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장 성 철
《송아지》동무
방금전까지 빈집처럼 조용하던 집안이 벅적 끓었다. 그럴만한 일이 생겼기때문이였다. 상점에 나갔던 할머니가 출장가방을 멘 낯선 아저씨를 데리고 왔던것이다. 그 아저씨의 출현은 처음부터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여보게… 정수, 내가 왔네. 내가 왔어… 하하하.》 아직까지 우리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아버지를 이렇게 《정수》라고 막 불러댄적이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처음 보는 저 아저씨는 《혁이아버지》 혹은 《기사장동무》로만 불리우던 아버지를 동네아이 부르듯 이름만 부르는것이 아닌가. 일요일이여서 책상우에 그 무슨 도면같은것을 가득 펴놓고 깊은 사색에 잠겨있던 아버지가 그 아저씨를 보자마자 환성을 올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게 누군가! 철만이가 아닌가.》 아버지와 그 아저씨는 서로 얼싸안고 넓다란 방안이 좁다하게 돌아갔다. 그 바람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밥상에 앉아 숙제를 하던 내가 밖으로 밀려나고말았다. 그런데 밖에서는 더 굉장한 일이 벌어지고있었다. 몸이 좋아서 조금만 걸어다녀도 숨이 차하던 할머니가 글쎄 뜰안에서 암닭의 뒤를 따라가며 넙죽넙죽 《절》을 하고있지 않는가. 《해해해.》 정말 웃지 않고는 못 견딜 장면이였다. 《얘… 넌 뭐가 좋아 웃기만 하니? 빨리 와서 이놈을 <포위>해라.》 할머니는 밉지 않게 눈을 흘겨보이고는 다시 닭을 《추격》했다. 《닭은 왜 못살게 그러나요? 알을 잘 낳는데…》 나는 여전히 얼굴에 웃음을 남실거리며 물었다. 《넌 아버지에게 반가운 손님이 온걸 못 보니?》 그러니까 닭을 잡자고 그러누나.… 나의 입술은 대번에 나팔꽃처럼 뿔어올랐다. 아버지를 찾아오는 손님들마다 모두 닭을 잡아 대접하고나면 우리 집에는 닭이 한마리도 안남을게 아닌가. 그러면 매일 나의 밥상에 오르던 닭알부침도 못먹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그닥 즐거운 일이 못된다. 《저 아저씬 누구나요?》 나는 마지못해 《생포》한 닭을 할머니에게 안겨주며 뿔난 소리로 물었다. 《저사람말이냐… 네 아버지의 어릴적 <송아지>동무란다. 알겠니?》 할머니는 마치도 닭에게 말을 하듯 흐뭇하게 바라보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송아지>동무요?》 참 별난 동무도 다 있다. 송아지… 저 아저씨의 별명인게지. 헹 참, 많고많은 별명중에 왜 하필 《송아지》일가.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인차 머리를 끄덕였다. (아마 훈이가 고양이를 고와하는것처럼 저 아저씨는 송아지를 고와했을거야.) 나의 눈앞에는 집에서 항상 고양이를 안고도는 훈이의 넙죽한 얼굴이 떠올랐다. 훈이는 공부도 잘하고 《재담》도 솜씨있게 할줄 아는 아주 재미난 애였다. 항상 재미난 이야기가 샘물처럼 흘러나오는 훈이의 주위에는 아이들이 언제나 오골오골 묻어다닌다. 요즘 훈이는 학급애들에게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를 해주어 어느 예술단의 이름난 재담배우처럼 대단한 인기를 독차지하고있었다. 그런 훈이가 유치원때부터 맛있는 간식도 나누어먹고 학교에도 꼭꼭 함께 오가는 둘도 없는 나의 딱친구였다. 그덕에 나는 그에게서 재미나는 이야기를 다른 애들보다 더 듣군 하였던것이다. (저 아저씨가 우리 아버지의 《송아지》동무라면 훈이는 내 《고양이》동무야, 참 재미있는데…) 정말이지 훈이와 나는 아버지들처럼 먼 후날 어른이 되여서 만나면 방바닥이 아니라 길바닥에서라도 얼싸안고 딩굴 그런 기딱막힌 사이였다. 