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10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민 경 숙

 

온 탄광에 차고넘쳤던 명절분위기가 어느덧 마을의 집집마다 나뉘여들었는지 동구길은 벌써부터 녀인들이 피워올리는 고소한 음식냄새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 냄새에 취한듯 어슬어슬 땅거미가 찾아들고 불켜진 창가들에서는 웃음소리, 기타소리가 련이어 흘러나온다.

도당회의실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우리 당 총비서로 높이 추대하였다는 특별보도를 접하고난 송명수지배인도 오늘만은 일찌기 집으로 돌아왔다. 동구밖에서부터 탄부들과 마을사람들이 벌려놓은 춤판에 뛰여들어 끝없는 기쁨과 환희에 한껏 취해있던 그가 집현관에 들어서니 이번에는 아들며느리에 출가한 딸네 식구들까지 와서 떠들썩거리며 그를 맞이하는것이였다.

《아버지, 지금 방송으로 특별보도소식이 계속 나오고있습니다.》

《전번 도당대표회에서 아버님이 토론하시는걸 방송으로 다 들었어요.》

《할아버지, 오늘은 제일 기쁜 명절이지요? 그래서 우린 할머니랑 다같이 춤을 추었어요.》

《오냐, 오냐.》 송명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손자, 손녀를 옆에 끼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어느새 방 한복판에서는 애들의 재롱스런 춤노래가 펼쳐졌다. 그리고 그칠새없이 이어지는 흥분어린 목소리들…

흥성이던 집안이 한결 즘즛해졌을 때는 밤이 퍼그나 이슥해서였다.

송명수는 나란히 누운 손자애들의 머리맡에 앉아 쌔근쌔근 잠든 모습을 흐뭇이 들여다보았다.

무슨 재미나는 꿈이라도 꾸는듯 외손녀의 얼굴에 웃음발이 곱게 피여나는데 옆에 누운 손자녀석은 손에 그의 둥근 제모를 쥐고있었다. 아까 그에게서 모자를 받아쓰고 탄부가 다 된듯이 쭐렁거리더니 자면서도 두손으로 꼭 그러안았다.

(허, 녀석두… 그 모자가 중한줄은 알고 그러는지…)

저도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리던 송명수지배인은 별안간 목구멍을 꽉 채우며 솟구치는 뜨거움에 코마루가 찡해났다. 오늘따라 더더욱 못견디게 떠오르는, 수십여년전 철부지시절의 한토막이 그의 달아오른 가슴을 세차게 흔들어놓았던것이다.

 

1

 

와와ㅡ 떠들썩한 함성소리, 귀메일듯 한 박수갈채…

《<전승>이겨라!》 《<복구>이겨라!》

전쟁을 이기고 벌려놓은 첫 운동회여서 아이들의 함성소리 이렇듯 우렁찬것인가, 아니면 절반이나 뭉청 날아났던 단층교사자리에 2층짜리 새 학교를 번듯하게 세워놓고 맞이한 운동회여서 아이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듯 높은것일가.

아니, 그때문만이 아니였다. 지금 여기 학교운동장에는 어리신 김정일장군님께서 와계셨다. 련사흘째 북부지구 탄광들을 현지지도하고계시는 아버지대원수님을 모시고 어제 이곳 탄광마을을 찾으신 장군님께서 자기들의 운동회에 함께 참가하셨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아이들의 가슴가슴에 크나큰 환희와 기쁨을 몰아왔던것이다.

출발선에 나선 명수의 가슴도 여느때없이 자꾸만 울렁거렸다. 방금전 물건찾기경기에 나가는 자기를 보고 꼭 이겨야 한다고 힘을 주시던 어리신 장군님의 목소리가 그 모든 응원소리를 누르며 아직도 쟁쟁히 들려오는듯 했다.

(그래, 어떡허나 1등을 할테야, 1등을.…)

그러자 자신심이 온몸에 살아올랐다. 사실 명수는 오늘 아침 학교에 나오자바람으로 어리신 장군님께서 탄광마을아이들을 만나실겸 운동회를 보시러 나오신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고 솟구치는 호기심을 마냥 누를길이 없었다. 우리와 나이도 동갑이라지, 우리처럼 학생옷을 입었을가? 경기가 시작되면 우리 《복구》편을 응원해줄가, 《전승》편이 되여줄가?

그런데 얼마후 장군님을 맞이한 명수는 대바람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남달리 영채롭게 빛나는 두눈, 만면에 환한 웃음, 흰 광목반소매샤쯔를 입으신 소박하면서도 단정한 몸차림… 분명 어제 빈 화차들이 늘어서있는 철도인입선에서 만났던, 평양에서 왔다고 소개하던 그 학생이 아닌가.

어리신 장군님께서도 명수를 알아보시고 다그쳐 걸으시듯 시원시원한 걸음으로 다가오시였다.

