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11호에 실린 글

 

□ 단편소설 □

장  갑  철        

 

1

 

무덥던 산속에 살랑살랑 선들바람이 불어오는 저녁무렵이였다.

깊은 골안의 자그마한 공지는 야외상학을 끝낸 혁명학원 원아들로 떠들썩해졌다.

어떤 애들은 제 흥에 겨워 방금전에 배운 동작들을 익히느라 분주했고 한쪽에서는 녀자애들 몇이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리다가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렸다.

혼자 조용히 있고싶어하는 애는 순아뿐인듯 했다.

그의 마음엔 아랑곳없이 더퍼리로 소문난 옥금이는 순아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순아, 오늘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니?》

그 애는 듣는 애가 없는데도 서글서글한 큰 눈으로 주위를 두릿두릿 살폈다.

분대장인 순아와 한고향내기인것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옥금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순아는 상학에서는 물론 생활에서도 모범인것으로 하여 분대원들의 사랑과 부러움의 대상이였고 소대의 자랑이기도 했던것이다.

《애두 참, 일은 무슨 일. 머리가 좀 아플뿐이야.… 내가 오늘 한심했지?》

순아는 모든 잘못이 머리에 있기라도 한듯 톡톡 이마를 두드리다가 부채살같은 속눈섭을 살풋이 내리깔았다.

대렬상학시간이면 정신 번쩍 드는 챙챙한 소리로 구령을 치고 멋진 제식동작을 보여 모두의 부러움을 자아내던 그였다.

그런데 오늘은 새초롬해져 앵두알같은 입술만 꼭 다물고있지 않는가.

제식동작을 솜씨있게 해보이지 못한때문만도 아니였다.

《아이참, 그럴수도 있지 뭐. 하지만 내 보기엔 네게 무슨 일이 꼭 있은것 같애, 그렇지?》

옥금이는 떠보려는듯 빤히 마주보다가 갑자기 겨드랑이에 두손을 넣어 간지럼을 태웠다.

《얘얘―》

숨 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던 순아는 저도 모르게 온몸을 들까불며 깔깔거렸다.

《어서 말해. 나한테두 숨겨보겠다구? 털어놓을 때까지 가만 안 놔둘테야.》

《말할게― 말하겠대두… 제발 손을 치우렴.》

마침내 순아는 손을 들고 나앉았다.

하지만 입이 쉽사리 열려지지 않았다.

귀전에는 아까 숨가삐 달려와 알려주던 이웃소대 《소식통》의 말만이 메아리되여 울릴뿐이였다.

《순아동무, 원장선생님의 말을 직접 들었는데 오늘 도착한 차가 마지막차라누나. 이젠 평양에 더 보내야 필요없다는거야. 찾아올수 있는 애들이라면 그동안에 오고도 남았다는거지 뭐. 그리구 뭐 차가…》

순아는 갑자기 눈앞이 아찔해지며 그 애의 목소리가 아득히 먼곳에서처럼 가늘게 울려왔다.

평양 갔던 학원후방차가 도착할 때마다 종주먹을 쥐고 달려갔다가 락심해서 되돌아서군 할 때도 이렇게까지 앞이 새까매지지는 않았다.

마지막차… 더 안 간대…

그러니 이제부터는 우리 순남이가 오리라는 희망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순아는 망망한 바다에서 이리 기울, 저리 기울 파도에 부대끼는 쪽배우에라도 서있는듯 얼굴이 해쓱하니 질렸다.

한달전 학원에서는 낮은반 애들에게 방학을 주어 집에 보냈었다.

동생 순남이도 상급반학생의 인솔하에 멀리에 있는 외가집으로 떠났다.

그들이 떠나간 며칠후, 미군놈들이 불지른 전쟁통에 집에 갔던 애들은 서둘러 돌아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데 먼 지방에 간 애들 몇명이 돌아오지 못한것이다. 그 셋중의 한 애가 동생 순남이였다.

학원에서는 이곳 산중에 자리를 옮긴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애들을 위해 후방차를 평양에 보내군 했으나 오늘까지 감감 무소식인것이다. 게다가 이제 더는 차도 못 간다고 한다.

《정말 안됐구나. 이젠 어쩌면 좋니?》

옥금이는 순아의 두손을 꼭 잡으며 제 일처럼 안타까와했다.

《제 누나가 애타게 기다리는줄도 모르는 맹꽁이같은거… 이제 내앞에 나타나기만 해봐. 단단히 혼쌀내주고말테야.》

그 애는 종주먹을 흔들며 벼르었다.

동생이 없는 옥금이는 순남이를 자기 동생처럼 고와했었다.

《얘, 너 혼자만 알고있어.… 알았지?》

순아는 조용히 다짐을 두었다. 딴 애들까지 걱정하게 하고싶지 않았다.

