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1호에 실린 글  

          

      ᆷ단편소설ᆷ

        

다    섯

 

                                         한    기    석

 

여름방학이 시작되여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몸집이 호리호리한 꼬마가 강기슭을 따라 슬슬 걸어가고있었다. 하얀 런닝그에 무릎이 드러난 남색 짧은 바지를 입은 사내애였다. 이름은 효명이, 소학교 3학년생.

그가 사는 마을은 기차길도 나지 않은 외진 산골이다. 그런데 요즘은 신문에도 크게 나고 털레비죤에까지 자주 비쳐져 유명짜한 고장으로 되였다.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발전소언제가 굉장하게 솟아오르고있는데 며칠전에 아버지장군님께서 몸소 건설장을 찾아주셨던것이다.

장난삼아 꺾어든 쑥대를 휘휘 저으며 걸음을 옮기던 효명이는 갑자기 말뚝처럼 서버렸다. 갸름한 얼굴에 오목하게 들어간 눈확에서 까만 동자가 뱅그르 돌았다.

반두질을 하는 한 아이를 띄여본것이였다.

효명이보다 키가 조금 큰애였다.

그애가 기슭에 놓인 종다래끼에 반두를 터는것을 보자 효명이의 깜장눈이 반짝 빛을 튕겼다. 뒤이어 발그므레한 입술이 나팔주둥이처럼 벌려졌다.

《형-》

효명이는 한달음에 달려가 코를 박을듯이 다래끼에 얼굴을 숙였다. 손바닥같은 붕어며 쏘가리가 여러 마리나 들어있었다.

《히야, 형, 많이 잡았구나. 어죽 쒀 먹자. 잉?》

효명이는 신이 나서 어깨를 실룩거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람. 효길이가 다래끼를 툭 나꿰채는것이였다.

《안돼.》

(엉?!…)

효명이의 눈은 금시 퉁방울처럼 되였다. 그러거나말거나 효길이는 목을 빼고 어디인가를 힐끗 바라보더니 반두와 다래끼를 든채 저 혼자 시적시적 걷기 시작한다.

효명이는 밸이 꿈틀거렸다. 중학생이 되였다고 으시대는걸가. 요즘은 별로 시뜩해하는 눈치다. 저녁이면 엉뎅이를 들썩거리며 맞붙어 팔씨름도 하고 잠자리에 나란히 눕던 사이같지 않다. 놀음놀이를 해도 중학생들끼리만 하고 어디를 가도 자기를 따돌려놓군 한다. 지금도 그렇다. 물고기잡이를 저 혼자서만 하다니.

겨우 두살 차인데. 그게 무슨 큰거라구.

효명이는 젖먹은 힘까지 다 짜내여 소리쳤다.

《형, 나빠, 어머니한테 대줄래.》

《뭐야?》

효길이가 도끼눈을 하고 돌아본다. 그러나 효명이는 한술 더 떴다.

《방학숙제두 안하구 물고기잡이만 했지. 이제 욕사발 먹지 않나 보라.》

《너 정말, 알지두 못하면서 까불래.》

효길이가 얼른 허리를 굽혔다. 아마도 돌멩이를 집어들려는 모양이다.

효명이는 혀끝을 쑥 내밀어보였다. 다음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놓았다.

 

×

 

이날 저녁.

효명이가 밥상앞에 나앉았을 때였다.

무우국에 시금치나물, 토장찌개…

어죽은커녕 물고기는 꼬랑지 하나 보이지 않는다.

효명이는 알고있다. 형에게 《생포》된 물고기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강가에서 《충돌》이 있은 뒤였다. 효명이는 먼발치에서 살금살금 효길이의 뒤를 좇았다. 마당안에까지 따라서지는 못하고 널담장 옹이구멍에 눈을 딱 붙이고 동정을 살폈다.

어느새 냄새를 맡았는지 알룩고양이가 《야웅, 야웅.》하며 효길이의 발치를 감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효길이는 본체도 안했다. 대가리하나도 던져주지 않은채 밸을 딴 물고기들을 쇠줄에 뀄다. 그리고는 굴뚝모퉁이로 돌아가더니 처마밑에 매다는것이였다.

(이상한데. 왜 저럴가?…)

효명이는 머리속에 이 생각 저 생각을 자전거바퀴처럼 굴렸다. 한참만에 고개를 끄떡했다.

(알만해. 또 바꿈질을 하려는거구나.)

