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12호에 실린 글
□ 단편소설 □
전 별
스물아홉명이였던 우리 학급 출석부에 서른번째로 《김경순》이라는 이름이 새로 오른것은 지난 7월초 어느날이였습니다. 좀 클사 한 키에 날씬한 몸매, 보기 좋게 가리마를 타고 곱게 땋아내린 쌍태머리, 쌍까풀이 선명하게 새겨진 두눈… 《곱게 생겼다야.》 경순이가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우리 교실에 들어섰을 때 동무들이 소곤소곤 귀속말로 주고받은 말이였습니다. 《경순학생은 읍 중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이번에 약초연구사인 아버지를 따라 새로 온 동무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이틀전 오후에 약초재배연구소 소장인 아버지를 만나려고 우리 집에 들렸던 연구사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니 경순이는 그 아저씨의 딸이였습니다. 《경순학생의 아버지는 많은 보약재들을 연구해서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크게 이바지한것으로 하여 아버지장군님께 기쁨을 드렸구 박사의 학위까지 받은 훌륭한분이랍니다.》 《히야! 박사?!…》 학급애들은 이구동성으로 감탄을 터쳤습니다.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장군님께 기쁨을 드렸다지, 거기에다 또 박사까지 되였다지… 다른 애들도 그렇겠지만 아버지가 약초재배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있는 점을 생각해볼 때 나의 감동은 류다른것이였습니다. 경순이의 아버지로 하여 우리 아버지의 연구소는 유능한 박사가 또 한명 늘어난 권위있는 연구소로 되였으니 말입니다. 《경순학생은 공부도 잘하고 조직생활에도 잘 참가하며 도덕품성도 바른 모범학생이랍니다. 우리모두 경순학생을 잘 도우면서 다정하고 친근한 동무가 되여야겠어요.》 선생님이 소개를 마치자 그 애는 약간 고개를 숙여 다소곳이 인사를 하였는데 꼭 다물린 앵두알같은 입술은 그 애가 《얌전이》라는것을 말해주고있었습니다. 얼마후 선생님이 경순이의 손목을 이끌어 나의 옆자리에 앉혀주었습니다. (챠, 이런…) 나는 은근히 사기가 올랐습니다. 지금껏 나 혼자만이 옆에 자리를 비워놓고 공부해오던 《외토리》신세를 면하게 되였으니까요. 서먹서먹한 마음으로 옆에 앉은 경순이를 힐끔 곁눈질해보았습니다. 솔잎같이 긴 눈섭, 옴폭 패인 볼우물, 마치 내옆에 제비가 날아와앉은듯 하였습니다.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붕 떠올랐습니다. 외모도 단정하고 얼굴도 곱게 생기고 말도 없어보이고 게다가 공부도 잘한다지, 정말 흠이라곤 찾아볼수 없는 경순이와 한책상동무가 된것이 기쁘고 자랑스럽기까지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 어머니가 이걸 알면 나보다 더 기뻐할것이였습니다. 나는 앞으로 다른 애들보다 옆동무인 내가 경순이를 특별히 더 잘 도우리라고 마음속 결의도 꽁꽁 다졌습니다. 어느덧 오후 과외복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무렵이였습니다. 나는 집으로 갈 준비를 서두르며 경순이를 찾아보았습니다. 경순이네 집도 우리 집이 있는 연구소마을에 자리잡고있었기때문이였습니다. 그런데 방금전까지도 내옆에 얌전히 앉아 복습문제풀이에 여념이 없던 경순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옆자리에는 경순이의 책가방만이 홀로 놓여있었습니다. 나는 의아함을 안은채 교실문을 나서려는 다른 처녀애들에게 물었습니다. 《얘들아, 경순동무를 못 봤니?》 그런데 그 애들은 대답은 않고 샐쭉거리며 놀려대는것이였습니다. 《동문 어디다 헛눈을 팔고있다가 자기 옆동무까지 잃어버렸니?》 《창일동문 경순이의 옆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어.》 등등… 재잘재잘… 《뭐, 어드랬어?》 