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0(2021)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한 당원에 대한 이야기

 

박경희

(제 2 회)

 

《정말 잘했어. 이제 보니 너는 우리 서씨가문이 틀림없다. 응 흐흐흐…

오늘일을 우에 말씀 잘 올려 내 너를 크게 표창하겠다.》

서진구는 갈쑴한 얼굴에 챕챕한 눈을 크게 뜨며 서덕구를 쳐다보았다.

《형님 그게 정말이유?》

서덕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런데 그년이 악종이여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으니…》

그 말에 서진구는 대번에 시래기상이 되였다. 형의 말대로 쌀을 감춘 장소를 알아냈나, 로동당원들이 간 곳을 알아냈나, 정말이지 자기만 목청을 돋구었지 별로 소득이 없었다. 게다가 잡아들인것들이 전부 병신 아니면 늙다리들인데 그걸 아무리 실적이라고 개여올려야 믿지 않을것은 뻔했다. 어쩌다 잡았다는 빨갱이년도 입을 다물고있으니 참 속상한 일이였다.

두놈이 골을 맞대고 술잔만 들여다보고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졸개 한놈이 풀메뚜기마냥 불쑥 뛰여들어왔다.

《뭐야?》

《대장님, 새끼빨갱이년을 잡았습니다요. 이년이 도망가는걸 겨우 붙잡았습니다요, 헤헤헤…》

두놈이 동시에 불에 덴놈처럼 일어났다. 뒤따라 일여덟살쯤 돼보이는 처녀애가 끌려들어왔다. 그애는 자기가 어디에 잡혀온줄도 모르고 서진구를 보자 눈을 반짝이였다.

《진구아저씨…》

비록 옷이 덞기는 했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기를 똑바로 쳐다보는 처녀애의 입에서 불쑥 자기 이름이 나오자 서진구는 흠칫 놀랐다. 그것도 순간이였다. 서진구는 그애가 바로 광숙의 딸인 현정임을 알아보았던것이다.

(엉?! 이게 웬 떡이야, 광숙이년을 태를 치지 못해 안달이 났는데 난데없는 먹이감이 나타나다니!)

서진구와 서덕구의 눈은 재빨리 맞춰졌다.

《야, 저년을 가둬.》

벼락같은 호령에 칭찬으로 술 한잔쯤 기다렸던 졸개들이 무줄해서 줄레줄레 쓸어나갔다. 서덕구의 얼굴에 징그러운 웃음이 피여올랐다.

《흠, 이젠 됐다. 아이새끼가 둘이니 한놈은 죽여도 돼. 애새끼만 있을 땐 그를 죽이면 에미는 더 바랄것이 없으니 굴복시킬수 없을테지만 이젠 저년이 돌아왔으니 애새끼를 죽여보자. 어미란놈이 애새끼를 죽여놓고도 딩딩해서 날뛰는지 한번 보잔말이야.》

서덕구의 말에 서진구는 맞장구를 쳤다.

《옳수다.》

둘은 잠시 탁우에 놓인 술고뿌만 내려다보았다. 그 시각 서덕구의 생각은 착잡했다. 김광숙이 이년, 네년이 그렇게까지 속이 빨간 빨갱이가 되였단 말이지.… 시내에 나가 공부한답시고 흔들대다가 방학때가 되면 친구들을 데리고 묘향산구경을 오던 그때 본 광숙은 늘 주접이 든 모습이였다. 그런 년이 이젠 녀맹위원장에 빨갱이년이 되였으니 세상이 바뀌여도 정말 분수가 있지 도무지 참을수가 없었다.

서덕구는 더욱더 이발을 사려물었다. 그래 그년을 죽여야 한다. 죽여도 빨갱이가 된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하고 죽여야 한다. 그러자면 애새끼를 먼저…

광숙이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창고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져있었다. 광숙은 아들애를 안아주고싶었으나 놈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내려 팼는지 팔을 전혀 쓸수 없었다. 배고프다고 칭얼대던 현묵이도 이젠 지쳤는지 발치에 엎드려 잔다. 자면서도 무엇이 서러운지 흑흑 흐느꼈다. 광숙은 불시에 자기가 애들을 미리 피신시키지 못한 죄책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애들만 아니라면 그까짓 《치안대》 몇놈쯤은 단숨에 메칠 자신이 있는 광숙이였던것이다.

덧옷을 추려서 아들에게 씌워주면서도 광숙은 현정의 행처를 걱정했다.

잠시후 광숙의 앞에 서진구가 나타났다. 입에서 물씬 술내를 풍기는 그놈을 마주하는 순간 광숙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서진구는 술김이 잔뜩 서린 긴 한숨끝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욕많이 했겠수다.》

객적은 수작에 광숙은 쪼프린 미간을 풀고 서서히 그놈을 주시했다.