《응, 말 안할게. 하지만 너두 너무 그 애 생각에만 옴해 그러지 말아.》

순아는 옥금이가 손을 흔들어주고 자리를 뜬 후에야 조용한 곳을 찾아갈수 있었다. 옥금이 말대로 이젠 순남이 생각을 더 안할테야. 전쟁이 끝나면 언제든 찾아올 앤데 뭐.

그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이마우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하지만 그때뿐이였다. 눈앞으로는 순남이의 오동통한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는 입술을 감쳐물며 무정한 동생을 원망했다.

(아이, 안타깨비. 딴 애들은 다 돌아왔는데 왜 못 오고 요렇게두 애간장을 말린담. 제가 어떻게 되여 학원에 왔는지 벌써 잊었나 봐.…)

지금도 순아는 김일성장군님 저택에 새 학원복을 입고 놀러갔던 때의 일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겁게 젖어들군 했다.

그날 학원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보시고 무척 기뻐하시던 장군님께서는 갈리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너의 부모들이 지금의 네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기뻐하겠니.… 어서 커서 부모들의 뒤를 이어 훌륭한 혁명가가 되여라.》

《아버지장군님!》

순아는 치밀어오르는 격정을 못이겨 장군님의 넓은 품에 와락 얼굴을 묻었다.

친부모도 줄수 없는 사랑을 한가득 받아안은 순아였다.

장군님께서 주신 지하공작임무를 수행하던 아버지를 찾아 두살잡이 어린 순남이는 외가집에 맡기고 강잉히 압록강을 건넜던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왜놈들에게 체포되여 희생된 후 피맺힌 원한을 씻으려 순아도 마음씨 고운 옆집로인내외에게 부탁하고 유격대에 입대하였다. 이렇게 총을 메고 원쑤왜놈들과의 싸움의 길에 나섰던 순아 어머니는 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하는 치렬한 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나라가 해방된 후 장군님께서는 먼 이역땅에까지 일군들을 보내시여 조국해방위업에 고귀한 목숨을 바친 혁명렬사들의 자녀들을 모두 찾아 데려오도록 하시고 학원으로 불러주시였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행복에 젖어 발가우리해진 순아의 얼굴을 기쁘신 눈빛으로 이윽히 보시다가 문득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순아한테 어서 동생을 찾아줘야겠는데 아직 행처를 알아내지 못했구나. 허지만 맘 놓아라. 이제 동생을 꼭 만나게 될게다.》

《아이 좋아라, 장군님!》

순아는 너무 기뻐 장군님의 손목을 꼭 잡고 콩당콩당 뛰였다.

그러지 않아도 길가에서 만난 자기네또래 오누이의 다정한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며 언젠가 어머니에게서 들은 동생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던 순아였다.

그때로부터 두달후, 순아는 그립던 동생 순남이를 만나게 되였다. 누나를 처음 만난 그 애는 서먹서먹해하더니 인차 정이 들어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따라나섰고 방안에 들어와도 따라들어왔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외롭게 자라다가 친누나가 생긴것이 너무 좋아 제또래 동네조무래기들에게 《나한테 군복 입은 누나가 있단다. 나 제일 고와해.》 하며 자랑했다.

순아가 돌아가던 날에는 옷자락에 매달려 안 떨어지겠다고 떼질하는통에 모두가 진땀을 빼지 않으면 안되였다.

순아를 데리고갔던 일군에게서 그 사실을 보고받으신 장군님께서는 그러지 않아도 그 앨 인차 데려오려 했는데 순남이가 아직 학원에 올 나이는 안되지만 그들 오누이를 이제 더 헤여져있게 할수 없다시며 순남이를 학원에 데려오도록 하시였던것이다.

장군님의 친어버이사랑속에 만나게 된 오누이였고 학원에서 함께 행복하게 자라던 그들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걱정거리가 될줄이야.…

순아는 문득 뾰조롬히 머리를 드는 생각에 긴 속눈섭을 삼박거렸다.

혹시 그 애가 어디 앓아서 못 오는건 아닐가. 아니면 외가집에서 전쟁통에 혼자 떠나보낼수 없다고 붙잡아두기라도 했담.

이리 갸웃, 저리 갸웃 닭알 쌓듯 생각을 굴리던 순아는 갑자기 두눈이 올롱해졌다.

그 애가 래일이라도 평양에 있던 학원으로 찾아오면 어쩐담.… 어서 원장선생님한테 찾아가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가.

하지만 인차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원장선생님이 하셨다는 말이 떠오른것이다.

하기야 지금껏 후방차가 좀 적게 다녀왔담.…

순아가 알고있는것만도 자그만치 열번은 더 되였다. 그러니 올수 있는 애라면 오고도 남았을건 뻔한 일이였다.

마침내 그는 호― 한숨만 내쉬고말았다.

문득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딱딱한것이 감촉되여 손을 넣었다. 까맣게 윤기 도는 나무권총이였다.

