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2호에 실린 글

 

    □ 단 편 소 설 □

 

                                                리 동 섭

 

1

 

정국은 다시금 책상에 마주앉긴 했으나 글줄은 밟히지 않고 자꾸만 바깥으로 눈길이 쏠리였습니다.

(왜 안올가?)

이렇게 중얼거린 정국은 더는 못참겠다는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선 바깥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둠에 포근히 잠긴 행길은 아무리 눈여겨 살펴보아야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건만 정국은 길목에 지켜선채 조합(오늘의 협동농장)관리위원회쪽으로 뻗은 행길 한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섰습니다.

그러다가 (에이, 왜 오지 않나.…)하면서 역증을 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서 물러설줄을 모릅니다. 그는 지금 조합일에 나간 누나를 기다리고있는중입니다. 여느때는 해질녘이면 돌아오군 했는데 오늘은 아기별들이 하나둘 뜨기 시작했는데도 나타나주지 않습니다.

(웬일일가? 혹시 관리위원회에서 회의가 있는걸가?)

안타까이 기다리는 누나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정국은 누나와 단둘이서 살고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승을 앞둔 어느날 밭에서 밀가을을 하다가 그만 놈들의 비행기폭격에 세상을 떠나고말았습니다.

그때 마을의 열성농민이던 정국이네 부모는 전선에 하루바삐 한알의 쌀이라도 더 보내기 위해 놈들의 폭격이 심한 속에서도 대낮에 낫을 들고 일하다가 갑자기 덤벼드는 비행기폭격에 몸피할새가 없었던것입니다. 부모를 잃은 정국이네 오누이는 정국이보다 한살우인 봉기의 어머니며 여러 동리사람들의 보살핌속에 이웃에 사는 여물먹이 할아버지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봉기 어머니는 정국이네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 함께 남편을 잃었는데 더없이 무던했고 여물먹이 할아버지는 해방전 30년이나 머슴살이를 한 부지런하고 인정깊은 로인이였습니다.

누나는 중학교를 졸업하자 협동조합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부터 그들오누이는 자기의 집을 꾸리고 이날 이때까지 재미나게 살아가고있습니다. 정국은 누나의 사랑속에 아버지, 어머니가 있는 애들 부럽지 않게 고이 자라왔습니다.

지금 정국은 중학교 1학년생인데 공부 잘하고 소년단생활에 열성이여서 그의 사진이 학교영예게시판에 붙어있습니다.

정국은 하루도 누나와 떨어지려 안했습니다.

마을의 민청부위원장인(당시) 누나는 한달에 한두번은 회의나 강습으로 군에 올라가기마련입니다. 그런 때면 정국은 방안에 외로이 앉아서 밤늦도록 누나 오기를 기다립니다. 이러한 심중을 누구보다 잘 아는 누나는 아무리 늦게 회의가 끝나도 동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오리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고야맙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일가?

정국은 누나를 기다리다못해 부엌으로 내려와서 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야 누나는 늦어질것 같은데 이제 돌아오면 제꺽 저녁을 대접하고싶었던것입니다.

이윽고 밥가마속에선 바글바글 밥잦는 소리가 재미나게 들려왔습니다. 정국이 도마우에 오이쪽을 올려놓고 쑥덕쑥덕 썰어나가고있는데 마당에서 인기척이 들려왔습니다.

정국은 고개를 홱 돌리며 식칼을 든채 부엌토방까지 달려나갔습니다.

《아, 누나! 왜 그렇게 늦었나!》

정국은 너무나 기다리던 뒤라 반가움에 앞서 짜증섞인 말이 먼저 튀여나갔습니다.

누나는 부엌에 들어서며 언제나 그러하듯이 다정한 미소를 그려보였습니다.

《관리위원회에 좀 들렸다 오느라구.》

그리고 정국의 머리를 정겨이 쓸어주었습니다. 그러던 누나의 눈길이 부뚜막에 미치자 금시 낯빛이 달라지며 《아니, 네가 밥을 지었느냐?》하고는 정국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누나의 얼굴에서 심상찮은것을 느낀 정국은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왜요?》하고는 누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누나는 한참만에 낮으나 엄한 목소리로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너는 밥을 짓지 않아도 된다. 그대신 공부를 잘해야 해.》

그제야 누나의 심중을 깨달은 정국은 낯빛을 풀며 오히려 나무람을 했습니다.

《에ㅡ 누난 괜한 걱정이야. 난 공부를 다 하구 밥을 지었는데 뭐.》

그러나 누나는 다시한번 그러면 정말 성을 내겠노라고 몇번이고 다짐을 두었습니다.

