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2호에 실린 글
□ 단편소설 □
안 준
따스한 해빛이 온몸을 어루만지는 한낮이였다. 하루공부가 끝나기 바쁘게 차경이와 함께 학교정문을 바람같이 빠져나온 동철이는 다급히 집으로 걸음을 다그쳤다. 오후에 은정중학교 진성이네와 축구경기를 하기로 약속하였던것이다. 오늘 경기에서 이겨야 결승경기에 참가할수 있다. 그러니 얼마나 중요한 경기인가. 그래서인지 마음은 자못 긴장해졌다. 지난번 경기에서 아쉽게도 동점으로 끝났던 은정중학교와 다시 승부를 가르는 경기를 하게 된것이였다. 모든것은 다 동철이 자기때문인것이다. 그날 그는 11m벌차기를 성공시키지 못하였다. 그래서 다시 승패를 가르기로 결정하였다. 동철이의 눈앞에는 벌써 축구공이 얼른거렸다. 그는 공차는 흉내를 내면서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야 앗! 전번에 넣지 못한 11m벌차기다. 슈ㅡ웃ㅡ》 동철이는 축구공처럼 탕 뛰여올랐다가 떨어지면서 강한 곧추차기하는 흉내를 내였다. 공이 뱅글뱅글 돌면서 은정중학교꼴문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어가는것이 눈앞에 펼쳐졌다. 꼴ㅡ잉! 참말이지 생각만 해도 멋지게 들어간 통꼴이였다. 어제 밤 텔레비죤에서 본 딱소리나는 득점장면과 같았다. 동철이는 사기가 났다. 손에 들린 공구럭도 춤을 추듯 들썩들썩하였다. 그는 지금 자기가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는것도 까맣게 잊고있었다. 그저 머리속에는 온통 축구생각뿐이였다. 언제인가 차경이가 가져다준 《체육신문》에서 보았던 인상깊은 실화가 문득 생각났다. 대기선수로부터 세계득점왕으로 이름을 떨친 선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이를 악물고 땀흘려 훈련한 보람이 있어 방어기술까지 소유한 유능한 공격수로, 득점에 묘기가 있는 팀의 기둥선수로 자라났다. (야, 축구야말로 이 세상에서 얼마나 멋진 체육종목인가. … 난 언제면 조국의 영예를 떨치는 세계득점왕이 될가?…) 이때 《동철아!》하고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어깨 나란히 하고 함께 오던 차경이가 어느새 뒤떨어졌댔는지 저만치에서 어물거리고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앉아서 무엇인가 하고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던 동철이는 피뜩 생각키우는것이 있어 빙그레 웃었다. 오후에 은정중학교 애들과 경기를 한다고 했더니 아마도 문지기로서 문전처리훈련을 하는 모양이였다. 차분하면서도 조용한 그의 얼굴엔 언제나 그 무슨 생각만 깃들어있는것 같았다. 뚱뚱한 몸에 어울리지 않게 한손을 허리에 올리고 차경이를 바라보던 그는 날아가는 공처럼 씽 달려가며 물었다. 《왜 그러니?…》 《이것 좀 봐. 글쎄 요놈의 벽돌이 처음 내발에 걸챘을 땐 털썩 넘어갔는데 다시 툭 차니까 쪼르륵 미끄러져가지 않아. 그래서 한쪽모서리를 손가락으로 툭 밀쳤더니 이번엔 글쎄 빙ㅡ 돌아가거던.》 동철이보다 한뽐만큼이나 더 큰 차경이는 오목눈을 반짝거리며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다시 벽돌을 세웠다. 그리고 중심을 손가락으로 툭 밀쳤다. 벽돌은 쪼르르 미끄러져갔다. 순간 차경이는 무슨 생각이 있는지 옆에 놓았던 책가방에서 다급히 교과서를 꺼내 무릎우에 펼쳤다. 잠시 책을 들여다보던 그는 벽돌을 가지고 아까와 같은 동작을 다시 반복하였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힘의 작용점이 달라지면 벽돌이 움직이는 방향도 매번 달라지군 하였다. 《야, 힘의 세 요소 정의가 이 벽돌에도 작용하는구나!》 차경이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뭐, 뭐?! 힘의 세 요소?》 《응, 오늘 물리시간에 배우지 않았니. 힘과 작용점, 방향을 힘의 세 요소라고 한다. 어때!》 《그 글쎄…》 동철이는 동그란 눈을 슴벅거리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물리시간에 선생님이 힘의 법칙에 대하여 뭐라고 말씀하신것 같은데 아리숭하였다. 사실 그 시간에 동철이는 은정중학교축구주장인 진성이를 만날 생각에 그만 선생님의 설명을 흘려보냈던것이다. 