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0(2021)년 제1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아름다워지라
리 명 순
(제 1 회)
새해가 밝아오고있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집무탁우에 놓여있는 시계를 보시였다.
그이께서 우리 조국의 력사에 특기할 사변으로 아로새겨진 2012년을 보내고 2013년의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인민들에게 신년사를 하실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있었다.
그이께서는 가슴속에 차오르는 격정을 누르시며 집무탁우에 가득 쌓인 문건들의 맨우에 놓여있는 편지 한통을 펼치시였다.
어느 한 인민군부대에서 복무하고있는 중대장이 보낸 편지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유선암에 걸렸던 어머니가 소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밤을 생각하고생각하던 끝에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 편지를 올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깊은 감회에 잠기신 시선을 창가로 돌리시였다.
(유선암에 걸렸던 어머니란 말이지.…)
한 작곡가가 암이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차를 세우셨던 눈내리는 령길이 떠오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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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는 굽이굽이 뻗어간 산발들이 흰눈의 장막속에 잠겨 어슴푸레 바라보이는 령정점에 멎어섰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읽으시던 문건을 밀어놓으시고 당중앙위원회 일군인 문종성을 바라보시였다.
《부부장동무, 수고스러운대로 처음부터 다시 말해주시오. 작곡가선생이 어떻게 되였다구요?》
먼길을 가셔야 할 그이께서 차를 세우도록 하신데 당황해진 문종성은 당혹감으로 하여 처음보다 더 힘들게 말을
이어나갔다.
《CT검사와 초음파검사에 의하면… 유선암으로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환자는 누가 찾아가도 창작실에서 나오지조차 않는다고 합니다.》
《…》
그이께서는 차창밖에 시선을 주시였다.
어스름이 깔린 길우에 흰눈송이들이 펑펑 내리고있었다. 그 눈송이들사이로 힘겹게 걸어가는 한 녀인의 모습이 금시 보이는것만 같으시였다.
그이께서 녀성작곡가의 건강상태에 대해 주의를 돌리신것은 지난해말부터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잃은 피눈물의 아픔으로 온 나라가 몸부림치던 그 나날 그이께서는
영결식장에서 쓰러진 사람들중에 녀성작곡가도 있다는 보고를 들으시고 회복정형에 대해 물으시였었다.
그때로부터 한달 남짓한 기간이 지나도록 몸을 추세우지 못하고있는것이 마음에 걸리시여 며칠전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시면서 문종성에게
녀성작곡가의 종합검진을 부탁하셨다.
결과는 너무도 뜻밖이였고 엄청난것이였다.
(유선암이란 말이지.… 유선암!…)
그이께서는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속에 들어앉는것만 같으시였다.
마음같으시여서는 이길로 차를 몰라 평양으로 달려가고싶으시였고 녀성작곡가도 만나고 의사들과 직접 이야기도 나누고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여 천천히 눈우를 거닐기 시작하시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치료대책을 세워야겠는데 아직은 누구도 이렇다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있지 않는가.
장군님 생각이 간절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생전에 녀성들의 유선종양에 대해 한두번만 말씀하지
않으시였다. 세계의학계에서는 유선종양을 발병률이나 사망률에 있어서 제일 첫번째 악성종양으로 보고있으면서도 아직까지 그 발병을 억제하고 완전히
없앨수 있는 똑똑한 치료대책을 완성하지 못하고있다고 하시면서 평양산원에 유선종양과도 내오도록 하시고 그 분야의 의학과학자양성에도 직접 관심을
돌리시였다.
생애의 마지막시기에는 평양산원에 녀성들의 유선질병들에 대한 예방과 치료, 과학연구사업을 전문적으로 진행할수 있게 꾸려진 현대적이며 종합적인
의료봉사기지를 건설할것을 구상하시고 형성안과 설계를 직접 보아주시며 많은 심혈을 쏟아부으시였다.
장군님과의 영결식이 진행된 후 그이께서는 문종성을 비롯한 해당부문 일군들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아주신 유선종양과 관련한 의료봉사기지건설문건들에 대해 상기시키시였다.
그런데 무엇때문인지 아직도 건설은 시작되지 못하고있었다. 물론 힘들것이다.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데다가 이미 시작한 건설대상들도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아니, 아니다! 장군님께서는 나에게 모든것을 맡기시였는데…
그이께서는 한걸음 또 한걸음 걸으시였다.
언젠가 그이께서는 인민군부대를 시찰하시다가 어느 한 젊은 중대장에게서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으시였다. 군관학교를 마치고 소대장으로 갓 배치되여왔을 때 그는 훈련중 심한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였었다. 소식을 듣고 불원천리 찾아온
어머니는 아들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였다.