내가 부러 눈을 흡뜨며 주먹을 들어보이자 처녀애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치며 교실문을 빠져나가버렸습니다. 내가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치며 서있는데 달아빼던 처녀애들가운데 한 애가 창문을 들여다보며 손나팔을 해가지고 이렇게 소리치는것이였습니다. 《창일동무, 경순동문 지금 교재원에 숨어있어.》 《뭐, 교재원에?!》 나는 한달음에 교재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경순이는 정말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경순동무, 뭘 하고있어?》 그제야 인기척을 느낀 경순이는 내가 나타난것이 뜻밖인듯 한 표정을 짓고나서 이어 어줍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습니다. 《음, 여기 교재원의 나무들에 고운 차돌들을 주어다 둘러주구 나무밑둥에 회칠도 다시 해주고싶어 그래.》 《뭐?!…》 나는 절로 웃음이 나갔습니다. 사실말이지 교재원의 큰 나무들에 대한 관리는 이미 상급생 형님, 누나들에게 다 분담되여있었던것입니다. 《경순동무, 동문 괜한 수고를 하려는구나.》 경순이는 내 말이 의아스러운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이게 왜 괜한 수고라는거니?》 나는 대답했습니다. 《참, 동문 모르고있겠구나. 이 큰 나무들은 말이야, 이번에 인민군대에 나간 졸업생형님, 누나들이 관리하던것인데 지금 5, 6학년 형님, 누나들이 한그루씩 맡아서 관리하고있거던. 더구나 150일전투가 벌어지고있는 때이니 날마다 애지중지 얼마나 잘 돌봐주고있는지 몰라. 그러니 일부러 수고를 안해도 돼.》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나의 말을 새겨듣고있던 경순이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두 성의가 합쳐지면 더 좋은거지 뭐. 그리구 써붙인 패쪽들을 보니 저쪽 수삼나무구간엔 동무가 맡은 나무도 있더구나. 그런데… 이자 오면서 보니 동무가 맡았다는 그 수삼나무주변에 빽빽이랑 한뽐씩이나 되는 잡풀들이 많이 돋았더구나. 동무가 분공으로 맡았겠는데 잘 관리해야지 그게 뭐니?》 《?!…》 나의 입은 아예 떡 굳어져버리고말았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였습니다. 학교교재원에는 내가 고정분공으로 관리를 맡은 수삼나무도 있었습니다. 그 나무에는 아니나다를가 내 이름이 적힌 패쪽이 매달려있었습니다. (야, 요 얌전이가 어느새 그런것까지 다 눈여겨봤담.) 나는 마음속으로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처녀애에게서 그것도 경순이 아니, 그보다도 새로 온 동무에게서 핀잔을 들은것이 언짢아서 변명조로 대꾸했습니다. 《그건 동무가 말하구 깨우쳐주지 않아두 나도 다 알고있은거야. 사실은 풀들이 좀더 큰 다음 단번에 싹 뽑아치우려 했거던. 고정분공이라는거야 그렇게 수행하는거지 뭐.》 《뭐?!…》 내 말에 경순이는 가볍게 놀라며 한동안 나를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 잠시후 경순이는 나를 향해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 함께 동무가 맡은 저 수삼나무들쪽에서부터 저기 살구나무구간까지 돌들도 새로 놔주고 회칠도 다시 해주고 가지 않겠니?》 나는 그닥 마음엔 내키지 않았지만 《동무가 맡은 저 수삼나무들쪽에서부터》라는 말에 꼼짝 못하고 경순이의 의견에 응해버리고말았습니다. 내가 팔소매를 걷어올리자 경순이의 얼굴에 가벼운 웃음이 방긋 피여올랐습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일손을 놀렸습니다. 나는 나무주위로 차돌을 놓을 홈을 파고 경순이는 돌들을 주어다놓고 나무밑둥에 다시 회칠을 하고… 나는 손을 잽싸게 놀렸습니다. 까닭이 있었습니다. 텔레비죤에서 방영하는 《아동방송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시간에 인류의 진화에 대한 흥미있는 내용이 방영된다고 한 학급애들의 말이 나의 마음을 급히 몰아대고있었습니다. 