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2(2023)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정성
김류정
제 4 회
드디여 권철웅과장선생님이 말미를 주었던 이틀이 지났다. 그날 오후 의사실에서는 또다시 협의회가 열리였다.
아마도 회의는 첫시작을 떼는 주최자의 기분에 따라 분위기가 좌우되는듯싶었다.
《차영순환자에 대한 수술을 진행합시다. 헌데 손목절단수술이 아니라 뼈이식수술입니다.》
전과는 달리 확고한 용단이 선듯 과장선생님이 서두를 떼자 의사실안은 따뜻하면서도 밝은 기운이 돌았다. 의사들이 모두 놀라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과장선생님은 사람좋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골수를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생각같아서는 내 골수를 바쳤으면 좋겠지만 60이 다된 내것으로야 어떻게 처녀의 고운 손을 살리겠습니까? 그래서 고민이 많았는데 뜻밖에도 아주 젊은 청년이 골수를 바치겠다고 제의를 해왔군요.》
《청년이요?》 부과장선생님이 놀라면서 물었다.
《혹시 그 처녀의 애인입니까?》
과장선생님은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갓 스무살인데 무슨 애인이 있겠습니까? 청년은 의학계통에 있는데 자기도 뼈이식에 관한 기술자료들을 연구한다더군요.》
《뼈이식에 관한 기술자료들을 연구하는데 골수는 왜 바친답니까? 그거야 이상하지 않습니까?》
부과장선생님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태도로 중얼거렸다
《그 청년이 몇살이나 됐습니까?》 이번엔 장선생님이 물었다.
《서른입니다. 팔팔하지요.》
문득 장선생님이 한숨을 길게 내쉬는것이였다. 모두가 무거운 숨을 내쉬는 장선생님을 주시했다.
《그러니 과장선생은… 일혁이의 골수를 바치려는게군요.》
일혁이라는 말에 모두 깜짝 놀랐지만 나는 어안이 벙벙해있었다.
일혁이가 누군지 알수 없었던것이였다.
《일혁이라니요? 그건 되지도 않을 소리입니다.》
별안간 부과장선생님이 소리를 내질렀다.
《왜 이럽니까? 부과장선생, 환자들이 밖에서 듣겠습니다.》
과장선생님의 말에 부과장선생님은 출입문쪽을 흘끔거리고나서 손을 홰홰 내저으며 강경하게 반대했다.
《일혁이는 안됩니다. 시병원에서 뼈이식할 사람을 데려올바치고야 우리 과의사들이 바치지요. 솔직한 말로 영순환자가 대퇴골수염이라면 내가 골수를 바치겠습니다. 성공할 확률이 70%는 되니까요. 하지만 손목관절골수염은 성공확률이 10%도 안되기에 바치지 못하는겁니다. 그리고 시병원의사는 안됩니다. 우리 병원의 체면은 뭐가 됩니까?》
《부과장선생, 지금 누구의 체면을 생각할 때입니까?》
《그건 아니라도 정 아들을 바치겠거든 우선 나부터 수술대우에 눕겠습니다. 까짓것, 성공확률이 10%라 해도 바치면 바치는거지요.》
다른 의사들도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그제서야 나는 일혁이라는 청년이 시병원에서 의사로 일한다든 권철웅과장선생님의 아들이라는것을 알았다.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왔다.
16년전에는 인민군군관을 위해 아버지가 골수를 바치고 오늘은 한 나어린 처녀를 위해 아들이 또다시 희생을 각오한것이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나의 눈앞에는 비가 오는 날이면 다리를 저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한 비가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골반부위를 손으로 툭툭 두드리던 권철웅과장선생님의 모습도 어쩔수없이 겹쳐들었다.
그러자 방금전의 나의 감동이 차츰 식어지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다른 말할것없습니다. 수술은 래일 10시부터 진행합시다. 가타부타하지 말고 모두 자기 맡은 환자들이나 잘 돌보십시오.》
권철웅과장선생님이 단호히 잘라말했다. 그러자 웅성이던 의사들도 조용해졌다.
