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0(2021)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한 당원에 대한 이야기

 

박경희

(제 1 회)

 

마가을의 쌀쌀한 바람은 한정없이 광숙의 살폭을 뚫고 들어왔다. 추위에 몸을 옹송그리면서도 광숙은 딸애 생각에 추위를 느낄수 없었다.

현정이가 무사히 피했을가.… 제발 무사했으면…

마가을의 밤은 정처없이 깊어갔다. 어제 아침까지만 하여도 광숙은 자기가 이렇게 놈들의 손에 잡히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전쟁은 마을사람들을 판가리싸움터의 주인공들로 내세웠다. 마을녀맹위원장을 하는 광숙은 전선으로 떠난 남편을 대신하여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집일은 물론이고 마을의 크고작은 일들을 일일이 주관해야 하였다. 무너진 철다리를 다시 복구한지 하루도 못되여 후퇴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러나 선뜻 발걸음을 떼게 되지 않았다. 길옆에 자리잡은 광숙의 집으로 무시로 군인들이 들이닥치군 하였는데 그들에게 도중식사도 준비해주고 길안내도 하여야 했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어왔는데 어제부터는 더는 들어오는 군대들도 없어 산에 피신시켰던 아이들을 데리고와서 차비를 하고 부랴부랴 걸음을 재우쳤다. 군당에서는 한알의 쌀도 적들에게 내여주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식량을 약속된 지점에 묻고 따라오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때는 모두가 후퇴길에 오른 뒤여서 누구도움을 받을데도 없었다. 광숙은 적지 않은 식량을 매몰하고 표식까지 하였다. 그리고는 딸애에게 말했다.

《현정아, 여길 기억해라.》

그러나 꼬부고개에 못미처 그만 《치안대》놈들에게 잡히고말았다. 그새 마을에서는 보이지 않던 놈들이 어느새 《치안대》완장까지 두르고 뻐젓이 나타났던것이다. 위급한 속에서도 광숙은 날쌔게 딸애를 잡관목속에 밀어던지며 다급하게 말했다.

《현정아, 그 쌀을 꼭…》

그리고는 아들애를 움켜안았다. 현묵이는 어둠속에서 와그르르 나타난 놈들에게 놀랐는지 울음도 못 터뜨리고 어머니의 목에만 바싹 매달렸다. 현물세창고로 끌려온 광숙은 모진 고문을 받았다. 다 피신해가고 창고에 잡혀온 사람들은 몇명 안되였는데 그나마 늙은이들이였다. 놈들은 빨갱이년을 잡았다고 환성을 올렸다. 그런데 더욱 놀란것은 광숙이였다. 《치안대》의 무리들속에 끼여있는 서진구를 알아보았던것이다. 그가 어떻게 《치안대》에 들어갔을가?

남편이 사람구실 시켜보겠다고 무던히도 애썼는데…

광숙의 눈빛에서 심상치 않은것을 느낀 서진구는 선뜻 앞에 나서지 못하고 뒤에서 우물거렸다. 대장놈은 그것이 눈에 거슬린듯 비린청을 내뱉았다.