《얘 얘, 빨리 가기나 하자. 벽돌이라는거야 차면 넘어가고 밀면 미끄러져가는거지 뭐. 넌 참 별걸 다 가지구 그러누나, 헹.》 동철이는 힝 하고 코바람을 불며 씩 돌아섰다. 축구생각을 하는줄 알았던 그가 뜻밖에도 물리소리를 하는 바람에 기가 찼다. 글쎄 세계적으로 이름난 《철벽의 방패》문지기가 될 꿈을 안고 사는 아이의 입에서 축구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고 물리, 수학, 화학 그리고 앉으나서나 길을 갈 때도 그저 교과서, 책소리뿐이였다. 보라, 지금 이 시각도 그는 축구생각보다 왕청같은 물리생각뿐이다. 《동철아, 공을 찰 때 말이야. 오늘 배운 힘의 법칙이 작용하지 않을가? 힘의 세 요소.》 《아니, 공차는데 힘의 세 요손 또 뭐가?》 가뜩이나 큰 동철이의 두눈이 한순간 휘둥그래졌다. 《지금은 과학과 기술의 시대니까 체육도 과학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가? 말하자면 힘내기나 발로만 공을 찰것이 아니라 머리로 찬단 말이야.》 깜또라지같이 까만 눈을 반짝이며 차경이는 열정에 넘쳐 말하였다. 늘 봐야 처녀애들처럼 차분하면서도 깊은 생각에만 잠겨있는듯 싶던 그의 걀쑴한 얼굴에 환희가 차넘쳤다. 꼭 그 무엇인가를 발견한 기분이였다. 하지만 동철이의 귀에는 그의 말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세상에 물리법칙을 가지고 공을 찬다는 얘긴 듣다 처음이였다. 하지만 차경이는 심중한 기색을 지으며 자기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동철아, 선생님도 말씀하시지 않았니. 수업시간에 배운것을 실험과 실습으로 다지고 언제 어디서나 짬짬이 책을 열심히 읽을 때라야 지식의 탑도 높이높이 쌓아진다구…》 《글쎄…》 동철이는 뚱뚱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시틋한 어조로 말하였다. 《차경아, 됐어됐어. 인젠 그런 소린 집어치우고 어떻게 하면 오후에 은정중학교 진성이네 팀을 이기겠는가를 생각해보자. 아 이번엔 본때를 보여야 할게 아니가. 그런데 넌 참…》 아무렴 책을 안 본다고 가슴속에 안고 사는 큰 꿈, 이름난 체육명수가 못될가? 동철이는 피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차경아, 오늘 경기에선 꼭 이겨야 해. 아 그래야…》 《글쎄 걱정마.》 그날 오후 학교운동장에서는 진성이네 은정중학교팀과 동철이네 학교와의 경기가 치렬하게 벌어지게 되였다. 진성이네 학교 아이들은 첫시작부터 튼튼한 방어에 의거하면서 잘 째인 공련락과 공격을 배합하며 득점할 기회만 노리였다. 공은 중앙선을 넘어 동철이네 꼴문앞에서 요리조리 맴돌았다. 경기가 시작되여 20분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득점이 나지 않았다. 진성이네가 잡은 공이 여러번이나 꼴문을 위협하며 날아들었다. 그때마다 가뜩이나 뚱뚱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달리고 또 달리던 동철이는 저도 모르게 자꾸만 마음이 긴장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아주 좋은 득점기회를 세번씩이나 놓쳐버린데다 진성이네 팀 아이들한테 밀리는 자기네 선수들을 보니 더욱더 조바심이 났다. 《에익ㅡ》 둥실한 이마며 코등에 철철 흐르는 땀방울을 팔등으로 뻑 문댄 동철이는 입술을 꼭 다물며 두주먹을 억세게 부르쥐였다. 그리고는 경기장복판을 꿰질러 씽ㅡ 달려나갔다. 지금까지 이악하게 련마한 자기의 특기동작들을 하나하나 쓰기 시작하였다. 어찌다 중앙선너머에서 공을 넘겨받은 동철이는 두팔을 세차게 휘두르며 진성이네 꼴문대를 향하여 냅다 달리기 시작하였다. 왼족, 오른쪽 두발사이로 공을 요리조리 옮겨가며 앞을 막아서는 상대방방어수들을 재치있게 물리쳤다. 드디여 문구역에 이른 그는 단독돌입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어느새 은정중학교팀 주장인 진성이가 뒤에 바싹 붙었다. 앞에서는 상대편 방어수들이 동철이를 에워쌌다. 이때라고 생각한 동철이는 꼴문옆에서 손짓하는 영문이한테 슬쩍 공을 넘겨주었다. 그러자 이번엔 은정중학교 공격수들이 영문이한테로 쏠렸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동철이는 상대편 방어구역을 꿰질러 꼴문가까이에 바싹 접근하였다. 순간 영문이가 길게 넘겨준 공이 다시 동철이한테로 날아왔다. 