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0(2021)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한 당원에 대한 이야기

 

박경희

(제 4 회)

 

날이 밝자 놈들은 아예 애들을 꽁꽁 묶어 광숙의 품에서 떼여내고 쌀 감춘곳을 대라고 했다. 안대면 아이들을 죽이겠다는것이다.

순순히 응하라, 만약 쌀 감춘 곳만 대면 네 목숨도 아이들도 살려주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오늘은 아들애를 래일은 딸을 죽이겠다.… 모레는 네년도 죽일것이다. 눈앞에서 자식들의 죽음을 보고도 견디나 보자.…

쌀이 아무리 귀하기로서니 자식보다 중한가. 눈앞에 두 아이가 왕왕 울어댄다. 우릴 살려달라고, 엄마가 우릴 살릴수 있다고… 엄마에게 가겠다고 발버둥친다. 철모르는 애들앞에서 광숙은 그만 자신을 잃고말았다.

《이놈들아, 애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느냐. 당장 풀어놔라,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

광숙의 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광숙이가 증오에 차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며 서진구와 서덕구는 깨웃음을 쳤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것이 어머니라고 누가 말했던가. 아니다. 그 어머니도 자식의 아픔앞에선 더없이 약해지고 무력해진다. 모성애를 가진 녀성이 자식의 죽음앞에서 어찌 쓰러지지 않을수 있으랴. 그러니 저년도 이젠 필경 비밀을 터놓을것이며 자식들을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할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쌀도 빼앗고 저년도 죽일것이다. 빨갱이가 된것을 두고두고 원망할것이다.

그랬다. 광숙은 그 어떤 고문도 회유도 다 이길수 있지만 아이들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이 마당에선 정녕 자신을 이길수가 없었다.

이애들이 어떤 애들인가.

해방된 조국땅에서 조국이 없고 나라가 없는 설음을 모르고 자란 행복동이들이 아닌가, 더욱더 찬란할 래일에 주인으로 역군으로 자라나 행복을 누려야 할 애들이 아닌가! 그런데 애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죽인단 말인가. 몸부림치던 광숙은 자신이 묶인 몸으로 옆에 선 《치안대》놈을 들이받았다. 닁큼 놀란 그놈이 덩달아 장작개비로 광숙의 정수리를 내리쳐서 광숙은 그만 기절하고말았다. 아이들은 엄마의 그 모습을 보고 더욱 기를 쓰고 울어댔다. 놈들은 광숙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

귀전에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그래 쌀을 내놓겠느냐, 아이들을 죽이겠느냐.… 광숙은 소스라치듯 일어났다. 눈앞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바줄에 묶이운채로 울고있었다. 철없는 아들애의 맑은 눈빛이 이 엄마를 쳐다보고있다. 자기들을 그토록 사랑하는 엄마가 왜 오늘은 이렇게 무맥하게 보기만 하는가고 서러움에 찬 시선으로 보고 또 보았다. 자기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자기들은 엄마와 헤여질수 없다고… 광숙은 또 하나의 자기자신인 자식들의 불행앞에서 멍하니 실성한 사람처럼 쳐다보기만 하였다. 너무도 기운을 뽑아 눈뜰 기력조차 없는 광숙은 모든것을 체념한채 스르르 눈을 감았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붉은피가 눈두덩이에 맺혔다. 불쑥 안겨오는 모습, 이럴 때 남편이 있었으면 뭐라고 대답해줄것인가. 만약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불현듯 당원증을 수여받던 날이 생각났다.