효길이에게는 큼직한 마분지통 하나가 있다. 그 안에는 용수철, 은지, 납덩이, 파라핀… 별의별 잡동사니들이 다 들어있다. 그것들은 팽이나 제기, 참게… 이러루한것들과 바꿔 모아들인것들이다.

얼마전에는 어머니가 읍에 회의갔다가 사다준 삼각자를 무엇인가와 바꿨다가 단단히 꾸지람을 들었다. 농장의 모범선동원으로 신문에 사진까지 난 어머니를 노엽혔던것이다.

《난 다 알고있거던.》

효명이는 두눈에 이런 말을 담고 효길이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런데 효길이는 아닌보살하고 숟가락만 부지런히 놀린다.

효명이는 눈을 찔 흘겼다.

《너희들 무슨 일이 있었니?》

이상한 기미를 눈치챘는지 어머니가 형제를 번갈아보며 묻는 말이였다.

효길이는 아무 대꾸도 없다. 효명이도 입을 꾹 다문채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아까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형에게 엄포를 놓았었다. 하지만 남의 허물을 들춰 고해바치는것이 별로 좋은 일이 못된다는것쯤은 효명이도 알고있는것이다.

《요즘 윤범아저씨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구나. 속탈이 도지지나 않았는지.…》

어머니가 혼자말처럼 외웠다.

효명이의 눈앞에는 키가 후리후리한 윤범아저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난 겨울 이곳에 처음 도착한 건설자들은 얼마동안 마을의 여러집에 나뉘여 살았다. 윤범아저씨는 그때 효명이네와 근 한달나마 함께 지낸 불도젤운전수였다.

와릉 와르릉, 무쇠땅크를 내몰아 놈들의 《요새》를 단숨에 짓뭉개고 몸소 부대에 찾아와 훈련모습을 보아주시던 아버지장군님께 큰 기쁨을 드렸다는 아저씨, 제대배낭을 지고 곧장 발전소건설장으로 달려왔다는 아저씨였다.

효명이는 그를 만나본지 퍼그나 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형은?…)

슬쩍 눈길을 돌리는데 효길이는 어느새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있었다.

 

×

 

《히야, 굉장하구나.》

효명이는 가느다란 목을 뒤로 젖히고 입을 하 벌렸다.

발전소건설장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자동차길옆에 살림집벽체같은 속보판들이 주런이 서있는것이였다. 구슬땀을 뚝뚝 흘리며 바위같은 돌을 닁큼 들어올린 장석공아저씨, 통나무를 안고 석수가 터져나오는 구멍을 틀어막는 형님, 누나들…

그림과 함께 획이 팔뚝같이 굵은 글자들이 살아 움직이는것처럼 씌여있었다.

《만년제방에 우리 장군님 모시리!》

《언제의 높이자 충실성의 높이》

효명이가 세상에 나서 처음 보는 요란한 속보판들이였다. 여름철이면 미역을 감던 영천강, 여기에 언제를 높이 쌓아 전기가 꽝꽝 나오게 한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요란할줄은 몰랐었다.

바지춤을 둬번 춰올리고나서 자리를 옮겨가던 효명이는 또다시 눈이 휘둥그래졌다. 한폭의 대형그림판에 마음이 홀랑 취해버린것이였다.

산중턱에 한쪽 어깨를 척 붙이고 성벽처럼 쭉 뻗어나간 언제,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는 물줄기, 그런데 그보다 더 눈을 끄는 곳은 언제너머였다.

병풍처럼 둘러선 산봉우리들을 배경으로 바다마냥 가없이 펼쳐진 푸른 수면, 그우로 날아예는 흰갈매기들, 꽃송이처럼 떠있는 유람선과 뽀트들, 멀리 산기슭에는 아담한 살림집들과 휴양소인듯 한 건물들이 서있다.

《야, 멋진데!》

효명이는 《딱-》 하고 손가락총을 놓았다. 신바람이 날 때 하는 버릇이였다.

(빨리 가야지.)

건설장입구를 향해 총총히 걸음을 놓던 효명이는 어깨를 흠칫 떨며 서버렸다. 야무진 호각소리가 귀청을 때렸던것이다.

《이녀석, 어딜 가는거냐?》

대여섯걸음 떨어진 곳에서 키가 꺽두룩한 웬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왼팔에 《로동안전원》이라는 완장이 끼여있었다.