《아, 명수구나. 너희들의 운동회가 보고싶어 나왔어. 너 어느 편이니?》

 어리신 장군님께서 무척 반가운 기색을 띠우고 어정쩡해 서있는 명수의 손을 다정히 잡으시였다. 그 바람에 그의 어깨는 학교애들앞에서 하늘만큼 쑥 올라갔다. 부러움에 젖은 시선들이 일시에 명수에게로 향해졌다. 마치 그가 어제까지만도 자기들과 묻어돌아가던 애가 분명한가 하기라도 하듯 눈까풀을 연신 슴벅거리는 애도 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 학급장인 승민이랑 인사를 나누시는 틈을 타서 한 애는 명수의 옆구리를 슬쩍 건드리기까지 했다.

《아니, 넌 어느새 벌써?》

명수는 희한해서 쳐다보는 그 애의 코등을 툭 튕겨주며 《음, 그전부터 우린…》하고 눈을 끔벅해보였다.

《저거ㅡ》 그 애는 입을 헤 벌렸다. 그런속에 지금 명수가 물건찾기경기에 나선것이다.

명수네 학급애들속에 무랍없이 끼여앉으신 장군님께서는 팔다리를 건들건들 놀려도 보고 몸을 씽씽 솟구어 뜀박질도 해보는 명수를 정찬 눈길로 지켜보고계셨다. 사내답게 어깨가 쭉 퍼진데다 뼈마디가 굵직굵직한 몸체며 감스레한 얼굴에 부리부리한 두눈… 이미전부터 잘 알고지내던 친근한 동무를 대하듯 정을 담아 보고 또 보시는 그이, 따뜻한 기운이 함뿍 어린 모습…

《땅!…》 야무진 신호총소리가 울렸다.

명수는 용수철이 튕겨나듯 앞으로 내달렸다. 눈깜박할 사이에 선참으로 종이쪽지들이 놓인 책상앞에 다달았다.

《야ㅡ》 아이들은 환성을 올리며 성수가 나서 북을 두들겨댔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도 줄곧 명수를 향해 열정적인 박수를 보내시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쪽지를 집어든 명수가 한순간 굳어진듯 서버리며 선뜻 부를념을 않고있지 않는가. 그사이에 벌써 여러 선수들이 책상앞에 다달았다. 《전승》편의 한 선수는 어느새 물건이름을 소리쳐부르며 소고대가 있는쪽으로 막 달려간다. 안달이 난 명수네 학급애들속에서 왜 꾸물거리느냐고 아부재기치는 소리가 다급히 울려났다.

명수는 그제서야 펀뜩 정신을 차렸는지 긴장해서 사방을 둘러보더니 얼른 애들이 있는 응원석으로 뛰여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맨 앞에 앉은 한 애의 학생모를 날쌔게 벗겨 머리에 눌러쓰며 바람처럼 내달렸다. 드디여 명수가 결승선에 다달았다. 순간 와ㅡ 떨쳐일어나는 환성과 소낙비같이 쏟아지는 박수소리…

하지만 기쁨의 환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바위에 부딪쳐 부서져내리는 파도소리마냥 순식간에 땅속으로 잦아들고말았다. 뜻밖에도 심판원이 제일 먼저 결승선에 들어선 명수를 마지막 꼴등으로 선포했던것이다.

눈들이 퀭해진 아이들은 영문을 몰라하며 왁왁 끓어댔다. 승민이는 참지 못하고 운동장을 꿰질러 명수가 서있는 곳을 단숨에 달려가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잠시후 맥없이 돌아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명수도 뒤따라 어깨를 실그러뜨린채 어정버정 걸어왔다.

열이 오른 학급애들이 오구구 떠들며 모여들었다.

《아니, 1등한 명수가 어떻게 꼴등이 될수 있니?》

《명수, 무슨 일이야? 말을 해야 알지.》

승민이는 씩씩 단김을 뽑으며 툴툴거렸다.

《탄부모자를 쓰라고 했는데 학생모자를 썼으니 될게 뭐야.》

《뭐, 탄부모자?…》

애들의 입에서 동시에 놀라움이 터져나왔다.

《야, 무슨 교구비품이나 우리가 쓰는 물건을 생각했지 생뚱같이 그런게 나올줄이야 알았니?》

《생뚱같이가 뭐야. 너희들은 저쪽 응원석에 탄부아저씨들이 계시는걸 보지 못하니?》

《정말, 아까 명수 너의 형님도 왔다고 했지.… 쪽지를 보자마자 인차 소리만 쳤어도 우리가 제꺽 가져다주는건데…》

명수는 이구동성으로 떠드는 애들을 흘깃 바라보며 변명하듯 말하였다.

《체, 탄부모자만 모잔가. 아무 모자라도 쓰면 되는거지.…》

제자리로 들어서던 명수는 어리신 장군님과 불쑥 눈길을 마주치자 그 큰눈을 허둥대며 무척 당황해했다. 퉁실퉁실한 얼굴은 순식간에 구운 가재빛이 되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놀람과 의혹이 엇갈아드는 눈길을 좀처럼 그한테서 떼지 못하시였다. 저 앤 왜 탄부모자를 쓰지 않았을가. 왜 머뭇거리며 물건이름을 입밖에 소리내 부르지도 못했을가?

 

2

 

한낮이 퍼그나 기울었는데도 철도인입선에는 들어온 기차가 한대도 없었다. 그러니 기다리는 철호형은 오늘도 오지 못하는 모양이다.

명수는 다리맥이 스르르 풀려나 빈 화차들이 늘어선 한옆에 털썩 주저앉고말았다.