…광숙의 가정은 지지리 천대받던 쟁인바치의 집안이였다. 해방전에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가마도 때주고 호미면 호미, 낫이면 낫을 벼려주던 아버지는 그야말로 못해본 일이 없이 살았다. 식구 일곱을 먹여살리느라 그야말로 손이 발이 되고 발이 손이 되여 모지름을 썼으나 죽도 변변히 차례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광숙이가 열살이 넘었을적엔 일제의 등쌀에 깊은 산골에 들어와서는 아예 그곳에 주저앉고말았다. 부모가 물려준것은 남정들 못지 않은 체구여서 광숙은 부모님들을 도와 밤낮으로 일했다.…

해방은 어제날의 지지리도 못살던 광숙에게 희망의 봄을 안겨주었고 고마운 나라를 위해 힘껏 일해온 그에게 녀맹위원장의 중임을 맡겨주었다. 광숙은 힘든줄 모르고 일했다. 세포위원장인 남편도 집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힘껏 도와주고 몸이 불편한 시부모님들도 아예 아이 둘을 전적으로 맡아주었다. 그 과정에 그는 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다.

당원증을 수여받던 날 광숙은 끝없이 울었다. 당원증을 수여받고 돌아오던 길에 반동놈들의 칼에 숨진 아버지가 생각나서 더욱 울었다. 해방된 땅에서 마음껏 농사짓는것이 너무도 꿈같아 밤낮으로 벌에 나가 사신 아버지, 마을에서 제일 나쁜 땅을 골라 가지고 등이 휘고 허리가 휘도록 열심히 일하여 제일 많은 소출을 내고 그것을 나라에 바친 아버지.

현물세를 바치고 돌아오던길에 분여받은 밭에 들렸던 아버지는 반동놈들에게 무참히 살해되였다. 뒤늦게 달려간 광숙에게 아버지는 피묻은 당원증을 넘겨주었다.

《놈들이 날보고 빨갱이라고…》

《아버지-》

해방된 조국땅에서 토지를 분여받은것이 너무도 기뻐 밤낮으로 밭에 나가사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빨갱이가 되였다고 놈들에게 생죽음을 당한것이였다.

《좋은 세상이구나. 사람값에도 들지 못하던 내가 로동당원이 다 되구… 광숙아, 이 당원증을 꼭…》

피묻은 당원증을 넘겨주고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죽어도 반동놈들에게 빼앗기지 않은 붉은 당원증이였다.…

나도 당원이다. 너희들을 구원한다고 해도 당원의 명예에 오명을 쓴 이 엄마를 너희들은 두고두고 후회하며 살것이다. 그러니 절대로… 얘들아, 이 엄마를 용서해라.… 광숙은 차마 어린 자식들의 맑은 눈동자를 마주볼수 없었다. 광숙은 눈도 뜨지 않은채 서서히 도리머리를 저었다. 안된다. 죽어도 쌀 감춘 곳만은… 내 생은 빼앗을수 있어도… 광숙은 마지막기운을 모아 소리쳤다.

《이놈들아, 차라리 나를 죽여라-》

《지독한 년.》

서덕구는 꼬나물었던 담배대를 뽑아던지고 입술을 사려물었다. 빨갱이 빨갱이 해도 정말 지독스러운 빨갱이년이다. 끝끝내 쌀을 감춘곳을 대지 않는 저년의 가슴팍에 무엇이 들어있기에 저렇게 악질인가! 어디 보자 이년, 빨갱이가 된걸 두고두고 후회해라.

서덕구는 권총을 쥔 손아귀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아츠러운 총성이 창고안을 흔들었다.

동시에 현묵이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그쳤다.

현정의 울음소리도 멎었다. 광숙의 눈앞에서 방금까지 울던 현묵이가 맥없이 털썩 넘어졌다. 그의 가슴에서 붉은피가 스며나와 옷자락을 적셨다. 광숙이도 쓰러진 현묵이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서서히 쓰러졌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슬픔이 또다시 그의 온몸을 훑으며 지나갔다. 다시는 안아볼수 없는 내 아들 현묵아, 행복한 세상에서 부럼없이 살기 바란 이 엄마의 소원을 너는 이루지 못하고 갔구나.

《현묵아-》

피절은 웨침이 현물세창고안을 즈렁즈렁 울렸다. 그토록 사랑스럽던 아들애, 누나와 잠자리에서 이 엄마품에 먼저 안기겠다고 싱갱이질하던 그 젖내나는 아들애의 체취를 다시는 느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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