그날 밤, 밥상을 치우고난 오누이는 두리반을 한가운데 놓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누나는 얼마전에 기수검정시험에 합격하여 요즘은 농업대학에 다니는 관리위원장의 딸ㅡ중학교동창생인 혜숙이가 보내준 대학 1학년교재를 보고있습니다. 이를 두고 동리사람들은 정국이를 만나기만 하면 누나 칭찬이였습니다.

《너희 누난 머리두 비상하더라얘.》

《너희 누나 열성이면 박사두 될게다.》

신바람이 난 정국은 집으로 돌아오면 누나에게 죄다 일러바쳤습니다. 그런데도 누나는 별로 반가와하는 기색없이 덤덤히 대답하는것이였습니다.

《아무렴 나보다 열성이 없고 머리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니?》

정국은 그만 어리둥절했습니다.

(참말 누나는 그럴가! 아니면 겸손해서 그럴가?)

아무튼 누나가 밤을 새워가면서 공부하는것만은 사실이였습니다. 어떤 때 정국이가 잠결에 눈을 펀뜩 떠보면 누나는 잠자리에 누운채 조용히 책을 들여다보고있습니다. 실컷 잠만 자던 정국이 제김에 무안한 생각이 들어 《누나, 왜 안자나?》하면 누나는 시뭇이 웃어보이며 《이제 자지.…》하고는 또 계속 책장을 뒤적거립니다. 그리고서도 새벽이면 남먼저 일어나서 일터로 나가는것이였습니다.

정국은 지금 누나에 대한 이런 생각에 잠겨 책을 들여다보다말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책을 붙잡기만 하면 곁에서 건드려도 모르던 누나가 멍하니 턱을 고이고 천정만 올려다보고있습니다.

《누나, 왜 그래?》

정국은 눈이 멀뚱해서 누나를 마주 바라보았습니다.

《아이, 이정신 봐.…》

그제야 정신이 든 누나는 얼굴을 붉히며 책을 끄집어당겼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상에 바싹 다가앉으며 책갈피를 번지였습니다.

그런데 얼마후에 또 누나가 책을 펼쳐놓은채 천정만 물끄러미 쳐다보는것이였습니다.

정국은 한동안 누나의 눈치를 살피다말고 조심히 말을 건네였습니다.

《누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댔나?》

《아이, 무슨 일이 있었겠니.》

저으기 당황해진 누나는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며 《얘야, 빨리 공부를 하자.》하고는 먼저 서둘러댑니다.

정국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누나가 왜 저럴가?)

그런데 그날 밤 자리에 누운 누나는 한동안 말없이 무슨 생각에 잠겨있더니 넌지시 정국이쪽으로 돌아누우며 조용히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얘, 정국아…》

《응.…》

《저… 내가 만약 대학에 가면 너 좋겠니?》

정국은 그만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말문이 막힌 정국은 누나쪽으로 돌아누우며 오히려 이렇게 물었습니다.

《누나 대학 가나?》

《아니, 괜히 하는 말이다. 글쎄 가면 좋겠는가 말이야.》

누나는 웃으며 하는 말이였으나 정국은 어리쭝해서 인차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한참만에야 《가면 좋지 뭐.…》하며 어물어물 말끝을 흐리였습니다.

누나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정국은 마음속이 뒤숭숭해져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여느때나 다름없이 일찌감치 깨여난 정국은 웬일인지 전에처럼 온몸이 가뜬함을 느낄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마당을 쓸고 꽃밭에 물을 주고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와야 전에처럼 머리속도 맑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자꾸만 누나의 눈치를 조심히 살펴보게 되였습니다.

누나는 아무런 다른 기색없이 밥을 짓는다, 작업준비를 한다 하며 분주히 서둘렀습니다.

정국은 책보를 들고 부엌문을 나서다말고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설겆이를 하는 누나에게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누나, 정말 학교가나?》

《애두 참, 내가 괜히 말해본다구 하지 않았니?》

누나는 빙그레 웃어보이며 달래듯 이렇게 덧붙이였습니다.

《내가 무슨 학교엘 가겠니? 학교에 딱 가야 맛이니? 집에서두 얼마든지 공부할수 있는데…》

그러나 누나의 얼굴로 이상한것이 슬쩍 스쳐지남을 정국은 놓칠수가 없었습니다. 정국의 마음은 금시 우중충해졌습니다.