그는 더 생각할 사이도 없이 껑충 뛰여오르며 오른다리를 높이 들어 꼴문을 향해 강한 받아차기를 하였다. 슛ㅡ 공은 문지기가 어쩔새없이 쏜살같이 날아들어가면서 그물에 털썩 걸렸다. 《꼴!》 운동장이 떠나갈듯 함성소리가 터져올랐다. 동철이네 선수들은 껑충껑충 뛰며 기뻐 날뛰였다. 어떤 애들은 동철이의 목을 그러안고 빙그르 돌기까지 하였다. 《동철이가 잘한다. 우리 주장이 이거야, 이거.》 《아무렴, 앞날의 세계득점왕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사는 앤데 어련할라구, 참참참…》 아이들은 엄지손가락을 내들고 흔들어보이며 사기들이 났다. 동철이는 자못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렇지! 나야 세계적으로 이름 떨칠 축구명수가 아닌가?) 이때 호각소리가 빽ㅡ 하고 울려퍼졌다. 경기가 또 시작된것이다. 은정중학교 아이들은 잃은 점수를 회복하기 위하여 전술을 바꾸고 이악하게 달려들었다. 그래서인지 공은 동철이네 꼴문을 위협하며 이리저리 맴돌았다. 여러번 날아들어갔지만 차경이가 모두 잡아내는 바람에 다행히 꼴은 되지 않았다. 공격수들과 방어수들의 치렬한 혼전이 어느덧 은정중학교 꼴문앞에서 다시 벌어지고있었다. 상대방문전에서 오락가락하는 치렬한 장면을 긴장하게 살피던 차경이의 머리속에 무엇인가 피뜩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공부를 마치고 동철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올 때 발길에 걸채던 벽돌이였다. (가만! 작용점이 달라지면 힘의 방향도 달라졌지? 그럼 공을 찰 때 작용점을 어디에 정하는가에 따라 날아가는 방향도 달라질게 아니야.) 차경이가 홀린듯 이런 생각에 옴해있는 때 상대편공격수들이 바람같이 돌입해들어왔다. 그가 헤덤비며 자세를 취하는데 눈앞으로 불쑥 무엇인가가 휘ㅡ익 쏜살같이 날아지나갔다. 《엉?!…》 차경이는 펄쩍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었다. 공이 그물에 걸린것이였다. 《아이쿠!》 《빽ㅡ》 경기마감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야!》 은정중학교 아이들이 두팔을 쳐들고 환성을 올리며 껑충껑충 뛰였다. 차경이네 분단 아이들은 눈들이 사발만 해가지고 막 달려왔다. 《차경아! 공이 날아들어가는데 넌 뭘하구섰니?》 《야 참, 아 멍청히 서서 꼴 먹는건 또 뭔가말이야.…》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그중에서도 동철이가 더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해서 성을 내며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차경아! 넌 문지기가 말뚝이가. 글쎄 이 경기가 어떤 경긴가 말이야.》 차경이는 선뜻 말이 나가지 않았다. 《난 사실 아까 집으로 돌아올 때 발길에 걸채인 벽돌생각이 나기에, 그걸 공차는데 리용하면 어떨가구 생각하다 그만…》 《뭐?!… 벽돌?》 동철이의 둥그런 얼굴이 한순간에 시뻘겋게 확 달아올랐다. 글쎄 무엇이나 생각나면 꼭 끝장을 보고야마는 차경이였지만 이처럼 중요한 경기를 하는 마당에서까지 그 벽돌, 물리생각을 할줄은 정말 몰랐었다. 동철이는 무엇이라 할 말은 못찾고 씩씩거리다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때 은정중학교 아이들이 왁 몰려왔다. 진성이가 맨 앞장에서 두손을 허리에 얹고 환하게 웃고있었다. 《동철아, 어때? 오늘경기도 역시 동점이구나.》 동철이는 얼굴이 시뻘개가지고 씩씩거렸다. 그런데 옆에 서있던 차경이가 성큼 나섰다. 《진성아, 난 사실 너희들이 공차는 모습을 살펴보면서 오늘 배운 물리법칙을 축구에서도 얼마든지 리용할수 있다는걸 알았어. 이런 생각에 그만.》 《뭐, 물리법칙?》 《응, 힘의 세 요소 말이야!》 차경이의 말에 진성이는 물론 둘러선 아이들모두가 입들을 항 벌렸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릴가? 지금까지 공차면서 물리법칙을 리용한다는 소린 참말이지 듣다 처음이였다.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마주보며 고개들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호기심이 부쩍 동하는 소리였다.
