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2(2023)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정성
김류정
마지막회
영순이와 그의 부모들은 나의 제의에 찬동했다.
부모들은 처음 한동안 주저했으나 딸이 《한팔이 아니라 목숨을 잃는대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견결한 립장을 표명하자 승낙한것이다.
그때부터 21일동안 나는 영순의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 모든 공정이 치료였지만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목표를 건 치렬한 전투와도 같았다. 나는 사색도 힘도 시간도 오직 그에게 깡그리 바치였다. 특히 렌트겐투시를 위해 영순이와 함께 기능진단과로 내려갈 때는 가슴이 활랑거려 금방 쓰러질것만 같았다. 나만이 아니라 권철웅과장선생님과 부과장선생님도 그날부터 퇴근을 하지 않았다. 온 과의 모든 초점이 나의 약물주사치료에 쏠려있었다.
첫 닷새만에 진행된 렌트겐투시에서는 상처에서 변화가 생겼다는 결과가 도출되였다. 나는 하늘을 날것만 같았다. 하지만 열흘만에 두번째로 렌트겐투시를 하고는 내 두팔이 떨어져나간듯한 락심에 눈앞에 별찌가 맴돌았다.
첫번째 투시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던것이였다.
보름만에 진행된 세번째 렌트겐투시의 결과는 나를 쓰러뜨리고말았다.
호전되는 변화는 없고 오히려 손목연골주위의 인대에 염증이 전이된다는 결과가 나왔던것이다. 나는 그날밤 약물치료가 시작되여 처음으로 환자의 곁에서 떨어졌다. 잠을 이룰수가 없을것같아서였다. 의사가 잠을 이루지 못하면 환자는 더 불안해할것이다.
나는 잠자리를 옮겼지만 한잠도 자지 못했다.
불안으로 잠을 이룰수 없었고 혹시 잠에 들면 끔찍한 꿈을 꿀것같아 무서웠다.
어떻게 알랴. 영순의 팔이 뭉청 잘려나가는 참혹한 꿈을 꾸게 될는지. 그것은 꿈이라 해도 불길하고 스산한것이였다.
그런 생각이 시시각각 갈마드는것이 우연은 아니였다. 만약 나의 이번 약물치료가 수포로 돌아가면 영순은 팔을 잃을것이고 나는 의사로서의 자격을 상실할것이였다.
그때에야 나는 환자를 담당하는 순간부터 의사는 그와 한 운명의 쪽배에 오른다는 사실을 깨달을수 있었다.
《정성》이란 두글자를 절대로 무심히 보지 마시라. 그 단어에는 한 운명이라는 뜻이 깃들어있거늘…
새벽이 가까워올무렵 나는 저도 모르는새에 잠이 들었는데 깨고보니 해빛이 코구멍에 비쳐들 정도로 날이 밝을 때였다.
아침급약과 식사시간은 물론 의사들의 조회도 지나 과장선생님의 회진때에야 깨여났던것이였다. 뒤늦게야 헤덤비는 나를 즐거운 웃음속에 보며 부과장선생님이 물었다.
《영순환자때문에 그러오?》
《예, 아침 주사를…》
《놨소.》 권철웅과장선생이 말했다.
《부과장선생이 6시에 정확히 주사를 놨으니 걱정하지 마오.》
나는 그들이 진정으로 고마왔다.
네번째로 렌트겐투시를 했을 때 다시 차도가 나타났다. 약물치료를 시작하여 25일이 되는 날 나는 영순이를 데리고 기능진단과로 내려갔다. 다섯번째 투시결과는 나의 치료방법이 성공하고있다는것을 실증해주었다. 인대로 퍼졌던 염증은 물론 연골과 골수의 염증까지 약물에 의해 억제당한다는 결과가 나왔던것이였다.
즉시 의사협의회가 진행되고 약물주사치료주기가 수정되였다.
부과장선생은 약물치료주기를 석주일이 아니라 그 두배인 여섯주일로 해야 한다고 우겼다. 그러나 과장선생의 의견은 달랐다.
《약물을 피하나 혈관이 아니라 직접 연골에 쏴넣는 조건에서 항생제의 과도한 람용은 혹시 다른 징후를 유발시킬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렌트겐투시는 3일간격으로 하고 초음파검사까지 병행하여 환자의 손목뼈상태를 즉시적으로 확인하며 약물의 량과 주사시간을 조절해야 한다고 봅니다.
염증이 억제당하기 시작한 조건에서 약물의 량을 점차적으로 줄이고 주사주기시간도 연장하면서 넉주일반정도 치료하면 환자는 완쾌될것같습니다.》
과장선생의 예견은 하루도 빗나감이 없이 맞아떨어졌다.
넉주일반에, 꼭 32일만에 환자의 팔목에서 염증이 완전히 가셔졌던것이였다.
그로부터 한달정도 경과를 측정한 뒤에 골수염의 재발위험성이 없어졌다는것이 확인된 후 영순은 퇴원했다.
눈이 펑펑 쏟아져내리는 한겨울이였지만 퇴원하는 사람도, 바래주는 사람들도 모두 봄날처럼 즐거운 마음이였다.
《선생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은미선생님!》
영순의 까만 눈동자가 흐릿하게 안겨왔다.
눈가에 고였던 그렁그렁한 눈물을 삽시에 주르르 쏟으며 영순은 나의 가슴에 와락 안겨들었다.