마지막나무주위까지 홈을 다 판 나는 허리를 펴고 경순이쪽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 하나… 무던히도 꼼꼼히 해나오고있었습니다. 일솜씨를 보니 《얌전이》라기보다 《꼼꼼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꼼꼼한 대신 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챠 이런, 시간이 다 되여오는데 저렇게 굼떠 가지구야… 해를 가늠해보니 《아동방송시간》까지는 이제 기껏해서 삼십분밖에 남아있지 않을상싶었습니다. 나는 파놓은 홈에 차돌들을 건성건성 날라다놓고 나무밑둥에는 덤볐다 회칠을 하며 경순이를 마주 향해 갔습니다. 한그루 또 한그루… 드디여 둘이가 마주쳤을 때 경순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치며 말하였습니다. 《아니, 이게 뭐니? 밭이랑에 감자알 놓듯…》 그리고는 내가 지금까지 대강 놓아나온 돌들을 다시금 한알두알 바로 놓아나가는것이였습니다. 《그쯤하면 되지 않았니?》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안타까이 물었습니다. 《바쁘면 먼저 가. 내 마저 끝내고 갈테니.》 바재이는 내 마음을 알아차린듯 경순이가 하는 말이였습니다. 《아니, 그렇게야 어떻게…》 《일없어. 다 했는걸 뭐. 걱정말고 어서 가.》 경순이가 얼굴에 웃음을 담고 재촉하듯 말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미안스럽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고… 그러나 조금후 《그럼 마저 수고해 . 난 먼저…》하고 힘들게 입을 열었습니다. 《응, 걱정말래두. 어서…》 나는 이내 몇걸음 내짚자 집으로 냅다 달음질쳤습니다. 다음날이였습니다. 학교교재원을 돌아보던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깐깐히 회칠을 한 나무들은 흰 양말을 받쳐신은듯 하나같이 산뜻했고 그 주위로 빙 둘러친 차돌멩이들도 마치 콤파스를 대고 원이라도 그은듯이 한결같이 놓여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니 그 전날일에 속이 걸리는감도 들었습니다. 《어제 혼자서 수고가 많았겠구나.》 교실에서 내가 경순이에게 한 말이였습니다. 《무슨 말을… 함께 하고서두…》 《…》 경순이에게서 이런 말까지 듣고나니 그 애를 보기가 좀 멋적었습니다. 하지만 더 멋적은 일은 두번째 수업이 끝난 휴식시간에 일어났습니다. 밖에 나갔던 학급애들이 뛰여들어와서는 경순이와 내가 한 일이 학교속보판에 나붙었다고 알려주는것이였습니다. 나는 면구스러운중에서도 은근히 솟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슬그머니 교실을 나섰습니다. 속보판에는 《학교를 사랑하는 고운 두 마음!》이라는 제목밑에 경순이의 소행에 대한 이야기에 나의 이름까지 껴붙여서 큰 글자로 소개되여있었습니다. (사실은 경순이가 혼자서 한 일이나 같은것인데…) 하고 생각하며 교실에 들어서려는데 안에서부터 이런 말이 들려왔습니다. 《야, 정말 부러운데… 옆동무가 되자마자 속보판에도 이름이 나란히 함께 씌여지구.》 익살이 섞였으나 진심으로 하는 동무들의 부러움이고 축하였습니다. 하루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경순이에게 말하였습니다. 《경순동무, 어제는 참 안됐어. 앞으론 내 더 잘 도울게.》 경순이는 대답대신 쌍까풀진 두눈에 웃음을 담고 머리만 살짝 끄덕여보일뿐이였습니다. 이날로부터 며칠후 어느 일요일이였습니다. 그날 이른아침 나는 일찌기 서둘러 경순이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것은 숙제도 함께 할겸 150일전투에 떨쳐나선 아버지, 어머니들의 드높은 열의에 발맞추어 우리들이 세운 학습목표도 새롭게 인식시켜주고싶어서였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 기회에 오늘의 정보산업시대에 사는 학생들답게 우리 산골학교 아이들의 학과실력도 간단치 않다는것을 은근히 보여주고싶었고… 물론 제일 중요한 목적은 경순이와 보다 더 친숙해지려는데 있었습니다. 