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10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오 혜 영

 

가을날의 하늘은 여름방학때보다 한참이나 높아보입니다. 알른알른 닦은 유리처럼 한점의 구름도 없이 얼마나 맑고 푸른지 몰랐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은 그저 좋다고 막 깨꾸막질을 하면서 뛰여갑니다.

새 학기가 시작된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습니다.

모두가 저렇게 기뻐하고있었지만 지성이는 그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마음속에 돌덩어리가 하나, 둘… 매달리는것만 같았습니다.

9월 1일, 새 학기를 맞는 첫날이였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하루공부를 마친 학생들을 정답게 바라보며 이번 학기에도 모두가 최우등의 영예를 지니고 좋은일하기도 더 많이 찾아하자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다음날 지성이네 학급동무들은 자기네끼리 만든 경쟁도표를 교실벽에 척 걸어놓고 누가 제일 먼저 붉은 줄이 오르는가 내기하자며 손가락약속까지 걸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있느라고 새 학기가 며칠 지나서야 퇴원한 지성이는 경쟁도표앞에서 아직 《맨머리》바람인 자기의 칸을 보고 정말이지 그냥 있을수 없었습니다.

탁아소, 유치원때부터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지성이인지라 속이 막 바글바글 끓어올랐습니다.

어떻게 하나 전번학기처럼 공부에서도 좋은일하기에서도 다른 애들보다 꼭 앞서고싶었습니다.

지금 지성이네 고향땅에서는 정말 굉장한 공사가 진행되고있었습니다. 올해 3월 사나운 눈바람이 세차게 불어치는 멀고도 험한 여기까지 찾아오신 아버지장군님께서는 새로 건설하는 희천발전소건설장을 돌아보시며 2012년까지 기어이 공사를 완공할데 대한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습니다.

그 소식에 접한 마을사람들은 저저마다 격정에 넘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습니다. 여기 룡림땅이 글쎄 어디라고 산세 험하기로 소문난 이곳까지 우리 장군님께서 몸소 찾아오셨으니…

그때 중학교 2학년생이던 지성이네들도 아버지, 어머니의 옷자락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못 잊을 그날의 감격을 반년이 지난 오늘도 가슴속에 그대로 안고사는 그들이였습니다.

희천발전소건설장은 지성이가 살고있는 마을에서도 수십리나 떨어진 깊은 산골짜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하루가 멀다하게 건설장에 자기들이 마련한 지성어린 지원물자들을 보내주었습니다.

그사이 어느덧 3학년생이 된 지성이네 학급동무들은 새 학기가 시작되여서부터 선생님의 말씀대로 저마다 공부도 더 잘하고 남다른 좋은 일도 더 많이 찾아하려고 애를 쓰는것이 정말 여간 아니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지성이는 옆에 앉는 딱친구 학철이가 한가지 멋진 일을 생각했다며 손목을 잡아끌기에 그를 따라나섰습니다.

숙제공부는 물론 복습과 예습까지도 다 해놓은 지성이와 학철이가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울창한 숲이 나섰습니다. 고향산천의 싱그러운 향기가 바람결에 물씬물씬 풍겨오고 온갖 새들의 지저귐소리도 정답게 들려왔습니다.

키높이 자란 나무들은 지난해보다 더 무성하게 가지를 펼치고있었습니다. 지성이네는 어렸을 때부터 이 숲의 덕을 많이도 입어왔습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스르르 도는 향기로운 머루와 다래, 이 고장의 특산인 갖가지 맛좋은 버섯들이며 산나물들을 잠간이면 한바구니 뜯을수 있었습니다. 지성이네가 매일 쓰는 교과서며 학습장과 연필들의 고향도 다름아닌 이 숲이였습니다.

이런 보물숲을 헤치며 학철이가 지성이의 손목을 잡고 다달은것은 바로 발전소건설장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였습니다.

지성이는 숨이 차서 나무밑에 앉아 할딱거리다가 건설장의 모습을 보고서는 대번에 눈이 올롱해졌습니다.

