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2(2023)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정성

김류정

제 2 회

 

나는 차영순환자가 누워있는 호실로 걸음을 옮기였다. 녀성환자이므로 과장선생님은 나를 담당의사로 정해주었다. 내가 의사생활을 시작한 후 네번째로 담당한 환자인 차영순은 막내동생보다도 나이가 두살 아래인 어린 처녀였지만 키는 나보다도 훨씬 컸고 몸매도 쭉 빠쳐 녀성이라면 누구나 가지고싶어하는 맵시와 매력을 함께 겸비한 보기드문 미인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성한 손으로 몸우에 올려놓은 기타의 선을 어루쓸며 누워있던 영순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앉았다.

나는 침대끝에 앉으며 물었다.

《팔은 좀 어때요?》

《그저 이따금 쿡쿡 쏩니다. 음- 어떤 때는 아무일도 없는것처럼 아픔이 뚝 멈추기도 하구요.》

그는 대답을 하면서 방긋이 웃었다. 곱게 생긴 얼굴에 웃음을 지으면 장난기가 실리여 더욱 귀여워보이는 영순이였다.

나는 고정틀을 한 손을 살며시 감싸쥐였다. 손등에서 열이 느껴졌다. 지금 이 시각도 손목에서는 염증이 계속되고있는것이였다. 그것도 여느 피부상처에 의한 염증이 아니라 뼈속에서 진행되는 골수염인것이다.

나는 애써 웃음을 띠우고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말했다.

《열이 좀 내린것같애. 아마 항생제가 효력을 내는 모양이지?》

《그런데 주사맞을 때마다 막 끔찍합니다. 사실 주사자리가 손목보다 더 아픈데

이제 스무살고개에 들어서인지 아직도 어리광을 깨끗이 털어버리지 못한 처녀였다. 그런 처녀가 손목을 잘리울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있는것이였다. 나는 목젖으로 뜨거운 김같은것이 스며오름을 느끼며 침착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살아가느라면 싫어도 해야 되는 일이 있고 좋아도 하지 말아야 하는 일도 있는게 아니겠어요. 그러니 아파도 주사를 맞아야지요 뭐.》

《어마

문득 처녀의 입술새로 새여나온 소리였다.

내가 눈을 똑바로 뜨면서 쳐다보자 영순은 얼굴을 붉히는것이였다.

입술을 잘근거리면서 나를 바라보더니 생긋이 웃었다.

《의학대학에서도 철학을 배워주나요?》

《왜요?》 나는 의아해서 되물었다.

《아니, 그저 방금 선생님이 한 말이 철학적이여서

나는 손등으로 입술을 가리우며 웃었다.

인생에 대해 몇마디 했더니 철학이라는 요란한 간판을 가져다붙이는것이였다. 물론 나도 대학시절 철학이라는 심오한 학문에 심취되여 그 울창한 수림속에 뛰여들고싶은 욕망이 없은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외과학을 파고들며 반경이 그리 크지 않은 대학생의 생활을 체험하며 철학은 지나온 나의 생활과 마주하는 생활속에도 스며있음을 느끼게 되였다.

그래서 생활철학이라는 말도 있는것이겠지만 나자신이 그렇게 철학적인 말을 하였다는 평은 어쩐지 거북하게 들려왔던것이다.

《그건 철학이라기보다는 그저 일상생활에서 맞다들었던 감정을 표현한것뿐이예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나는 사물함우에 놓여있는 색다른 보자기에 눈길을 주었다.

파란 바탕에 흰 동그라미가 줄을 맞추어 박혀있는 보자기에 싸여있는것이 무얼가? 의사실에서 나는 그 보자기를 자주 보았었다.

낯이 익은 보자기여서 유심히 바라보자 영순은 얼른 말했다.

《장선생님이 김치를 가져다주었어요. 집터밭에서 키운 배추로 김치를 했다면서.》

장선생은 시교외에서 살고있었다.

집에는 앞뒤로 넓다란 터밭이 있어 이따금 우리 과의 의사, 간호원들은 물론 환자들도 신선한 쑥갓과 부루맛을 보군 했었다. 특히 부인의 김치담그는 솜씨가 유별하여 과는 물론 병원적으로 장선생님네 김치는 소문이 나있었다.

《제가 미안해하니까 선생님은 〈담당의사가 아니여서 그러는가?〉고 따지는것이였어요. 그러면서 〈영순이, 우리 과에 입원을 했으면 우리 과가 어떤 과인지 알아야 해, 우리 과는 치료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담당의사가 따로없는 과야. 그렇다고 책임성이 없는 과라는 말은 아니지. 모두가 담당의사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있으면서 환자라면 누구나 보살펴주는 화목한 집단이지.라고 하시는게 아니겠어요.》

영순은 장선생님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재깔거렸다. 무대생활을 해서인지 흉내도 제법 그럴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정말이지 우리 과는 병원적으로도 환자들을 잘 보살펴주는것으로 소문이 났다. 과에 배치받아온 날 내가 처음으로 본 과장선생님의 모습은 쌍지팽이의 손잡이를 연마지로 다듬는 모양이였다. 우리 과에서는 수술을 받은 환자의 지팽이는 담당의사가 만들어주는것이 정상적인 흐름으로 되여있었다.