그러자 눈앞에는 운동회가 끝나도록 어딘가 생각에 잠겨계시는듯싶던 어리신 장군님의 모습이 다시금 안겨왔다. 어제 이곳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구마냥 명수를 다정히 대해주시던 그이이시다.

《난 평양에서 왔어. 탄부아저씨들이 석탄을 어떻게 캐내는지 보려고말이야.》

그때 호기있게 웃으시며 하시는 어리신 장군님의 말씀에 명수는 대뜸 얼굴이 확 밝아졌다.

언제부터 가고싶은 곳이면서도 가보지 못한 평양이라는 그 이름이 지금껏 눌러오던 명수의 호기심에 불을 달아놓은셈이였다. 평양은 어떻니? 정말 멋있겠지. 평양은 여기처럼 온통 까맣지 않을거야. 밤에는 전등불이 번쩍번쩍 빛난다 하더구나.…

끝이 없을상싶은 그 물음에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재미있게 웃으시며 하루가 다르게 일떠서는 평양의 모습을 눈에 보듯 일일이 들려주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여기에는 왜 나왔는가고 물으시였다.

명수는 자기 형과 막역한 사이인 철호형을 기다리는중이라고 대답했다. 도에 있는 기관차대에서 참모장으로 일하는 그 형한테 명수는 며칠전에 편지를 보냈었다. 형의 생일이 언제인데 그 어간에 꼭 왔다가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 벌써 생일날이 모레로 다가왔다. 그래 혹시 기차로 오지 않을가 하여 이렇게 나온 걸음이였다.

《그럼 너의 형은 여기 탄광에서 일하니?》

어리신 장군님의 물으심에 명수는 좀 머뭇거리다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내심 기쁘신듯 두눈을 반짝이시였다.

《그러니 넌 탄부의 동생이구… 너를 알게 되여 참 기쁘구나.》

 그러시고는 명수의 두손을 꼭 잡아 흔들어주시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늘일은 이게 뭐란 말인가. 유치원애들도 곧잘하는 물건찾기경기에 나가 꼴찌만 하고 들어온 자기를 얼마나 어리석게 여겼을것인가. 중학생이란게 물건도 바로 찾지 못하느냐고 아니,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듯 한마디말도 건늬실것 같지 않았다.

명수는 생각만 해도 억울하여 입술을 감쳐물었다.

(에익, 하필이면 나한테 그 종이쪽지가 딱 차례질건 뭐람.)

명수는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듯 발치의 돌멩이를 집어서 획 던지며 철길이 뻗어간 한끝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문득 가까이에서 인기척소리가 났다. 머리를 돌리던 명수는 어깨를 흠칫하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아셨는지 어리신 장군님께서 그를 찾아 여기로 오고계셨던것이다.

방금전에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승민이를 만나보고 나오시는 길이였다.

《명수가 왜 탄부모자를 쓰지 않았을가?》 하는 그이의 물으심에 승민이는 이렇게 볼부은 소리를 했다.

《에참, 체통이 커다란게 속은 어디서… 그건 보나마나 1등을 못할가봐 그랬을거야. 탄부아저씨들이 맨 뒤쪽에 앉아있으니까 그걸 가지러 갔다오는 새면 다른 선수한테 첫자리를 떼울수 있거던. 그러니 모자는 모자겠다 얼른 학생모를 쓰고 달렸겠지. 그 애가 탄부모자만 썼어도 우리 <복구>편이 아짜아짜하게 지진 않는건데… 다 자기만 제일이라 생각해서 그러지 뭐. 학급의 명예는 안중에 없이…》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알릴듯말듯 고개를 갸웃거리시였다.

(정말 1등을 못할가봐 그랬을가?)

마음속 한귀퉁이에서 모록모록 피여오르는 의혹의 실연기는 그이로 하여금 어서 빨리 명수를 만나고싶은 충동으로 끓게 하시였다. 또 무척 상심해있을 그가 걱정되기도 하시였던것이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창피해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서있는 명수를 보시자 웬일인지 그가 측은하게 느껴지시였다. 그래 한시바삐 그 애의 마음을 헤쳐보고싶으시였지만 애써 마음을 눅잦히시며 얼른 말꼭지를 다르게 떼시였다.

《오늘도 기차가 들어오지 않았구나.》

《응.》

명수는 맥없이 대답했다.

《그 형님이 혹시 다른 차로 올수도 있지 않을가?》

《아니… 철호형은 우리 집에 올 때면 언제나 탄받으러 오는 기차를 타고 오군 했어.》

명수는 다시금 철길 한끝에 눈을 주며 심드렁해서 계속했다.

《이젠 아마 우리 탄광쯤은 다 잊어버렸는지도 몰라. 기차를 타고 어디든 못 가보는데가 없는 형인데 뭐…》 마지막 말마디는 떨림소리를 타고 거의나 간간이 울리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후두두 가슴이 뛰시였다. 탄광쯤은 다 잊어버렸을것이라는 그 말이 무척 놀랍게 들리셨던것이다. 그러나 이 애가 얼마나 철호형이 기다려졌으면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랴싶어 진심으로 명수를 달래시였다.