《체, 난 또 어디에 데려오나 했구나. 내가 아무렴 여길 모를가봐 예까지 올라와서 다시 보여주니?》

학철이는 빙그레 웃음을 띄우며 손가락으로 주변의 어느 한곳을 가리켰습니다.

《지성아, 그러지말고 저길 좀 봐라.

저기엔 잘 익은 다래가 다닥다닥 하구 또 조금 내려가면 온통 버섯밭이야. 우리가 저 다래랑 버섯이랑 산나물들을 가득 뜯어서 건설장에 보내주면 건설자아저씨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니?》

지성이는 그의 말을 듣고서야 손바닥으로 《딱.》이마를 치며 생글거렸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우리가 바로 건설자아저씨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자는거구나. 야, 넌 어쩌면 그런 생각을 다… 하하하.》

지성이는 학철이와 함께 즐겁게 웃으면서 새삼스럽게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역시 학철이는 나보다 생각하는 품이 넓단 말이야. 어떻게 그런걸 다 궁리해냈을가? 정말 그렇게 하면 내 경쟁도표의 붉은 줄도 쑥쑥 올라갈거야.)

두 딱친구는 래일부터 해야 할 일을 서로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는 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지성이는 학철이와 그 일을 며칠밖에 같이 할수가 없었습니다.

지성이가 병원신세를 지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던, 이번 여름방학때 되게 접질렀던 발목이 갑자기 퉁퉁 부어오르면서 또다시 말썽을 일으킬줄이야…

아마도 험한 산길을 너무 무리하게 오르내린탓인것 같았습니다.

그 바람에 지성이는 사흘동안이나 어머니의 부축임을 받으면서 절뚝거리며 학교에 다닐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차 다시 제대로 걸을수는 있었으나 비탈이 심한 산길을 혼자힘으로는 도무지 오르내릴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성이는 이악스럽게도 학철이를 따라 그냥 산으로 오르내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학철이와 또다시 산으로 오르려던 지성이는 마을어구에서 왕진나왔던 의사선생님한테 그만에야 《현장체포》되였습니다.

얼굴이 갸름한 의사선생님은 고운 눈매로 지성이의 발목이며 다리를 깐깐하게 살펴보더니 왜 말을 듣지 않느냐고 한바탕 《욕》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런 다음 지성이에게 한달쯤 절대안정해야겠다며 엄한 목소리로 그루를 박는것이였습니다.

학철이는 가슴이 철렁해났습니다. 바로 자기때문에 지성이의 접질렀던 발목이 더 심해진것 같아 안절부절 못하고 서있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그런 학철이를 보고 생그레 웃다가 귀속말로 소곤소곤 지성이는 한주일쯤 안정하면 될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의 마음을 눙쳐주었습니다. 그러나 한달동안은 두번다시 절대로 산을 오를수 없다는, 그것도 조심조심 학교길만을 오고갈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며칠동안 안정치료를 받고 학교에 나온 지성이는 경쟁도표를 보았습니다. 경쟁도표앞에 서고보니 지성이는 자기 힘으로 좋은 일을 찾아하여 떳떳이 자기의 붉은 줄을 올리고싶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혼자 타박타박 집으로 돌아온 지성이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물끄러미 맑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끝간데없이 펼쳐진 하늘에서 수리개 한마리가 유유히 날아예는 모양을 보니 부러운 생각이 불쑥 갈마들었습니다.

(나도 수리개처럼 저 넓은 하늘을 훨훨 날아다닐수는 없을가? 그럼 남보다 더 많은것을 보고 알게 될거구 좋은 일도 더 많이 찾아하게 될텐데…)

선들선들한 가을바람이 지성이의 달아오른 두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습니다.

어느덧 집뜨락에 땅거미가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지성이는 너무도 안타까와 마당안을 오락가락하며 그냥 골똘히 생각하였습니다.

마치 저 혼자만이 동무들과 뚝 떨어져있는것만 같았습니다. 너무 자기생각에만 옴해있던 나머지 다음날 딱친구 학철이의 생일날까지 그냥 지나칠번 하였습니다. 마침 학철이의 전화가 먼저 걸려왔기에 망정이지.… 

그날은 여느때보다 별로 날씨가 좋았습니다.