진성이는 오구작작 떠들어대는 아이들사이를 빠져나와 차경이 앞으로 한걸음 쑥 나섰다. 《차경아, 이자 네가 한 말이 꽝포 아니지?》 《응,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니? 인젠 내가 날아오는 공을 모두 잡아낼수 있어.》 차경이는 까만 눈을 깜박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자 진성이네 편 아이들이 손을 내저었다. 《그렇다고 경기때 먹은 꼴을 무효로 한다는 규정이야 없지 않니?》 《그래그래.》 《그럼 좋아, 경기를 다시 하자.》 차경이는 좀처럼 물러설념을 안했다. 그러자 은정중학교 아이들은 눈이 둥그래서 마주 쳐다보았다. 《아니? 경기를 다시 한단 말이야? 시간두 퍽 흘렀는데.》 사실 차경이 말대로 경기를 다시 한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문득 진성이가 좋은 방도가 떠올랐는지 싱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11m차기로 승부를 가르는게 어때. 국제경기처럼.》 《응, 그게 좋겠어!》 차경이는 기꺼이 응했다. 하지만 동철이만은 그 제의를 선뜻 받아들일수 없었다. 아무리 높은 기술을 소유한 《철벽의 방패》라도 11m차기만은 막아낼수 없기때문이였다. 그것은 아무런 정황도 없는 조건에서 차면 차는대로 들어갈수 있는 꼴이 바로 11m차기였던것이다. 차경이가 큰소린 쳐도 모든 공을 실수없이 다 막아낸다는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한팀에서 다섯명씩 차자.》 《좋아, 그렇게 하자.》 《뭐?!》 동철이의 두눈이 황소눈만 해졌다. 그는 뛰쳐나가 차경이의 앞을 막아섰다. 《그건 안돼. 차경아, 너 어쩌자고 그러니?》 《걱정마!》 차경이는 동철이의 두손을 꼭 잡았다놓으며 두눈을 끔적해보였다. 그리고 꼴문대에 가 서서 준비동작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준비동작을 끝낸 그는 허리를 반쯤 굽히며 진성이에게 소리쳤다. 《자, 어서 차.》 《응.》 진성이를 앞세우고 은정중학교 아이들 다섯명이 나와 우뚝 섰다. 순간 모두의 눈길이 일시에 진성이와 차경이한테로 쏠리였다. 숨을 딱 죽이고 바라보던 동철이는 《탕!》 공차는 소리와 함께 맥이 삽시에 풀리는것을 느끼며 두눈을 꼭 감았다. 순간 《야!》하는 소리가 터져올랐다. 동철이는 두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차경이부터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것인가. 진성이가 강하게 찬 공을 차경이가 품에 안고 우뚝 서있는것이였다. 두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았으나 틀림없이 차경이는 진성이가 찬 공을 가슴에 안고 활짝 웃고있었다. 이번에는 두번째 아이 차례였다. 동철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긴장하게 눈길을 모았다. 《탕》 소리와 함께 뱅글뱅글 돌면서 날아들어가는 공을 차경이가 모재비로 조약하며 탁 쳐내쳤다. 《야!》 또다시 터진 함성이 운동장을 들썩했다. 련이어 세번째, 네번째, 이렇게 다섯 아이가 찬 모든 공들을 차경이는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모두 솜씨있게 막아내였다.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던 아이들모두가 삽시간에 긴장을 풀며 《야!》, 《야!》 환성을 올렸다. 동철이는 놀라움에 가득찬 얼굴로 두눈만 슴벅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걸가.…) 참말이지 차경이가 언제 저런 훌륭한 문지기가 되였을가. 쩍하면 지식, 지식 하면서 책밖에 모르던 그 애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리해가 되지 않았다. 동철이가 고개를 기웃거리고있는데 옆에서 진성이네 은정중학교 아이들이 감탄에 차서 입들을 다물줄 몰랐다. 《야, 차경인 당당한 〈철벽의 방패〉가 됐구나.》 《그래, 그래.》 《그런데 무엇보다도 신기한건 공격수가 찬 공의 방향을 그 애가 어떻게 미리 알고있는가 하는거야.》 《뭐?!》 뜻밖의 소리에 동철이는 그만 긴장해졌다. 그는 귀를 바싹 강구었다. 《너희들 봤지? 공이 움직이는것과 동시에 차경이의 몸동작도 일치한것.》 《정말?》 그다음의 말들이 더는 동철이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게 무얼가?) 