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1(2022)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삶의 메아리

차영식

제 2 회

 

혜영은 지시봉을 들고 대형현시막앞으로 다가섰다.

《지금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는 특수합금재료에 대한 수요가 날로 높아가고있습니다.

이 특수합금재료의 생산에는 ㄴ촉매가 꼭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ㄴ촉매의 생산과정은 침투성이 매우 강한 인체에 해로운 작용을 하는 유해물질인 유독성가스의 방출을 동반하게 됩니다. 유해물질이 미량으로 인체내에 침적될 때에는 잘 모르지만 그 침적량이 늘어나 한도량을 넘어서면 생명까지도 위험합니다.

인체내에서 유해물질의 피해후과가 이처럼 엄중하기때문에 세계적으로 인체내에서 유해물질의 침적량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한 인체내유해물질측정체계에 대한 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연구자료가 공개된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학술발표회참가자들은 호기심과 기대가 어린 시선으로 대형현시막을 주시하며 혜영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누구든 생명을 내대고 실험을 진행해야 하기때문입니다.》

혜영은 목이 꺽 메여올라 뒤말을 쉬이 잇지 못하였다.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이구만!》

장내에서 가벼운 속삭임소리가 들려왔다.

혜영은 마음을 진정하며 계속해나갔다. 그의 학술발표는 새로운 과학적발명에 대한 증명이나 효과성에 대한 립증이 아니라 과학연구에 나선 사람들의 참된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혜영의 학술발표가 끝나자 참가자들의 얼굴마다에는 감동의 빛이 력연하였다.

《매우 가치있는 연구성과요. 그런데 저 녀성은 대체 누구요?》

《아직 모릅니까? 유해물질수감부를 연구하다가 유해물질에 중독되여 오래동안 치료를 받고있는 실장동무가 생각 안납니까?》

《아, 마수철실장?》

《예, 바로 마수철실장동무의 안해입니다.》

《그렇소?!》

《부부가 같이 연구사업을 해오다가…》

《그렇게 되였구만.》

놀라움과 아쉬움의 파문이 일어번지는 속에 열렬한 박수갈채가 터져올랐다. 순간 혜영의 눈가에 맑은것이 고여올랐다.

(수영이 아버지, 모두가 축하를 보내고있어요.)

학술발표회장을 나서는 혜영에게 연구소의 일군들과 동무들이 꽃다발을 안겨주며 그를 에워쌌다.

《혜영동무, 축하하오. 마동무의 연구성과가 드디여 빛을 봤구만. 그가 얼마나 기뻐하겠소.》

혜영의 손을 뜨겁게 잡아흔들어주는 연구소소장의 눈가에도 눈물이 번들거렸다.

《실장동지, 축하합니다. 오늘 정말 훌륭했습니다.》

《고마워요, 동무들…》

혜영은 손수건을 자꾸만 눈굽에 가져갔다.

오늘의 성공을 위하여 마음기울여준 연구소일군들과 연구사들이 진정 고마왔다.

혜영의 망막은 그냥 뿌옇게 흐려져있었다.

그의 옆에 다가선 림하영이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차라리 박사론문으로 발표했을걸 그랬다. 모두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아니? 내가 다 막…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렇게 하는게 어때?》

림하영이 진지한 눈빛으로 혜영의 물기어린 두눈을 마주보았다.

《아니, 그건 그의 뜻이 아니야.》

혜영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뭐가 아니란 말이야? 이건 수영이 아버지가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연구한것이 아니니.》

《하지만 그는 그걸 바라지 않아.》

혜영의 눈앞에는 인체내유해물질측정체계의 완성을 위해 남편과 함께 고심분투하던 지나간 나날들이 금시일처럼 생생히 살아나는것이였다. …

마수철은 안해의 연구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개발해낸 ㅌ재료가 안해의 측정체계에서 핵심을 이루는 유해물질수감부로 된다는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는 인체에 대한 유해물질쪼임실험을 통해 ㅌ재료의 감도도 검증하고 그에 토대하여 인체내유해물질측정체계를 구성하는 일만이 남았다.

마수철은 요새 안해에게서 이상한 감촉을 느끼였었다. 안해와 실험실이 달랐어도 마수철은 안해의 연구사업진척정형을 손금보듯 알고있었다. 그는 저녁마다 안해의 실험실에 들려보는것을 잊지 않았다.