누구나 기다리는 일요일이여서만이 아니라 학철이의 생일날이여서 그런지 지성이의 기분도 조금이나마 즐거워지는것 같았습니다.

(둘도 없는 딱친구의 생일날까지 다 잊고있었으니 참… 그래도 학철인 날 제일 친한 동무라고 끔찍이도 위해주는데.)

지성이는 어머니가 마련해준 기념품에 향기로운 꽃다발까지 안고 그의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학철이네 집마당에 들어서던 지성이는 학철이 어머니의 반가움에 찬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이구! 우리 지성이가 왔구나. 그래 다리는 좀 나았니? 에그, 우리 학철이랑 동무들이 널 얼마나 목이 빠지게 기다린줄 아니? 어서 방으로 들어가거라.》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방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학철이였습니다. 학철이는 우정 우습강스럽게 입을 삐쭉거렸습니다.

《야, 너 꽤나 빨리 오누나. 동산에 해뜬지가 언젠데 이제야 오니? 내가 비행길 보내주었어야 했을걸, 참…》

그러나 지성이는 조금도 타내지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생일을 축하해!》하며 커다란 꽃다발을 학철이에게 안겨주었습니다.

두 친구는 서로서로 손목을 잡고 방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먼저 와있던 동무들도 떠들썩 지성이를 반겨맞았습니다. 방 한가운데는 이런 날이면 학철이가 의례히 펼쳐놓군 하는 커다란 가족사진첩이 펼쳐져있었습니다.

지성이는 그걸 보며 뜻있는 눈웃음을 지었습니다. 그것이 학철이의 큰 자랑거리임을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습니다.

지성이는 그 사진첩의 첫장부터 마지막까지 어디에 무슨 사진이 끼워져있다는것과 몇번째 장에는 학철이가 유치원때 냠냠 먹다 떨군 사탕물흔적이 그려져있다는것도 몽땅 알고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모인 동무들가운데는 그 사진첩을 처음 보는 애들도 있었습니다. 얼굴이 둥실한것이 꼭 어머니를 닮은 학철이는 아니나다를가 아이들에게 온 가족의 자랑보따리를 펼쳐놓기 시작했습니다.

《이분은 우리 큰아버지인데 인민군대야. 올해 3월 여기 희천발전소건설장을 찾아주신 아버지장군님을 만나뵈왔단다. 아버지장군님께서는 우리 큰아버지를 자신의 곁에 세워주시고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셨어. 정말 난 우리 큰아버지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어.》

아이들도 부러움이 한가득 담긴 눈길을 학철이에게서, 그가 짚는 사진마다에서 좀처럼 떼지 못하였습니다.

《학철아, 넌 정말 좋겠구나. 그런 훌륭한 친척들이 많아서… 그런데 난 큰아버지는커녕 삼촌도 한명 없으니… 우리 아버진 왜 외아들로 태여나가지구.》

익살쟁이 남수의 말에 모두가 깔까르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학철이도 벙그레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한채 그냥그냥 자랑샘을 퍼냈습니다.

《이 사진에 있는분은 우리 큰삼촌인데 지금 철제일용품공장 부지배인이야. 인차 지배인이 될지도 몰라. 그리고 이 막내이몬 이 사진보다도 실지로 더 곱구 멋있단다. 이제 곧 평양에 있는 영화촬영소에서 쑥 뽑아올려간다나, 하하하.》

아이들은 여느때는 별로 말이 없던 학철이가 잔뜩 흥에 겨워하는 바람에 번져지는 사진첩갈피마다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보며 엉치를 들썩거렸습니다. 구들장이 깨져나갈만큼 《하하하.》 따라웃었습니다.

그렇게 눈물이 찔끔 나오도록 한바탕 웃고난 아이들은 학철이 어머니가 찾는 소리에 오구구 일어섰습니다. 아래방에선 벌써 푸짐한 음식상이 그들을 기다리고있었습니다. 

그날 밤은 정말이지 휘영청 달이 밝았습니다.

쟁반같이 크고 둥근 보름달이 저 하늘 한가운데에 두둥실 떠올라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도 저 하늘의 달처럼, 고무풍선처럼 둥둥 떠가는것만 같았습니다.