그래서 비록 어쩔수없이 신체의 어느 부위를 자르고 퇴원을 하는 환자들도 슬픔이나 아픔이 아니라 생명을 지켜낸 의사들의 성의에 감복하여 눈물을 흘리였으며 후에도 감사의 편지를 보내오군 하는것이였다.

《옳아요. 병원의 다른 과들도 같겠지만 특히 우리 과는 환자치료와 그들의 생활을 잘 돌봐주는것으로 소문이 났어요.

누구나 집에서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가지고나와 환자들에게 주군 하지요. 물론 중환자순서로 말이예요.》

《그러니 저도 중환자나요?》

영순의 물음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고 말하자니 어린 처녀에게 아픔을 주겠고 아니라고 하자니 거짓말을 못하는 성정인지라 어색스러웠다. 그래서 에둘러서 대꾸했다.

《항생제를 맞으니 경한 환자라고는 할수 없지요 뭐. 하지만 점차 회복기에 들어설테니 별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어쨌든 솔직한 대답은 아닌지라 영순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기가 뭣하여 그의 무릎우에 놓여있는 기타를 내려다보면서 웅얼거렸다. 어디서나 볼수 있는 흔해빠진 기타가 아니라 보기드문 고급한 기타였다.

원래 병원에는 기타를 비롯한 악기와 오락기구들을 가지고 들어올수가 없다.

치료규정에 위반되는것이였다. 하지만 영순에게만은 특혜를 베풀었다. 입원 첫날부터 타지도 않지만 탈수도 없으니 제발 기타를 옆에 있게라도 해달라고 간청했던것이였다.

《전 기타를 몸에서 떼여놓고는 잠도 자지 못합니다. 이불을 덮지 않아도 기타만 품고 자면 몸이 더워지는걸요. 이건 그저 비유가 아니라 참말입니다.》

그러면서 영순은 병원규정이 정 그러면 기타를 멀찍이 두고 바라보기라도 해야지 정말 잠을 이룰수가 없다고 애원을 해서 권철웅과장선생님이 손녀의 떼질에 져주는셈치고 승낙을 한것이였다.

그런데 정작 기타를 가져오자 먼데 걸어놓고 바라만 보겠다던 약속은 어느새 줴버리고 마치 완구곰을 안고서야 잠을 자는 어린 소녀처럼 몸에서 떼여놓지 않는것이였다. 그 모양이 귀엽고 또 한쪽으로는 정상이 가긍하기도 하여 눈을 감아주었다.

며칠전 의사직일을 서던 나는 깊은 밤 복도를 지나가다가 영순의 방에서 울리는 기타소리를 들었었다. 다른 방에서 자고있는 환자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으려고 처녀는 한손으로 《미, 라, 레, 쏠, 씨, 미》만 반복하여 조용히 타고있었다. 그때 나는 불쑥 솟구치는 눈물을 금할수 없었다.

부드럽고 은은한 기타의 공명소리였지만 나는 거기서 불행을 당한 영순의 애타는 하소연을 들을수 있었던것이였다.

내가 기타를 이윽토록 내려다보자 영순이 조용히 묻는것이였다.

《선생님도 기타를 잘 타시겠지요?》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기타는 잘 타지 못해요.》

《거짓말, 축구를 하는 사람이 배구를 못할리 없는것처럼 손풍금을 배운 사람이 기타를 못탈리 있겠나요 뭐?》

조금 버릇이 없어보이는 말투였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귀인성스러웠다.

고운 얼굴은 천부적으로 남자들에게서만이 아니라 같은 녀성들사이에서도 많은 리해와 양보를 받아내는 재주를 가지고있는것같았다.

《내가 손풍금을 배웠다는 말은 어디서 들었어요?》

《담당간호원에게서요.》

묻는 즉시 답변을 하며 영순은 눈을 깜박거렸다. 나는 허거픈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손풍금도 소학교 4학년까지 배우고는 그만두었으니 겨우 음이나 내는 정도예요. 그러니 기타까지 배울 계제는 없었지요 뭐.》

나의 말은 겸손이 아니였다. 사실 나는 기타를 잘 치지 못한다. 늘 배우고싶은 열망은 가슴에 끓으면서도 공부를 하느라 짬을 내지 못했던것이였다. 그저 화음이나 대충 짚을줄 알고 선률이나 뜯는 정도였다.

《이제 손이 나으면 나에게 기타를 배워주겠어요?》

나의 물음에 영순은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나를 바라보는 눈가에 핑 물기가 어리더니 초리긴 속눈섭까지 촉촉히 젖어들었다.

나는 후회가 되였다. 마치 눈가리고 아웅한것같아 속이 몹시 껄끔했다.

허나 이왕 뱉은 말이기에 좀자를수 없었다.