행길에 나선 정국은 가슴 가득이 안겨오는 상쾌한 아침공기를 한껏 들이키며 학교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마을의 아침은 정국의 마음속과는 달리 더없이 맑고 산뜻했습니다. 길녘으로 끝없이 늘어선 아카시아나무가지에서는 뭇새들이 푸드득 날아예며 요란스레 조잘거렸습니다. 그들도 서로 만나서 《밤새 안녕하셨어요?》하고 반가이 인사를 주고받는듯싶었습니다. 멀리에선 뜨락또르의 발동소리가 《퉁퉁퉁…》 아침대기를 찢으며 들려왔습니다. 산허리에 명주수건마냥 둘리였던 안개는 아침해살이 비치는대로 서서히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그와 함께 정국의 마음한구석에 서리였던 엷은 그늘도 저도 모르는새에 스르르 사라지는듯싶었습니다.

학교에 온 정국은 교실문을 《드르릉ㅡ》 힘있게 열고 들어서며 《항상…》하고 손을 번쩍 쳐들었습니다. 그러자 책상머리에 둘러서서 떠들고있던 동무들이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일제히 《준비!》하고 손을 마주 들어보였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쏠린 동무들의 눈길은 이상한것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동무들은 정국이가 자기 책상에 와서 앉기도 전에 우르르 몰켜와서 이런 말을 물었습니다.

《정국아, 너희 누나 대학간다며?》

순간 정국은 가슴이 뜨끔해옴을 느끼였습니다.

《누가 그래?》

퉁명스레 울린 정국의 물음에 한 애가 선뜻 나섰습니다.

《조합에서 다 그러던데…》

그러자 다른 애들도 모두 신명이 나서 한마디씩 끼여들었습니다.

《야ㅡ 정국인 좋겠네. 누나가 대학에 다 가구…》

《이제 4년후면 척 농산기사가 될테지?…》

《야ㅡ 멋있네. 기수가 되자마자 대학엘 가구… 대학을 졸업하면 또 박사공부할테지.》

《야ㅡ 그러면 정국은 시뚝하겠네!》

《정말!》

남의 속은 알지도 못하는 동무들은 이외에도 정국의 누나는 일잘하고 공부잘하기때문에 대학에 간다는둥, 그러기때문에 우리도 공부를 잘해야 대학에 갈수 있다는둥… 실로 참새형제들처럼 찧고받고 못해보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정국이만은 시무룩해서 고개를 쳐들지도 않았습니다. 이러자 잔뜩 떠들어대던 동무들도 어물어물 정국의 눈치를 살펴가며 저마끔 제자리에 흩어져갔습니다. 제자리에 가서 앉아서도 (저앤 왜 저럴가?) 하는 눈치로 흘끔흘끔 정국이를 살펴보았습니다. 머리속이 찌뿌둥한 정국은 수업시간에 아무리 정신을 차려 들어야 머리에 남은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래저래 하루공부는 끝났습니다.

《땡땡땡…》

현관옆에 달린 조그마한 종이 울리자 애들은 막혔던 뚝이 터지듯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우르르 달려나갔습니다. 오직 정국이 혼자만이 외로이 앉아있는데 바깥에서는 애들의 떠드는 소리가 귀가에 쟁쟁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정국은 고개를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끝내 누나는 대학엘 가는구나!…)

정국은 온종일 이 한가지 생각에 울고싶도록 마음속이 서러워졌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는 어떡할가? 이제부터 누구와 살아갈가?)하고 애타게 부르짖어보았습니다.

실로 정국에게 있어서 누나가 학교로 간다는 사실은 너무나 뜻밖의 일이였습니다.

하긴 누나가 학교로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야만 빨리 고향땅을 아름답게 꾸릴게 아닙니까. 그들 오누이는 앞으로 어떻게든지 훌륭한 사람이 되여보자고 몇번이고 마음을 다져먹었던것입니다. 그러나 이제껏 누나와 한번도 헤여져 살아본적이 없는 정국은 누나가 떠나면 자기는 하루도 살아갈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누나는 가야 해. 나때문에 못가면 되나?)

한참후 정국은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으며 책보를 싸들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울컥 치밀어오르는 설음에 곁에서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울음을 터뜨릴듯싶었습니다.

그가 교실문을 나서려는데 때마침 분단위원장 봉기와 세넷의 분단열성자들이 교실로 들어서려 했습니다.

《정국동무.》

봉기는 문안에 들어서다말고 낮으나 부드러운 소리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모든것이 귀찮아진 정국은 봉기의 말을 들은척도 않고 교실문을 나섰습니다.