이윽고 경순이네 집에 거의 다달은무렵이였습니다. 산뜻이 주름을 잡은 곤색치마에 하얀 샤쯔를 받쳐입은 경순이가 집 대문을 나서고있는것이였습니다. 《아니, 경순동무!》 경순이도 내가 나타난것이 뜻밖인듯 오똑 멈춰서서 나를 의아히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집엘 오더랬니?》 《응, 그래! 숙제를 함께 할려구…》 《야, 그런데 어쩌니? 난 오늘 읍엘 갔다와야해서 지금 떠나는 참인데.》 《뭐, 읍엘?! 여기서 읍까지 몇리인줄 아니?》 나는 경순이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예서 읍까지의 거리가 이십리길이 잘된다는 생각이 피뜩 떠올라 놀라와 물었습니다. 《이십리가 거의 된다더구나. 그까짓 뭐라니? 그래서 숙제도 엊저녁에 다 해놓았어.》 《그래두 갔다가 오는 거리까지 계산하면 사십리가 훨씬 넘겠는데?…》 그래도 갈수 있겠니 하는 속물음이 어린 나의 물음이였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꼭 갔다와야 해.》 경순이의 이 대답은 마음속으로 그 어떤 다짐을 두는듯 한 대답이였습니다. 나는 이날 세운 계획이 헝클어졌음을 깨달으며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런데 읍에 꼭 가야 할 무슨 일이 있니?》 《응, 내가 여기 오기 전 학급의 한 동무가 제강소에 보낼 파철을 스스로 모아 손달구지에 싣고오다가 마을언덕길에서 발을 심하게 상했단다. 그래 군병원에 입원했는데 걱정이 돼서 가보려구 해.》 나는 경순이가 마음이 고운 애라더니 정말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럼 함께 가자.》하고 말하였습니다. 불쑥 튀여나온 내 말에 경순이는 놀라운듯 나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그러믄 고맙지 뭐.》하고 대답하는것이였습니다. 나는 마음이 즐거워났습니다. 이렇게 동무를 위해 먼길을 함께 가는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도 한책상동무인 경순이와 함께이니 말입니다. 웃음어린 경순이의 얼굴에 목에 두른 넥타이가 불그스레한 빛을 들여주고있었습니다. 《그럼 떠나보자.》 나는 이렇게 말하고나서 성큼 첫 발걸음을 떼였습니다. 얼마간 걸음을 옮겨 농장관리위원회 앞도로에 이르니 《읍 7㎞》라고 쓴 알림표가 눈에 안겨왔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읍까지의 거리는 거의 이십리길, 결국 이날은 왕복 사십리길을 걸어야 하였습니다. 《창일동무.》
《왜 그러니?》 《나때문에 일요일인데 쉬지도 못하구 안됐어.》 《쳇, 그런 말 말어. 한책상에서 공부하는 사이에 이쯤한게 뭐라구. 동무따라 강남에도 간다는데.》 나는 속담까지 곁들이며 경순이의 마음을 눅잦히려 노력했습니다. 《호호호…》 경순이의 맑은 웃음소리가 졸졸졸 흐르는 귀일천의 물결우로 곱게 퍼져갔습니다. 귀일천의 시내물을 따라 조금 가면 오랜 력사유적인 룡곡리 고인돌무덤이 있고 또 인차 나지는 문포천을 지나면 먼 옛날 고인들이 살았다는 동굴유적이 있습니다. 작년에 읍에서 진행된 학과경연에 참가하기 위해 가면서 본 검은모루유적도 눈앞에 선히 떠올랐습니다. 그러고보니 경순이와 가는 이 길이 그 무슨 유적답사길인듯도 하였습니다. 《참, 경순동무, 동무 아버진 약초연구를 위해 여기로 자진해왔다지?》 얼마간 걸음을 옮겼을 때 내가 경순이에게 한 물음이였습니다. 《음, 우리 아버진 약초들의 효능을 더 높이기 위한 연구과제를 스스로 자신의 분공으로 맡아안고 그 분공수행을 위해 이번 약초재배월간을 맞으며 아예 집까지 여기로 옮겨앉기로 결심한거란다.》 《뭐?! 그럼 너의 아버지가 스스로 맡은 분공때문에 집까지 자진해 옮겨왔단 말이니?》 경순이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스스로 맡은 분공? 자진해서 집까지 옮겨왔다구? 왜? 그 분공수행을 위하여?) 