길옆의 자작나무들도 정답게 잎새를 설레고 코스모스꽃들은 달빛에 고운 모습을 더더욱 뽐내며 한들한들 춤을 추었습니다.

서로서로 팔을 끼고 마을길을 걷던 아이들은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저마다 속살거렸습니다.

《저 보름달은 참 좋겠지. 저 하늘에서 온 세상을 환히 다 내려다볼수 있지 않니?》

《정말 저 보름달이 솟아있는 곳에 올라가서 우리 나라를 한번 내려다보면 좋겠어. 그럼 얼마나 멋있을가?》

아이들이 이렇게 재깔재깔거리는데 잠자코 듣기만 하던 남수가 불쑥 입을 열었습니다.

《참 너희들두… 그 좋은 구경을 우리들끼리 보기만 해선 뭘 하니? 우주비행선을 타고 우리 학교 운동장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사진들을 찰칵찰칵 찍어서 남겨놓는다면 몰라두…》

고수머리 경일이가 재차 남수의 말을 받았습니다.

《확실히 남수머린 베아링이라니까. 네 말이 옳지 뭐. 한데 그런 사진들을 저 하늘에서 찍는다고 해도 그렇게 큰 사진들을 어디에 건사한다?》

남수는 그의 말을 마치 기다리기나 한듯 잽싸게 말을 이었습니다.

《경일아, 너두 우리 할머니처럼 걱정이 꽤나 많구나. 저 하늘에 둥실둥실 떠가는 구름송이들마다에 한장씩 척 매달면 될게 아니가? 그렇게 되면 우리 고향 사람들모두 하늘을 쳐다보다가 그 사진들을 다 보게 될거구. 또 그 구름들이 평양을 지나 그길로 지구를 한바퀴 돈다면 우리 나라는 물론이고 온 세상 사람들모두가 강성대국 우리 나라를 똑똑히 볼수 있을게 아니야.》

리치에도 맞지 않는 엉터리소리였지만 아이들은 남수의 그 희한한 말에 작은 가슴들을 마냥 들레이며 뭇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오래도록 올려다보았습니다.

그 순간 무엇인가 지성이의 머리를 번개처럼 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가?)

지성이는 그 훌륭한 꿈을 그냥 그대로 놓쳐버리고싶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집에 돌아온 지성이는 자기 방에서 무엇인가 골똘하니 궁리를 짜내고있었습니다.

정성껏 다림질한 교복을 옷걸이에 걸어주려고 지성이의 방에 들어서던 어머니가 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니 지성아, 너 지금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옴해서 하고있니?》

지성이는 별빛눈을 반짝이며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니, 사람들은 왜 어른이건 아이건 자기의 사진첩을 펼쳐보면서 그리도 기뻐할가요?》

어머니는 지성이의 말을 듣고 그제야 알았다는듯 머리를 끄떡이였습니다.

《그건 아마 그 사진첩에 자기들의 지난날 모습, 잊지 못할 사람들의 모습이 다 찍혀져있기때문일거다. 말하자면 많은 기쁨과 잊지 못할 일들을 저마다 깊은 감동속에 돌이켜보게 되는거지. 다시말해서 자기의 지나온 모든것들이 거기에 다 담겨있기때문이야.

  앞집 로력영웅할아버지도 롱삼아 자주 얘기하지 않던? 칠십나이를 넘기고보니 한창 젊은 시절에 더 많은 사진을 남기지 못한것이 후회된다고, 정말이지 머리에 흰서리를 얹고보니 지난날이 사진만큼 또렷하게 새겨진 자욱이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밤중에 갑자기 그건 왜 묻는거냐?》

  지성이는 어머니의 목에 담쑥 매여달렸습니다.

 《어머니도 우리 학급동무들이 좋은일하기경쟁을 벌리는걸 알지요. 그런데 난 이 다리때문에… 하지만 난 오늘 좋은 생각을 해냈어요. 난 <우리 고향 사진첩>을 만들어 발전소건설장아저씨들에게 보내주자는거예요. 아버지장군님의 따사로운 사랑의 해빛아래 나날이 사회주의선경으로 변모되여가는 우리 고향마을의 새 모습을, 이제 발전소가 완공되면 더 훌륭한 지상락원으로 꾸려질 내 고향마을의 멋있는 모습을 말이예요.