《명수, 걱정마. 그 형도 바빠서 인차 못 오겠지 뭐. 형님의 생일날엔 꼭 올거야. 아무렴 너의 편지를 받고서도 모르쇠를 하겠니.》

명수는 무겁던 가슴이 한결 트이는듯 했다.

어리신 장군님의 다정하신 그 음성에 저도모르게 마음이 포근해지는것을 느끼며 그는 어줍게 웃음을 머금었다.

《정말 그럴가?… 하긴 전쟁때 군대에 나가서도 우리 형보다 더 자주 편지를 해주던 형이야.》

《그것 봐, 내 말이 틀리나.》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며 명수의 바라진 어깨에 손을 얹으시였다.

《그런데 넌 형의 생일날에 무얼 기념으로 드릴 생각이니?》

명수는 더수기를 긁적이며 싱긋 웃었다.

《물고길 한다래끼 잡을 생각이야. 승민이가 그러는데 저기 건너마을 강가에 메기랑 가물치랑 많이 밀려왔대.》

《그럼 우리 래일저녁 고기를 함께 잡는것이 어때?》

《뭐?… 우리 형을 위해서…》

명수는 놀람과 고마움이 뒤섞인 눈길로 어리신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3

 

강기슭에 슬몃슬몃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너럭바위우에 낚시도구들을 주런이 놓고난 명수는 어리신 장군님께서 맞춤한 낚시터를 찾아보시는 동안 먹이통을 마주했다. 그가 채 빚다만 귀밀가루에 말린 번데기가루를 섞어 한창 먹이덩이를 빚고있는데 강복판에서 《첨벙.》하는 물장구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곳에서 동그란 물주름이 련이어 일어났다. 아마도 고기 한마리가 물우에 높이 떴다 곤두박질친 모양이다.

(쳇 이놈들. 너희들이 암만 까불어대도 이 《빵》앞에선 꼼짝 못할걸. 게다가 나한텐 너희들을 단번에 다 불러내는 불까지 있거던. 자, 어디 한번 맛보려니.)

명수는 사기가 나서 카바이드등을 번쩍 켜들었다. 그리고 강물우에 껌벅껌벅 불줄기를 내쏘았다. 웬간해서는 이 등을 좀처럼 내놓지 않던 형님이 이번에는 정말 큰 선심을 썼다. 물론 형에게 생일소리는 앞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장군님과 함께 고기잡이를 한다는 그 말에 형님은 크게 놀라더니 언제나 《눈》처럼 아끼던 이 등을 서슴없이 내놓는것이였다. 이 등에 카바이드까지 다시 교체해주며…

어느새 장군님께서 가까이로 다가오시였다.

《너 카바이드등을 들고 나왔구나.》

《응, 고기잡이를 한다니까…》 하며 명수는 장한듯이 그 등불을 장군님께 내드렸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마치 소중한 보물을 안을 때처럼 그것을 정히 받아안으시고 슬쩍 조절개를 돌리시였다. 그러자 퍼런 불줄기가 설핏한 어둠속을 예리하게 동강냈다.

《정말 불빛이 여간 세지 않구나.》 이렇게 말씀하시며 등불을 세심히 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무엇을 발견하셨는지 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드시였다. 그러시고는 조절개를 막아 불을 끄시고 반사경을 깨끗이 닦으시였다.

《아니 그건…》

명수는 눈이 뎅그래서 말끝을 흐리였다. 래일아침이면 또다시 갱안에 들어가 탄가루를 뒤집어쓸 등불이 아닌가.

그런데도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꼼꼼스레 닦고나서야 명수에게 돌려주시였다.

《명수, 이건 넣어두는것이 좋겠어. 너의 형님한텐 이 등이 눈과 같은것이여서 아끼고 잘 다루어야 하거던.》

《뭐?…》 명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쩌면 우리 형과 꼭 같은 말을 하는것일가.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웃으시며 자신의 도구주머니에서 삐죽이 내여민 막대기를 활 들어보이시였다. 막대기끝에 헝겊으로 다져 만든 심지가 붙어있었다.

《자, 우린 이것으로 고기를 잡자.》

맞춤한 자리를 잡으신 장군님께서는 명수더러 곧 불을 달게 하시였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덧붙이시였다.

《이래뵈두 이건 보통 불뭉치가 아니란다. 한번 불을 지피기만 하면 팔뚝같은 고기를 한다래끼 낚을 때까지 절대로 꺼지는 법이 없거던. 네가 그만큼 잡으려 한다기에 내가 딱 계산해서 만들었어.》

《뭐, 그럼 옛말에 나오는 요술지팽이같은거란 말이니?》

명수는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장군님께서는 시치미를 떼시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계속하시였다.

《그렇지 않구. 명수, 오늘 혼나게 됐다. 글쎄 한다래끼를 인차 잡으면 일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밤을 꼬박 새워야 되겠는걸. 너 자신 있니?》

《까짓거, 잡을만큼 잡고 불뭉치를 물속에 집어넣지 뭐.》

《그런데 문젠 불뭉치가 처음 불을 지핀 사람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거야. 어쨌든 한다래끼를 낚지 못하면 넌 래일도 모레도 이 불과 떨어지지 못해. 에라, 명수가 겁쟁이가 돼서 못하겠다면 나라도 불을 다는수밖에.》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정말 자신께서 불을  달 차비신듯 헝겊뭉치에 기름을 함씬 적시시였다.