어지고 무던하다가도 일단 자기 주장을 내밀 때면 강경해지는 과장선생님의 성품을 모두가 잘 알기때문이였다. 하지만 나는 계속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은미선생, 뭐 또 할 말이 있소?》
과장선생님이 묻는 말이였다.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달아오른 입술만 감빨았다.
그 모양을 지켜보던 부과장선생님이 물었다.
《설마 기타연주에 대한 말을 또 꺼내려는거야 아니겠지?》
《아니, 맞혔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나는 당돌한 어조로 대꾸했다.
의사들이 모두 아연해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나는 그 눈빛들을 화살처럼 받으며 과장선생님을 향해 물었다.
《과장선생님, 뼈이식수술을 받은후 차영순환자가 기타를 다시 연주할수 있게 됩니까?》
권철웅과장선생님의 얼굴에 심란한 빛이 비끼였다.
나에 대해 실망했다는 마음의 소리가 그런 빛을 띠고 나타났으리라.
《글쎄… 기타를 탈수야 있겠지. 어지간히는 말이요. 하지만… 모름지기 다시 무대우에 설 정도의 회복은 불가능할거요.》
나는 아래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앞으로 모두어쥔 손에 힘을 가해 꼭 잡으며 이제껏 참아왔던 나의 심정을 토로했다.
《만약 그렇다면 전 뼈이식수술을 반대합니다. 담당의사로서 저는 완전회복이 불가능한 치료에 응할수가 없습니다.》
모든 의사들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너무도 당돌한 나의 제의에 그들은 어안이 벙벙해있었다. 하지만 과장선생님의 눈빛은 여전히 차분했다.
《그럼 담당의사로서 은미선생의 치료방안은 뭐요?》
《저… 그건…》
나는 다시한번 입술을 감빨았다. 어찌나 달았는지 따가운 감촉마저 느낄수 있었다.
나는 땀이 배나오는 손에 다시한번 힘을 주어 서로 꼭 잡고나서 고개를 쳐들었다.
《그건 약물주사치료입니다.》
《약물주사치료?》
모두가 놀라는 눈빛이였다.
《예, 그렇습니다. 사실 이것은 제가 대학때부터 연구해온것인데 박사원을 졸업하면서 체계화하여 학위론문으로 완성했던것입니다.》
갑자기 부과장선생님이 고개를 쳐들며 《하하하.》 하고 큰소리로 웃는것이였다.
나는 얼굴에 모닥불을 뒤집어쓴것같았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나의 얼굴이 내 눈으로도 보이는듯싶었다.
《이보시오. 최은미선생, 이 자리에만도 학위론문을 쓴 선생들이 넷이나 있소. 아니, 선생까지 하면 다섯이겠구만. 하지만 실질적으로 치료에 이바지하는것이 얼마나 될것같소?》
부과장선생님의 말은 나의 머리를 혼잡스럽게 만든것이 아니라 오히려 맑게 해주었다.
바로 그런 문제들에 명확한 해답을 줄수 있게 준비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나는 입술을 다시한번 감빨고나서 내앞에 놓여있던 자료철을 번지였다. 그것은 나의 학위론문이며 도종합병원에 배치받은 후 여덟달동안 연구를 거듭해서 완성한 기술자료들이였다.
《한가지 중요한 문제를 놓쳤습니다. 부과장선생님.》
나는 자료철을 들어 가슴에 품으며 부과장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의학과학기술론문들이 림상치료에 적절히 응용되지 못한 리유들중에는 신인의학자의 론문을 우습게 여기거나 달가와하지 않는 로장들의 태도문제가 크게 내재되여있는것입니다.》
《그건 날 보고 하는 소리요?》 부과장선생님의 눈빛이 날카로와졌다.
《이 동무가?! 잘한다고 추어주었더니 점점…》
희고 잘 다듬어진 석고상인양
《가만! 그만하시오, 부과장선생. 은미선생의 론문을 들어보지도 않고 이게 무슨 태도요?》
과장선생님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말했다.