수철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안해는 실험실에 홀로 남아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군 했었다. 그러다가 인기척을 느끼면 후닥닥 놀라군 하였다. 연구를 더 심화시키는 사색이 아니였다. 안해는 말없이 고심하고있었다.

안해의 고심이 마수철의 심장을 아프게 찔렀다.

내가 실험대상이 되여야 한다. 이것은 수철이 언제부터 품어온 결심이였다. 마침 수철은 연구소의 유해물질감독원을 겸직하고있었다.

그런데 연구소에는 유해물질취급과 관련한 엄격한 통제규정이 있었다. 그 규정대로 한다면 언제가도 인체내유해물질침적량값을 결정할수 없었다. 시간을 앞당기자면 허용쪼임량의 100배, 그것도 짧은 기간에 맞아야 하였다.

결심은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으나 안해가 모르게 할수 없는 그것이 문제였다. 안해가 알면 자기가 실험대상으로 나서겠다고 우겨댈것이다. 아니, 안해는 절대로 안된다. 내가 해야 한다, 그의 보호자인 다름아닌 내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수철은 안해의 실험실로 성큼성큼 걸음을 내짚었다. 어차피 둘의 합의가 이루어져야만 실행가능한 실험이였다.

혜영은 출입문을 등지고있었으나 륙감으로 실험실에 들어서는 마수철의 속생각까지도 알아맞히였다.

요즈음 실험실을 자주 찾는 남편의 조급해하는 행동거지에서 혜영은 모든것을 알아차리고있었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할가요?》 혜영의 눈빛이 마수철의 심장에 묻고있었다.

《루적침적량을 측정하자면 그리고 측정체계를 완성하자면 누구든 한번은…》 마수철의 심장은 이렇게 대답하고있었다.

침묵끝에 혜영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에돌아가는 방법이 있지 않을가요? 말하자면 서서히…》

끝을 맺지 못한 말이였으나 혜영의 눈빛은 피할수 없는 긴박한 정황을 예감한 예리한 눈빛이였다.

《에돌아간다구? 그건 안될 소리요. 침적한계량이 될 때까지 10년이구 20년이구 무한정 기다리겠다는거요? 에돌수는 없소. 그러면 나라의 과학발전이 그만큼 20년, 30년 뒤걸음치게 된단말이요.》

수철은 안타까운듯 목단추를 열었다. 모든것을 각오한듯했다.

《여보!》

수철의 석쉼한 목소리가 혜영의 가슴을 아프게 저며냈다. 혜영은 그에게 맵짜게 쏘아붙이였다.

《그 실험대상이 왜 꼭 당신인가요?》

《다름아닌 내가 나서야 하오. 연구소에서 유해물질을 감독할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가진 감독원인 바로 내가 말이요.》

《그래도 당신은 안돼요.》

혜영은 랭랭한 시선으로 마수철을 마주보며 단마디로 일축하였다.

《아니, 내가 해야 하오. 당신은 끝까지 남아 연구를 완성해야 하지 않소.》

마수철의 말은 사랑이고 믿음이였다.

혜영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사정하듯 말했다.

《하지만 난 당신을… 허락할수 없어요. 그럼 당신의 연구는 어떡하구요? ㅌ재료가 다 완성됐다고 보는건가요?》

수철은 안해에게 웃음을 지어보이였다. 그의 뇌리에 전술을 바꾸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불쑥 솟구쳤던것이다.

그는 안해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가정생활에선 더없이 차분하고 리해력이 많은 녀인이였으나 일단 사업에 들어가면 칼날우에라도 올라서서 진리를 대변하고 량심을 고수할줄 아는 그런 형의 인간이였던것이다.

《물론 ㅌ재료도 부단히 완성해야지. 헌데 그 쪼임실험이 무슨 죽을 일이라도 되길래 그러는거요? 잠시 안정하면서 머리쉼이나 하는 격인데. 그리구 이 마수철은 명이 긴 사람이요. 여보, 내 귀박죽을 좀 보오.》

수철은 부러 능청스런 표정을 지으며 안타까움이 짙게 어린 안해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이렇게 척 늘어지지 않았소.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됐어요. 이번에도 어머니예요?》

혜영은 남편의 말을 끊으며 가볍게 눈을 할기였다.