《이젠 널 어쩌면 좋니?》

순아는 나무권총이 자기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듯 상심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하소연했다.

그 순간, 갑자기 발치앞에 무언가 날아와 떨어졌다. 애기주먹만 한 솔방울이였다. 사위를 둘러보았으나 말없이 서있는 소나무들뿐이다.

그는 또다시 고개를 다소곳하고 하염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이 무슨 일이람, 머리우에서 학원모가 절로 벗겨지는것이 아닌가.

순아는 깜짝 놀라 냉큼 일어섰다.

언제 나타났는지 옥금이가 생글거리고 서있었다.

《얜, 사람 놀리겠니?》

순아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가볍게 나무랐다.

《분대장동지! 여기 숨어앉아 무슨 공상 합니까. 분대원들을 다 버리고…》

그 애는 호들갑을 떨며 다짜고짜 손을 잡아끌었다.

《얘, 오락회시간두 잊었니. 이젠 제발 이마주름을 좀 펴렴. 그러다 어른두 되기 전에 할머니가 되면 어쩌겠니, 호호호.》

《넌 정말… 노래하고싶으면 저나 할게지.》

순아는 끌려가면서도 눈을 곱게 흘겼다. 자기가 념려되여 찾아나선줄 잘 아는 순아였다.

(아이, 내가 언제부터 제 생각만 하는 애가 됐담.)

오똑 멈춰섰던 그는 영문 몰라 눈을 깜박거리는 옥금이의 코마루를 꼭 눌러주고 깔깔거리며 달아났다.

 

×

 

포연이 가셔진 하늘에서 한여름의 해가 쟁글거리기 시작한무렵이였다.

푸른 위장망을 촘촘히 두른 야전차 두대가 길게 뻗은 전선길로 쏜살같이 달리고있었다.

차안에는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장군님께서 앉아계시였다.

저항하는 전선동부의 적들을 소멸해버리기 위한 새로운 작전적방침을 세워주시기 위해 전선사령부로 가시는 길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깊은 사색에 잠겨 차창밖에 시선을 주시였다.

《이번에 혁명학원 졸업생들모두가 전선엘 탄원했다지?》

장군님께서는 불쑥 부관아저씨쪽을 보시며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장군님!》

부관아저씨는 약간 어정쩡해진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말씀드렸다.

그이께서 전선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작전구상이 아니라 원아들문제를 생각하고계신것이였다.

《장해, 장하거던. 암, 그들이 어떤 애들이라고…》

혼자소리로 뇌이시던 그이께서는 갈림길목에 접어들자 급히 차를 멈춰세우시였다.

《아무래도 그곳엘 들렸다 가야겠소.》

《?!》

부관아저씨와 곁에 앉은 장령아저씨는 의아한 얼굴로 장군님쪽에 눈길을 모았다.

《언제부터 가보고싶었는데. 산속으로 소개시킨 우리 애들이 어떻게 생활하고있는지 알아봐야겠소.》

두사람의 시선은 거의 동시에 손목시계의 수자판에 박혀 한동안 움직일줄 몰랐다.

이제 학원이 자리잡은 곳까지 가느라면 저녁녘이 되여서야 돌아설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 달려야 할 전선길은 멀고 험하였다.

보다 더 큰 위험은 최고사령부를 노리고 악착스레 날아들 적기들이였다. 밤길에 전조등을 켜고 오랜 시간을 달려야 하는데 그러면…

긴장해지는 마음을 달래며 부관아저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장군님, 저… 그러지 않아도 이 일대에 대한 적기의 폭격때문에 출발을 늦추다보니 시간이 퍽 지체되였습니다. 적들의 야간폭격도 최근에 더 심해졌다고 합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전선사령부에서는 새 작전을 앞두고 한시바삐 장군님의 결론만 기다리고있습니다.》

얼굴이 너부죽한 장령아저씨도 초조감을 감추지 못하며 나직이 말씀드렸다.

《알고있소. 동무들의 심정은 충분히 리해되오. 하지만 우리 혁명의 미래를 위한 이 일도 매우 중요한거요. 귀중한 우리 애들을 심산속에 보내놓고도 아직 어떻게 생활하고있는지 가보지 못했는데 그냥 지나치면 내 마음이 어찌 편할수가 있겠소. 전선의 동무들도 리해해줄거요.》

부관과 장령아저씨는 더 다른 말씀을 드릴 생각을 못하고 무릎우에 놓인 가방만 만지작거렸다.