《어서 한번 이야기해보시오. 약물주사로 골수염을 치료할수 있다면 정말 좋은거지. 그러니 침착하게 말해보시오.》
방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무거운 정적의 압박에 나는 숨을 제대로 쉴수가 없을 정도였다.
입술을 깨물며 심호흡을 하고난 나는 가슴에 품었던 자료철을 펼쳐들고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직껏 연구해왔던 자료들이 하나하나 렬거되였다.
여러가지 항생제를 혼합하여 만든 약물을 염증이 생긴 골수에 주사로 직접 쏴넣어주는 방법을 설명했을 때 이제껏 미간을 모으고 나를 질시하던 부과장선생님도 파리해진 얼굴을 들어 나를 다시 바라보는것이였다.
나는 그와 비슷한 방법들을 여러 나라들에서 실험적으로 진행한다는 자료들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마지막치료방법을 설명할 때에는 땀이 뚝뚝 떨어졌다. 그만큼 나는 긴장되여있었던것이다. 모두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과장선생님이 나에게 다시한번 처음부터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두번째 설명을 끝내자 과장선생님이 의사들을 둘러보며 어떤가고 물었다.
모두들 입을 굳게 다물고있는 속에 부과장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들을 때는 귀가 솔깃한데 아무래도 림상경험이 없는것인지라 확신은 서지 않습니다. 동물실험도 걸쳐보지 못한 방안을 어떻게 사람에게 먼저 해본단 말입니까?》
역시 약점을 찾아 공격할줄 아는 부과장선생님이였다. 나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옳습니다. 수술적방법이라면 꼭 실험단계를 걸쳐야 하겠지만 이건 엄연하게 약물치료방법입니다. 이런저런 조건만 내세운다면 언제 치료를 해보겠습니까?》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으나 누구 하나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모두 생각이 많은 모양이였다. 잠시후 과장선생님이 고개를 쳐들었다.
《좋습니다. 아주 혁신적인 안이요. 하지만… 은미선생, 이번엔 그만두는것이 어떻겠습니까? 처음 해보는 치료방법인데 스무살처녀에게 한다는건 좀 더우기 상한 부위가 너무 예민한 곳이여서 그러오.》
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권철웅과장선생님은 나의 치료방법을 절반만 리해해준것이였다.
《저도 그 생각을 못해본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뼈이식수술도 원상회복을 못한다는 결론이 나왔기에 이러는것입니다. 과장선생님, 영순환자는 꼭 기타를 타야 할 처녀입니다.
선생님들, 그가 기타를 다시 탈 때라야 우리는 그에게 삶을 되찾아주는것으로 될겁니다.
그래서 저는…》
《허나 은미선생, 기타를 타게 하겠다고 그런 모험을 하다가 종당에는 처녀의 팔굽까지 절단하게 될수 있단 말이요.
선생은 방금 치료주기가 약 석주일이라고 했지요? 그 시간이면 염증이 팔목을 벗어나 팔굽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시간이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팔굽이 아니라 어깨부분을 다시말해서 팔전체를 뭉청 떼여내야 한단 말이요. 그래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확고한 신심이 정말 있소?》
부과장선생님의 날카로운 질문이였다.
나는 머리를 숙였다. 확신이 있다면 객관적증명이 되지 못한 주관적인 확신일뿐이였다. 주관적인 확신이란 한낱 객기로 치부되기가 십상이였다. 팔전체를 떼여낸다는 말에 의사들도 몹시 심중한 안색으로 앉아있었다.
한팔이 통채로 없는 기타수처녀를 생각하기가 참혹했던것이였다.
과장선생님이 타이르는듯한 어조로 말했다.
《부과장선생의 우려도 일리가 있습니다. 만약 은미선생의 방법으로 치료를 하다가 예견대로 되지 않으면 환자는 손목이 아니라 팔전체를 잃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번엔 그만두고 다음번에 상태가 경한 환자부터 치료를 해보는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고집스럽게 머리를 저었다.