의사가 확신없는 말을 하고 자책하는 모양이 환자에게는 아픈 의혹만 짙게 해줄뿐이라는것을 길지 않은 의사생활이 깨닫게 해주었던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집스럽게 재차 물었다.

《왜? 안배워주겠어요? 그래도 담당의사인데.》

그러자 영순은 피씩 웃었다. 그 웃음과 함께 눈에서는 찰랑거리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영순은 여전히 웃고있었다.

《제가, 다시 기타를 탈수 있을가요?》

조금 갈리는 목소리였다. 아직 자기의 감정을 충분히 감추기에는 체험과 지혜가 충분치 못한 처녀였다.

나도 불쑥 뜨거운것이 솟구쳤다. 눈물이 핑그르르 돌아 눈을 재빨리 삼박거렸다. 완쾌된 순간이 아니고서 의사는 환자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하는것이다. 신심이 무엇보다 중요한 환자에게 외과의사는 나약성이 아니라 다소 거칠어도 당당한 모습만 보여주어야 하는것이다.

《왜 이래요? 다신 기타를 타기 싫은 모양이지? 혹은 이번 기회에 직업을 바꿀 흉심이라도 품은 모양인데 아마 그렇게는 안될거예요. 우리 의사들이 의술과 정성으로 그런 잔꾀는 짓부셔버려줄테니까요.》

나오려는 눈물을 강짜로 밀어넣으며 말을 하다보니 내가 듣기에도 조금 새된 억양이 튀여나왔다.

《어마나!》 하고 영순은 놀라면서 웃음을 지었다.

《의사선생님이 〈짓부시다〉는 말을 쓰니 참 우습구만요.》 그리고는 제먼저 깔깔거렸다.

나도 웃음이 나갔다.

내딴에는 유모아적으로 말했는데 오히려 어색하게 들린 모양이였다.

아직 림상치료는 물론 환자들과의 교감에서도 경험과 교훈이 부족한 햇내기의사라는 사실을 싫어도 감수할수밖에 없었다.

《하긴 난 한손이 없어도 기타를 탈수 있어요.》

갑자기 영순은 씩씩해졌다. 마치 장난군소녀처럼 으쓱해하더니 얼굴을 바투 갖다대며 묻는것이였다.

《한번 보시겠어요?》

《뭘요?》 나는 어리둥절하며 되물었다.

《내가 한손으로 기타를 타는걸.》

한손으로 기타를 탄다는 말에 놀라 출입문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인차 한손으로 기타를 탄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병원에서 기타소리를 낸다는것자체가 비정상적이였다. 그것도 의사가 눈을 펀히 뜨고 앉아있는 자리에서.

나의 생각을 알아차린듯 영순은 생긋이 웃으며 속삭였다.

《걱정마세요. 제가 타는 기타소리는 선생님도 귀를 강구어야 들을수 있을테니깐요.》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기타를 들어 무릎우에는 기타의 머리부분을 놓고 울림통은 그끝 음침대가녁에 붙이는것이였다. 그것은 울림통에 닿는 면적을 최소한 줄여 공명을 크게 하기 위한것이였다. 영순은 잠시 오른손을 쳐들고 손가락을 잽싸게 움직였다.

희고 매출한 손가락이 어찌나 긴지 내 손가락보다 1. 5배는 될것같았다.

잠시 손가락풀기를 하고난 영순은 왼손으로 짚는 짚음괘를 오른손가락들로 날렵하게 짚어나갔다. 놀랍게도 기타에서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그것은 순수 짚기만 하는것으로써 타는 선률이였다. 비록 높고 명쾌하지 못하고 미약했지만 그래도 무슨 노래를 타는가는 쉽게 알아맞출수 있었다. 나는 놀라움이 가득찬 눈으로 날렵하게 움직이는 영순의 손가락들을 지켜보았다. 얼마나 오래고 많은 숙련을 거쳤으면 이 정도의 기교를 갖추었을가 하는 생각에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짧고 간단한 노래를 타고난 영순은 《어때요?》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였다.

《놀라워요, 음질이 좋은 마이크만 있으면 제법 독주도 할수 있을것같군요.》

《그럼요.》 영순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이였다.

나는 그 선률이 어느한 예술영화의 주제가라는것을 첫소절에서부터 알수 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입속으로 노래를 따라불렀다.

어둠이 깃드는 합숙의 방으로 돌아온 나의 귀전에는 오래도록 그 노래선률이 울리고있었다. 마치 영순이가 아니라 내가 그 노래를 기타로 타는듯싶었다. 아니, 마음으로 타고있었다.

만약 영순이의 손을 구원해주지 못한다면

그러면 처녀는 커다란 고통과 슬픔에 빠질것이다. 그가 비록 지금은 각오를 하고있지만 아니, 정확히는 각오를 한듯이 착각하고있지만 정작 손이 없다는것을 알게 된다면 그는 인생의 좌절감까지 맛보게 될것이였다.

저 처녀를 구원하지 못할바엔 내가 어째서 외과의사가 되였단 말인가.

합숙방의 창문을 12월의 눈보라가 마구 두드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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