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원칙성과 자주적립장을 지니시고

 

일대 민족적경사로 뜻깊게 맞이할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95돐을 앞두고 조선혁명을 언제나 승리와 영광의 한길로 이끌어주신 수령님의 빛나는 혁명력사와 불멸의 혁명업적을 돌이켜볼 때마다 우리는 수령님께서 비타협적인 혁명적원칙성과 드팀없는 자주적립장을 지니시고 다홍왜회의에서 우리 혁명앞에 가로놓인 엄중한 난관을 타개해나가시던 력사의 이야기가 되새겨져 가슴뜨거워옴을 금치 못한다.

다홍왜회의, 그 회의가 아로새겨진 력사의 갈피를 조용히 번지기만 하여도 조선혁명이 영영 주저앉고마느냐, 아니면 역경을 맞받아나가느냐 하는 그 준엄한 판가리결전장이 눈앞에 선히 안겨온다.

그때의 형편은 참으로 험악하고 어려웠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먼후날 그때를 잊지 못해하시며 다음과 같이 회고하시였다.

《우리는 사고와 실천에서 자주성에 대한 옹호를 생명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환경에서나 맹호가 되고 우뢰가 되여야 하였다.》

이 말씀에서 알수 있는것처럼 우리 수령님은 조선혁명을 구원하고 민족해방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의 길에서 추호의 동요나 양보도 모르시였다.

사실 다홍왜회의가 열릴 당시의 정세는 매우 험악하였다.

그때 항일혁명의 견실하고도 끌끌한 력량과 지도핵심들은 대부분이 동만에 있었다.

바로 이 새 세대 혁명가들이 당조직과 유격구의 인민혁명정부들, 대중단체들에서 핵심으로 활약하고있었다.

그런데 좌경기회주의자들과 그에 추종한 종파사대주의자들은 동만에서 활동하던 조선의 혁명가들에게 《민생단》의 감투를 씌워 혁명대오에서 제거하려고 비렬하고도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이들은 동만에 있는 조선사람들의 70%, 조선혁명가들의 80~90%가 《민생단》이거나 그 혐의자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들고나오면서 수많은 혁명가들을 처형하거나 혁명에서 손을 떼게 만들었다.

일제의 문건에서조차 《민생단》이 겨우 7~8명이였다고 기록되여있는데 권력욕에 환장이 된 《숙반》의 집행자들은 그 7~8명을 색출해내려고 무려 2,000명의 자기편 사람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학살하였던것이다.

항일전쟁의 력사는 무수한 적과의 교전을 기록하고있지만 아무리 격렬한 전투에서도 20~30명씩이나 전사자를 낸적은 없었다.

그런데 동만의 유격구들에서는 《민생단》이라는 루명을 쓰고 하루아침에 20~30명의 혁명가들이 무리죽음을 당하군 하였다.

수많은 무고한 조선의 혁명가들과 애국자들을 반《민생단》투쟁이라는 미명하에 잔인하게 학살한 《숙반》의 좌경화는 말그대로 터무니없는 정치적폭행이였으며 높은 직권을 가진 사람들이 보다 낮은 직권을 가진 사람들을 소멸하기 위한 공개적인 정치쿠데타였다.

조성된 정세하에서 극좌경에로 치닫는 반《민생단》투쟁의 수레바퀴를 하루빨리 멈춰세우고 조선의 견실한 혁명가들과 애국적인민들을 위기에서 구원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실로 조선혁명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초미의 문제로 나섰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만원정기간에 만나신 병환으로 극도로 쇠약해지신 몸이였으나 혁명의 이 엄혹한 위기를 가시기 위하여 주체24(1935)년 2월 다홍왜회의에 참가하기로 결심하시였다.

반혁명분자들과 극좌적행동도 서슴지 않는 민족배타주의자들이 득실거리는 회의마당에 단신으로 나선다는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사색이 되여 앞길을 막아나서는 전우들에게 동무들, 이 길은 죽든지 살든지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길이다, 내가 만일 다홍왜로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멸을 가져올뿐이다, 우리앞에는 조선혁명가들의 운명을 구원하고 조선혁명을 위기에서 건질수 있는 가장 심각한 기회가 왔다, 대결은 피할수 없고 흑백은 반드시 갈라져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결연히 대사상전이 벌어질 다홍왜로 떠나시였다.

