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111(2022)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제일 기쁜 날
현 주 봉
(제 1 회)
1
솔숲푸른 만경봉기슭에 아담히도 들어앉은 만경대혁명학원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같았습니다.
정교하게 꾸려진 문화회관에서는 원아들이 설명절을 맞으며 공연준비로 여념이 없었습니다.
무대에서는 지금 대군이가 공연의 첫 순서로 출연할 노래련습을 하고있었습니다.
누가 누가 날 보고 열두달중에
제일제일 기쁜 날이 언젠가 물어보면
나는 나는 목청껏 대답을 해요
…
《가만, 대군학생, 오늘 어떻게 된 일이예요? 어디가 아픈가요?》
명랑하던 그의 목소리가 목메인 소리로 울리여 음악지도교원이 묻는 말이였습니다.
《아닙니다.… 잘해보겠습니다.》
대군이는 몸가짐을 바로잡고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오늘은 어찌된 일인지 여러번 반복하여도 한절도 채 넘기지 못하고 노래는 멎고말았습니다.
《대군학생, 래일이 당장 설명절인데 공연의 첫 순서부터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밝은 양상의 노래를 정한건데 정말…》
교원은 지금 대군이의 마음속을 충분히 읽고있었습니다.
《한번만 더 해보겠습니다.》
《지금 대군학생에겐 한번 더 해보는것보다 마음의 준비가 더 중요한것같아요. 그동안 다른 종목들을 훈련하겠으니 대군학생은 내가 찾을 때까지 밖에 나가 자기가 제일 즐거웠을 때를 생각하며 휴식하세요.》
대군이는 하는수없이 무대밖으로 나오고말았습니다.
회관을 나선 대군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금방 폭설이라도 쏟아질듯이 무겁게 내리드리운 젖빛구름들은 가슴을 막 압박하는것같았습니다.
《무심한 너희들때문이야. 보기두 싫어. 썩 물러가라.》
먹구름을 향해 뾰족입술을 내밀어보이던 대군이는 저도 모르게 휘친하며 넘어질번 하였습니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찔했던것입니다.
이때 마침 누군가의 손이 그의 두눈을 감싸안았습니다.
《누군가 맞춰봐.》
변성된 목소리였습니다.
《충현아, 가만 좀 있어. 난 지금 막 눕고싶은 심정이야.》
《대군아, 너 왜 그러니, 응? 어디 아프니?》
충현이가 대군이를 부추겨 의자쪽으로 데려갔습니다.
《얼마전부터 이따금 눈앞이 캄캄해지며 모든것이 빙글빙글 돌아가는데 참 이상해.》
대군이는 눈을 감고 붕어입모양을 하고있었습니다.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겠니? 그러다 큰 병이라도 만나면 어쩔려구.》
걱정어린 충현이의 눈길이 대군이의 얼굴을 지켜보고있었습니다.
《아, 이젠 일없다. 이렇게 한참 있느라면 나아지겠지뭐.》
대군이의 깜또라지같은 눈에 다시 정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참, 너 이자 내가 뒤에서 오는걸 알고있었지.》
《야, 네 손등에 바른 옥도정기냄새나 없애고 올게지, 내가 발라주었었는데 그것도 모르겠니?》
대군이는 자기 손을 코에 가져다대며 발름발름 냄새맡는 흉내를 냈습니다.
《요 영특한것. 내가 너를 놀리려구 어디서부터 살금살금 힘들게 왔는지 알아? 에잇, 괜히 헛수고를 했네.》
충현이는 아쉬움의 눈길로 자기가 온쪽을 돌이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넌 어딜 가댔니? 네가 한발만 늦었어도 난 쾅 하고 넘어졌을지도 몰라. 정말 고마워.》
《어디 가긴, 너한테 왔지. 아하- 이 시간이면 우리 대군이한테 내가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사람이 되겠는데 하구 말이야.》
《거짓말.》
《해해, 사실은 너의 형님을 만났댔어. 그걸 알려주자고 왔댔지 뭐.》
《그래, 어디서?》
형님이란 소리에 대군이의 눈이 새별처럼 반짝거렸습니다.
대군이의 형 대선이는 학원 4학년생이였습니다.
지금 열병식훈련에 동원되여 얼마동안 보지 못한 형님이였습니다.
《어디긴 어디야, 여기 학원에서지. 우리 병실에 왔다가는걸 만났댔어. 네가 어디 있나 묻길래 여기라고 대주었는데 반대방향으로…》
충현이는 말끝을 얼버무렸습니다.