《나도 할수없어 그랬시다. 생각해보슈. 아주머니야 누구보다 날 잘 알지 않소? 그래서 내 형님께 말씀올렸더니 아주머니가 쌀 감춘 곳만 대주면 얼마든지 살려주겠다지 않소. 그래서 이렇게 왔수다.》

이렇게 말한 서진구는 잠시 광숙의 눈치를 살피는지 힐끔 광숙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광숙이의 번쩍이는 눈빛과 마주친 서진구는 다시 눈길을 아래로 떨구며 아닌보살하였다. 아무리 낯가죽이 두터운 놈이기로서니 감히 주제넘게 사람을 생각해주는 소리를 꺼내자니 저로서도 낯이 간지러웠으리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허나 어찌겠수, 사람이 살고봐야 할게 아니요? 더군다나 지금같은 시기에 그까짓 쌀 몇가마니 없다고 아주머닐 죽이기야 하겠소? 이 전쟁시기 별의별 일도 다 있을라니 그래 그 쌀 몇가마니와 생명하구 바꾸겠소? 그러니 고집부리지 말구 어서 실토하우다. 그러면 아이들과 함께 무사히 나가도록 내 도우리다. 어떻소?》

광숙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저런놈을 사람이라고 믿고 도와주고 채찍질해주고… 광숙은 입이 쓰거워 두눈을 아예 감아버렸다.

《그러나 내 말을 안 들으면 이제 어떻게 되나 보슈? 자식들 걱정을 해야지요?》

이번엔 억양부터 달랐다. 개주둥이에서 더러운게 나오지 다른 소리가 나올리 만무했다.

그러나 광숙은 놈들이 자식들을 가지고 무서운 도박을 하려 한다는것을 깨닫지 못했다. 서진구는 광숙이가 녀자이기때문에 자식의 운명을 걸고 결코 도박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자기 에미처럼 덜컥 이 세상에 나를 낳아놓고는 본댁의 시살을 받기 싫다고 자살한 녀자도 있지만 자기는 죽어도 자식만은 살리려는것이 녀인의 본능인것이다.

그러니 광숙이에게 자식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위협만 하면 얼마든지 쌀 감춘곳을 알려줄것이다. 그렇게만 되면야 어제처럼 악청을 돋구며 소리치지 않아도 광숙이년을 꿇어앉히게 되리라. 더우기 광숙은 나이에 비해 자식을 늦게 본 녀자라 누구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강했다. 농사일은 물론이고 읍으로 회의를 갈 때도 늘 잔등에 자식을 혹처럼 달고다녔다.

녀자에게서 최대의 약점은 자식이라는것을 서덕구가 튕겨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서진구는 광숙이의 자식들을 놓고 흥정을 하리라 결심했던것이다. 더우기 세살잡이 현묵이는 광숙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귀중한 존재이다. 자식은 또하나의 자기라고 하지 않는가! 서른이 넘어 본 늦자식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진대 그를 죽인다고 위협하면 제깟년이 어디라고 버티여내.… 이 모든것을 한마을에서 산 서진구는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쌍년, 누가 이기나 보자. 아마 내 말을 안들은것을 후회하게 될걸…

광숙은 놈들의 이 음모를 다는 몰랐다. 다만 현정이가 무사히 피하기만을 간절히 바랄뿐이였다. 그의 랭담한 처사는 서진구를 분별을 잃게 했다.

《쌍년, 그래도 좀 안다고 사정을 좀 봐주려고 했더니… 야, 그년을 끌어와. 네년이 얼마나 견디나 보자.》

광숙이 앞으로 꽁꽁 묶이운 현정이가 끌려왔다. 아니, 저애가?!…

《이년아, 이래도 버틸테냐. 네년이 그렇게 나오면 네 애새끼들을 하나하나 잡아치울테다.》

서진구는 이발을 사려물고 덤벼들었다.

《엄마야-》

아츠러운 채찍소리보다 현정의 목소리가 광숙의 가슴을 찢었다. 엄마에게 가겠다고 발버둥치는 현정이를 보는 순간 광숙은 그만 자기가 지금껏 버티여온 지탱점이 무너짐을 느꼈다. 현정이가 잡히다니?!… 어쩌다 잡히였단 말인가. 자기는 모진 고통을 당해도 현정이만 무사하면 되리라고 생각했던 광숙은 자신의 생각이 매우 단순했음을 느꼈다. 놈들이 자식의 운명을 걸고 자신과 흥정하려들자 광숙의 두눈은 스르르 감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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