그들도 장군님께서 최고사령부작전도앞에서 순간도 자리를 뜨실새없이 바쁘신 속에서도 원아들을 적기의 폭격으로부터 철저히 보호하며 학원을 깊은 산중으로 소개시킬데 대한 명령을 떨구시였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얼마전 장군님께서 학원사업에 대하여 료해하시다가 요즘 남진하는 인민군부대들과 전쟁승리를 위한 사업에 힘을 집중하느라 원아들생활은 거의나 관심밖에 놓여있다는것을 아시고 후방물자를 비롯하여 학원생활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전선부대들과 꼭같이 해결해줄데 대한 지시를 주시였다는것까지는 모르고있었다. 더우기 이미전부터 방학갔던 애들문제를 두고 지금 이 시각도 마음쓰고계시는줄 알리 없었다.

 

2

 

골짜기에 펼쳐진 풀밭공지에서는 학원으로 들어오는 길목이 빤히 바라보였다. 그래서인지 순아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길목쪽으로 끌리군 했다. 그러다가는 부질없는 기대를 가지는 자기를 발견하고 황황히 정신을 차렸다.

(아이참, 내가 정말 어처구니없구나. 이젠 더 기다릴 차도 없는데 오늘은 왜 이 모양이람.)

순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데 오늘은 참 이상한 날이였다. 차가 불쑥 나타날것만 같은 예감에 흘깃 길목에 눈길을 던지던 순간 순아는 두눈이 사발만해졌다. 울퉁불퉁한 산골길로 위장을 한 야전차 두대가 쏜살같이 달려오고있었다.

(어마나, 첨 보는 차가 두대씩이나.… 무슨 차일가?)

순아는 웬일인지 갑자기 가슴이 호드득 높뛰기 시작하는것을 느꼈다.

(야, 저기에 우리 순남이가 타고왔으면…)

순아는 느닷없이 떠오르는 생각에 스스로 놀라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콩콩 방아질하는 가슴을 꼭 붙안고 차에서 눈길을 뗄줄 몰랐다. 모여앉았던 애들도 몇걸음앞에서 멎어서는 차들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며 주섬주섬 일어섰다.

차문이 열리는 순간 순아는 온몸을 휩싸는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며 환성을 올렸다.

《아버지장군님!》

《오냐, 그새 잘들 있었느냐?》

장군님께서는 저마다 달려와 품에 안기는 애들의 어깨를 다정히 두드려주시였다.

《순아, 옥금이, 영범이… 너희들이 무척 보고싶었다.》

《장군님!…》

순아는 불시에 목구멍으로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라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한해전만 해도 장군님댁에 자주 놀러가군 하던 순아였다.

《그래그래 순아야, 널 본지 정말 오랬구나. 네가 나한테 놀러왔던게 작년 이맘때였지.…》

장군님께서는 순아의 손목을 꼭 잡아주시며 깊은 감회에 젖은 눈길로 이윽히 바라보시였다.

《그래 그동안 앓지는 않았느냐. 왜 얼굴빛이 그전처럼 밝지 못하구나.》

《아버지장군님, 전… 전 앓지 않습니다. 그건 동무들이 더 잘 압니다.》

순아는 장군님께서 걱정하실가봐 동무들을 돌아보며 황급히 말씀드렸다.

《그래? 그럼 됐다.》

장군님께서는 딸기빛으로 곱게 물든 순아의 얼굴을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다가 애들에게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너희들이 이런 깊은 산속 생활은 처음일텐데 불편한게 없느냐?》

《없습니다.》

《재미납니다.》

원아들은 저저마다 신이 나서 말씀올렸다.

《재미난다. 허허… 그럼 맘이 놓인다. 그런데 무얼 하고있었느냐?》

《아버지장군님, 저희들은 야외상학을 마치고 휴식하던중입니다.》

소대장애가 성큼 한발 나서며 보고드렸다.

《야외상학이라. 음, 그거 좋구나.》

그이께서는 반색하시며 애들을 둘러보시였다.

《너희들이 대렬상학때마다 하는 제식동작을 내 좀 볼가?》

《야!》

기쁨에 넘친 목소리들이 일제히 터져올랐다. 뒤이어 《모엿!》 하는 소대장의 구령과 함께 애들이 순식간에 정렬해섰다.

장군님께서는 하나같이 재빠른 동작을 보시고 만족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그래, 누구 자신있는 애는 나서봐라.》

장군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원아들을 둘러보시였다.

옥금이가 순아의 팔을 툭 치는것을 알아보시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시였다.

《옥금이가 자신있는 모양이구나.》

《아버지장군님, 저… 사실 제식동작에서는 우리 분대장동무가 제일입니다.》

그는 자기 분대장인 순아를 장군님앞에 내세우고싶었던것이다.

《음, 그래. 순아는 분대장이지. 그럼 분대장이 상학준비보고 하는걸 좀 볼가.》

순아는 두볼을 살짝 붉히며 대렬앞에 한걸음 나섰다.

