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6(2007)년 3월 8일 《청년전위》에 실린 글

 

로동속에서 아름답게 피여 향기풍기는 처녀

평안북도청년돌격대 선천군대대 대원 김복순동무에 대한 이야기

 

우리의 생활속에 로동처럼 영예롭고 보람차며 긍지높은 일은 아마도 없을것이다. 그래서 일이 곱고 일이 사랑이라는 말도 생겨나고 로동은 노래이고 기쁨이라는 정서깊은 노래도 나온것이다.

오늘 우리가 온 나라에 소개하려고 하는 태천4호청년발전소 건설에 참가하였던 평안북도청년돌격대 선천군대대 대원인 김복순동무가 바로 노래의 주인공들처럼 로동속에서 기쁨을 찾고 로동에서 행복을 느끼며 로동으로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사는 아름다운 처녀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사람의 참다운 인생은 로동으로 시작되고 로동속에서 빛납니다. 로동관은 인생관과 밀접히 결합되여있습니다.》

사람의 됨됨 다시말하여 인간의 아름다움은 결코 인물이나 차림새, 돈이나 재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로동에 대한 관점과 태도, 로동생활을 통하여 평가되고 결정지어지는 법이다.

20대시절을 마무리해가는 김복순동무는 한생을 로동속에서 살아오는 평범한 로동자의 가정에서 맏딸로 태여났었다.

아버지가 혁명가라고 하여 자식들도 저절로 혁명가가 되는것이 아닌것처럼 로동자의 가정에서 태여났다고 하여 절로 근로정신이 깃드는것도 결코 아니다.

복순동무가 로동을 자랑이라면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자랑, 행복이라면 이 세상에서 제일 큰 행복으로 가슴에 소중히 새겨안은것은 그가 중학교졸업을 앞두고있던 어느해인가 비가 억수로 쏟아져내리던 날이였다. 그날도 날이 다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우산을 들고나섰던 복순동무는 공장구내에 들어서기 바쁘게 멎어서고말았다.

남들이 다 퇴근해들어간 그때까지도 아버지가 혼자서 억수로 쏟아져내리는 그 찬비를 다 맞으며 마당에 쌓아놓은 원료와 자재무지들에 비물이라도 새여들세라 손질하고있는것이였다.

아버지가 맡은 일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였다.

언제 보나 네일, 내일을 가리지 않고 궂은 일을 탓하지 않으며 그저 일손을 잡고있어야만 마음이 편안해하고 싱글벙글 웃기도 하는 아버지의 진심은 무엇일가.

복순동무가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며 언제부터 알고싶었던 그 사연을 물었을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지내보면 어떤 사람들은 식량을 제일 귀중히 여기는가 하면 또 돈이나 재산을 그 우에 올려놓는 사람들도 더러 있더라.

복순아, 사람들이 귀중히 여기는 그 모든것들은 다 로동을 통해서 마련되는것들이란다. 그러니 로동이야말로 재부라면 우리 생활에서 제일 큰 재부이고 기쁨과 행복이라면 비길데 없는 기쁨이고 행복이 아니겠니.》

복순동무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의 그 말마디들을 정으로 쪼아박듯이 가슴에 새겨넣었었다.

로동을 기쁨과 행복의 샘줄기로 간직한 복순동무였기에 그는 로동을 그처럼 사랑하는것이고 로동이라면 궂은 일, 마른 일, 어려운 일, 힘든 일을 가리지 않고 뛰여들어 온몸을 땀으로 적시군 하는것이였다.

복순동무가 청년돌격대복을 입고 태천4호청년발전소 건설공사를 하고있던 때였다. 그때 복순동무가 속해있는 선천군대대는 주로 언제성토공사를 맡아하였었다.

맞들이와 질통으로 산골짜기를 통채로 가로질러 막아야 하는 언제성토공사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수십kg이나 되는 마대나 질통을 지고 하루 100번이상씩 그것도 걷는것이 아니라 《결사옹위》, 《결사관철》구호를 힘차게 부르며 온종일 달리고나면 억대우같은 남자들도 침실에 쓰러지군 하였다.

하지만 복순동무는 체격도 그리 크지 않은 연약한 처녀의 몸이였지만 착공의 첫날부터 완공의 날까지 3년동안 단 하루의 결근도 없이 공사장에 달려나와 질통을 지고 달리였다.

잔등이 벗겨져 질통을 질수 없게 되면 그는 맞들이에 흙을 듬뿍이 담아들고 달리고 손바닥에 난 물집들이 터져 맞들이조차 들기 어려울 때에는 수십kg이나 되는 마대를 끌고달리였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그의 몸은 늘 땀에 젖어있었다.

누가 시켜서만 하는 일이라면 연약한 처녀가 어떻게 그처럼 어려운 애로와 난관들을 뚫고나갈수 있으며 의무감 하나로서야 어떻게 한두달도 아닌 3년동안을 하루같이 무거운 흙짐을 지고 달릴수 있었겠는가.

그도 일하면 힘이 들고 힘이 들면 하루라도 쉬고싶은 생각이 드는 평범한 처녀였다.

하지만 그 무슨 힘이 연약한 처녀를 남자들도 손을 드는 맞들이전의 《명수》, 《힘장사처녀》로 키워준것인가.

복순동무가 다문 하루동안이라도 쉬면서 치료를 받으라는 지휘관의 명령을 몇번이나 어긴 《죄》로 공사장에 나갈수 없다는 엄한 《처벌》을 받고있던 때였다.

(공사장에는 비록 나가지 못한다고 해도 일손까지 놓을수는 없다. 부업지에 나가 남새라도 가꾸어 돌격대원들의 식탁을 푸짐하게 해주자.)

그때부터 복순동무는 아예 부업지에 나가 살다싶이 하면서 남새를 가꾸었다. 온종일 뙤약볕이 내려쪼이는 포전에서 김을 매다나니 그의 입술은 다 터갈라지고 손바닥은 물집투성이로 되군 하였다. 그 아픈 상처를 손수건으로 싸매주며 눈물을 삼키는 동무들에게 복순동무는 《오늘의 일이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이제 발전소건설이 끝나고 불밝은 창가마다에서 울려나올 행복의 웃음소리를 먼저 그려보세요.》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우리 오늘의 난관을 보기전에 먼저 래일의 기쁨과 행복만을 생각하며 공사기일을 하루라도 앞당깁시다.》

이런 티없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인생관, 로동관을 인생의 비길데 없는 값진 재부로 간직한 복순동무였기에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로동속에 살고 로동으로 청춘시절을 빛내여가고있는것이다.

 

본사기자   오  경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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