.

교장선생도 혁범의 경연준비에 전심하라고 하였는데 차라리 잘되지 않았을가. 아니, 그를 경연에 내세우지 못하는것만도 마음에 걸리는데 하루라도 놓치지 말고 더 공부시켜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진성이 어머니의 병상태도 알아보고 공부시킬 대책도 의논하려고 늦은 퇴근길이지만 과일과 음료가 든 구럭을 들고 길을 떠났다.

진성의 집은 그의 아버지가 작업반장으로 일하고있는 공장으로부터 멀지 않은 종업원살림집구역에 있었다.

줄당콩넌출에 둘러싸인 아담한 진성의 집 대문가에서 주인을 찾으니 소학교 2학년에 다니는 녀동생이 나왔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또랑또랑 울리는 목소리였다.

《어머니 계시니?》

《어머닌 아버지네 공장에 지원나갔습니다.》

《뭐?!》

(그림 진성이가 내게 거짓말을 했단말인가? !)

《오빠는?》

《어머니랑 같이 갔습니다. 국수랑 떡이랑 짐이 많아서 함께 갔습니다.》

쌍까풀이 곱게 진 녀동생의 손에 이끌려 방안에 들어가앉은 나는 깜찍하게 생긴 붕어처럼 입을 오물거리는 그애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정형편을 알수 있었다.

아버지가 공장에서 기술혁신을 했다는것, 그래서 현장에서 살다싶이하기때문에 어머니가 후방사업도 하고 일손도 도와주려 자주 간다는것, 오빠도 오늘처럼 짐이 많을 때엔 함께 가서 도와준다는것 …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번쩍거리는 가구도, 값나가는 재산도 없는 소박하고 수수한 집안이였지만 공장의 기술혁신을 위해 온 가족이 떨쳐나서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치는, 가사보다 국사를 더 귀중히 여기는 애국의 마음이 안겨와 돋보이는 집이였다.

《선생님, 여긴 울오빠가 공부하는 방입니다.》 진성의 동생이 나를 웃방으로 잡아끌어 오빠의 책상에 앉혀주었다.

책상에는 금방 펼친듯한 책들이 놓여있었다.

나는 문제풀이장을 손에 들었다.

무수한 수자들과 기호들로 가득찬 풀이장…

소조에 나오지 않은 며칠동안에도 진성은 공부를 멈추지 않았던것이다. 그렇다면 진성이가 그간 소조에 나오지 않은것은 집안일을 돕기 위해서인가? 아니, 이처럼 향학열과 탐구심이 강한 진성이가 이쯤한 일로 소조에 안나올리가 없다.

풀이장을 보면 볼수록 독특한 풀이방식의 문제풀이과정들은 내 시선을 잡아당기고 놓아주지 않아 끊임없이 펼쳐가게 하였고 일단 잠재워놓았던 경연에 내세우고싶은 욕망과 그러지 못하는 아쉬움이 안개마냥 마음속을 배회하게 하였다.

(호-)

입술새로 저도모르게 흘러나오는 한숨을 아쉬움과 함께 책갈피에 끼워넣으며 풀이장을 한장한장 펼치는데 뜻밖에도 문제풀이가 아닌 글줄앞에서 나의 눈길은 멎어섰다.

《오늘 소조실로 교장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이 〈이 학생이 진성학생입니다.〉 하고 말하자 〈오, 그래?〉 하며 교장선생님이 나를 찬찬히 보는것이였다.

왜서일가? 교장선생님과 우리 선생님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있었을가?

요즈음 학교에서는 수학, 물리, 화학, 외국어, 속독 등 학과경연에 참가할 동무들이 밤늦게까지 공부하고있다. 그런데 나는 경연참가대상자가 아니다.

나는 교장선생님의 눈빛에서 경연참가자도 아닌 나를 붙들고 시간을 랑비하고있는 우리 선생님에 대한 말없는 질책을 느꼈다.

이제 경연날자까지는 한달남짓한 시간밖에 없다. 선생님이 혁범이에게만 집중하여 학과경연에서 성과를 거둘수 있게 내가 비켜서자. 선생님, 그간 고마웠습니다.》

그가 쓴 글을 다 읽고나니 가슴이 띠끔하였다. 아니, 가슴은 예리한 칼끝에 찔린것처럼 아팠다.

티없이 순진한 학생의 눈빛에 그늘을 준것은 누구인가?

첨단을 향하여 끊임없이 달려야 할 우리의 미래가 그 무슨 도의앞에 구애되여 머뭇거리며 창조의 나래를 접으려 하고있지 않는가. …

나는 누구인가. 학교의 리익을 운운하면서 그 누구의 체면을 위해 진짜실력을 겸비한 학생은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그를 개별적으로 공부시켜주는것으로 교육자적량심을 다한다고 자기를 위안했다.

이 얼마나 위선적인 자기기만인가!

나는 문제풀이장에서 힘들게 얼굴을 들었다. 파아란 하늘빛바탕에 장미꽃무늬가 새겨진 벽지를 바른 소박한 방안의 벽면이 눈앞에 안겨들었다. 벽면에는 진성의 집식구들의 모습이 새겨졌다. 환영으로 떠오른 그 모습들은 점점 커지며 나에게로 육박해왔다.

아, 나의 량심은… 가사보다 국사를 먼저 돌보며 거기에서 락을 찾는 진성의 부모들에 비해볼 때 나의 량심은 진정 누구를 위한것이였던가?

이번에는 문제풀이장의 글줄들이 커지며 눈앞에 안겨왔다.

자기보다 학교의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진성이, 자기 집보다 공장의 기술혁신을 먼저 생각하는 진성의 부모들, 그들앞에 떳떳하지 못한 자신이 민망스러워났다.

나는 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좀 있으면 오빠도 어머니도 온다고 하면서 붙잡는 진성의 동생을 달래며 집을 나섰다.

강변에서는 여전히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왔으나 자책으로 달아오른 나의 마음을 식혀주지 못하였다. 답답한 마음을 달랠길 없어 나는 강변에 외롭게 서서 쓸쓸히 아지를 흔들고있는 버드나무옆에 멈춰섰다.

처절썩, 처절썩… 발밑에선 물결이 쉬임없이 밀려왔다간 밀려갔다. 그 물결을 타고 나의 생각도 쉬임없이 밀려오고밀려간다.

학과경연에는 진성이를 내보내야 한다. 나의 잘못으로 그가 비약의 나래, 창조의 나래를 접게 하여서는 안된다. 이것은 죄악이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주접들고 숨어있던 량심은 이제야 날창을 비껴들고 비단보자기에 감싸쥔 거짓 량심을 찔러대는것만 같았다.

이때 물결을 타고 난데없이 나타난 혁범의 어머니가 《그럼 우리 혁범이는 어떻게 하고?》 하며 다가온다. 그뒤로 《학교꾸리기는 어떻게 하고?》 하며 나타나는 교장선생의 모습…

그 모습들은 나와 인정으로 얽혀진 잊을수 없는, 뿌리칠수 없는 모습들인것이다.

아, 량심은 나에게 진성이를 선택할것을 요구하고있지만 현실은 나를 동요하게 하고있었다.

끊임없이 밀려갔다 밀려오는 매듭지을수 없는 하많은 나의 생각은 이밤이 지새도록 역회전을 거듭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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