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2(2023)년 제2호에 실린 글
수 필
우리집 가풍
백 경 송
정월대보름을 앞둔 어느날 그렇듯 화목하던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큰소리가 울려나왔다.
방안에 매달아놓았던 메주덩어리가 끝내 사달이 난것이다. 방안을 정돈하던 어머니가 화려한 가구옆에 볼품없이 매달려있는 메주덩어리들을 베란다로 《추방》시킨것이다. 그 메주덩어리들은 할머니의 창조물이였다. 이것을 안 할머니가 어머니를 나무라며 큰소리를 쳤다.
《영성이 에미야, 그래 너에게는 번쩍번쩍한 가구만 귀하구 메주덩어린 귀하지 않다는거냐? 그러면 못쓴다.》
할머니는 몹시 섭섭해하였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마음을 눅잦히려고 애써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어머니, 오늘 영성이 아버지직장에서 사람들이 온다는데 농촌집처럼 흙덩이같은걸 집안에 매달아놓으면 영성이 아버지체면이 뭐가 되겠어요? 그리구 방안냄새도 좋지 않은데…》
《아서라, 영성이 애비도 내가 빚은 메주장을 먹구 이만큼 자랐다. 그래 메주냄새가 어떻다는거냐?》
할머니의 섭섭한 마음은 노여움으로 바뀌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할머니의 노여움을 리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머니, 메주장은 상점에서도 파는데 부디부디 집에서 고생스럽게 빚을 필요가 뭐예요? 지금 문명의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아세요?》
《그만해라. 영성이 에미는 확실히 변질된것같구나. 내 오늘 말 좀 하자. 넌 문명이라는 뜻을 잘못 리해하는것같다. 그래 값진 물건이나 차리구 사는게 문명인줄 아니? 문명도 우리 민족의 우수한 풍습을 고수하고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빛이 나는거야. 그래서 국풍이란 좋은 말도 나온거구…
그런데 너에겐 그 메주덩이가 흙덩이처럼 보였단 말이지.》
나는 고급중학교졸업을 앞둔 오늘까지 이렇게 엄한 할머니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이런 할머니를 모시고있는것이 여간 긍지스럽지 않았다.
《어머닌 뭐예요? 락후하게, 할머니말씀이 전적으로 옳지요 뭐.》
나는 어머니가 너무도 뒤떨어진 사람처럼 보이는게 가슴이 아파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학교로 나왔던것이다.
그날 저녁 우리 집에 왔던 아버지직장사람들이 우리 집에 매달아놓은 메주덩이들을 보며 여간 부러워하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때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웃음속에 자기비판을 했더라는것이다.
할머니도 웃으며 어머니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주었다고 한다.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충격이 컸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풍습을 고수하고 빛내여나가는것을 우리집 가풍으로 되도록 하려는 할머니의 말씀은 자기의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나의 뼈와 살속에 다시금 깊이 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