아마 그때 가서는 그까짓 닭 같은건 한마리가 아니라 열마리가 없어져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불쑥 훈이가 보고싶어졌다. 당장 만나서 아버지들처럼 얼싸안고 딩굴어보고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던것이다. 혹시 알게 뭐람. 훈이 어머니가 얼싸안고 돌아가는 우리를 보고 닭은 안 잡아도 고소한 풋강냉이지짐이라도 지져줄수 있거던.… 그애어머닌 우리 어머니처럼 상점판매원이 아니니 일요일인 오늘 집에 있을것이다. 나는 마음이 고무풍선처럼 붕 떠올라 잠시도 머물러있을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멀지않은 훈이네 집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훈이네 집 마당으로 들어서던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오똑 서버렸다. 글쎄 훈이가 시원한 포도나무그늘아래서 왕골돗자리를 척 펴놓고 누워 콜콜 잠을 자고있지 않는가. 땀까지 보질보질 흘리면서 말이다. 오늘이 일요일이니까 밤새껏 전자오락을 놀아댄게지… (난 반갑게 상봉하고싶어 왔는데 낮잠만 자누나.…) 훈이옆에서 까딱거리며 졸고있던 고양이만이 노란 눈알을 대굴대굴 굴리며 나를 올려다보고있었다. 맹랑하게 고양이쪽을 쳐다보던 나의 눈은 한순간 반짝 빛났다. 그의 머리맡에 되는대로 펼쳐져있는 숙제장과 함께 가방안에서 삐쭉 나와있는 책이 나의 눈길을 끌었던것이다. (아니, 저게 뭐야?… 《봉이 김선달》이야기책이 아니야?) 늦가을 왕밤알처럼 커다래진 눈으로 책을 바라보던 나의 머리속에 갑자기 괘씸한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다. (그러니까 훈이가 저 책을 보구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댔구나.… 쳇, 재미난 책을 혼자 봐?) 학교에 나와 매일 한가지씩 얘기하길래 책을 보고 그러는것이 분명해 같이 보자니까 없다고 하더니… 정말이지 괘씸하기 짝이 없는 훈이였다. (혼쌀을 내주어야겠어.…) 나는 살금살금 그쪽으로 다가가 책을 손에 잡아 쥐였다. 그런데 일이 안될세라 책을 뽑는데 그만 책가방속에 있던 필갑이 묻어올라와 《떨꺽.》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는것이 아닌가. (아이쿠, 들켰구나.) 나는 고양이옆에 온몸을 납죽하니 붙이였다. 《음… 누구야?》 아닐세라 잠기에 젖은 훈이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외눈으로 바라보니 그 애는 눈을 감은채로 잠꼬대같은 소리를 하는것 같았다. 나는 얼결에 대답했다. 《나야- 고양이야.》 《으-응, 고양-이…》 다시 훈이의 《콜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후-》하고 한숨을 내쉬고 대문밖으로 뺑소니를 쳤다. 조금만 어물대다가는 저 애가 《엉? 고양이가 말을 하다니-》 하고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날수 있으니까. 집까지 달려온 나는 책을 품속에 감추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방안에는 그때까지 아버지와 《송아지》아저씨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웃방으로 올라간 나는 그때부터 정신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나는 《송아지》아저씨가 돌아가는 소리도, 아버지가 바래워주러 따라나서는 소리도, 또 밖에서 나를 찾는 훈이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아니 얘, 넌 찾는 소리가 안들리냐?》 