그는 바로 서진구의 배다른 형인 서덕구놈이였다. 해방전에 지주아들로 흔들대며 이복동생인 서진구를 본척도 하지 않더니 어떻게 서진구를 앞세우고 여기까지 나타났다. 서진구는 녕변벌의 지주인 애비가 첩을 얻어 낳은 아들이였다. 그의 어머니는 서진구가 세살잡히던 때 그만 본처의 등쌀에 못이겨 자살하고말았다. 해방이 되자 이집저집의 눈치밥을 먹으며 자란 서진구에게도 논밭 삼천평이 분여되였다. 제 땅이 생기니 그럭저럭 농사를 짓게 되고 해방 이듬해는 비록 박색이기는 하나 색시도 얻었다. 그러나 제 어미를 닮아 인물이 녀자처럼 곱살한 서진구는 늘 박색인 안해가 마음에 없어 곁을 잘 주지 않았다. 그때문에 안해가 늘 눈물로 베개잇을 적시군 하였다. 서진구는 못난 애비때문에 제대로 덕을 보지 못하고 못난 녀자가 차례졌다고 늘 불만이였다. 그러던 서진구가 갑자기 노름판에 말려들면서 더욱 달라졌다. 쩍하면 읍거리에 나가 무슨 장사를 한답시고 돌아치고 그러다가는 밑천을 다 부려먹고 빈털터리가 되여 나타나군 하였다. 그리곤 안해를 구슬려 돈을 마련해가지고 또 달아나군 하고… 그러다가 불쑥 죄인이 되여 나타났다. 로동당원들을 살해하려고 창과 칼을 벼리던 강달수의 실토에서 서진구의 이름도 나왔던것이다. 사실 그때 서진구는 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강달수의 꾀임에 속아 강달수를 따라다녔던것이다. 세포위원장을 하던 광숙의 남편이 보안서 걸음을 많이 하였다. 그후 서진구는 그 일이 고맙다고 몇번이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천성은 어데 가지 못하는지 착실히 발을 붙이고있지 못하고 늘 돌아치기만 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순간에 서진구를 변화시켰다. 서진구의 배다른 형인 서덕구가 군 《치안대》대장으로 서진구의 앞에 척 나타났던것이였다. 어렸을 때 첩년의 자식이라고 무수히도 발길질을 해대더니 낯짝이 두껍게도 동생을 찾았다고 살가운 아양을 베풀었다. 《치안대》완장을 둘러준 서덕구는 서진구에게 빨갱이들을 잡아죽여야 한다고, 빨갱이 한놈이라도 잡으면 그것이 공으로 된다고, 그러면 전쟁이 끝나고 남으로 데리고가서 아버지의 재산을 갈라주고 한밑천 잡을 돈도 줄테니 여기서 함께 일해보자고 구슬렸다. 그가 말하는 빨갱이란 로동당원들을 의미했다. 그 순간 서진구는 생각이 달라졌다. 가슴속 깊은 곳에 응어리졌던 앙금이 서서히 풀리면서 머리를 휘저었다. 그랬다. 나도 아버지의 피를 받은 자식이다. 일이 제대로 되려면 아버지옆에 나도 있어야 하고 재산도 형만큼 꼭같이는 못 가져도 어느정도는 차례져야 했다. 그런데 첩의 자식이라고 어려서부터 눈치밥을 먹어야 했고 온갖 설음을 밥그릇에 말아먹어야 했다. 자기도 아버지따라 서울로 갔으면 이렇게 손바닥에 흙을 묻히며 아글타글하지 않아도 되였으리라.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좀 갈라가지고 따로 내 기업을 편다면 지금 사는 박색과는 갈라지고 인물곱고 몸매빠진 춘향이같은 녀자를 다시 색시로 삼을수 있으리라. 이래저래 뼈대가 굳지 못한 서진구는 형의 달콤한 약속에 넘어가 곧 마을로 돌아와 《치안대》를 무었다. 돈에 열이 뜬 서진구는 닥치는대로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늙은이면 늙은이, 아이면 아이, 병신이면 병신…

그런데 닥치는대로 잡아가둔 사람들중에 신통히도 빨갱이는 한명도 없었다. 하긴 후퇴하라는 지시가 떨어진지가 언젠데 여적 집에 박혀있을 놈은 없지만서도 그래도 미친년 달래캐듯 돌아치느라면 뭐든 한놈 걸리겠지 하고 애쓴 덕인지 새벽녘에 덜컥 빨갱이 한명을 체포해왔다. 굴러온 호박이라고 쾌재를 올리며 잡아온 빨갱이를 보자고 마주하니 왜서인지 오금이 저려났다. 그는 다름아닌 자기를 친형제처럼 돌봐준 세포위원장댁이였다. 동네에서 곁을 잘 주려고 하지 않을 때 광숙은 선뜻 소겨리에도 자기를 넣어주고 봄철부터 가을까지 자기 집일을 도맡아해주었다. 비록 못생긴 녀자지만 부모없이 먼 친척네 집에 얹혀살던 녀자와 혼례를 주관해주었다. 서진구가 그런대로 5년세월 살수 있은것은 광숙이네 내외와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었다. 전번에 강달수때문에 잡혔을 때에도 그의 남편은 서진구가 감형을 받도록 해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쯤 목없는 귀신이 되여 청천강기슭에 묻혔을지도 모른다. 서진구의 생각은 몹시 착잡해났지만 그것도 순간이였다. 사실이 그랬다면 어드랬단말인가. 만약 해방이 되지 않았더라면 나도 지주인 아버지의 땅을 갈라가졌을것이고 그러면 공화국치하에서처럼 뼈빠지게 일하지 않아도 될것이며 못생긴 박색을 얻지도 않았을것이다. 해방전에 비록 눈치밥을 먹을지언정 굶지는 않았으며 천대를 받을지언정 손이 닳도록 일을 하지는 않았다. 사람은 환경동물이라고 환경이 조성되는데 따라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변하는것이다. 형의 말마따나 나는 이래저래 공화국치하에서는 살기 힘든 존재이다. 그럴바엔 차라리 형의 말대로 빨갱이를 하나라도 더 잡아족치고 그 대가로 돈이나 챙겨가지고 아버지가 가있는 서울에 가서 장사나 하는 수다. 그러니 어제날의 은인이였다면 어쨌단말이야. 내가 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저년을 구슬려 남편이 간 곳이나 하다못해 그놈들이 감춘 식량매몰장소라도 알아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형에게 떳떳하고 후날 서울에 가서도 한몫 단단히 챙길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광숙이의 서느러운 눈빛도 태연하게 받을수 있었다. 이 세상에는 더러 이 서진구처럼 자기를 위해준 은인도 몰라보는 후안무치안도 있는것이다. 놈들은 서진구의 령으로 광숙의 몸을 란탕치기 시작했다.