자꾸만 물음을 곱씹어보니 점점 딱 찍어 말할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차경아, 어서 날아오는 공들을 모두 막을수 있는 그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렴.》 진성이가 부러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어서 대주렴.》 《어서어서.》 빙 둘러선 두 학교 아이들모두가 차경이한테서 눈길을 뗄줄 몰랐다. 동철이도 뒤에서 차경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차경이는 발그레한 얼굴에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을 빙ㅡ 둘러보았다. 《그건 말이야, 공격수가 공을 차는 순간 발의 방향만 정확하게 포착하면 돼. 그러면 공에 가닿을 작용점의 위치를 제꺽 알수 있어. 가해지는 힘의 작용점이 이쪽이면 공은 저족, 저쪽이면 공은 이쪽이거던.》 차경이의 대답이 끝나자 아이들은 모두 《야!》하며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러니 오늘 경긴 우리가 이겼구나 뭐. 지식의 힘이 세긴 센데. 하하하…》 영문이의 말에 아이들모두가 기쁨에 넘쳐 들썩거렸다. 《얘들아, 이제부턴 어떤 경기든지 우린 문제없구나.》 《아무렴, 우리에겐 〈철벽의 방패〉가 있지 않니.》 그 누군가의 말에 아이들이 저마다 이어받으며 기뻐했다. 그들을 바라보던 차경이가 밝은 얼굴로 긍지높이 말하였다. 《그건 다 책의 덕분이야.》 《야! 책이 좋긴 좋구나. 얘들아, 우리모두 차경이를 축하해주자!》 《응!》 아이들은 차경이를 하늘높이 맞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영차, 영차.》 진성이네 아이들도 모두 자기네 일처럼 기뻐하며 열렬히 박수쳤다. 동철이는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자기와 한책상에서 어깨나란히 공부하며 앞날의 이름난 축구선수가 될 꿈을 꼭같이 키워온 차경이, 그는 벌써 《철벽의 방패》가 된것이다. 하지만 자기는 오늘경기에서도 세번이나 득점할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였다. 그러면 차경이와 나와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머리속에는 지나간 일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에 벽돌을 가지고 씨름질하던 모습이며 힘의 법칙을 리용하여 날아오는 공들을 솜씨있게 막아내던 장한 모습. 동철이의 생각은 더욱더 깊어졌다. 차경이가 오늘경기에서 저렇듯 문지기로서의 눈부신 특기기술을 남김없이 발휘할수 있은것은 무엇때문일가. 그것은 결코 다른데 있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언제나 책이 들려있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길거리를 오갈 때나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가슴속에 안고사는 그 훌륭한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며 지식의 탑을 차곡차곡 높이높이 쌓으며 솟구쳐올랐다. 그러니 오늘과 같이 훌륭한 문지기로, 《철벽의 방패》로 될수밖에… 하지만 동철이 자기의 손에는 지금껏 공구럭만 들려있지 않았던가. 동철이는 비로소 자기가 무엇을 몰랐는가를 새롭게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가슴속에 품고사는 꿈이 아무리 훌륭한것일지라도 참다운 지식의 탑을 쌓지 않으면 빛내일수도 실천할수도 없으며 도리여 아득한 멀리로 더욱더 멀어진다는것을… 그렇다, 꿈은 멀리에 있지 않다. 아주 가까이, 우리의 곁에, 그것도 언제나 우리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책가방과 그속에 있는 교과서와 학습장, 바로 책속에 있었다. 문득 차경이네 집 웃방 한쪽벽면책장에 가득 채워진 숱한 참고서들이 눈앞에서 맴돌았다. 동철이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차경이한테로 씨엉씨엉 걸어갔다. 《차경아, 이제부턴 나도 책을 열심히 읽을테야. 참, 너의 집에 있는 책들을 다 빌려줄수 있니?》 《그래, 얼마든지.》 《좋아, 약속해!》 동철이는 차경이의 손을 꼭 마주잡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여났다. 《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