《분대 나란히, 차렷! 가운데로 봣! 아버지장군님, 제3분대는 대렬상학 받기 위하여 준비되였습니다. 분대장 김순아.》

챙챙 울리는 순아의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주 잘해, 정신이 번쩍 드는걸. 인민군대지휘관 못지 않아. 절도있는 동작은 대렬의 집단력을 높이는데서 아주 중요한거야. 지금 미군놈들이 우리 인민군대앞에서 꼼짝 못하는것은 인민군대안에 강철같은 규률이 서있고 지휘관과 전사들이 한마음한뜻이 되여 무적필승의 신심으로 용맹하게 싸우기때문이다. 너희들도 미군놈들과 맞서싸울 자신이 있느냐?》

《자신있습니다.》

《우린 이길수 있습니다.》

아이들속에서 씩씩한 목소리가 짜랑짜랑 울렸다.

《암, 싸워 이겨야 하구말구.… 나는 준엄한 전쟁의 불길속에서도 하나같이 씩씩한 너희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구나. 군대라면 너희들에게 최고사령관의 감사라도 주고싶다.》

장군님께서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며 뒤에 선 수행원들쪽을 돌아보시였다.

《우리 애들이 어떻소, 동무들!》

《정말 하나같이 끌끌합니다.》

장령아저씨가 감심한 어조로 말씀드렸다.

《동무도 아동단시절에 유격대훈련동작을 아주 잘했더랬지. 그런데 이제는 우리 인민군대의 핵심간부가 됐거던, 허허.…》

《장군님께서 저희들에게 하나하나 배워주시던 때가 어제일 같습니다.》

장령아저씨는 감회깊은 어조로 말씀드렸다. 그는 장군님께서 어찌하여 긴박한 전선정황속에서도 바쁘신 시간을 내시여 몸소 원아들을 찾아주셨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것이였다.

《그럼 이번엔 복장준비상태를 좀 볼가.…》

장군님께서는 모자도 바로 쓰고 옷자락도 반듯이 펴며 씩씩한 얼굴로 정렬해선 원아들을 일일이 보아주시다가 순아에게서 시선을 멈추시였다.

《정보행진할 땐 신발이 꼭 맞아야 할텐데 순아는 신발문수가 좀 커보이는것 같구나.》

《아버지장군님, 전 일없습니다.》

순아는 두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신발끈을 조여맸다. 타왔던 신발 문수가 맞지 않아 속상해하는 애한테 자기것을 양보하고 다른 신을 타신은 그였다. 순아가 굽혔던 허리를 펴는 찰나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툴렁 떨어졌다.

《그게 권총이 아니냐?》

나무권총을 얼른 주머니에 집어넣으려던 순아는 흠칫 손을 멈추었다.

그는 그만 익은 꽈리가 되여 옥금이쪽에 민망스러운 눈길을 던졌다. 여느땐 반죽 좋던 그 애도 이 순간에는 당황해진듯 목을 움츠렸다.

순아가 나무권총을 깎느라 애쓰는것을 알고 누구에겐가 부탁하여 멋있게 만들어주었던 옥금이였다.

《허, 방아쇠까지 만들어달고 제법인걸.》

장군님께서는 나무권총을 이리저리 돌려보시며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하지만 순아는 안절부절 못하고 쩔쩔맸다.

(아이참, 이를 어쩌나. 하필 이런 때 고게 빠져나올건 뭐람. 이제 장군님께서 순남이 사연을 아시면 걱정하실텐데 뭐라고 말씀드리면 좋담.)

순아는 고개를 숙인채 옷자락만 만지작거렸다.

그는 장군님께서 순남이가 아직 학원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까지 이미 알고계신줄은 생각조차 할수 없었다.

《장군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뒤미처 소식을 알고 달려온 원장선생님이 정중히 인사를 드리였다. 그는 최고사령부 작전도앞에서 한시도 자리를 뜨실새 없는 장군님께서 학원이 자리잡은 깊은 산속까지 찾아주실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 원장선생.》

장군님께서는 반기시며 원장선생님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우리 애들이 보고싶어 들렸습니다. 학원이 소개해와서 불편한 점이 많겠는데 제때에 관심을 못 돌렸습니다. 다들 어떻게 지냅니까?》

《저희들은 장군님의 보살피심속에 모두 잘 있습니다. 자나깨나 장군님안녕만을 바라고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만나니 정말 기쁩니다. 그런데 돌아오지 못한 세명의 아이들한테선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순아는 깜짝 놀랐다. 장군님께서 그런 사실까지 다 알고계실줄은 정말 몰랐다.

《저… 아직…》

장군님께서는 죄송스러워하는 원장선생님을 바라보다가 다시금 물으시였다.

《학원에서는 그 애들을 위해 어떤 대책을 세웠습니까?》

《편지도 여러번 띄웠고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그 애들이 평양에 있는 학원에 도착하면 태워오려고 학원후방차를 보내군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떠났던 차가 적기의 폭격에 심하게 파손되다나니… 더는 보낼수 없게 되였습니다.》

《그러니… 어제 갔던 차가 마지막차라는거지요?!》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 없으시다가 손에 드신 나무권총에 또다시 눈길을 주시였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순아를 보시며 생각깊은 어조로 물으시였다.