이런 물음문들이 나의 머리속에서 벌떼처럼 윙윙 날아올랐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그때까지도 내가 경순이에게서 들은 그 말속에 담겨져있는 깊은 의미를 깨닫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하였습니다. (분공이 그렇게도 중요할가? 분공수행을 위해서 집까지 옮겨앉구?) 내가 생각에서 깨여나 옆을 바라보니 경순이도 무슨 생각에 골몰했는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한채 타박타박 발걸음만 옮기고있을뿐이였습니다. 《힘들지 않니?》 룡곡리마을을 지나 문포천다리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나는 경순이쪽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아니, 힘들지 않아.》 경순이의 대답이였습니다. 정말 경순이는 힘들어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보다도 더 가볍고 활기있게 발걸음을 옮기고있었습니다. 그 발걸음은 지어 경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마치 이 걸음이 친형제를 찾아가는 걸음이기라도 한듯이… 오전 열한시가 가까와올무렵, 드디여 나와 경순이는 멋들어지게 꾸려진 읍거리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상원천다리입구에 들어섰습니다. 얼마쯤 걷노라니 다문다문 다박솔이 들어앉은 새마을동네 뒤산을 배경으로 하얀 옷을 입은 아담한 5층짜리 병원건물이 해빛을 한가득 안은채 서있었습니다. 그들이 병원정문에 거의 다달은무렵이였습니다. 저만치 앞쪽에서 어떤 처녀애가 《경순아!》하고 찾고나서 우리들쪽으로 달려오는것이였습니다. 그 애를 알아본 경순이도 《성옥아!》하고 부르며 마주 달려갔습니다. 드디여 마주선 그들은 서로 기뻐서 손을 맞잡고 어쩔줄을 몰라하였습니다. 마치 헤여졌던 형제가 다시 만난것처럼… 그 애의 뒤로 여러명의 애들이 달려와 경순이를 에워쌌습니다. (아마 이사오기 전 학급애들인 모양이지?) 나의 추측은 옳았습니다. 그 애들중에서 열성자표식을 단(아마도 학급장인듯싶었습니다.)남자애가 경순이앞에 한걸음 성큼 다가서며 말하였습니다. 《우린 동무가 이렇게 올줄 알았어.》 《나도 모두들 기다리고있을줄 알았지 뭐.》 나는 그 애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서야 경순이가 이십리길을 쉬여가자는 말 한마디없이 오히려 걸음을 재촉해온 까닭을 알수 있었습니다. 한편 경순이가 참으로 좋은 동무들과 공부해왔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면서 나도 저 애들처럼 경순이와 다정하고 친한 동무가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만이 아니라 우리 학급동무들모두가 경순이와 다정하게 지내게 되리라고 믿었습니다. 내가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경순이가 성옥이라는 애에게 묻는 말이 나에게도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다쳤던 다리는 다 나았니?》 《응, 래일이면 퇴원하게 된단다.》 《야, 이제는 나도 마음놓게 됐구나.》 경순이의 얼굴에 기쁨에 겨운 웃음이 피여났습니다. 나도 경순이와 같은 마음이여서 빙그레 웃음을 짓고 서있는데 그 애들의 의아한 눈길이 나에게 집중되였습니다. 《참, 내 정신 좀 봐. 이 동문 내가 새로 전학간 귀일중학교의 한학급, 한책상 동무야. 이름은 조창일이구.…》 그제서야 생각이 난듯 경순이가 그 애들에게 나를 소개하였습니다. 나는 그 애들에게 웃음을 담은 눈인사를 보냈습니다. 《오, 그랬댔구나. 우린 또 누군가 했지. 자, 우리 서로 알고지내자.》 학급장의 말에 그 애들도 모두 웃음어린 눈길들을 나에게 보내고있었습니다. 내가 《나도 반가와!》하고 대답하자 주위에서 가벼운 웃음소리들이 듣기 좋게 일었습니다. 그런데 그 웃음소리가 잦는 속에서 성옥이가 문득 나에게 부탁조로 던진 말이 나를 깜짝 놀래울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창일동무, 앞으로 우리 분단위원장을 많이 도와줘. 