다리는 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하는 경우 영예군인으로 제대되여야 한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온밤을 고민하더니 의사들을 찾아갔다. 다음날
의사협의회가 다시 열리고 수술을 하지 않는 방향에서의 진지한 토의가 진행되였다. 협의회에서 새롭게 토의된 치료방법은 환자의 강한 인내성과 의지를
전제로 하는것이였다. 그후 어머니의 뜨거운 지성과 엄격한 타이름, 꾸준한 노력으로 아들은 끝내 자기의 혁명초소에 다시 설수 있었다.
바로 그 훌륭한 어머니가 암에 걸리다니.…
생각을 이어가시던 그이께서는 쏟아져내리던 눈발이 갑자기 걷히워지는것을 느끼시고 시선을 드시였다.
활짝 펼쳐진 큰 우산과 그것을 들고 선 문종성을 보신 그이께서는 서둘러 우산대를 쥐며 말씀하시였다.
《왜 그렇게 멀찍이 서서 그럽니까. 제곁으로 바싹 들어오십시오.》
문종성은 죄책감이 어린 목소리로 조심히 말씀올리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무능하여 치료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솔직하면서도 고지식한, 그래서 잘못에 대해서는 지나치다 할 정도로 허심한 문종성의 인간미를 다시금 엿보게 되시는 그이의
안색은 저으기 밝아지시였다.
그이께서는 문종성의 팔을 끼시며 차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이제 부부장동무는 곧장 평양으로 떠나시오. 평양산원 유선종양과 과장동무는 장군님께서 직접 임명하시고 키워주신
유능한 의사입니다. 그 선생을 만나 작곡가선생의 치료대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논해보시오.》
이렇게 말씀하시던 그이께서는 문종성의 얼굴을 바라보시였다.
《이런 궂은 날씨에 먼길을 되짚어보내자니 내 마음도 좋지 않습니다. 생각같아서는 이길로 동무와 함께 가고싶지만 긴박한 일정으로 시간을 낼수
없어서 그럽니다. 문제는 꼭 고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는것입니다.》
《알았습니다. 그 뜻을 꼭 명심하겠습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문종성이 탄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내리는 길우에 서계시였다.
소리없이 내려쌓이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느라니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오시였다.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서
우리 장군님 그리도 즐겨맞으시던 흰눈, 그 길에서 태여난 흰눈철학은 또 얼마나 눈물겨운 헌신의 세계였던가.… 언젠가
머나먼 전선길에서 돌아오신 장군님께서는 인민의 사랑을 받는 한 녀배우가 유선암치료에서 차도가 없다는것을 아시고는 온밤
잠을 이루지 못하시고 흰눈을 맞고맞으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눈내리는 령길을 천천히 거니시였다. 아득히 펼쳐진 굽이굽이 산들마다
그리움의 눈송이들이 하염없이 내리고내리는데 그이의 마음속에서는 은은한 노래소리가 조용히 울리였다.
따뜻한 깃을 찾아 새들은 가도
찬바람 부는 길을 처녀는 가네
그이께서는 눈을 한웅큼 쥐시고 지그시 힘을 주시였다. 잠간사이에 눈이 녹고 그이의 심중을
말해주듯 후더운 물김이 소리없이 날아올랐다. 노래소리는 계속 이어지며 그이의 마음속에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을 덧쌓아주는듯 하였다.
그 누가 내 마음 몰라줘도 몰라준대도
희망안고 이 길을 가고가리라
그이께서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아뢰시였다.
(장군님, 인민의 믿음과 기대속에 중임을 맡아안았는데 시련과 난관은 중중첩첩 가로막아나섭니다. 하지만 믿어주십시오.
저도 장군님께서 부르시던 이 노래를 언제나 마음속에 안고 인민의 충직한 아들로 살겠습니다.
조선의 혁명가로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던 인민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어디선가 기적소리가 울려왔다. 한평생 인민행렬차에 오르시여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으신 우리 장군님께서 그 기적소리와
함께 자신께로 마중오는것만 같으시였다.
차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시는 그이의 마음속에서는 노래의 선률이 계속 울리고있었다.
그날 2시가 지났을 때 김정은동지께서는 만수대언덕에서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을 정중히 모시기 위한 사업을 지도하고계시였다.
일군들과의 토의사업을 끝내시고 계단을 내려오시던 그이께서는 멀리 동평양쪽을 바라보시며 일군들에게 평양산원에 건설하게
되여있는 녀성들의 유선질병과 관련한 종합적인 의료봉사기지건설에 대해 물으시였다.
대답을 못드리는 일군들을 엄하게 보시던 그이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 탄생 100돐이 눈앞에 다가왔으니 할 일이 많은것은 사실입니다.
창전거리건설도 마감지어야 하고 이미 시작한 대상건설들도 완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건설을 아무리 많이 하고 창전거리를 아무리 잘 지어놓은들 거기에 녀성들의 웃음이 비끼지 않는다면, 행복에 넘친 인민들의
노래소리가 울리지 않는다면 그런 건설을 백번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나라사정이 어려운 때였지만 우리 녀성들을 위한 의료봉사기지건설을 발기하시고 많은 심혈을
기울이시였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그 건설의 건설주, 시공주가 될 결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