《난 아저씰 만나러 가요.》

《아저씨?》

《예. 윤범이라구 불도젤운전수예요. 좀 보내줘요.》

《안된다. 현장은 너희같은 애들이 다닐 곳이 못돼.》

《야, 딱 한번만…》

효명이는 희고 토실토실한 집게손가락을 쳐들어보였다.

《글쎄 안된다니까. 사방에서 기계들이 와릉와릉 하는판에 무슨 일을 치자구. 정 만나겠거든 저기 숙소쪽에 가서 길목을 지키거라.》

할아버지가 속보판들뒤로 아담하게 서있는 단층집들을 가리켰다.

효명이는 슬그머니 그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한번 더 억지를 써볼가. 아니 엉엉 울음을 터뜨리면?…)

하지만 꾹 다물린 두툼한 입술과 디글디글한 눈을 보자 생각이 싹 달라졌다.

효명이는 뿌루퉁해서 돌아서고말았다. 맥없이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데 등뒤에서 뜻밖에도 다정한 목소리가 울렸다.

《얘, 무슨 일이냐?》

작업복차림에 빨간 머리수건을 쓴 누나가 동그스름한 얼굴에 생글생글 웃음을 담고 묻는 말이였다.

효명이는 시틋해서 대꾸했다.

《아무것두 아니야요.》

《아무것두 아니다? 그런데 왜 아바이한테서 꾸지람을 들었니?》

《누가 뭐 꾸지람을 들었나요. 그 할아버지가 괜히 떽떽거렸지.》

《호호호… 넌 참 재미있는 애로구나.》

효명이에게는 누나가 퍼그나 싹싹해보였다. 그는 푸접좋게 누나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간청했다.

《누나, 내 부탁 하나 들어달라요.》

《부탁?》

《예. 윤범아저씨를 좀 만나게 해줘요.》

《윤범아저씨?… 제대군인이 아니야?》

《맞아요. 누나두 그 아저씨를 아나요?》

《며칠전 혁신자들을 소개할 때 보았단다. 그런데 요즘…》

누나의 눈귀에 금시 잔주름이 잡혔다.

효명이는 더럭 근심이 났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기계화대대 취사원에게서 들었는데 몸이 편찮아한다더라.》

《그래요?…》

효명이는 눈을 내리깔며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너무 걱정말아. 옆에서들 다 도와주고있으니까.》

누나는 친절하게 길을 가리켜주고나서 지휘부건물쪽으로 급히 사라졌다.

효명이는 기계화대대 숙소를 찾아 걸음을 다그쳤다. 그런데 뜻밖의 일에 부닥치게 될줄이야…

 

×

 

(그게 정말일가?…)

효명이는 절벅절벅 물을 걷어차며 여울목을 건느고있었다. 두손에 운동화가 한짝씩 들려있다.

맑고 시원한 강물이 장딴지를 간지럽힌다. 바닥에 깔린 하얀 자갈들이 장난감처럼 제모양을 뽐내고있다. 버들잎같은 날치들이 저녁 해빛에 은비늘을 반짝이며 물우로 튀여오른다.

산촌의 맑은 공기, 귀바퀴를 스치는 산들바람, 노래처럼 울리는 물소리, 새소리…

더없이 상쾌한 저녁이다. 하지만 효명이의 마음은 밝지 못하다.

마침내 강기슭 너럭바위우에 올라섰다. 효명이는 둬번 발을 탁탁 구르며 물기를 털고나서 고개를 돌렸다. 일매지게 서있는 건설자들의 숙소가 한눈에 안겨들었다. 그 어느 한방에 지금 윤범아저씨가 누워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숙소 앞마당에서 되돌아서지 않을수 없었던 효명이였다.

그가 기계화대대 숙소의 처마밑을 돌아서려던 때였다. 어느 한 방문이 열리더니 중학생또래의 처녀애들 서넛이 와르르 쓸어나왔다. 손에는 하나같이 바구니를 들고있었다.

하얀 앞치마를 두른 누나가 그뒤로 따라나오며 말했다.

《너희들이 산나물까지 뜯어오다니. 정말 고맙다.》

《다음번에 더 많이 해올게요.》

《점심땐 효길이란 애가 말린 물고기를 가져오더니 저녁엔 또 너희들이…》

《효길동무가요?》

처녀애들가운데서 누구인가 물었다.

《그래. 아저씨들이 물고길 보자 얼마나들 좋아하던지.》

퉁투므레한 얼굴에 웃음을 짓던 취사원누나가 갑자기 한손으로 입을 가리웠다.