《영순아-》
나도 눈물을 흘리고 영순이의 부모들도, 권철웅과장선생도, 둘러선 의사들모두가 감동되여있었다. 영순이를 바래주고 과에 들어설 때 권철웅과장선생이 물었다.
《이젠 론문을 발표해야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이번 치료정형을 참고하여 다시 써야 할것같습니다.》
과장선생은 나의 말에 머리를 끄덕이면서 나란히 걸었다.
《아버지도 흐린 날이면 다리를 많이 절지?》
문득 묻는 과장선생에게 나는 놀라운 눈빛을 보냈다
《왜 그렇게 놀라오? 내가 은미를 못알아본줄 안게지?》
《과… 과장선생님, 그… 그럼 저를…》
나는 말까지 떠듬거렸다.
그러는 나를 바라보는 과장선생의 눈가에는 자애의 빛이 흘러넘치였다.
《물론이지. 난 첫눈에 알아봤소. 아버지의 다리를 자를가봐 새끼토끼처럼 바들바들 떨던 소녀의 그 눈빛을 어찌 잊을수가 있었겠소.》
나는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그리고 여직껏 모른체한것이 못내 죄스러웠다.
사실은 떳떳한 외과의사가 된 후 《내가 선생님이 살려낸 그전날 군관의 딸이예요.》 하면서 나서려고 했던것이다.
《아버지의 다리를 절게 만들어서 미안하오. 제 골수를 바치였다는것으로 만족하려 했거던.》
《과장선생님…》
나는 눈물이 불쑥 솟구쳐 고개를 숙이였다.
과장선생님은 내 어깨를 다정히 두드려주었다.
《그때는 물론 얼마전까지만 해도 난 골절된 뼈를 붙여주기만 하면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하는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지. 제 뼈와 골수를 바쳐서라도 말이요. 그리고 끝내 붙여주지 못한 환자에 대해서는 어쩔수 없는것으로 하여 지팽이나 잘 만들어주는것으로써 미안감을 덜어버렸고… 그러던것을 은미선생이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주었소.
이번에 은미선생이 우리 과의 의사들에게 정말 강타를 안겼소. 우리 의사들이 늘 외우는 〈정성〉의 참뜻을 깨우쳐주었지. 의사의 참다운 〈정성〉이 환자들의 정상회복을 위한 치료사업에 있고 그러자면 최신과학기술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이요. 환자들에 대한 진짜 〈정성〉이 뭔지를 따끔하게 깨우쳐주었다고 우리 과의사들모두가 대견해하오.》
외과의사들은 예민하고 날카롭기도 하지만 또 이렇게 누구보다 대범하기도 한것이다.
《제가 너무, 버릇없이 놀았습니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자책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과장선생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음, 조금 심했던것은 사실이요. 장선생은 그날밤부터 집에서 쓰러져 며칠동안 출근을 다 못했으니까. 그리고는 새해에 들어서기 전에 년로보장으로 들어가겠다고 제기하더군. 아무래도 자기는 이젠 낡았다는것이겠지.
가슴이 아프더군. 하지만 발전하는 시대에 맞추어 혁신과 창조를 하지 못한다면 이미전의 명예란 한낱 가랑잎처럼 되고마는것이지. 더우기 지금은 사회의 모든 면에서 혁신과 변혁을 요구하거던. 따라서야지. 그러자면 달려야 하거던. 채찍질을 하면서… 그렇지?》
권철웅과장선생님은 의사실의 문을 열기 전에 발걸음을 멈추더니 문득 이렇게 묻는것이였다.
《우리 아들을 한번 만나보는게 어때? 키도 크고 잘났어.》
《어마나.》
나는 얼굴을 활딱 붉히며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면서도 내심으로는 싫지 않은것이 솔직한 심정이였다.
그날 저녁에 진행된 과모임에서는 부과장선생의 제의에 의해 내가 우리 과의 새 기술보급원으로 임명되였다.
그로부터 석달후 우리 과의 의사들은 도예술극장에서 진행하는 공연에 초대되였다. 영순의 초청에 의한것이였다.
영순이 전기기타를 들고나왔을 때 나는 어쩐지 오싹 랭기가 온몸을 감싸는것같았다. 곁에 앉은 권철웅과장선생도 몹시 긴장한듯 주먹을 쥐였던 손을 풀었다가는 다시 감아쥐군 하였다.
그가 기타를 훌륭히 연주해내겠는지 불안하였던것이다.
그러나 영순은 기타를 원만하게 연주했다.
공연의 절정을 이룬 녀성독창과 합창 《사랑하노라》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영순은 간주에서 기타로 멋진 독주를 펼쳐보이였다.
몇달전까지만 하여도 손목을 잘리울 운명에 처하였던 자기를 불행에서 건져주고 청춘의 꽃송이로 활짝 피여나게 하여준 조국에 다함없는 감사의 노래를 드리는것이였다.
나는 저도 모르는사이에 입속으로 노래를 따라불렀다.
따뜻한 정 넘치여 화목한 보금자리, 그 품을 위해 나의 정성, 나의 삶을 깡그리 기울이고싶은 열렬한 충동이 내 마음속에서 솟구치고있었다.
권철웅과장선생도 손수건을 눈가에 가져다대며 마음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듯싶었다.
(청진시 청암구역 인곡2동 40인민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