그러면 아마 건설자아저씨들은 백배, 천배로 더욱더 힘과 용기가 샘솟아날거구 그만큼 아버지장군님께 크나큰 기쁨과 만족을 앞당겨드릴수 있을거예요. <우리 고향 사진첩>을 보면서 날에 날마다 몰라보게 달라져가는 아저씨들의 고향마을의 새 모습도 흐뭇하게 그려보게 될거구, 일하고 또 일해도 조금도 힘든줄 모를거란 말이예요. 어때요? 어머니, 내 생각이.…》

지성이 어머니는 아들이 너무도 대견하고 기특해서 그를 더 힘껏 가슴에 꼭 끌어안았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정겨움에 푹 젖어있었습니다.

《지성아, 네가 정말 용쿠나. 우리 지성이가 정말 훌륭한 생각을 했다. 아무렴, 건설자아저씨들이 무척 기뻐하구말구. 발전소건설을 하루빨리 끝낼수록 강성대국 그날도 앞당겨진다는것을 어찌 모르겠니. 원, 녀석두… 아직 철부지인줄로만 알았더니 이젠 다 컸구나. 다 자랐단 말이야.》

행복에 겨워 지성이의 볼에 막 얼굴을 부비던 어머니가 문득 이렇게 물어보는것이였습니다.

《지성아, 그런데 너 그 사진첩을 어떻게 만들겠는지 한번 생각해봤니?》

《저, 아직 미처 그것까지는…》

지성이의 말에 어머니는 짐짓 서운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것 보지, 그렇게 멋진 생각을 왜 혼자만 안고 끙끙거리는거냐. 나같으면 남먼저 너의 딱친구 학철이한테로 달려갔겠다. 어서!》

《야, 우리 어머니가 제일이야, 제일!》

지성이는 지근지근 쏘아대던 다리의 아픔도 다 잊은듯 학철이의 집을 향해 나는듯이 달음질쳐갔습니다.

그날은 밤늦도록 학철이의 방에서 불빛이 꺼질줄 몰랐습니다.

 

지금 지성이와 학철이는 제법 시뜩한 걸음새로 즐겁게 집으로 돌아오고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머리를 기웃거리던 학철이였습니다. 자그마한 고향마을에 무슨 사진으로 찍을만 한 자랑거리가 그렇게도 많겠느냐 하는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숙제공부도 다 끝내고 지성이에게 이끌려 며칠동안 꼬박 고향마을을 다 돌아보고난 학철이는 뒤더수기를 뻑뻑 긁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학철이의 걱정은 괜한 걱정이였습니다. 학철이랑 지성이랑 아는새, 모르는새에 고향마을은 그 얼마나 몰라보게 달라져있었겠습니까?!…

발그스레 홍조가 비낀 그들의 얼굴에서는 남실남실 웃음이 떠날줄 몰랐습니다.

지금 이들은 읍에 있는 사진관에 갔다오는 길이였습니다. 사진첩은 크고 두툼한걸로 아버지가 당장 구해주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사진첩에 끼울 사진들이 제일 큰 걱정이였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굴리다가 읍에서 사진사를 하는 학철이 삼촌을 찾아가기로 했는데 그들은 바로 지금 거기서 돌아오는 길이였습니다.

지성이와 학철이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귀담아 다 듣고난 학철이 삼촌은 갑자기 그들을 한품에 와락 그러안으며 대번에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습니다.

《너희들이 정말 용쿠나. 어느새 다 자랐단 말이야. 어쩌면 그런 생각을 다… 아무렴, 우리 선군동이들이 어떤 아이들이라구. 지성아, 학철아, 너희들의 그 마음을 알고도 남았으니 사진은 조금도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들의 말이라면 내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내려오지 않으리, 하하하.》

학철이 삼촌의 인심좋은 얼굴에도, 지성이와 학철이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여났습니다.