할머니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와서야 나는 책에서 눈길을 뗐다. 《왜 그러나요? 할머니…》 《나가봐라.… 훈이가 찾아왔다.》 《훈이가요?》 나는 속이 띠끔 찔렸지만 책을 덮어 책장속에 넣고 태연하게 밖으로 나갔다. 얼굴에 알지 못할 이상한 표정을 하고 서있던 훈이가 나를 보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 《혁이야… 너 아까 오전에 우리 집에 오지 않았댔니?》 《아니…》 《그럼 내 이야기책을 못보았겠구나?》 《몰라, 이야기책이라니?》 나는 시치미를 뻑 따고 도리질만 해댔다. 그러자 말하기 멋적어진 훈이는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돌아섰다. (안녕히 가십시오ㅡ) 나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레 참으며 훈이의 뒤에 대고 큰소리로 한마디 했다. 《잘 가.…》 그런데 내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 그 애가 다시 돌아서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것이 아닌가. 혹시 무슨 눈치를… 아직 책을 다 못 보았는데 들짱나면… 나는 조마조마한 눈길로 훈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훈이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소리가 흘러나왔다. 《혁이야… 너 말하는 고양이가 있다는 소릴 들어봤니?》 《하하하.》 훈이가 무엇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알고있는 나는 더이상 참을수 없어 웃음보를 터뜨리고야말았다. 나의 웃음을 제나름대로 해석한 훈이가 자기도 어처구니 없다는듯 씩- 웃더니 타박타박 밖으로 나가버렸다. 《혁이야… 저 훈이가 왜 왔댔니?》 터밭으로 나오던 할머니가 맥빠진 걸음새로 돌아가는 훈이의 뒤모습을 띄여보고 이상해서 묻는것이였다. 《왜 오다니요? 그 앤 내 <고양이>동무가 아니나요?》 《뭐… 그건 무슨 소리냐?》 《참, 할머니두… 아까 그 아저씨가 아버지의 <송아지>동무인것처럼 훈이는 내 <고양이>동무예요. 그 애는 고양이를 고와하니까요.…》 그제야 말뜻을 알아차린 할머니는 《호호호.》웃음을 터뜨렸다. 《이 녀석, 사람 웃기지 말아.… 훈이도 네 <송아지>동무다.》 《아니란데요. <고양이>예요.》 할머니는 고집스럽게 머리를 흔드는 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원 녀석… 얘 혁이야, <송아지>동무라는건 너와 훈이처럼 어릴 때부터 다정하고 사이좋게 자라온 동무들사이를 두고 하는 말이란다.》 나는 할머니의 말에 두눈이 뗑그래지고말았다. 그러니까 《송아지》동무란 별명이 아니라 훈이와 나처럼 아이적부터 허물없는 딱친구를 두고 하는 말인것이다. 《그런걸 난… 그럼 훈이도 내 <송아지>동무?》 나는 씽긋 웃으며 다시 훈이를 생각했다. 우선 래일 벌어지게 될 일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웃음집이 흔들거린다. 래일 학교에 가면 훈이는 틀림없이 아이들에게 에워싸일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책을 《잃어》버렸으니 훈이는 할 이야기가 없어 쩔쩔맬것이다. 그때 내가 척 나서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줄것이다. 그러면 학급애들이 모두 나를 얼마나 대단하게 바라보겠는가. 나는 픽 하고 제김에 웃어버리고는 다시 웃방으로 들어갔다. 책을 마저 읽어야 했던것이다.