《언니, 왜 그래요?》

누구인가 그의 앞치마자락을 당겼다.

《가만, 내가 이거 무슨 실수를… 효길이가 절대 비밀에 붙여달라고 했던걸.》

그 말에 이어 아이들이 깔깔 웃는 소리가 났다.

효명이는 얼결에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였다.

(윤범아저씨가 앓는다는데 난…)

이렇게 되여 되돌아서고만 걸음이였다.

효명이는 집으로 반달음을 놓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 듣지 않았을가? 아니, 분명 효길이라고 했어. 그렇다면 형이?…)

효길이란 이름을 가진 애는 동네에 형뿐이였다.

효명이는 쌔근쌔근 숨을 톺으며 언덕을 치달아올랐다.

찌꿍- 대문을 열기 바쁘게 굴뚝모퉁이로 돌아갔다. 그런데 처마밑에는 쇠줄만 대롱대롱 매달려있지 않는가.

(옳구나. 그런것두 모르구 난…)

처음엔 놀랐다. 그다음엔 부끄러웠다. 나중에는 약이 올랐다.

(체, 저 혼자서만… 좋다. 나두 물고기를 잡아야지.)

창고안에서 반두를 찾아냈다. 다래끼도 눈에 띄였다. 하지만 선뜻 움직일수 없었다. 제 혼자서 반두질을 해본적은 아직 없었던것이다.

(어쩌면 좋담?)

이때였다. 《꼬꼬댁, 꼬꼬댁…》 토끼장옆에 있는 닭우리쪽에서 암닭이 연방 울어대기 시작했다.

(응?!…)

효명이는 반두를 내던지고 닭장으로 뛰여갔다. 깜장암닭이 등우리에 앉아 팥알같은 눈알을 굴리고있었다.

효명이는 오른손을 살며시 닭의 배밑에 밀어넣었다. 아닐세라 동실한것이 손에 잡혔다. 따끈따끈했다. 효명이는 그것을 두손에 받쳐들었다.

문득 윤범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느날 저녁인가 어머니가 윤범아저씨의 밥상에 삶은 닭알을 올려놓았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그것을 한사코 효명이의 그릇에 놓아주려고 했다. 어머니가 아이들 몫을 들여와서야 닭알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때 맛나게 잡숫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옳지, 이걸 윤범아저씨에게…)

그런데 한알, 너무도 작아보였다.

효명이는 꼬꼬댁이암닭을 내려다보며 눈을 흘겼다.

《넌 깍쟁이로구나. 단번에 대여섯알쯤 낳을게지.》

다음 순간 머리속에 피뜩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그는 닭알을 주머니에 넣고 부리나케 부엌으로 뛰여들었다. 찬장선반에 자그마한 비닐바께쯔가 놓여있었다.

효명이는 발뒤꿈치를 들고 손을 뻗쳐 그것을 내리웠다. 서둘러 뚜껑을 열었다. 노르끼레한 닭알 네알이 사이좋게 누워있었다.

《야!》

효명이가 닭알을 닁큼 집어 바지주머니에 갈라넣었을 때였다. 등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너 거기서 뭘하니?》

뜻밖에도 효길이의 목소리였다.

효명이는 아무 대꾸도 없이 효길이옆을 스쳐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야, 서라.》

쇠된 목소리가 날아왔다. 하지만 효명이는 꿈쩍하지 않고 맞받아 소리쳤다.

《형은 몰라두 돼.》

 

×

 

잘 가거라 소년남아야

원쑤들을 무찌르고 돌아오너라

 

효명이의 입에서 노래가락이 슬슬 흘러나왔다. 그애는 방금전 윤범아저씨를 만났다. 숙소에서가 아니라 발전소언제건설장으로 가는 길목에서였다.

《아니, 네가 웬일이냐?!》

아저씨가 넓은 가슴에 효명이를 닁큼 안아올리며 물었다.

《아저씨, 또 일나가나요?》

《그럼. 하루빨리 언제를 쌓아야지.》

《밤에두요?》

《저길 보렴. 우리한테 낮과 밤이 따로 없단다.》

아저씨가 가리키는 곳에서는 우등불이 활활 타오르고있었다.

《야, 그런데 아저씬 앓는다더니?…》

《응?! 네가 그걸 어떻게?…》

《다 아는 방법이 있지요 뭐.》

효명이는 코밑을 훔치며 씩 웃었다.

아저씨도 《허허…》하며 마주 웃었다.