잠시 무엇인가 생각해보던 학철이 삼촌은 자기는 나날이 변모되여가는 고향마을의 새 모습을 도맡아 찍겠으니 지성이랑 학철이랑 너희들은 해빛밝은 배움의 창가에서 마음껏 배우며 뛰노는 온 학교아이들 아니, 온 마을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마음껏 다 찍어오라며 사진기까지 서슴없이 안겨주었습니다. 사용방법까지 차근차근 알기 쉽게 알려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지성이랑 학철이랑은 도리머리질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찍은 사진만도 그 얼마나 많다구요. 그것들만 한장, 두장 모아놓아도 정말 굉장할겁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애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 얼마나 좋은 나라에서 사는가를 가슴쩌릿이 느낄수 있었습니다.

정말 희천발전소건설장은 고향마을에서도 수십리 머나먼 곳에 있지만 그곳은 고향땅만이 아닌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같이 달려가는 곳이였습니다.

모든 계획이 빈틈없이 맞물려지자 지성이와 학철이는 그 걸음으로 담임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도 역시 대찬성이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놓치고있던 점들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일깨워주셨습니다. 《우리 고향 사진첩》의 맨 앞자리에는 마땅히 아버지장군님의 선군령도를 받들어 오늘의 대비약과 대혁신의 투쟁에서 아낌없이 구슬땀을 바쳐가고있는 지성이와 학철이의 아버지, 어머니랑 온 고향마을사람들의 모습이 먼저 담겨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다음날부터는 지성이네 학급동무들도 하루공부를 마치고 모두가 사진첩을 만드는 일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습니다.

그들도 모두 지성이와 학철이처럼 낮이나 밤이나 희천발전소건설장을 가슴속에 안고사는 아이들이였으니까요.

아이들마다 정히 고르고골라 가져온 사진들이 한장, 두장 불어날수록 사진첩에는 정말이지 온 고향마을어른들의 모습이 다 담겨지는것만 같았습니다.

경일이는 목재가공공장의 영예게시판에 나붙었던 아버지의 사진을 그대로 가져왔는가 하면 남수는 한해계획을 훨씬 앞당겨 끝낸 기쁨을 안고 온 작업반이 함께 모여앉아 함박꽃같은 웃음을 지으며 찍은 어머니의 사진도 가져왔습니다.

전쟁로병들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진을 가져오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돌격대제복을 입고 찍은 아버지, 어머니의 결혼식사진까지 들고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 무슨 모습들이 없겠습니까.

공화국영웅과 로력영웅들, 수많은 선군시대 공로자들…

정말이지 산판과 논밭머리, 마을과 길가에서 그저 무심히 지나치던 고향마을어른들의 모습이였지만 보고 또 볼수록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사진들이였습니다.

점점 부피가 두터워지는 그 사진들로 하여 지성이는 눈코뜰새없이 바빴습니다.

그 많은 사진들을 나이별로, 부류별로 한장, 두장 골라서는 정성껏 붙여야 했고 또 매 사진마다 특색있고 뜻이 깊으면서도 재미나는 《제목》들을 달아야 했습니다.

학철이는요?

학철이도 지성이 못지 않게 바빴답니다.

《사진수집가》라는  영예로운 임무를 수행하느라 학철이의 두다리에서도 자개바람이 일 지경이였습니다.

사진첩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는 지성이의 모습을 찍은 사진도 한장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잔뜩 가슴을 내민채 책상에 기대여선 경일이와 남수의 모습을 찍은 사진도 한장…

학습에서 모범인 길순이와 봄이의 얼굴도 따로따로 한장한장… 언젠가 등산의 날에 있었던 오락회때 사진기앞에서 질겁한듯 고개를 돌리는 새침데기 옥주의 그 인상을 찍은 사진도 한장…

탁아소, 유치원 행복동이들의 복스럽고 귀여운 얼굴들도 빠짐없이 모아서 한장한장! 또 한장한장!

얼굴도 인상도 표정도 다 제나름이였지만 그 사진들속에는 고향마을아이들의 행복한 모습과 동심의 세계가 한점 꾸밈도 없이 펼쳐져있었습니다.