《이걸 동생에게 주려던게로구나. 그런데 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느냐? 불편할텐데…》

《그건 저… 오늘이 순남이 생일이기에 만나면 주려구…》

순아는 부지중 눈시울이 달아올라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도 그의 귀전에는 헤여질 때 다짐두던 순남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쟁쟁히 울리는듯싶었다.

《누나, 내 생일날에 주겠다 약속한것 꼭 줘야 해. 나두 돌아올 때 누나 좋아하는 낙지 많이 가져다줄게.》

《걱정말어. 너나 생일전에 꼭 돌아오렴. 늦어지면 멋진 생일기념품 딴 애한테 주고말테야.》

《피― 그게 뭔데?》

《그건, 음. 절대비밀!》

순아는 생글거리며 동생의 오동통한 두볼을 꼭 찔러주었었다.

《오늘이 그 애 생일이란 말이지.》

장군님께서는 나직이 뇌이시고나서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나무권총을 생일기념품으로 줄 생각을 하게 되였느냐?》

순아는 장군님께서 살뜰한 어조로 물으시자 순남이를 닥달질하던 그날 일이 불쑥 떠올라 다시금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날 순남이는 누나가 왜 자기를 외딴 곳에 불러냈는지는 아랑곳없이 무언가를 코앞에 쑥 내대며 자랑부터 했다.

《누나, 자 봐! 멋있지. 내가 만들었거던.》

순아는 권총모양이나 겨우 낸 나무토막을 와락 빼앗아 팽개쳐버렸다.

비판을 받았다면서도 우쭐렁대는 동생이 얄미워졌던것이다.

《이 놀이감때문에 과외학습 빠졌니, 응? 말해봐. 학원규률도 안 지키고 제멋대로 놀아댈바엔 뭣때메 학원에 따라오겠다 떼썼니? 당장 돌아가라, 돌아가!》

순아는 너무 분해 동생앞에서 눈물 보이면 안된다는것도 까맣게 잊고 눈물을 방울방울 떨구며 다몰아댔다.

《누나,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래.…》

순남은 저만치 나딩구는 나무권총을 집어올 엄두조차 못 내고 기가 죽어 눈치만 보았다.

누나가 무섭게 성내는것을 처음 보았던것이다.

《우린 아버지장군님사랑을 남달리 많이 받은 오누이야. 이걸 한시도 잊지 말고 생활을 잘해야해.》

《응, 다신 안 그럴게.》

순남이는 누나의 목소리가 퍽 사근사근해지자 그제야 팔소매로 눈굽을 훔쳤다.

《우리 항상 장군님의 참된 아들딸로 자라날 마음만 간직하고 살자.》

《나두 알아. 그래서 장군님 모시는 군대가 되려구… 총을 잡구 아버지, 어머니 원쑤도 갚으려구 권총을…》

동생의 울먹이는 소리에 순아는 그만 눈시울이 따끈해졌다. 이제 여덟살 잡히는 동생의 가슴속에 그런 큰 결심이 자라는줄도 모르고 닥달질만 한것이 못내 후회되였다.

《애두 참, 그럴수록 학원생활을 더 잘해야지 그게 뭐니?》

순남은 차근차근 타이르는 누나의 정어린 목소리에 용기를 얻은듯 《누나, 저거 나 그냥 가지고있어도 되지?》 하며 땅우에 던져진 《권총》을 가리켜보였다.

그 바람에 헝겊을 서툴게 감은 손가락이 눈에 띄였다.

《할줄도 모르는 손칼질은 왜 하면서…》

헝겊을 다시 감아나가는 순아의 가슴은 또다시 알알해왔다.

손가락을 베면서까지 칼질을 하려니 애는 좀 작게 썼을가. 그 애에게 누나가 아니라 형이 있었다면 벌써 만들어준지도 오랬을것이였다.

이제 이 누나가 어떻게든 멋지게 만들어주마.

이렇게 되여 마련하게 된 나무권총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동생을 애타게 기다려온 순아의 그 마음을 헤아려보시듯 오래도록 나무권총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이윽하여 먼 하늘가로 시선을 옮기시였다.

장군님의 추연한 눈길이 가닿는 우중충한 산발들 저 멀리 서쪽하늘가에서는 노을이 붉게 타고있었
다.

그 노을속에 자식들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에 젖어들군 하던 순아 어머니의 모습이 우렷이 떠오르셨다.

부대가 마을을 지날 때면 제 어머니 치마폭에 매달려 유격대를 마중하던 마을애들의 머리를 쓸어주며 발길을 떼지 못하던 그였다.

