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0(2021)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실화소설

 

자기를 믿으라

최정희

제 1 회

 

《그래, 끝내 가겠다는거요?》

정수는 관리위원장의 서늘한 눈길을 피해 고개를 외로 숙이며 대답했다.

《예, 더는… 여기에 못 있겠습니다.》

《왜? 원인이 뭐요?》

리용남은 속타는 마음을 터쳐놓으며 큰소리로 다우쳐물었다.

《아무래도 전… 여기가 몸에 맞지 않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다구? 동무의 기술이 목재가공에 맞지 않으면 식료가공에 맞는단말이요? 허허, 참. 난 동무의 그 기술이 아까와 그러오.》

그는 답답하다는듯 눈귀를 쪼프리고 입술을 실룩거리였다.

《어디에 가든 여기보다야 못하겠습니까?》

그 말에 용남은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말았다.

《좋소, 가겠으면 가오. 동무의 발목은 묶어놓는다 해도 마음이야 어떻게 묶어놓겠소. 하지만 명심하오. 우리가 잘살 때에는 다시는 오지 마오. 하긴 동무자존심이 그걸 허용하겠소?》

그 말에 정수는 한풀 꺾이웠는지 뻣뻣하게 쳐들었던 머리를 숙이며 《어쨌든 결심했으니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는 들어올 때처럼 씽 바람을 일구며 나갔다.

정수가 일으켜놓은 바람은 금시 용남의 얼굴만이 아니라 심장까지 선득한감을 느끼게 했다. 그가 이상하게 생각한것은 지금까지 내재되여있던 감정들이 왜 자기가 온 다음에야 폭발하는가 하는것이였다.

오늘도 이러저러한 리유로 출근하지 못한 사람들이 몇명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무엇때문일가?

이곳으로 배치되여온지 열흘밖에 안되는 기간에도 그는 조합을 위해 할수 있는껏 다했다.

새로운 희망을 안고온 신임관리위원장을 맞이한 조합의 실태는 한심했다.

형식상계획수행이나 겨우 하고있는 형편이였다. 지난 세기 50년대에 건설한 자그마한 단층건물이 비좁고 불편한데다가 수십년전의 설비들로 만들어낸 제품들은 정밀도, 정결도가 보장되지 못해 구매력을 잃고있었다.

이 모든것들은 리용남의 마음을 자못 한산하게 하였다.

지금 형편에서는 전망은커녕 현존유지도 하기 힘든 형편이였다.

방도는 무엇인가?

생산을 활성화하자면 당장은 성능이 높은 설비들이 있어야 하였다.

그는 현대적인 수입설비들을 체결해볼 작정을 하고 어느 한 무역기관의 해당부서를 찾아가게 되였다.

부서책임자는 50대 중반의 나이지숙한 녀인이였는데 맹산에서 왔다는 리용남의 말을 듣자 은테안경너머로 그를 유심히 건너다보았다.

《맹산이요? 산골에서 왔구만요.》

녀인은 맹산이 눈앞에 보이는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설비들을 신청하러 왔단말이지요. 어디 명세표를 봅시다.》

책임자녀인은 용남이 내미는 명세표를 들여다보며 평면조각기, 문판포장기, 광폭연마기… 하고 기계설비들의 이름을 쭉 불렀다.

《음- 이거 굉장히 비싼것들이군요. 값이 간단치 않겠는데… 알아봅시다.》

녀인은 한참이나 전화를 하였다.

책임자녀인은 상대방이 부르는 가격에 혀를 차며 그것을 용남에게 알려주었다.

용남의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이렇게 비싸단말입니까? 이건 너무 엄청나지 않습니까?》

《이건 보통이예요. 수입산이야 늘쌍 그렇게 비싼걸요. 그래도 가져가겠습니까?》

할수 없지, 설비들만 좋다면 그 값은 얼마든지 뽑아낼수 있어.

그는 신심있게 대답했다.

《가져가겠습니다.》

이번에는 책임자녀인의 눈이 커졌다.

《정말이예요?》

《정말입니다.》

《이건 책임적이여야 해요. 한가지 묻자요. 혹시 그 설비들로 생산을 해서 값을 들여놓자는건 아니겠지요?》

용남은 바로 그렇게 하자는것이라고 대답했다.

《안돼요. 그건 믿을수 없어요. 2년이 걸릴지, 5년이 걸릴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책임자는 단호히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방법으로 해봅시다. 그만한 값에 해당한… 산골군이니 산나물이야 많겠지요?》

산나물이라… 그는 제꺽 속궁리를 해보았다. 대충 계산해보아도 산나물 수십톤이라는 수자가 나온다. 화물자동차로 수십대의 분량이다. 아니, 그건 어방도 없는 일이다.