봉기도 정국의 마음을 깨달았던지 더는 불러세우지 않았습니다.

운동장에서는 애들이 한창 뽈차기를 하고있었습니다. 공을 따라 이리저리 달리는 아이들… 그들은 마치 한다하는 선수나 되는것처럼 모두가 새하얀 런닝그에 흰줄이 쭉쭉 내리뻗은 운동복을 입고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애들은 등뒤에 번호까지 붙였는데 대개가 《9번》이지 《4번》이나 《2번》을 붙인 애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국의 등에도 굵다란 글씨로 쓴 《9번》표식이 달려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이라도 뽈차기에 뛰여들면 《9번》자리는 몰라도 《5번》자리쯤은 자신있는 정국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정국은 모든것이 귀찮았습니다.

 

2

 

큰집으로 통한 큰길에 나선 정국은 다시금 입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정말 누나는 학교로 간다지?…)

정국은 맥없이 걸음을 옮겨디뎠습니다. 길 저켠에서 밀가을이 한창이였습니다.

시누런 밀이삭들이 바람에 술렁술렁 파도치는데 밀가을에 신이 난 조합누나들의 노래소리가 여기 큰길에까지 들려왔습니다. 정국은 고개를 슬쩍 쳐들었습니다. 거기서는 누나네 작업반이 일하고있었습니다. 새하얀 머리수건이 가지런히 쳐다보이는 밀밭에선 무슨 일이 그리 기쁜지 노래하다가는 웃고 웃다가는 노래하고… 바라보니 누나는 맨 저켠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부지런히 낫을 휘두르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누나만은 무슨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것 같았습니다.

정국은 누나에게 달려가보고싶어졌습니다. 달려가서 누나의 낫을 앗아들고 보란듯이 밀포기를 척척 베여나가고싶었습니다. 그러면 아마도 모두들 칭찬할것입니다.

《아유, 정국인 일도 잘하는구나.》

으쓱해진 정국은 밭머리에 놓여있는 물초롱을 집어들고 아래마을 우물에 달려갔다올것입니다. 그러면 랭수를 한바가지씩 꿀떡꿀떡 마시고난 누나들은 또 칭찬할것입니다.

《아유. 기특도 해라.…》

그러나 지금의 정국은 그런 경황이 없었습니다.

그저 서글프고 쓸쓸할뿐이였습니다.

정국은 무심결에 누나가 일하는 밀밭을 다시금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누나도 그 일때문에 고민하고있는게지?)

그러자 정국은 누나에 대한 측은한 생각에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이렇게 부르짖고싶었습니다.

《누나, 내 걱정은 말고 학교에 가!》

그러나 정국은 걸음을 멈추고 누나의 모양을 묵묵히 바라볼뿐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정국은 다시금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였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약 아버지, 어머니가 있으면 누나는 마음대로 학교갈수 있겠지? 그러면 나도 외롭지 않구…)

정국은 집안에 들어서자 문들을 활활 열어제꼈습니다. 오늘은 별스레 방안이 어둑침침한게 숨 답답하고 갑갑했던것입니다.

책상우에 책보를 뿌려던지고 방 한가운데 털썩 드런누운 정국은 눈을 꺼벅거리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만약 누나가 대학에 가면 나두 거길 따라가면 어떨가?…)

그러나 그것은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이였습니다.

(낯선 고장에 가서 어떻게 살아갈가? 숱한 동무들을 두고…)

그의 눈앞에는 분단의 다정한 동무들, 자기를 그토록 사랑해주는 마을사람들과 선생님들의 얼굴이 주마등마냥 피뜩피뜩 스쳐지나갔습니다. 그중에는 말없으나 인정많은 분단위원장 봉기의 얼굴, 그의 어머니의 얼굴, 조합의 관리위원장 아저씨와 여물먹이 할아버지의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정국은 아무리 생각해봐야 이 마을을 떠날것 같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뼈가 묻힌 고향땅, 이 땅을 아름답게 꾸려보리라던 누나와의 약속, 동무들과 물장구치던 마을의 여울목, 장대기를 휘두르면 와그르 떨어지던 뒤울안의 살구…

정국은 생각할수록 잊을수 없는 추억들이 가슴가득히 되살아와 나중엔 (난 여길 안 떠날테야!)하고 자기스스로 입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가? 누나는 가야 할텐데… 다시 여물먹이 할아버지네 집에 가있을가?)

그러나 그것 역시 마음싸지 않은 일이였습니다.

 

주체50(1961)년            

(다음호에 계속)           

 

조합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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