잊을수 없는 밀영의 그밤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가에 둘러앉아 하루속히 원쑤 왜놈들을 쳐몰아내고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부모처자와 만날 일념으로 가슴 불태우는 대원들속에는 순아의 어머니도 있었다.

왜놈들에게 남편이 희생된 후 피맺힌 원한을 풀기 위해 사랑하는 두 자식을 품에서 떼여놓고 싸움의 길에 나선 녀대원…

지금도 장군님께서는 순아 어머니가 눈물이 글썽해져 외가집에 떨궈놓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들애와 이역땅의 이름없는 산골마을에 남겨놓은 딸애에 대한 사연을 터놓으면서 헤여졌던 자식들과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게 될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한목숨바쳐 싸우겠다고 다짐하던 절절한 목소리가 귀전을 쟁쟁히 울리는듯싶으시였다.

자식을 낳으면 제 치마폭에서 한시도 떼여놓지 않고 애지중지 키우며 거기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는것이 어머니들의 한결같은 마음이고 첫째가는 락일것이다. 그러하기에 그이께서는 귀한 자식들을 남의 손에 맡기고 성스러운 싸움의 길에 나선 빨찌산녀대원들이 눈물겹게 장하면서도 어머니로서의 권리와 행복마저 왜놈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들의 상처입은 마음이 그대로 자신의 마음속에도 아프게 새겨지시여 해방된 그날 혈육의 정을 마음껏 나누도록 해주자고 굳게 마음 다지셨던것이였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순아의 마음속 그늘을 가셔주시려는듯 부드러운 손길로 오래도록 어깨를 쓰다듬어주시였다.

《너희 부모들은 나에게 너희들을 맡기고 갔는데 내가 잘 보살피지 못했구나. 너의 친부모가 살아있다면 불속을 헤치고서라도 순남이를 데려온지 오랬을텐데…》

나직이 울리는 장군님의 말씀에 순아는 목이 꽉 메여올랐다.

장군님께서는 눈물이 고여오르는 얼굴을 소곳이 숙이는 순아의 손에 나무권총을 꼭 쥐여주시였다.

《순아야, 순남이는 꼭 올게다. 그 애를 만나서 이 권총을 안겨주면 얼마나 좋아하겠니.》

순아는 이 세상 가장 소중한 물건인듯 나무권총을 받아들었다.

《장군님말씀대로 순남이에게 꼭 안겨주겠습니다.》

《오냐, 그래라.》

장군님께서는 순아의 어깨우에 손을 얹으시고 무엇인가를 생각하시는듯 잠시 말씀이 없으시였다.

이윽고 원장선생님을 돌아보며 물으시였다.

《원장선생, 학원으로 돌아오지 못한 세 아이가 순남이와 석범이, 금석이라지요?》

《예, 그렇습니다.》

《석범이와 금석이도 이름없는 산골에서 고생하던걸 겨우 찾아낸 애들입니다.》

그이께서는 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그려보시는듯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다가 부관아저씨에게 이르시였다.

《순남이는 왼쪽눈밑에 까만 기미가 박혀있는 오돌지게 생긴 애고 석범이는 아홉살짜리지만 눈이 부리부리한게 고집이 꽤 세보이는 애요. 금석이는 처녀애처럼 참하게 생겼고…》

부관아저씨는 신중한 얼굴로 장군님께서 강조하시는 말씀에 귀기울였다.

《부관동무, 동무는 이제 곧 평양으로 돌아가시오.

세명의 아이들에 대한 인상특징이 잘 안겨오지 않으면 원장선생에게서 자료를 더 받아가지고 가서 그애들이 가있는 도, 시, 군 당조직들에 나의 이름으로 특별명령서를 떨구시오. 해당 당조직들에서 책임지고 그 애들의 행처를 끝까지 찾아내여 빠른 시일내에 학원이 있는 이곳에 도착시키도록 하시오.》

장군님께서는 이어 장령아저씨쪽으로 돌아서시였다.

《동무도 이번 일을 끝내고 돌아가면 관할지역의 인민군구분대들에 세명의 혁명학원학생들에 대한 자료를 시급히 통지해주어 로상에서 만나면 즉시 안전하게 데려오기 위한 대책을 세우도록 하시오.》

솨아― 청신한 솔향기를 머금은 시원한 저녁바람에 나무잎새들이 춤추듯 살랑거렸다.

《아버지장군님!》

순아는 쿵쿵 높뛰는 가슴우에 두손을 얹으며 장군님을 우러렀다.

(내가 꿈을 꾸는건 아닐가? 제발 꿈이 아니였으면…)

순아는 마냥 벅차오르는 심정을 억제하지 못하며 마음속으로 목메여 부르짖었다.

(내 동생 순남아! 너 지금 어디 있니. 아버지장군님께서 너희들을 데려오도록 특별명령을 주신걸 알기나 하니!)

《순아!》

옆에 섰던 옥금이가 큰 눈을 슴벅이며 순아의 두손을 꼭 잡아주었다.

