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0(2021)년 제6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나는 나팔소리를 듣는다

곽금철

(제 4 회)

4

 

어느덧 송향이가 소대에 온지 스물닷새째 되는 날이였다.

따따- 따따- 그날은 서툰 기상나팔소리가 울렸다.

밖에 나와보니 총일이가 나팔을 불고있는것이 아닌가.

앞에는 송향이가 서있다. 그는 마치도 악단의 지휘자마냥 두손을 높이 들고 열정적으로 휘저었다.

사람들은 막냉이의 희한한 발전에 저마끔 놀라와하였다.

《언제 나팔을 다 배웠어?》

《대단한데!》

이에 대해 누구보다 기뻐한것은 송향이였다.

《더 세게, 더 힘있게 불어야 해, 호흡조절을 잘하면서.》

그러던 송향이가 나에게 왔다.

《소대장동지, 대대에 좀 갔다오겠습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송향은 사연을 말하였다.

총일이에게 줄 나팔악보를 부탁했는데 오늘 가지러 오라고 했다는것이다.

《그렇게 하오.》

송향은 밤늦게까지 오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가?)

나는 걱정이 되여 마중을 나갔다.

십오리쯤 갔는데 손에 전지를 켜든 송향이가 오고있었다.

《아이, 소대장동지.》

송향은 반가와하며 달려왔다.

나는 그와 나란히 걸었다. 밤하늘에서는 배부른 달이 우리를 보고있었다. 송향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대장동지, 제 꼭 하고싶은 말이 있는데…》

《말하오.》

《앞으로 대학공부를 하십시오.》

《대학공부?》

《예, 소대장동지야 앞으로 더 큰일을 할수도 있겠는데 대학공부를 꼭 해야 해요.》

나는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발전소건설이 끝나면 그때에 생각해보지.》

송향은 곁에서 고개를 살레살레 저으며 나직이 말했다.

《너무, 지금도 늦었는데…》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요. 공사도 끝내지 못했는데 소대를 버리고 나 혼자 대학으로 떠나란 말이요?》

그러자 처녀도 열이 올랐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왜 그렇게만 생각합니까. 일하면서 배우는 원격교육체계가 있지 않습니까.》

말문이 막힌 나는 그저 묵묵히 걷기만 했다.

사실 대대장도 언젠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었다. 이런 충고는 혈육이나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해주기 힘든 말이다. 왜서인지 처녀가 점점 나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오는것 같아 나로서도 놀랍게 생각되였다.

내가 끌고가는것인지 아니면 처녀가 밀고가는것인지.

묵묵히 걷기만 하던 나는 소대병실이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 조용하나 힘주어 말했다.

《좋소, 내 꼭 대학공부를 하겠소.》

《아이참, 고마워요.》

처녀는 손벽까지 마주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언제부터 품고있던 호기심을 슬쩍 비쳤다.

《동문 어떻게 되여 나팔을 배우게 되였소?》

《사연이 있습니다.》

《사연?》

송향이는 걸으면서 이야기했다.

그가 가져온 신호나팔에는 깊은 사연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해주-하성철도공사장에서 처음으로 그 나팔을 불었고 또 그의 아버지는 청년영웅도로건설장에서 그 음을 이었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돌격대시절 그 나팔소리에 반하여 송씨집안문턱을 넘어섰다는것이였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당의 부름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한몸을 내댄 열혈청년들이였고 시대의 나팔수들이였다. 그 전통을 잇자고 오늘은 또 송향이가 청춘시절을 값있게 보내고있는것이 아닌가.

나는 그날 대끝에서 대가 나온다는 말이 정말 옳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송향이에게 진담절반 롱담절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팔만이 아니라 사랑도 그 전통을 이어갈거요. 그 나팔소리에 반하지 않을 총각이 어디 있겠소.》

《그럴가요?》

송향은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물었지만 나는 꼭 그렇다고 생각했다.

바로 내가 그 총각이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다.

알고나 있는가 처녀여, 나의 마음을… 지금껏 찾아헤매던 사랑의 주인공이 바로 그대인줄… 이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길이 끝이 없기를 바라며 한생 송향이와 함께 걷기를 소원하며.

내 이런 마음을 훔쳐보았던지 한동안 말이 없던 송향이는 소대병실앞에 왔을 때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정말 대대장동지가 래일은 소대를 다 데리고 대대로 오랍니다.》

나는 걸음을 뚝 멈추었다.

《그건 왜?》

《래일은 일요일이구 체육의 날이니 대대체육경기에 참가하래요. 아침일찍 차를 보내겠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송향을 보았다.

《다른건 다 자신있는데 탁구만은…》

《탁구요?》

《그렇소. 그 3소대장때문에 탁구는 매번 지거던.》

《탁구경긴 제가 나가겠습니다.》

한껏 눈을 치뜬 나는 송향에게 다가들었다.

자신있소?》

처녀는 달빛속에서 두눈을 빛내였다. 문득 자신이 한줌의 연기로 되여 처녀의 그 그윽한 눈안으로 빨리워들어가는듯 한 환각까지 들었다.

《걱정마십시오!》

처녀는 이 말을 다음날 체육경기에서 현실로 펼쳐보이였다.

송향이와 대대의 탁구선수 3소대장과의 경기는 처음부터 치렬하였다.

온 대대, 더우기 우리 소대는 숨을 죽이고 보다가 송향이의 멋진 깎아치기가 성공할 때마다 《야!》 하고 탄성을 질렀다.

탁구에선 제노라던 3소대장도 송향이에게 손을 들고말았다.

우리 소대는 종합 1등을 했다.

나는 눈굽이 뜨거워났다.

송향이가 온 다음부터 소대에는 학습열풍, 독서열풍, 체육열풍이 휩쓸었고 매일 기적과 랑만이 쌍둥이처럼 붙어다녔다. 일만 일이라고 하던 대원들도 짬만 있으면 기술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론쟁을 벌렸다.

나도 달라졌다. 더우기 나의 가슴속에 사랑이라는 꿈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아름답구나, 우리의 청춘은!》

나는 시인이나 된듯이 이렇게 웨쳤다. 이것이 송향이에게 하는 고백의 전주곡이였다. 그런데 그가 나를 만나지도 않고 사라졌다. 나팔만을 댕그라니 남기고 떠나간것이다. 그럴걸 왜 왔댔는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번 들었다.

사랑이 돌아앉으면 증오가 된다더니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서슴없이 《도주자!》라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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