명수가 불쑥 손을 내밀며 단호히 말했다.

《좋아, 내가 달겠어.》

《하하… 명수가 그렇게 나오니 내가 되려 겁이 나는데… 너의 손에서 불뭉치가 떨어지자면 결국 내가 고기를 다 낚아내야 하니 말이다. 어차피 우린 몸도 마음도 하나가 되는수밖에 없구나. 어때, 그럴 자신 있으면 불을 달아봐.》

명수는 서슴없이 불을 달았다. 확ㅡ 불이 피여올랐다. 어느샌가 모여든 장막같은 어둠을 순간에 불사르며 기세차게 피여올랐다.

정말 그런 불뭉치였으면 싶었다. 래일까지도 모레까지도 그냥그냥 타오르는, 그리하여 친근하신 장군님과 헤여짐이 없이 영원히 함께 있고싶었다.

《너 정말 요술불뭉치로 생각하는게 아니니?》하는 장군님의 목소리가 울려서야 명수는 정신이 들어 열적게 웃었다.

《차라리 이 강에 고기가 얼마 없었으면 해.…》

《내가 동무를 잘못 만났나보구나. 정 그렇게도 친구를 고생시킬셈이냐?》

《아니 그건…》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순진하게 변명하려드는 명수를 보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명수도 따라웃었다.

불빛을 향해 고기들이 정신없이 모여들었다. 잠시동안에 두마리의 가물치가 낚시에 물리워 올라왔다. 명수는 흥이 나서 퍼들쩍거리며 풀숲에 나떨어진 고기를 잡느라고 쩔쩔맸다.

고기들이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미끼를 톡톡 건드릴뿐 좀처럼 물려지지 않았다.

낚시대를 드리워놓으신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앞쪽에 나앉은 명수를 여겨보시다가 이렇게 조용히 물으시였다.

《명수, 너 운동회땐 왜 그랬니? 혹시 종이쪽지를 들고 무슨 생각이라도 한건 아니니?》

명수는 어깨를 흠칠 떨며 속눈섭을 치떴다. 자기의 마음속을 거울처럼 환히 들여다보시고 하시는 말씀같아 별안간 속이 찔금해났던것이다. 얼마후 강가의 고요한 정적을 타고 명수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난… 그 모자를 쓰기 싫었어. 탄부모자말이야. 그때 불쑥 형생각이 났던거야.》

전쟁이 끝난 다음해 형에게서 기다리던 편지가 왔다. 거기에는 형이 인차 제대되게 될것이라는것 그리고 평양의 어느 한 대학으로 가게 되였다는 참으로 희한한 소식이 적혀있었다.

명수는 너무 좋아 애들에게 자랑했다.

《우린 인차 평양 간다. 형님이 평양의 대학생이 되였거던.》

그 말에 아이들은 명수를 얼마나 부럽게 쳐다보았던가. 덜렁이인 승민이는 그날로 아버지에게 막 졸랐다고 한다. 우리도 명수네처럼 도시에 가 살자고…

그때부터 명수는 잠자리에 들어도 평양에 가는 꿈만 꾸군 하였다. 때로 꿈속에서 번화한 거리를 걸어가는 자기를 보기도 했다. 또 어느날엔가는 층층 높은 아빠트의 창가에서 탄광마을 애들더러 어서 오라 손저어 부르는 꿈도 꾸었다. 밝고 깨끗한 거리, 씽씽 내달리는 뻐스와 승용차들… 그런데 바로 두달전에 대학으로 간다던 형님이 제대배낭을 메고 탄광으로 내려왔다. 처음엔 그저 자기를 놀리는것이라고만 여겼었다. 그다음엔 그것이 현실임을 깨달았다. 아침일찍 갱에 올라가본다며 집을 나섰던 형님이 점심녘에 탄부들이 쓰는 함석모를 쓰고 나타났던것이다.

명수는 안타까이 형님의 옷섶에 매달렸다. 형은 왜 대학 안 가나? 우린 왜 평양 못 가나?

형님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첫날의것과 꼭같은 말로 타일렀다.

《허, 평양… 물론 도시도 좋지, 깨끗하고 화려하고… 하지만 난 여기가 더 좋구나. 여긴 우리가 나서 자란 고향이며 또 얼마나 큰 보배덩어리를 품고있는 땅이냐. 그 보배덩이를 더 많이 캐내야 나라가 얼른 전쟁의 상처를 가실게 아니냐. 그래서 난 대학모대신 이 탄부모자를 쓴거란다. 자, 너도 한번 형처럼 써봐라. 이제 커서…》

명수는 참지 못하고 형의 손을 밀막았다.