《그런데 어머닌 잘 계시냐?》

《예. 아저씨 속탈이 도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구 근심했어요.》

《그래서 왔니? 어머니에게 전해라. 난 이렇게 든든하다구.》

아저씨가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두드려보였다. 그런데 눈가장자리에 푸릿한 빛이 돌고 턱이 눈에 알리게 뾰족해진것 같았다.

효명이는 얼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꺼냈다.

《아저씨, 이거…》

《그게 뭐냐?》

《다섯알밖에 안돼요. 제일 큰건 깜장이한테서 내 손으루 받은거예요.》

《허… 이런!》

아저씨는 감동어린 표정으로 닭알을 내려다보더니 혼자말처럼 했다.

《봉실이가 좋아하겠군.》

《봉실이가 누구나요?》

《음, 17살밖에 안되는 굴착기신호공이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자원해서 여기로 왔지. 며칠전에는 폭우가 쏟아져 물에 잠길번 했던 굴착기를 구원해냈단다.》

《그래요?!…》

효명이는 입을 항- 벌린채 다물줄 몰랐다.

아저씨는 잠시 효명이를 굽어보기만 했다. 그리고는 크고 두툼한 손으로 그애의 머리를 자꾸 쓰다듬어주었다.

그때 아저씨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왜 아무말도 없었는지 효명이는 딱히 모른다. 그러나 짐작은 하고도 남는다.

어쨌든 지금 효명이의 마음은 무등 기쁘기만 하다. 보라빛 밤하늘에서는 아기별들이 다투어 반짝이고있다. 마치도 효명이를 반겨 웃음을 보내는것만 같다.

효명이는 마침내 마당에 들어섰다. 반쯤 열려진 부엌문사이로 별스레 구수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그러나 그쪽엔 고개도 기웃하지 않았다.

효명이는 방문을 벌컥 열었다. 구석에 앉아 무엇인가 손질하고있던 효길이가 고개를 홱 돌렸다.

《너 닭알 다 어쨌니?》

효명이는 속이 띠끔했지만 시치미를 뗐다.

《무슨 닭알?》

《누가 모를줄 알구. 닭알은 왜 훔쳤나 말야?》

《체, 누가 훔쳤다구 그래.》

사이문이 열리더니 어머니가 문턱을 넘어섰다.

《너희들은 꼭 개와 고양이격이로구나. 마주서기만 하면 다툼질부터 하구…》

《저앤 영 글렀어요. 막냉이라구 어자어자 하니까 이젠 거짓말까지 탕탕…》

효길이가 분을 참을수 없다는듯 씩씩거렸다.

《오늘은 우리 집이 정말 이상하구나. 찬장에 올려놓았던 그릇은 조리대에 내려와 뚜껑이 열린채로 있지, 분명 닭알 네알이 있었는데 텅 비였지.》

효명이는 어머니쪽을 돌아보았다. 해볕에 타 검스레해진 얼굴에 서운해하는 기색이 뚜렷이 실려있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여느때나 다름없이 부드러웠다. 그런데 그 눈빛에는 《우리 효명이가 꼭 알것 같은데?》 하는 표정이 어려있었다.

효명이는 혀끝이 간질거렸다. 《내가…》 하고 입을 열려는 찰나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쥐란 놈이 담벽을 타고 닭알을 살살 굴려올린다는 말은 나도 들었다. 하지만 뚜껑까지 열고 그 안의것을 훔쳐낸다는 말은 아직 못들었는데… 참, 조화가 아니냐.》

효명이는 《킥-》하고 웃음이 터지려는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어머니-》하고 부르려는데 효길이의 목소리가 잉 날아왔다.

《어머니, 우리 집에 인쥐가 생겼어요. 이름은 남효명…》

효명이의 얼굴은 금시 한가을의 고추빛이 되였다. 목덜미까지 빨개졌다.

《뭐야? 난 인쥐 아니야!》

하고 소리치고는 어머니의 치마폭에 안기며 울먹거렸다.

《닭알은… 내가 꺼… 냈어요.》

《네가?》

《예. 그 닭알은 건설장으로 갔어요. 윤범아저씰 찾아서. 그런데 네알이 아니라 다섯알이예요. 깜장이가 한알 또 낳았거든요.》

《…》

《…》

어머니도 효길이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효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뿐이였다. 그런데 그들의 눈빛에는 꼭같이 놀라움과 감탄이 어우러져있었다.