《산나물은 안되겠습니다.》

용남은 풀기없이 중얼거렸다.

《그럼 강냉이는요?》

《지금 우리 군의 식량사정도 긴장합니다. 그것도 안되겠습니다.》

《그럼 뭘로 담보한다는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조합에 어떻게 값비싼 설비들을 주겠나요?》

녀인은 쓰거운듯 입을 쩝쩝 다시였다.

《그만하자요.》

그는 손을 홰홰 내저으며 사업수첩을 탁 덮어버리였다.

리용남은 그 순간 형언할수 없는 수치심과 모멸감에 모닥불을 뒤집어쓴것처럼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뭐? 빈털터리? 분했다. 그러나 그 분격을 터뜨릴수 없는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그게 바로 엊그제 있은 일인데 오늘은 기계기사인 정수까지 저렇게 나오니 온몸의 힘이 아래로 빠지는듯한 느낌이였다.

리용남은 어둠이 진하게 발린 창문가로 다가갔다.

칠흑같은 어둠장막이 꽉 들어찬 창밖에서는 철웅산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우- 우- 하고 소연한 소리를 내지르며 기승을 부리고있었다.

그는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창밖의 어둠속을 응시하며 뿌리라도 내린듯 오래도록 서있었다.

《똑똑!》 어둠속의 숨가쁜 정적을 깨치며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 그의 풀기없는 목소리에 이어 문이 열리더니 군당책임일군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 이거 관리위원장이 완전히 칠칠야밤속에 빠졌구만, 응?》

《아니, 이 밤중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리용남은 제꺽 전등을 켜고 황황히 그를 맞아들였다.

책임일군은 짐짓 엄한 기색을 띠웠다.

《내 오늘 관리위원장한테 채찍맛을 좀 보이자구 왔소. 그래 무역기관에 동냥하러 갔다가 쪽박까지 깨고 왔다면서?》

《예, 맹산이 어디에 붙어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러 간것부터가 어리석었습니다.》

《관리위원장동무, 힘들지? 힘들거요. 당비서도 없는 때에 혼자서 속썩일 일이 많겠지.》

그의 목소리는 무척 부드럽고 살틀하게 울리였다. 그 몇마디의 말이 얼마나 용남의 가슴을 찌르르 울려주는지 불시에 코마루가 찡해오고 눈시울이 화끈 달아올랐다.

《힘들다, 힘들다 해도 이렇게까지 막막한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전 자신이 없습니다.》

마지막말은 입속에서 새여나온듯 간신히 뜨직뜨직 흘러나왔다.

《음-》 괴롭게 표정을 이그러뜨리는 책임일군의 얼굴에 실망과 노여움이 진하게 비꼈다. 

자신이 없단말이지, 난 그래도 동무를 믿고 왔는데 이렇게 나약한줄은 몰랐소. 관리위원장답지 않아. 전쟁로병들인 아버지,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리용남이답지 않단말이요.》

《아니, 저…》

《내 말을 막지 마오.》 그는 오른손을 쳐들어보이며 뭔가 말하려고 하는 용남을 제지시키였다.

《문제는 동무에게 신심이 없는거요.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단말이요. 자신도 믿지 못하는 동무를 누가 도와준단말이요?

관리위원장동무, 이런 때일수록 사람들을 믿고 그들에게 의거해야 하오. 그들도 다름아닌 우리 맹산사람들, 어버이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고 분발해서 우리 고장을 꽃피는 맹산으로 온 나라에 소문을 낸 전세대들의 피를 물려받은 맹산사람들이란말이요.》

리용남은 그의 열정에 넘친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을 귀가 아니라 심장으로, 온넋으로 새겨듣고있었다.

그랬다. 용남은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 그리고 조합원들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그러다나니 나약해지고 고민하는가 하면 때로는 큰소리를 치기도 하였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책임일군이 사뭇 활기띤 음성으로 말하였다.

《동무에게는 힘이 있소. 사람들을 불러일으켜 침체상태에 빠져있던 사업소를 활력있게 만든 풍부한 경험이 있고 바람벽도 문이라고 차고나가는 투지가 있소. 가장 중요하게는 동무에게 전쟁로병들인 부모들이 물려준 정신이 있고 완강한 기질이 있다는거요.》

용남은 펀뜻 머리를 쳐들었다.

전세대들이 물려준 정신과 기질!

용남은 입술을 깨물고 두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기어이 우리 조합을 우뚝 일떠세울테다. 다른 길이란 없다. 오직 제힘을 믿는 길! 조합원들을 굳게 믿고 설비현대화를 기어이 실현해야 한다!

비장한 각오와 결심이 새겨진 리용남의 어글어글한 두눈에서 섬광과도 같은 강렬한 빛이 뿜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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