허물없는 사이
다음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며 나는 훈이쪽을 먼저 바라보았다. 짐작했던대로 훈이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에워싸여있었다. 하지만 훈이는 할 이야기가 없어 진땀을 빼는것이 아니라 흥이 나서 여전히 이야기를 하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래서 말이야, 어린 홍길동이가 어머니와 함께 산길을 가거던.…》 (그러면 그럴테지.) 훈이가 하는 이야기는 《봉이 김선달》옛말이 아니라 누구나가 다 알고있는 영화이야기였다. 훈이가 하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다보니 누구나 다 본 영화이야기지만 학급애들은 재미나게 듣고있는것이였다. 훈이의 이야기는 계속 울려왔다. 《그때 갑자기 나쁜 놈들이 나타났어.… 그놈들은 홍길동이와 그의 어머니를 붙잡아가려고 했거던. 이때 갑자기<휙>하는 소리가 나더니 도사할아버지가 나타났단다. <령감은 누구요?> 하고 두령이 소리쳤어.…》 훈이가 흉내를 얼마나 그럴듯하게 냈는지 아이들은 키드득거리며 웃어댔다. 《계속하라… 재미있다야…》 《진짜 영화에서 나오는 <도적>같구나야.》 그런데 훈이는 입이 얼어붙은듯 가만히 앉아 두눈만 껌벅거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그랬는지 아니면 문턱에서 깨고소하게 자기를 바라보는 나와 눈길을 마주쳐서인지 그만 영화대사를 잊어버렸던것이다. 그렇다고 그쯤한것에 쭈밋거릴 훈이가 아니였다. 《할아버진 맞받아 소리쳤어. <난 배우일세.>… 그러자 두령이 둥그래진 눈으로 <나도 배운데…>라고 했단다. 도사할아버지는 <난 인민배울세.>하며 껄껄 웃었단다. 그래서 꼼짝도 못했지 뭐.…》 까르르 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 애의 말을 끊어버렸다. 《엉터리야.》 《다른걸 하라. <봉이 김선달>옛말…》 《김선달이 못된 원에게 뜨물을 먹인 다음 어떻게 됐니?》 아이들이 다그쳐묻자 훈이는 꽈리처럼 빨개진 얼굴로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럴수밖에… 책을 잃어버렸으니 그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알겠는가. 이때라고 생각한 나는 아이들앞으로 쑥 나섰다. 《그다음은 내가 해줄게.…》 아이들의 눈길이 모두 나에게 쏠렸다. 《네가?》 《혁이가… 너두 그런 재간이 있니?》 아이들은 모두 미덥지 못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보란듯이 훈이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였다. 못된 원을 혼쌀낸 다음 성천량반을 골탕먹인 이야기, 그다음 저만 저라고 우쭐대는 지주놈을 속여 모란봉 낭비둘기를 팔아먹은 이야기… 학급의 모든 아이들은 다 내 주위에 올망졸망 울담을 치고 둘러싸여있었다. 유독 훈이만이 한쪽옆에 따로 떨어져앉아 뾰족한 눈길로 나를 쏘아보고있었다. 실컷 그러라지. 어금이가 콕콕 쏘라지. 배가 아프라지.… 수업이 시작되여 중단되였던 이야기는 휴식시간마다 계속 이어졌다. 정말이지 훈이에게 쏠렸던 아이들이 몽땅 나에게 옮겨왔던것이다. 하루수업이 끝날 동안 나를 흘겨보는 훈이의 눈길은 변함이 없었다. 《자, 받아.… 잘 봤어.》 마치 빌렸던것을 돌려주듯 시치미를 뻑 따고 능청을 떠는 나의 손에서 책을 나꿔채듯 앗아든 훈이는 저 혼자 쌩쌩 집으로 가버렸다. (쳇, 녀자애들처럼 앵돌아지긴… 친한 사이에 고쯤한 장난을 가지고… 저런 애와 어른이 되면 반갑게 상봉하게 될가?) 나도 속으로 토달거리며 혼자 집으로 가게 되였다. 그때부터 훈이는 나에게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별치도 않은 일을 가지고 쬐쬐하게 노는 훈이와 마주설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후 우리사이에 정말 뜻밖의 일이 벌어지게 되였다. 그날 오후 집에서 숙제공부를 하고있는 나에게 훈이가 찾아왔던것이다. (그러면 그럴테지… 헹, 이렇게 제발로 찾아올걸 좀 빨리 그럴게지.) 그렇지 않아도 방금전 까다로운 수학응용문제와 맞다들려서 (요럴 땐 훈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였던 나는 얼마나 반가왔는지 몰랐다. 