효명이는 하루이틀사이에 있은 일들을 고스란히 쏟아놓았다.

효길이가 동생의 어깨를 툭 쳤다.

《깜찍하게, 그걸 왜 이제야 말하니.》

《힝-》

효명이는 코방귀를 내불며 눈을 흘겼다.

《자긴 뭐 물고길 나한테 말하구 가져다줬나.》

《하하…》

《하하하.》

즐거운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채웠다.

어머니가 웃고 효길이가 웃고… 효명이도 고개를 뒤로 젖히며 깔깔거렸다.

어머니가 효명이의 머리를 따뜻이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우리 막내가 이젠 다 컸구나. 정말 장한 일을 했다.》

효명이는 어머니의 칭찬이 싫지 않았다. 그런데 어딘가 좀 쑥스러웠다. 사실 깜장닭은 병아리때부터 어머니가 키운것이 아닌가. 그리고 형처럼 제손으로 잡은 물고기를 가져다준것도 아닌데… 그래서 빨간 입술을 나불거렸다.

《어머니, 것두 뭐 장한 일이나요?》

《아무렴, 장한 일이구말구. 닭알을 받아들었을 때 효명인 아마 군침이 돌았을테지. 하지만 윤범아저씨를 먼저 생각하지 않았니. 아저씬 모름지기 오늘 두몫, 세몫을 해제낄게다. 왜 윤범아저씨뿐이겠니. 봉실누나랑 너희들의 고운 마음을 알고 모두가 더 힘을 낼텐데. 언제는 그만큼 빨리 솟아오를게구. 발전소조업날자도 앞당겨질게 아니냐.

그러면 우리 장군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니.》

(아버지장군님께서?!)

효명이는 가슴이 활랑거렸다. 우리에게 더 큰 행복을 안겨주시려 타조목장도 세워주시고 험한 산골길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이곳 발전소건설장까지 찾아주신 아버지장군님, 언제면 나도 윤범아저씨처럼 아버지장군님께 기쁨을 드릴수 있을가. 이것은 효명이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잡고있는 결심이였다. 그런데 닭알 다섯알이, 아니 건설자아저씨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아버지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과 잇닿아있다는것이 아닌가.

효명이는 새별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머니, 닭알 다섯알이 그렇게 큰거나요?》

어머니가 효명이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대답했다.

《물론 열이나 스물보다야 작지. 하지만 거기에는 너의 고운 마음이 담겨있지 않니. 바로 그것이 소중한거란다. 그 마음이 자라고 자라 우리 나라를 받드는 큰마음이 되는것이니까.》

갑자기 효길이가 부엌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코날개를 벌름거렸다.

《어머니, 이거 무슨 냄새나요?》

어머니가 서둘러 부엌으로 나가며 대답했다.

《오, 토끼곰을 하는중이란다.》

《토끼곰?!…》

효명이의 눈이 올롱해졌다.

《그래, 효명이의 닭알이 윤범아저씰 찾아갔으니 토끼도 깡충깡충 뛰여가야 할게 아니냐.》

《야, 좋구나.》

효명이는 발쭉거리며 손벽을 쳤다.

효길이가 한팔을 높이 쳐들었다.

《그럼 언제가 쑥쑥 클거야.》

그리고는 효명이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눈짓했다.

효명이는 그를 따라 방문을 나서며 물었다.

《형, 왜 그래?》

효길이가 그의 손목을 꼭 잡으며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중학생이 됐다구 우쭐거리면서 널 깔봤거든. 자- 어서 강으로 가자.》

《그럼?… 밤중에 어떻게?…》

《챠, 이게 있지 않니.》

효길이가 한손을 들어보였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거울처럼 번쩍거리는 전지가 들려있었다.

형제는 어깨 나란히 강뚝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돌돌돌… 어서 오라 부르는듯 여울물소리가 정답게 들렸다.

《물고길 듬뿍 잡아서 래일은 어죽을 쒀가지고 가자.》

효길이가 담차게 하는 말이였다.

《좋아!》

효명이가 그의 손을 잡으며 깡충거렸다.

우릉, 우르릉-

건설장쪽에서 기계소리가 우렁차게 울려왔다. 이밤도 언제는 키를 솟구고있는것이다.

《승리의 신심드높이 선군조선의 일대 전성기를 열어나가자!》

방송원이 웨치는 힘찬 구호소리가 산발로 메아리쳐갔다.

언제도 크고 아이들의 마음도 크고, 참으로 즐거운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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