《장군님! 아직 가셔야 할 전선길이 먼데… 이번 길이 끝난 즉시 돌아가서 집행하도록 하면 안되겠습니까?》

마음을 바재이던 부관아저씨가 한발 나서며 간곡한 어조로 말씀드렸다.

《우리 애들을 위한 일은 한시도 미룰수 없소. 그러니 지체없이 평양으로 떠나시오.》

《장군님!》

한옆에 송구스레 서있던 원장선생님이 물기어린 눈으로 장군님을 우러렀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그이께서 동생을 애타게 기다리는 한 소녀의 마음속고충까지 깊이 헤아리시여 전쟁의 운명을 좌우하는 작전명령이 아니라 세계전쟁사에 류례없는 특별명령을 내리신것이였다. 그런데 원장이라는 자신은…

장군님께서는 자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원장선생님을 돌아보며 생각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내가 이 애들을 위한 일이라면 모든것을 복종시키는것은 단지 애들이 귀여워서만도 아닙니다. 이 애들이 어떤 애들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찾아낸 애들입니까.》

장군님의 눈앞에는 품에서 떼여놓고온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짓던 순아 어머니며 녀대원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사랑하는 자식들의 밝은 앞날을 위해 혈전의 길에 한몸 서슴없이 바친 그들의 절절한 념원이 가슴치며 안겨드시여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다.

《이 애들 한명한명이 아직은 애어린 싹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우리 혁명의 억센 기둥이 될 귀중한 우리의 미래입니다.

억센 줄기도 어린 싹에서부터 자라납니다. 때문에 나는 항일대전의 간고한 불길속에서도 마안산의 아이들을 품에 안아 데리고 다니며 키웠습니다.

그 아동단원들이 오늘은 우리 혁명의 억센 기둥들로 자라났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생각깊은 눈빛으로 장령아저씨를 바라보시였다.

《나는 혁명학원학생모두를 부모들의 넋을 이어 우리 혁명의 억센 줄기로 키우기 위해 이국땅에까지 사람을 보내여 데려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얼마전에 학원졸업반학생들이 전선에 탄원했을 때도 인차 결론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애들로 경위중대를 무어 이제부터 내가 데리고있으려고 합니다. 우리모두가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이 소중한 어린 싹들을 우리 혁명의 억센 줄기들로 키워갑시다.》

환희와 격정의 파도가 가슴가슴을 세차게 울려주며 메아리쳐갔다. 《아버지장군님!…》

순아는 장군님의 말씀을 심장깊이 새기며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

저 멀리 흘러간 산발들과 이어진 백두밀림의 피어린 옛 싸움터에 순아가 혁명의 피줄기를 억세게 이어나가기를 바라며 눈을 감은 부모들의 념원도 새겨져있을것이였다.

순아는 격정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며 장군님을 우러렀다.

우리 순남이가 돌아오면 얼마나 좋아할가. 벌써부터 어서 커서 장군님 받드는 군대가 되겠다고 맘먹고있는 그 애다.

(나도 아버지장군님을 위해 싸우는 군대가 될테야!)

순아는 마음속맹세를 굳게굳게 다졌다.

잠시후 장군님께서는 작별인사를 나누시고나서 야전차로 향하시였다.

《아버지장군님! 전선길에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순아는 깊이 머리 숙여 인사를 드리였다.

《너희들의 부모가 살아있다 한들 이런 사랑을 줄수 있겠니. 전쟁의 불구름도 그 사랑은 막지 못해.》

원장선생님의 격정어린 목소리에 젖어드는 눈빛으로 장군님을 바래드리던 부관아저씨도 순아의 손목을 꼭 잡아주었다.

원아들모두를 자애로운 사랑의 한품에 따뜻이 안아주시고 전선길로 떠나시는 아버지장군님이시였다.

차츰 멀어져가는 야전차를 바래드리는 순아의 눈앞으로는 얼굴마다에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달려오는 순남이와 석범이, 금석이들의 행복에 넘친 모습들이 선히 보이는듯싶었다.

그로부터 며칠후, 돌아오지 못했던 세명의 원아들을 맞이한 학원은 뜨거운 격정과 감격으로 뒤설레이였다.

《누나야.…》

《순남아!》

멀리서부터 누나를 부르며 엎어질듯 달려온 순남을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순아는 평양하늘가를 우러러 고마움의 인사, 맹세의 인사를 드리였다.

《아버지장군님, 우리 오누이는 장군님의 참된 아들딸, 혁명의 억센 줄기로 자라나겠습니다!》

이 땅우의 어린 싹들을 억센 줄기로 자래우는 위대한 어머니품이 그들을 고이 지켜주고있었다.

그 어떤 불구름도 막을수 없는 이 세상 가장 은혜롭고 따사로운 사랑의 해빛아래 산천초목들도 푸르러 설레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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