이제는 학철이의 삼촌이 찍어올 사진들을 붙이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학철이는 사진관에 전화를 걸다 못해 볼이 부어 투덜거렸습니다.

《쳇, 삼촌은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우리 고향마을이 그래 얼마나 넓다구 열흘나마 사진관에서 나가 살면서도 아직도 사진을 다 못 찍었단 말이야.》

학철이랑 지성이랑 온 학급동무들이 목마르게 기다리는 속에 학철이의 삼촌이 드디여 나타났습니다.

선생님을 앞세우고 교실에 들어선 학철이 삼촌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지성이며 학철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숨돌릴 사이도 없이 메고온 두툼한 가방부터 열어제꼈습니다. 그다음 찍어온 사진들을 책상우에 쭉 펼쳐놓는것이였습니다.

《야ㅡ하.》

어깨성을 쌓고 사진들을 들여다보던 아이들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감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모든것이 다 눈에 익은 풍경이였지만 보면 볼수록 더 정답고 아름다운 고향마을의 모습이였습니다.

깊은 산골짜기의 한복판에 오붓하게 자리잡은 고향마을, 아담하게 지은 1동 2세대짜리 살림집들,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번듯하게 때벗이를 한 문화회관이며 진료소, 유치원과 탁아소들…

고향땅의 여러가지 특산물들이 줄줄이 쏟아져나오는 식료가공공장, 나날이 현대화되여 가고있는 목재가공공장과 푸른 숲 우거진 양어장의 전경도 있었고 하늘높이 우뚝 쌓아올린 콩낟가리들과 드넓은 약초밭을 찍은 사진들도 있었습니다.

저녁노을 곱게 비낀 동구길로 보람찬 로동의 기쁨과 희열을 안고 떠들썩 웃으며 마을로 돌아오는 아버지, 어머니며 형님, 누나들의 낯익은 모습도 보였습니다.

전문사진사의 솜씨가 확실히 다르긴 달랐습니다. 매 사진 한장한장이 그대로 손색없는 예술사진같았습니다.

(야, 우리 고향마을이 정말 이렇게도 멋있었단 말이야!)

지성이는 학철이 삼촌의 손을 담쑥 부여잡았습니다.

《학철이 삼촌,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학철이 삼촌은 도리여 펄쩍 뛰며 도리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아니, 아니다. 고맙다는 인사는 오히려 내가 너희들한테 해야겠다. 사진이 늦어져서 미안하다만 난 이번 기회에 정말이지 많은것을 보고 듣고 느꼈다.  <우리 고향 사진첩>! 그것은 그대로 아버지장군님을 영원히 높이 모시고 받들어나갈 앞날의 주인공들의 모습, 바로 너희들, 선군동이들의 미덥고 자랑스러운 모습이란다.》

선생님이 제일선참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아이들도 손벽이 깨져라 짝짜그르 박수를 따라쳤습니다.

교실안은 한동안 요란한 박수소리로 떠나갈듯 했습니다.

연신 두눈을 슴벅이던 학철이의 삼촌이 사진기를 꺼내들며 소리쳤습니다.

《자, 선생님. 오늘같은 날 사진을 남기지 않으면 언제 남기겠습니까. 제 이 애들의 집체사진을 한장 멋있게 찍을테니 <우리 고향 사진첩>의 맨 첫장에 붙여주십시오. 얼굴도 마음도 하나같이 고운 우리 아이들의 사진을 말입니다.》

찰칵!

선생님도 웃으시고 지성이도 학철이도 모두가 활짝 웃고있었습니다. 

드디여 완성된 《우리 고향 사진첩》이랑 지원물자를 한가득 싣고 희천발전소건설장으로 떠나는 날이 왔습니다.

학교운동장에서는 어서 떠나자는듯 자동차가 가락맞게 경적소리를 울리고있었습니다. 차에는 발전소건설장으로 탄원해가는 학철이의 삼촌도 타고있었습니다.

두팔에 사진첩을 정히 안은 지성이의 등을 선생님이 떠밀어줍니다. 학철이며 경일이와 남수… 온 학교 선생님들과 동무들이, 온 마을이 그를 바래워줍니다.

아니, 온 나라가 그를 바래워주고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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