《씨, 난 그런 모자 절대 안 쓸테야. 형은 벌써 잊었어? 그 모자때문에 어머니를 울리시던 일말이야.》

해방전 명수가 2살나던 해에 있은 일이다. 그날 아침 갱으로 들어갔던 아버지는 굴이 무너지는 통에 영영 돌아오지 못하였다. 아버지대신 다 찌그러진 싸리모자만이 되돌아왔었다. 그런데 철없던 형님이 그 모자를 쓰고 장한듯이 온 동네를 나돌아 사람들을 되게 울렸다지 않는가. 하늘땅이 무너지게 통곡하던 어머니가 설분을 못 이겨 아들의 뺨을 쳤다는 눈물겨운 그 이야기를 명수는 해방후에 들었다. 그때 그는 얼마나 슬피슬피 울었는지 모른다. 우린 절대 그 모자를 쓰지 말자고, 다시는 어머니를 울리지 말자고 애원하듯 형에게 말했었다. 형도 그러마 하고 선뜻 머리를 끄덕였었다. 그런데 벌써 그날의 약속을 잊었단 말인가.

형은 웃으며 명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늘은 달라. 우린 어제날의 천대받던 탄부가 아니거던.》하며 그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명수는 형을 원망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집에 살다 인민군대에 나갔던 철호형이 멋진 둥글모를 쓰고 찾아왔다. 도에 있는 큰 기관차대의 참모장이 되였던것이다. 어릴 때부터 명수의 형과 살붙이처럼 지내던 철호형은 그곳에 가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말을 비치였다. 그러나 형님의 다져진 마음은 끄떡없는 바위돌 한가지였다.…

《우린 끝내 도시로 가지 못했어. 헌데 요 며칠전에 어머니가 건사했던 콩자루를 꺼내며 하시는 말씀이 <얘야, 인차 형의 생일이 오겠는데 너무 괴롭히지 말아. 3년석달 조국을 지켜 목숨을 내대고 싸운 형이 집에서 마음놓고 맞게 되는 첫 생일인데 기쁘게 해줘야 할게 아니냐.> 그 말이 얼마나 내 가슴을 쳤던지. 난 형님을 기쁘게 해드리고싶었어. 그래 철호형에게도 편지를 보낸거야.… 난 이번에 그 철호형이 오면 바싹 부탁을 들이댈 생각이야. 우리 형이 내 마음을 조금도 알아주지 않는데 제발 철호형이 우리 형을 좀 잘 설복해달라고 말이야.》

고기가 미끼를 물었는지 낚시대가 연신 흠씰거렸다. 그래도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줄을 당길념을 않으시였다. 그래서 명수는 철호형을 애타게 기다리고있구나, 그래서 이 앤 남달리 평양을 《부러워》하는구나, 승민이도 다른 애들도…

서운하시였다. 그리고 가슴이 아프시였다.

탄부, 해방전 그 누구보다도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빛이 없는 땅속에서 짐승처럼 숨져가지 않으면 안되였던 탄부들이다. 그리도 고생많던 탄부들이여서 더더욱 위해주고싶고 내세워주고싶다던 경애하는 대원수님의 말씀이 이 시각 세차게 가슴을 파고드시였다.

새 조선 건설시기에 벌써 탄부들이 일하는 막장에까지 들어가시여 동발들을 하나하나 흔들어보시며 《생산도 중요하지만 나에겐 탄부들이 몇배로 더 귀중합니다. 탄부들이 없이야 우리가 어떻게 새 나라를 건설할수 있겠습니까.》라고 뜨겁게 말씀하시던 경애하는 대원수님.

그때 일생을 굴안에서 보냈다는 한 늙은 탄부는 대원수님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올리지 않았던가.

《해방전엔 막장이 하두 캄캄해서 지옥같이 느껴지더니 이제는 땅속에도 밝은 빛이 흘러듭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저 멀리 산발들이 굽이쳐간 하늘가로 시선을 보내시였다. 그러자 전쟁이 끝나는 길로 대원수님을 모시고 다녀본 도시와 농촌의 형편이 방불하게 그려지시였다. 공장과 농촌, 학교들이 들어앉았던 자리에는 재무지만이 바람에 흘흘 날리고있었다. 그걸 다시 일떠세우자면 우선 철강재가 절실히 필요한데 제철소에서는 탄이 없어 용광로에 불도 지피지 못하고있었다. 철도역들마다에는 숨죽은 기관차들이 가득 늘어서있고…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마디마디 절절한 마음을 기울이시며 명수에게 그 모든 형편을 이야기해주시였다.

《정말이지 사방에서 탄… 탄을 요구하고있었어. 사람이 밥을 먹어야 살아갈수 있듯이 석탄은 공장과 건설장, 도시와 농촌 그 어디에서나 식량처럼 귀중한것이야. 그것이 없으면 우린 복구건설도 사회주의건설도 할수 없어. 그래서 원수님께서는 하셔야 할 일, 가보셔야 할 곳이 수없이 많았지만 먼저 여기 탄광지구부터 찾으신것이 아니겠니. 그 뜻을 받들어 너의 형도 도시를 마다하고 여기 탄광으로 돌아온것이고… 그런데 넌 아직 너무 모르고있구나. 원수님께서 탄부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너의 형이 지금 이 시각에도 얼마나 크나큰 믿음에 받들려 탄을 캐고있는지.…》

애틋한 정을 담아 차근차근 하시는 어리신 장군님의 목소리는 수면우에 지울수 없는 파문을 아로새기며 절절히 퍼져가는듯 했다. 활활 타는 불길이 명수의 둥실한 얼굴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있었다.

