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0(2021)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한 당원에 대한 이야기

 

박경희

(마지막회)

 

그러나 광숙은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쓰러질수 없었다. 아직은 하지 못한 일이 그를 일으켜세웠다. 그것은 그 누구도 알수 없는 오직 광숙에게만 있는 깊은 사연이였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해방된 이듬해 광숙이네 마을에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함께 오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를 만나뵈왔을 때의 그 심정이 오늘도 피방울처럼 온몸을 감돌았다.

해방된 조국땅에서 우리 녀성들도 주인이 되여야 한다고 친히 보고문을 쓰는 방법도 가르쳐주시고 학습과 강연회를 자주 조직하여 녀성들을 묶어세울데 대한 귀중한 조언도 주신 김정숙녀사를 만나뵙던 그날이 이밤 못견디게 그리웠다. 해방전에 두 언니와 어머니를 잃은 광숙은 홀아버지와 세 동생을 거느리면서 마음속은 늘 혈연의 정을 그리워하였다. 남자로 태여나지 못한것을 한스러워하며 일도 부디부디 골라 험한 일을 하여 다소나마 아버지에게 기쁨을 주려고 애쓰던 세월에 응어리졌던 괴로움이 김정숙녀사의 품에서 다 풀렸다. 녀자로 태여난것이 늘 한스러워 아버지가 할 일, 남자가 할 일을 골라가며 하여 《사내번지기》로 소문났던 자기에게 녀성들도 민주조선건설에 한몫을 하도록 떠밀어주고 내세워주신 녀사이시였다. 광숙은 그이를 만나뵈온 산골마을의 첫 녀맹위원장으로서 늘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그러한 광숙이였기에 아들애를 잃고서도 넘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수 있은것이였다. 서덕구는 물론 한마을에서 산 서진구도 광숙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이 생각을 전혀 알수 없었다.

광숙은 천천히 일어나 머리를 비다듬었다. 희미하게나마 비쳐지는 달빛에 광숙의 처참한 모습은 성한 사람의 눈빛으로 보기에는 무척 무서웠다. 어린 현정이도 선뜻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만 보았다. 광숙은 그제서야 현정이를 생각했다. 동생의 생죽음과 고문의 후과로 엄마처럼 안겨오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서 현정은 퍽 조숙해진듯싶었다. 광숙은 조심히 현정이를 품에 안았다. 하루밤새 까칠해진 딸애의 얼굴을 쓰다듬고 손빗으로 머리매무새를 바로잡아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일들을 조용히 귀띔하여주었다.

《현정아, 너만은 꼭 살아서 큰아버지를 찾아가야 한다.》

현정은 군당위원장을 큰아버지로 불렀다.

현정은 말없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다음… 큰아버지를 만나서 꼭 엄마가 쌀 감춘 곳을 알려줘야 한다.》

광숙은 잠시 머뭇거렸다. 현정은 엄마의 모습에서 무엇인가 비장한것을 느꼈다. 아무말없이 엄마가 시키는대로 또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엄만요?》

자기가 할 일은 알만한데 앞으로 엄마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물음이다.

《나?》

순간 광숙은 대답이 나가지 않았다. 이제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가. 자기가 어떻게 되리라는것은 너무도 명명백백한 사실이지만 그것을 일일이 딸애에게 설명해주자니 말이 선뜻 나가지 않았다. 광숙은 한동안 맑은 딸애의 눈빛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현정아, 한번 웃어봐라.》

난데없이 웃어보라는 엄마의 말에 현정은 말끄러미 광숙을 쳐다보았다.

광숙이 먼저 웃음을 지었다. 놈들의 채찍에 맞은 볼편이 몹시 아파났지만 그래도 웃어보였다. 그제서야 현정이도 방그레 웃었다. 티없이 맑은 웃음이 광숙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다시는 볼수 없는 딸애의 모습을 오래오래 망막에 새겨두려는듯 광숙은 한참동안이나 딸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 현묵의 모습이 겹쳐졌다. 순간 꽃망울도 피지 못한채 이 엄마를 탓하며 쓰러졌을 현묵의 생각에 눈물이 쿡 솟았다.

《현정아-》

광숙은 말없이 한번 더 딸애를 꼭 그러안았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더는 딸애에게 보여주고싶지 않았다. 이제 현정이가 크면 이 엄마의 속을 다 알리라. 사랑하는 자식을 잃으면서도 왜 쌀 감춘 곳을 지켜냈는지.…

현정아, 부디 무사해야 한다. 이 엄만 비록 죽어도 너에게 모든 희망과 꿈을 얹어보낸다.

행복한 세상에서 부럼없이 살 때 이 엄마를 그리고 너의 외할아버지를 잊지 말고 추억해다오, 무엇때문에 목숨을 서슴없이 바쳤는가를.…

광숙은 저고리안을 뜯어내여 바줄을 꼬기 시작했다. 현정의 가슴을 바줄로 동이고 뙤창으로 현정이를 올려밀었다. 뙤창은 높았으나 광숙은 있는 힘을 다하여 현정이를 올려버티였다. 현정은 드디여 밖으로 나왔다. 아직은 모든것이 어둠속에 있기에 현정이와 광숙의 모든 행동을 감싸줄수 있었다.

광숙은 멀리로 조심히 타박타박 멀어지는 딸애의 발자국소리를 온 신경을 다해 들으며 천천히 한숨을 내쉬였다. 이제는 모든것이 무사할것이라는 안도감에서 나오는 한숨이였다.

그리고는 놈들앞에 떳떳이 나섰다. 죽어서도 로동당원의 신념을 버리지 않은 긍지로 하여 광숙의 얼굴에는 평온이 깃들었다.…

현정은 어머니의 부탁을 안고 산으로 뛰였다. 이 땅에 원쑤들이 물러가고 꼭 밝은 미래가 오리라는 희망을 안고 현정은 멀리멀리 엄마의 소원을 안고 가고 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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