부탁해?》 《?!》 나의 자그마한 두눈이 대번에 휘둥그렇게 커졌습니다. 성옥이의 그 말이 나에게는 정말 뜻밖이였기때문이였습니다. 그저 말이 없이 조용하고 공부에만 열중하고 이따금씩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도 조용조용 차분히 말을 하는 이 《얌전이》가 분단위원장이였다니?… 그러나 나를 더욱 놀래운것은 경순이가 성옥이와 나누는 다음의 이야기들이였습니다. 《경순아, 난 네가 이렇게 오리라고 믿으면서도 마음 한켠으론 혹시 못 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더랬어.》 《넌 참, 네가 퇴원할 때까지 너의 치료와 학습을 방조하라는것이 내가 분단조직으로부터 받았던 분공인데 분공을 버리고 어떻게 그럴수 있겠니?》 《아니, 그럼 넌 지금껏 그 분공을 잊지 않고있었단 말이가?》 《뭐, 분공을 잊다니?!…》 《그래두 너야 이젠 아버지를 따라 귀일리로 이사를 간 몸이 아니니? 여기서 귀일리가 옆집도 아닌데…》 《그런 말 말어. 집이 이사갔다구 조직의 분공을 잊어서야 되겠니?》 《?!…》 아, 그러고보니 경순이는 이미전부터 병원에 입원해있는 성옥이의 학습을 방조할데 대한 조직의 분공을 수행해오던터였습니다. 《경순아, 정말 고마와.…》 성옥이가 눈굽에 눈물이 그렁해가지고 경순이에게 하는 말이였습니다. 《고맙긴, 난 응당히 해야 할 일을 했는걸 뭐. 난 앞으로 새 분단조직의 분공도 어김없이 꼭꼭 수행할테야. 〈분공은 조직이 주는 믿음이고 사랑이란다. 그래서 조직의 분공을 받고 수행해나가는 과정이 곧 조직과 집단의 믿음과 사랑속에 살아나가는 과정이라고들 말하는거란다.〉하고 우리 아버진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셔.》 정말이지 경순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그저 흘려 들을 말들이 아니였고 분공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깨우쳐주고있는것으로 하여 나를 크게 감동시키고있었습니다. 《경순아, 이제는 내 다리도 다 나아서 래일 퇴원하니 너의 분공은 오늘로 끝나는셈이구나.》 성옥이가 모두 들으라는듯 큰소리로 하는 말이였습니다. 《아니, 한가지가 또 있어.》 경순이의 이 말에 모두는 눈이 휘둥그래가지고 서로 얼굴만 마주 쳐다보았습니다. 큰 물음표들이 얹혀져있는 눈길들이였습니다. 그 의혹을 풀며 경순이의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다음주 일요일에는 우리모두 옆마을 영예군인아저씨네 집을 찾아보기로 한것 말이야.》 《음, 정말 그렇구나!…》 애들은 그제서야 의문이 풀린듯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지 못했던 모양이였습니다. 《그럼 넌 다음주 일요일에 또 오겠다는거니?》 성옥이의 근심어린 물음이였습니다. 《음, 그건 우리모두의 집체분공이 아니니.》 《그런데 그 먼곳에서 또 어떻게?…》 《걱정말어, 여기 함께 온 창일동무랑 도와주는 동무들이 많은데 무슨 걱정이 있겠니.》 경순이의 말에 모두의 웃음어린 눈길들이 나에게로 쏠렸습니다. 나는 쑥스러워져 귀방울만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러나 다음순간 머리속에 펑끗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순동무, 그 분공을 우리 분단에도 집체분공으로 제기해서 함께 수행하면 어떻겠니?》 내가 내놓은 제기에 성옥이네들도 모두 다같이 호응해나섰습니다. 학급장이 애들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말했습니다. 《좋아, 그럼 이건 경순동무의 전 분단과 오늘의 분단조직이 함께 수행하는 집체분공이다!》 《야! 좋구나, 정말 멋있는데.》 아이들은 기쁨에 겨워 서로 얼싸안고 빙글빙글 돌아가기까지 하였습니다. 즐거움에 겨운 모두의 웃음소리가 맑고 푸른 하늘가로 노래처럼 퍼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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