 

4

 

둥근해가 서산을 가까이 할무렵, 명수네 삽짝문으로 별안간 승민이의 흥분어린 웨침소리가 날아들었다.

《명수야, 원수님께서 너의 형을… 너의 형을…》

《뭐?!》

신발도 바로 꿰지 못한채 헤덤비며 달려나오는 명수에게 승민이는 가까스로 숨을 톺으며 입을 열었다.

《글쎄 원수님께서 오늘 낮에 너의 형이 일하는 갱에 들어가셨댔다는거야.》

두 애는 무작정 청년갱으로 내달렸다. 발이 어디에 놓이는지 알지 못했다. 몸이 허궁 뜨기도 하고 풀넝쿨에 곤두박질하면서도 그래도 명수는 정신없이 산언덕을 치달아올랐다.

벌써 갱앞에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방금 갱에서 나온듯 한 탄부들이 화려한 꽃밭속에 둥둥 떠받들려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게 안겨오는 대형속보판 《오늘 현재 청년갱 1소대에서 이달계획 150% 초과수행!》

명수는 사람들속을 헤집고 들어갔다. 형, 형의 목에도 커다란 꽃목걸이가 걸려있었다. 눈물에 젖은 형의 두눈이 명수를 보더니 번쩍하고 빛난다.

《명수야ㅡ》

《형! 야, 형! 원수님께서 형을 만나주셨다는게… 그게 정말이나요?》

명수는 형의 손을 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마냥 들뛰는 동생을 굽어보며 형은 연신 눈을 슴벅거렸다.

《그래… 원수님께서 어떻게 내 생일까지 아셨는지… 이 동무가 전선에서 공세우고 돌아와 처음으로 맞는 생일이 오늘이라고 하시면서 대학도 마다하고 탄광으로 온 동무라고, 이 등불을 자기 <눈>처럼 귀중히 여기는 훌륭한 동무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단다. 그러시면서 <집안에서 맏아들의 어깨가 참으로 무겁습니다. 그때문에 부모의 믿음도 큰것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나라의 맏아들로 둔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탄부들은 나라의 맏아들입니다.>하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셨구나.》

명수는 꿈만 같은 행복에 그저 벙벙해서 서있었다. 나라의 맏아들… 대학을 마다하고 탄광으로 온 동무… 공세우고 돌아와 맞는 첫 생일…

(아, 그럼!…)

명수의 눈앞에는 형의 생일을 기쁘게 해드리자며 밝게 웃으시던 어리신 장군님의 정넘친 얼굴이 언뜻 다가들었다.

(그랬구나. 원수님께 모든것을 다 말씀드리고 우리 형을 원수님앞에…)

사방에서 분간키 어렵게 오고가는 무수한 말마디들이 그의 귀전을 오래도록 울리였다. 열이 오른 숨소리, 감동에 젖은 눈물로 하여 갱입구는 그야말로 감격의 바다를 이루고있었다.

얼마후 사람들이 내려가고 한결 즘즛해졌을 때 《허, 이게 명수 아니냐?》 하고 명수의 등을 치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던 명수는 거의나 환성에 가깝게 소리질렀다.

《야, 철호형!》

명수는 철호형의 팔에 덥석 매달렸다. 진회색제모를 쓴 철호형은 그새 더 름름한 자세로 변했다.

《오늘 꼭 오실줄 알았어요. 내 편지를 받았나요?》

《그럼, 받았지.》 철호형은 편지내용을 념두에 둔듯 의미있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리고는 명수의 형이 서있는 뒤쪽을 넌지시 보며 《또 너의 형 신세를 지자고 왔다. 하지만 이번엔 빈손이 아니야. 형의 생일을 축하할겸 탄광지원물자를 한방통 싣고왔다. 그런데 이런 경사까지 겹쳤구나.》

이때 사진기를 멘 아저씨가 그들쪽으로 다가왔다. 그뒤로 어리신 장군님께서도 오고계셨다.

명수는 그들먹이 차오르는 흥분을 누르지 못하며 장군님께로 마주 다가갔다. 승민이랑 애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애들을 다정히 둘러보시고나서 명수의 손을 잡으시고 그의 형이 서있는데로 몇걸음 더 다가가시였다. 그리고 정을 담아 명수의 형을 부르시였다.

《오늘은 형님에게서 제일 기쁜 명절인데 기념으로 사진 한장 찍는게 어떻습니까?》

명수의 형은 놀라움에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옆에서 사진기받침대를 세우던 사진사아저씨가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참, 탄부가 이렇게 떠받들리다니, 내 읍에서 사진사를 몇해째 해오지만 탄부의 생일때문에 먼길을 걷기는 처음일세.》

명수의 형도 철호형도 어리신 장군님을 감동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명수는 장군님이 고마와 그이의 손을 꼭 잡고 섰다.

준비가 다 되자 철호형이 명수의 형을 버쩍 목마에 태웠다.