혜영은 시어머니가 있어 집안살림을 그에게 맡기다싶이 하고 지금까지 연구사업에 전념해올수 있은것이다. 과학자인 아들, 며느리를 둔것을 더없는 긍지로, 자랑으로 여겨오는 시어머니가 가정일의 모든것을 맡아안고 언제나 밝은 얼굴로 자기들을 연구소로 떠밀어주군 할 때마다 송구하고 죄스러운 심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는 혜영이여서 시어머니의 말이라면 덮어놓고 《예, 예.》 해오는터였다.

수철이 혜영의 이런 심정을 때때로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하는데 리용하기도 하였다.

ㅌ재료에 대한 용해실험을 진행하는 문제가 나섰을 때였다. 한번의 용해실험으로 ㅌ재료의 합리적인 조성성분을 결정하고 앞으로 그 개발사업을 완성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특성지표들을 얻어낼수는 있으나 용해실험과정에 예견치 못했던 위험이 조성될수 있으므로 그것을 막기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였다. 하지만 어떻게 준비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그들도 파악이 없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용해실험을 진행해야 하는가 아니면 철저한 방비책을 세운 다음 안전하게 할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론의가 분분하였다.

안전한 길은 시간과 품이 많이 들어야 했고 위험한 길은 즉시에 용해실험을 단행하여 필요한 특성지표들을 얻는것이다.

《절대로 모험할 생각은 마세요. 지켜보겠어요.》

그의 실험실을 찾은 혜영이 단도직입적으로 남편에게 들이대였다.

《대체 뭘 모험한다는거요?》

수철은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혜영은 ㅌ재료의 개발을 위한 용해실험과정에 산생될수 있는 위험성들에 대해 하나하나 밝히기 시작하였다.

《됐소, 됐소. 그만하오.》

성을 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였다. 그렇다고 안해를 속여넘길수도 없는노릇이여서 수철은 한동안 잠자코있었다.

그날저녁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밥숟갈을 뜨려는 시각에 수철이 불쑥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제 어머니의 동의를 하나 받을가 해서 그러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수철은 숟가락을 놓으며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길래 그리 심각해서 그러느냐?》

밥술을 뜨던 어머니의 손이 굳어졌다.

혜영은 수철에게 가볍게 눈을 할기였다. 그러거나말거나 그는 자기에게 형세가 유리하게 이야기를 엮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제가 중요한 실험을 하나하게 됩니다. 약간의 위험성은 있지만 사전대책은 면밀히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내밀면 될게 아니냐. 이 늙은 에미의 말을 듣구말구가 뭘 있겠다고 그렇게 갑자르느냐?》

어머니가 안타깝다는듯 자못 억양을 높였다.

《그런데 수영이 어머니가 안된다고 하면서 훼방을 놀지 않습니까. 안전하게 방비책을 세웠는데도 말이예요.》

혜영은 일이 이쯤되였을적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다 수영이 애비를 생각해서 그러는거겠는데 매사에 조심하거라. 그리구 수영이 에미야, 연구사업이라는게 어떻게 모두 쉽게야 되겠니? 이런저런 곡절도 있을걸 각오해야만 하지 않겠니? 난 왜서인지 수영이 애비 하자는대로 그냥 했으면 한다.》

《어머니, 제 생각이 짧았어요. 어머니말씀이 옳아요.》

아, 이런 남편, 이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녀자인가!

그럴수록 더 아껴주고싶은 남편이였다. 빠른 시일안에 용해실험과정에 있을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할수 있는 방비책을 세워야 했으므로 혜영은 자기의 연구과제를 당분간 림하영에게 책임지우고 수철의 실험실에 붙어있었다.

혜영이 노력한 결과인지 용해실험과정에서는 큰 위험은 없었다. 그러나 유해물질쪼임실험만은 그렇게 처리해서는 안될 일이였다.

수철은 부러 우스개소리를 꾸며대며 웃음을 지었지만 혜영은 따라 웃을수 없었다.

정녕 유해물질쪼임실험을 웃으면서 할수는 없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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