이야기책《사건》이 있은 후 이 며칠동안 나는 정말 속상할 정도로 심심한 날들을 보내였던것이다. 항상 함께 오가던 학교길을 혼자 가야 했고 또 학교에 가서는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등까지 돌려대고… 그러면서도 이렇게 찾아오길 얼마나 목마르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훈이는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문손잡이를 잡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쳇, 그다지나 멋적어하긴…) 나는 웃으며 훈이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글쎄 머리를 들어 나를 보는 그 애의 《뾰족》한 눈길은 여전한것이였다. 아니, 전번보다 더 뾰족한 눈길이였다. (이 애가 왜 이래?) 그때 훈이의 입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튀여나왔다. 《얘, 그 호각은 우리 아버지거야. 어서 내놔.》 나는 한순간에 뗑해졌다. 《그, 그건 무, 무슨 말이가?》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영문을 몰라하자 훈이는 힝- 하고 코바람을 불었다. 《무슨 말이긴, 조선말두 모르니? 호각을 내놓으란 말이야.…》 《무…슨 호각?》 갑자기 당하는 일이여서 나는 말도 제대로 할수 없었다. 그러자 훈이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너 정말 뻔뻔스럽게 놀겠니? 무슨 호각이겠니? 붕어처럼 생긴 호각이지… 직장 배구심판원인 우리 아버지 호각말이다.》 《너 무슨 꿈을 꾸다 온게 아니가? 내가 네 아버지 호각을 어떻게 아니?》 나는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 두눈을 딱 부릅뜨고 맞받아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훈이는 도리여 알릴락말락한 쓰거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흥, 전번엔 뭐 네가 내 꿈속에서 책을 가져갔댔니? 됐어, 너와 길게 말할 시간이 없어. 빨리 가서 숙젤 해야 해, 빨리 달라.》 《나두 너와 길게 말할 시간이 없어. 수학숙젤 해야 해. 호각따윈 난 몰라.》 나와 훈이는 성난 수닭마냥 마주서서 《눈싸움》을 시작했다. 《아니… 너희들 왜 그러니?》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던 할머니가 부랴부랴 다가와 우리들사이에 끼여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들이냐.… 사이가 그렇게 다정하던 너희들이 아니냐.》 훈이가 먼저 나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입을 열었다. 《내가 숙제하다가 잠간 자리를 뜬 사이에 호각이 없어졌어요.… 그건 틀림없이 혁이가 가져간거예요.》 《쳇, 난 몰라요. 내가 왜 호각을 가져왔겠니?》 《그럼 전에 그림책은 왜 가져왔댔니?》 《그건 장난이야.…》 《흥, 그럼 이번에두 장난이라고 좋게 생각해줄게 호각을 돌려달라.》 《몇번이나 말하라니? 난 너의 집에 가지도 않았기때문에 쪼꼬만 호각은커녕 커다란 호박두 보지 못했단 말야.…》 나와 훈이는 저저마다 할머니에게 《판결》을 내려주길 바라며 다투어댔다. 《좋아… 호각을 안주면… 난 너와 다신 마주서지 않을래… 선생님에게두 일러바치구.》 《실컷 그러려무나.… 그래도 난 모르니까.》 훈이는 홱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도 그 자리에서 홱 돌아서며 코바람을 불어댔다. 《쳇, 내가 저런 애를 동무라구…》 할머니의 무섭게 엄해진 눈초리가 나의 말허리를 뚝 분질렀다. 《왜 그러나요? 할머니, 난 진짜 호각을 못봤는데…》 《그럼 이야기책소리는 뭐냐?》 《아, 그거야 그 애네 집에 놀러 갔다가 친한 동무니까 그럴수 있…》 《혁이야.》 할머니의 목소리는 여느때처럼 늘 듣던 다정한 음성이 아니였다. 《넌 그래 네가 그때 한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친한 사이라고 해서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말이다.》 