당원증을 내놓아라, 쌀을 어디에 감추었느냐, 남편이 간곳을 대라…

무지하고 란폭한 몽둥이세례가 광숙을 쓰러뜨렸다. 한동안이 지나자 그놈은 지금까지 미친 승냥이처럼 날구뛰던 기질은 어데 숨겼는지 광숙이의 앞에 나서서는 신사연하였다.

《어떻소, 아주머니?》

놈들의 험한 매질에 온몸이 쑤셔난 광숙은 눈도 떠지지 않았다. 그래도 세대주가 위해주는 사람이라고 올적갈적 드나들며 신세를 입을적엔 늘 고마와하는 눈치더니 이 전쟁통에 아예 딴사람이 되였다. 서진구, 이놈,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더니 네놈이 그런놈일줄이야…

그러거나말거나 서진구는 광숙이의 눈치를 슬슬 엿보며 달라붙었다.

《나도 이러고싶지 않수다. 헌데 어찌겠소? 이 공화국에선 더 살수 없는걸…》

순간 광숙은 기척없이 감고있던 눈을 번쩍 떴다. 저 개같은 주둥이에서 감히 공화국소리가 나오다니?!

광숙은 혼신의 힘을 모아 벼락같이 소리쳤다.

《이놈아! 그래 공화국이 너에게 땅을 안주더냐 밥을 안주더냐. 그래도 사람답게 살라고 채찍질해준게 누구게 감히 네 입에서 그 소리가 나온단말이냐? 더러운 놈. 현묵이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거다.》

순간 서진구는 몸을 움츠리였다. 보이지 않는 칼날이 뒤덜미를 치는듯한 섬찍한감을 느꼈다. 그것은 광숙의 무서운 눈빛이였다. 광숙은 정말 분했다. 저런놈을 사람구실시켜보겠다고 애아버지가 걸음을 얼마나 하고 품을 얼마나 들였던가. 그러나 더 놀라운것은 서진구의 소리였다.

《아, 그랬지.… 그 공화국이 나에게 땅도 주고 집도 주었지. 비록 못생기긴 하지만 색시도 얻어주고…》

서진구는 잠시 명상에 잠긴듯 두눈을 감았다. 그러던 서진구는 별안간 불쑥 눈을 부릅뜨더니 발을 구르며 비린청을 내뱉았다.

《그러나 난 분하다. 정말 분하단 말이야. 난 내 땅에서 거렁뱅이 네년놈들이 뚱땅거리며 사는게 늘 분해서 죽겠단 말이야. 이래뵈도 난 이 벌의 작은 주인이야. 그런데 네놈들은 내 땅에서 한푼도 소작료를 바치지 않고 5년세월 고스란히 배를 불리웠지. 난 그걸 보면서 분한걸 겨우 참았어.…》

서진구는 으드득 이발까지 갈았다.

《그래서 이젠 도루 찾자는거다. 몽땅, 깨끗이, 말짱하니 말이다.…》

서진구는 또다시 미친듯이 광숙이를 들이패기 시작하였다.

광숙은 또다시 정신을 잃고말았다.…

서덕구는 서진구를 불러앉히고 흡족하여 칭찬하여마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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