《자네야말로 진짜 나의 맏형이네. 자네가 없으면 우리 기차도 다 아닌가.》

명수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높이 받들리운 형님을 후더운 마음으로 보고 또 보았다. 까마득히 높이 보았던 철호형이 그보다 몇갑절 더 높이 솟아오른 형을 받들고 섰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도 새별같은 눈으로 그 숭엄한 화폭을 보고계셨다. 대원수님의 한량없는 사랑에 저렇듯 높이 떠받들리운 명수의 형, 얼마나 훌륭하고 믿음이 가는 사람들인가. 바로 저런 사람들을 위해서 대원수님께서는 이 땅우에 그들을 위한 세상, 으뜸가는 로동계급의 세상을 세우겠다고 하시였구나. 자신께서도 끝없이 위하고싶으시였다. 수천척 지하막장에서 일하는 탄부들을 이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제일로 내세우고 그들을 위해서라면 하늘의 억만별이라도 따다주고싶으신, 온 세상을 통채로 안겨주고싶으신 심정이시였다.

사진촬영이 끝나자 검은보속에서 얼굴을 내여민 사진사아저씨가 어리신 장군님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 일생에 오늘같은 영광이 더 차례질텐가. 자, 어서ㅡ》

명수도 그의 형도 모두다 한결같은 기대를 품고 어리신 장군님을 지켜보았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약간 얼굴을 붉히시더니 스스럼없이 그에 응하시였다.

《그럼 이 고장에 왔던 기념으로 저도 한장 찍겠습니다.》

사진기앞에 나서시던 어리신 장군님께서 문득 명수의 형을 보시고 탄부모자를 한번 써보자고 하시였다.

《원수님께 기쁨을 드린 형님의 모자를 저도 한번 써보고싶어 그럽니다.》

순간 명수는 깜짝 놀랐다. 잘못 들었는가싶어 형님을 바라보니 그도 얼결에 손을 모자에 가져갈뿐 굳어진듯 서있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 거듭 말씀하셔서야 형님은 모자를 그이께 내드렸다.

어리신 장군님께서 탄부모자를 쓰셨다. 탄가루가 앉은 둥근 함석모아래서 장군님의 명쾌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습니까, 저도 이렇게 쓰면 탄부같아보입니까?》

아, 어쩌면 저리도 밝게 웃으실가. 어쩌면 저리도 스스럼없으실가. 명수는 흉벽을 세차게 두드리는 충격을 억제할수가 없었다. 탄이 귀하여, 탄부가 더없이 소중하시여 탄광마을 아이들의 운동회도 함께 보아주시고 형을 위해 낚시질도 같이 하시며 대원수님앞에 형님을 모범탄부로 내세워주신 어리신 장군님이시였다. 그런데도 자기는 낚시질의 그밤 생각깊은 눈길로 보고 또 보시며 애타게 일깨워주시던 장군님의 그 마음을 너무도 몰랐었지. 탄부란 그 이름을 그리도 정을 담아, 사랑담아 부르시는 장군님의 그 심정을.

아이들은 명수와 한마음이런듯 흥분어린 얼굴로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사진사아저씨가 샤타를 누르려는 순간 어리신 장군님께서 명수를 부르시였다.

《명수, 우리 서로 친구가 되였는데 함께 사진을 찍자. 그리고 너희들도…》

명수도 썼다. 운동회때도 외면한채 쓰지 못했던 탄부모자를 명수도 썼다. 아이들도 모두가 따라썼다.

《흑ㅡ》

끝내 터쳐지고야마는 형님의 흐느낌소리…

《난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구나. 원수님을 만나뵙고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이 이렇게 탄부모자를 쓴걸 보니 세상에 가장 큰 기쁨이 나에게… 나에게 차례진것 같구나. 정말… 고맙다.》

기쁨으로 한껏 충만된 형님의 얼굴을 보며 어리신 장군님께서도 활짝 웃으시였다. 기쁨에 기쁨이 더해지는 행복한 순간이였다.

 

생각에서 깨여난 송명수지배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말코지에 걸어놓았던 안전등이 달린 모자를 내려썼다.

《이 밤중에 어딜…》

안해가 눈이 둥그래서 문밖까지 따라나왔다.

《갱에 올라가봐야겠소. 오늘 밤이야 갱안에서 보내는게 멋이지.》

갱으로 향한 길은 벌써 일나가는 탄부들로 법석 끓고있었다. 웃고 떠들며, 더러는 어깨들썩 절반춤까지 추어가며 일터로 향하고있었다.

송명수도 흥분이 살아올라 절로 어깨가 들썩거려졌다.

(그래, 우리한텐 이게 멋이야. 밤새워 한덩어리 탄이라도 더 캐내는것이…)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어려서부터 우리 탄부들과 한몸이 되신분, 탄부들을 사랑하시고 로동계급을 위하시는 마음을 천품으로 타고나신 우리 장군님. 우리는 바로 오늘 그런분을 우리 당 총비서로 높이높이 모시지 않았는가. 우리 로동계급의 세상을 영원히 지켜주고 빛내여주시는 위대하신 장군님을…

유정한 달빛이 은실마냥 가닥가닥 흘러내리는 언덕에 올라서니 갱입구가 시야를 메우며 안겨왔다. 등빛이 현란한 그곳에 뜻깊은 추억을 부르며 그때의 그 탄부모자가 정히 보존되여있었다.

주체87(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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