회의에 참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만에 있는 조선사람의 70%, 조선혁명가들의 80~90%가 《민생단》이거나 그 혐의자들이며 유격구가 《민생단》의 양성소라고 한 그들의 황당한 궤변을 단호히 론박하시면서 원칙적이고도 날카로운 투쟁을 벌리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떤 물질이든지 본래의 구성요소와 다른 요소가 80~90%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그 물질은 다른 물질로 변하게 된다고 하시면서 만일 동만에 사는 조선사람의 70%가 《민생단》이라면 로인들과 아녀자들을 제외한 조선족청장년들 전부가 《민생단》이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동만에서는 《민생단》이 혁명을 하고있으며 《민생단》이 자기 상전을 반대하는 혈전을 벌리고있다는것인가고 준절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과학적자료와 철의 론리로 좌경분자들에게 된 타격을 안기시였다.

민족의 자주성을 이 세상 정의중에서도 첫째가는 정의로 간주하시고 그것을 지켜 한몸 기꺼이 내대신 김일성장군님을 우러러 인민들은 경의와 지지의 마음을 모았고 좌경분자들은 기를 펴지 못하였다.

력사적인 다홍왜회의와 더불어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업적은 이뿐이 아니였다.

그 어떤 불의앞에서도 굽어들지 않으시고 온갖 역경을 맞받아 뚫고나가시는 백두산위인의 그 강인담대한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안겨온다.

다수민족만이 간부로 될수 있고 조선사람은 소수민족이기때문에 다수민족을 지도할수 없으며 더우기 조선혁명가들은 종파적습성과 동요성이 많고 반동화되기 쉽기때문에 간부로 될수 없다고 하면서 간부직에서 조선사람들을 모두 쓸어버린 좌경배타주의자들의 그릇된 행위를 준렬히 규탄하시면서 국적이나 소속, 인구의 다수를 간부선발의 기준으로 삼을것이 아니라 혁명에 대한 충실성과 능력을 위주로 하여야 한다고 원칙적인 투쟁을 벌리시던 위대한 수령님,

과거경력중에 민족주의운동에 참가한 사실이 있다고 하여 그런 사람을 종파의 아버지라거나 일본제국주의의 아들로 본다면 이것이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원래 민족주의의 리념적기초는 애국애족이라고 하시면서 민족주의라고 하여 덮어놓고 이단시 하지 말라, 민족주의가 부르죠아지의 사상적도구로 리용되지 않는 이상 그것을 무턱대고 배척할수 없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

조국과 인민을 위해 청춘도 생명도 웃으며 바쳐가는 열혈의 혁명가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서슴없이 학살하는 엄중한 범죄행위를 두고 그토록 격분해하시며 지금처럼 조선사람들을 배척하고 학대하는 길로 집요하게 나간다면 우리는 그러한 곁방살이를 더는 하지 않을것이라고 단호히 언명하시던 우리 수령님의 모습은 정녕 혁명가는 혁명적원칙성과 자주적립장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를 보여준 참으로 위대한 모습이였다.

력사는 20대 청년장군의 그 위대한 모습을 자기의 심장속에 뜨겁게 아로새겼다.

민족은 짓밟히는 겨레의 운명을 구원할 재생의 길, 승리의 길을 열어준 그 순간을 환희속에 맞이하였다.

허나 우리 수령님 좌절의 운명을 면치 못할번 하였던 조선혁명을 구원하시려 다홍왜에서 단신으로 싸우실 때 하루세끼 끼니를 콩죽으로 에우시였으며 수척해지신 몸도 돌보지 않으시고 집요한 좌경분자들과 대결하시였다는것을 아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많지 못하다.

우리 수령님은 한평생을 그렇게 사시였다.

력사의 모진 광풍이 휘몰아치고 혁명앞에 만난시련이 겹쌓일 때마다 오로지 혁명적원칙성과 드팀없는 자주적립장을 지니시고 그 모든 역경을 순경으로, 화를 복으로 전환시키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지니고계신 그 견결한 혁명적원칙성과 자주적립장이 안아온 조선혁명의 위대한 승리의 력사를 오늘은 백두의 선군령장 김정일장군님께서 굳건히 이어가신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시는 한 우리는 반《민생단》투쟁의 회오리바람이 몰아칠 때보다 더 모진 시련, 더 험난한 역경이 가로놓인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어떤 천하대적앞에서도, 그 어떤 봉쇄와 압력에도 드놀지 않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드센 배짱과 혁명적원칙성, 견결한 자주적립장이 있는 한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걸어온 혁명의 어제처럼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승리만을 떨쳐갈것이다.

 

 본사기자  임 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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