나는 억울한 눈길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 그건 내가 롱으로 그런거예요. 하지만 난 호각은 몰라요. 정말이야요.》 할머니는 그러는 나를 한동안 바라보시다가 말을 이었다. 《혁이야… 그걸 어떻게 증명하겠니? 네가 장난이든 뭐든 처음에 훈이도 모르게 책을 가져온거야 사실이 아니냐.… 롱이였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훈이가 호각때문에 너에게 온건 응당한거구 또 네가 당한 일도 응당한 대접이다.》 할머니의 말을 듣고보니 할소리가 없었다. 머리를 푹 수그린 나의 귀전에 할머니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왔다. 《혁이야, 옛날부터 부모 팔아 동무 산다는 말이 있다. 그건 한생에 동무가 그렇게 귀중하다는 소리다. 그런데 생각해봐라. 너처럼 요런것쯤이야 하고 별치 않게 생각하며 망탕 놀면 동무들사이에 믿는 마음이 없어지고 아끼는 마음이 없어질게 아니냐. 그러면 너희들이 먼 후날 서로 만날 때 어떻게 아버지들처럼 그렇게 두 몸이 하나로 합쳐지는 그런 아름다운 우정을 꽃피울수 있겠니? 아마 그때 가서 너는 오늘의 이 잘못으로 하여 머리도 들수 없을거다…》 그러고보니 정말 가슴이 후두둑 뛰는 엄청난 일이였다. 아버지들처럼 반가운 상봉이 아니라 서로 얼굴을 돌려대며 서둘러 헤여지고말것이다. 그건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 아닌가. 내가 왜 그걸 몰랐을가. 언제인가 선생님은 아버지장군님께서 중학시절에 지으신 《우정에 대한 생각》이라는 시를 읊어주면서 친한 동무들사이일수록 더 위해주고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돌려 방문쪽으로 향했다. 《아니 얘야, 너 어디 가려니?》 《빨리… 훈이네 집에 가야겠어요. 가서 잘못을 빌고…》 할머니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활짝 어렸다. 《어서 그래라… 응당 그래야 한다.》
친한 동무
그러나 나는 밖으로 나설수 없었다. 출입문을 열고 훈이가 머리를 푹 수그린채 들어서고있었던것이다. 《혁이야… 할머니…》 훈이는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보다가 또다시 고개를 수그렸다. 《오, 훈이로구나. 어서 들어와. 그러지 않아도 방금 우리 혁이가 너에게 가려던 참이였다.》 할머니가 반갑게 훈이를 이끌었다. 《할머니, 날 욕해주세요.… 혁이야, 글쎄 호각을… 그 고양이란 놈이 물어다 뒤울안 굴뚝뒤에다 내버린것두 모르구 괜히…》 훈이가 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때에야 나는 훈이의 얼굴을 마주 바라볼수 있었다. 아- 내 동무, 얼마나 진실한 내 동무인가. 나는 그만 눈굽이 따끈해져 다시 머리를 푹 숙였다. 《아니야, 훈이야. 그건 응당한 일이였어. 그때 내가 네 책을 몰래 가져오지만 않았어두… 내가 정말 나쁜 애였어.…》 그러자 훈이는 황황히 두손을 내저었다. 《그, 그러지마, 그것두 다 내 잘못이야. 재미난 책을 친한 동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만 본 내가 더 나쁘지 뭐.… 난 그렇게 혼쌀이 나야 해.》 《아니야… 내가 더 나빠.》 《아니라는데… 내가…》 그때 할머니가 밝게 웃으며 우리들사이에 끼여들었다. 《원 애들두… 됐다, 그러다 또 다투겠구나.》 우리는 얼굴들을 붉히며 서로 마주 바라보았다.
우리의 눈길은 모두 정다운 눈빛이 되였다. 《할머니, 우린 다시는 다투지 않아요. 그렇지, 훈이야?》 《그렇지 않구.》 《하하하.》 《하하하.》 우리는 서로 붙들고 한참이나 웃었다. 《꼬꼬댁- 꼬꼬댁-》 마당가에서 갑자기 우리의 웃음소리를 누르며 닭울음소리가 울려왔다. 웬일인가 해서 내다보니 할머니가 닭장속에서 차돌처럼 하얀 닭알들을 바가지에 담아들고 우릴 보며 웃고있었다. 친한 동무, 우리의 《상봉》을 축하해서 닭은 안잡아도 닭알이라도 가득 삶아주려는것이다. 그것도 괜찮다. 닭이야 후날 우리들의 더 좋은, 더 반가운 래일의 《상봉》을 위해서 남겨둬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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