대군이의 형님이 자기네쪽으로 오는것을 발견하였던것입니다.
《에이, 속상해. 익살쟁이같은거, 빨리 말해.》
《저기 온다야.》
《엉? 정말이구나. 형님!》
대군이는 쏜살같이 달려가 형인 대선이의 목에 매달렸습니다.
《형 목부러지겠다. 우리 대군이 그새 잘 있었니?》
《나야 학원에 있는데 힘들게 뭐가 있어. 형이 훈련으로 힘들었겠지.》
《나도 이젠 단련돼서 일없어. 대군아, 우리 저기 가서 좀 앉을가?》
《그래.》
대군이는 형님의 손목에 동동 매달리다싶이 하며 휴식터의자에 가앉았습니다.
《형은 내가 얼마나 보고싶어했는지 알아? 내가 보낸 편지는 하나도 못받았나봐.》
《다 받았어. 보고싶다, 언제 오나, 그소리뿐인거.》
대선이는 말똥말똥 쳐다보는 대군이의 볼을 손으로 쓸어주었습니다.
《요 꼼통아, 네가 왜 보고싶지 않겠니. 꿈에서두 너를 봤지.》
《정말?!》
《응. 우리 대군이가 국제수학올림픽에서 특등의 영예를 지니는거랑 또 콤퓨터프로그람…》
《또, 또 하면서 우리 형님의 감화교양이 또 시작됐구나. 그렇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하고있어요, 형님이시여.》
두귀를 손으로 막은 대군이는 붕어입을 해가지고 말하였습니다.
그가 바라던 소리가 아니였던것입니다.
《대군아, 형이 목달개 달아줄가?》
《어제 바꾼건데 뭐.》
《래일이 설 아니니. 어서 벗어. 그동안 내 옷을 입고있어.》
대선이는 자기 옷을 벗어 동생에게 씌워주고 새 목달개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형은 왜 나만 만나면 목달개를 달아주려 하나?》
《응, 그건 목달개에도 그 사람의 정신상태가 반영되여있거던. 말하자면 목달개에 때가 끼면 요 머리속에도 때가 끼고 목달개가 반듯하지 못하고 우글쭈글하면 정돈되지 않은 그의 마음을 읽을수 있기때문이야.》
《목달개를 잘 달면 정말 그렇게 마음도 정돈될수 있을가?》
대군이는 아직도 무겁게 떠있는 구름들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대군아, 너 무슨 일이 있는게구나?》
《응, 있어. 래일 공연 첫 순서로 내가 〈제일 기쁜 날〉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눈물이 자꾸 나와서 오늘은 1절도 채 넘기지 못했거던. 정말 못부르겠어. 나때문에 선생님도 속상해하셔.》
대군이는 가느다란 숨을 내쉬였습니다.
그러는 대군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대선이는 그의 몸을 꼭 감싸안았습니다.
《대군아, 설명절을 맞는 원아들의 심정은 다 같애. 아버지
《응.》
대군이는 입술을 꼭 다문채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면 우선 네가 제일 기쁘고 좋았을 때를 생각하면서 노래를 불러. 그게 언제라고 생각하니?》
《으응, 이자 형님을 만났을 때.》
대군이는 두손을 모아쥐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아. 그럼 내가 항상 네옆에 있다고 생각하고 어디 한번 노래를 불러봐.》
《체, 아무데서나 하나? 창피하게.》
대군이는 부끄러운지 대선이의 팔을 잡아흔들었습니다.
《그러지 말아. 바늘에 찔리겠다.》
《형은 나를 만나면 목달갤 달아주는데 난 무엇을 해준다?》
《네가 뭘 할줄 안다구.》
《좋아, 난 형의 모표를 닦아줄테야. 언제나 모표의 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지켜보라구.》
대군이는 다짜고짜로 대선이의 모자를 벗기였습니다.
《그렇게 하렴. 언제나 멀리 있어도 반짝이는 별처럼 너를 지켜볼게.》
《우리 형님이 제일이야.》
대선이와 대군이는 서로 이마를 맞대고 힘껏 비비였습니다.
《다됐다. 어서 입고 이젠 회관에 들어가봐.》
대선이는 새 목달개를 단 옷을 대군이에게 입히고 쭉 훑어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머리를 끄덕여보였습니다.
옷매무시를 바로잡은 대군이는 《형, 나 들어간다.》하며 한쪽눈을 살짝 감아보이고는 껑충껑충 뛰며 회관으로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