《정상회복이 불가능하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뼈이식수술을 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은미선생! 고집도 지내하오.》
여직껏 묵묵히 앉아있던 장선생님이 한마디 했다.
《과장선생이 아들까지 희생하면서 영순환자를 살려내겠다는데 아직 치료경험도 없는 방법만 고집하니 듣기가 베차구만.》
나는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뭉치가 북받쳤다. 더이상 참고있을수가 없었다.
나는 될수록 내 말이 그에게 차분히 들리기를 바라며 입을 열었다.
《옳습니다. 저의 치료방법은 아직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과학적인 타당성은 확고합니다. 저의 치료방법에서 과학적으로 부당하거나 미약한 곳이 있으면 지적해주십시오.》
나의 물음에 모두 놀라는 눈빛만 보낼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결심했다. 로장들의 위압에 눌리워 나의 치료방법을 철회하지 않겠다는것을.
《아마 지적할수 없을겁니다. 왜냐면… 왜냐면 선생님들의 지식이 이젠 낡았기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나의 말은 고요하던 물우에 던진 돌멩이보다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모두 경악을 한 표정들이였다. 아픈 말을 하자니 나도 가슴이 쓰리도록 아팠다. 하지만 나는 서슴없이 그 파문을 헤쳐나갔다.
《이건 제가 꼭 하고싶었던 말입니다. 여기에 와서 보니 병원 전자도서실에서 오는 선생님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자료들이 갱신되는데 그 자료들을 보지 않았으니
부과장선생님은 입을 항 벌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부과장선생님의 놀라움에 개의치 않았다.
《저는 과에 와서 처음 한동안은 환자들을 위해 바치는 우리 과선생님들의 진정에 정말 감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저에겐 의문이 커갔습니다. 우리 의사들이 가슴에 안고사는 〈정성〉이란 과연 무슨 뜻이겠습니까? 거기엔 환자들을 친혈육처럼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뜻도 있겠지만 기본은 환자들을 정상회복시켜야 한다는 우리 당의 보건의학사상이 깃들어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지팽이를 잘 만들어주는것도 좋은 일이지만 지팽이를 짚지 않게 해주는것이 참말로 〈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연해서 바라보는 의사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으며 고개를 수그렸다.
눈물이 찔끔 솟구쳤으나 그 눈물을 보이기는 싫었다. 틀린것을 말한것도 아닌데 눈물로 한몫 보련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였다.
《으음…》 장선생님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였다. 나는 가슴복판을 커다란 창으로 꿰뚫어놓은듯한 아픔을 느꼈다.
내가 과연 선배들을 모욕한것일가 아니면 그들의 수십년의 의사생활을 모독한것일가. 아버지가 치료를 받은 이 병원을, 이 과를 모독한것일가. 잠시 공기조차 멎은듯 장내안의 모두가 굳어져버린듯싶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얼굴들, 분개해하는 모습들, 허무해하는 인상들, 모두 표정은 달랐지만 충격을 받은것만은 확실했다.
잠시후 권철웅과장선생님이 침묵을 깨뜨렸다.
《반박할수 없는 비판입니다. 옳습니다. 모두들 생각이 많겠는데 깊이 새겨보고 성근히 받아들입시다. 우리 의사들이 환자에게 늘 쓰는 경구가 있지 않습니까. 〈약은 써도 병을 고친다.〉》
권철웅과장선생님은 책상을 한번 두드리고나서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차영순환자의 치료는 담당의사인 은미선생의 방법으로 해봅시다. 뼈이식수술은… 그만두기요.》
정말이지 나는 이 순간 과장선생님이 고마왔다.
나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림을 느끼였다. 자리에 앉아 어깨를 떠는 나에게 과장선생님은 말했다.
《한가지 조건은 환자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환자가 승낙을 하면 시작을 한다는겁니다. 반드시 환자와 합의를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