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9(2010)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   정            

그림 류명구               

 

하늘도 검푸르고 바다도 검푸르다.

검푸른 하늘, 검푸른 바다가 맞닿은 먼 서쪽에 검푸른 뭍이 보였다.

부산이다.

련락선 《고안마루》는 지금 그 뭍을 뒤에 두고 동쪽으로, 시모노세끼로 달리고있다.

뿌연 먼지와 연기속에서 헐떡이던 도시는 귀청을 따갑게 하던 정박장의 소음과 함께 멀리로 뒤걸음쳤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물아물 사라지는 그 산천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않았다.

《무심한놈의 배, 빨리도 가는구나.》

이물쪽갑판에서 테두리 바깥천이 너슬너슬해진 풍뎅이를 쓴 사람이 배전을 움켜쥐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나이의 부리부리한 눈망울에는 물기가 그렁그렁 번져갔다.

엇가로 찌른 두손을 앞가슴에 모아붙인 두루마기차림의 청년이 서쪽하늘가에 서려오르는 구름장들을 바라보며 나직나직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청년은 노래를 더 잇지 못하고 울먹거리다가 볼에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으며 갑판에 펄썩 주저앉았다.

《에이, 이제는 저 땅을 영영 다시 보지 못한단 말인고!》

청년의 뚝뚝한 경상도사투리에는 울음이 내여돋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흑…》 하는 흐느낌소리가 터졌다.

풍뎅이를 쓴 사람의 곁에서 열서너살쯤 되는 까까머리소년이 배전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먹거리고있었다.

베적삼을 걸친 소년의 잔등우에서는 자그마한 괴나리보짐이 흐느끼듯 떨었다.

소년은 머리를 들고 조국이 있는 서쪽하늘을 이따금씩 바라보군 하였다.

그러자 물결우에서 기울거리던 부산땅도 수평선너머 멀리로 자취를 감추고 항구의 하늘에 떠돌던 쪼각구름마저 어디로 흩어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거치른 파도만이 동서남북을 꽉 덮었다.

《에이, 꼬맹아, 와 이리 울어쌓노. 그만 네가 울어쌓니 내 가슴이 더 터질락한다!》

경상도청년은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리는 얼굴을 무릎우에 꾹꾹 누르고나서 한숨을 길게 몰아쉬였다.

《녀석이 고향에 열한살난 누이동생을 두구왔지요. 지주집종살이를 하는 그 동생을 생각해서 이렇게 운답니다.》

풍뎅이를 쓴 사람은 연기를 한번 삼키지도 않고 태운 담배꽁초를 배전밖으로 휙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지란 사람은 3년전에 나하구 같이 북해도로 강제로 끌려갔는데… 탄굴에서 척추를 다쳐 덜컥 쓰러졌수다.

죽기 전에 아들녀석을 보고싶다고 자꾸만 뇌이기에 이 애를 데리구갑네다.

고향 가니 집은 쑥대밭이 되지 않았겠습네까. 어머니는 재귀열로 돌아가구 이 어린건 글쎄 철도운송부에서 등짐을 나르더란 말입네다. 어, 기막힌 인생이지.…》

파도라도 후려놓을것 같은 그의 한숨은 넓은 하늘가를 꽉 메이는듯 하였다.

소년은 더 슬피 흐느꼈다.

구슬픈 침묵이 배전에 깃들었다.

갑판을 디디는 날카로운 구두발소리가 문득 그 침묵을 헝클어뜨렸다.

《모두 선실로 들어갓!》

방금 2등실에서 올라온 수상경찰 고노가 란간앞에 벋디디고 서서 이물쪽을 노려보고있었다.

서럽게 어깨를 떨던 소년은 울음소리를 죽이고 고노쪽을 힐끔 돌아보았다.

해풍에 들까부는 정모끈을 턱주가리밑으로 바싹 죄이고나서 놈은 느릿느릿 갑판에서 사라졌다. 아마도 검색을 하려는 모양이였다.

부산을 떠날 때 해안경찰에서 애벌조사를 한 셈이지만 한두번의 조사로 마음놓을 경찰들이 아니였다.

3등실 천정에 《조선독립대장 김일성》이라는 글발이 씌여진 사건이 있은 다음부터 조선과 일본을 오가는 려행자들에 대한 단속은 이만저만 심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3등실은 배의 맨 밑창에 있었다. 창문이 없어 낮에도 황달병에 걸린것 같은 전등이 천정밑에서 데룽거리는 침실이였다.

소년은 선실에 들어서자 다른 승객들처럼 자리를 잡을념은 하지 않고 한쪽구석에 서서 천정을 올려다보고있었다.

《어서 와서 자리를 잡아라.》

풍뎅이를 쓴 사람이 나무궤짝우에 걸터앉으며 소년의 팔을 끌어당기였다.

소년은 듣는둥마는둥 그냥 천정만 살펴보았다.

《안 보이는데…》

그 애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밑도끝도 없는 소리로 나직이 중얼거리였다.

《뭐가 안 보인다구 그러니?》

소년은 뚜릿뚜릿 선실안을 둘러보고나서 풍뎅이를 쓴 사람의 귀전에 두손을 오그려댔다.

《거 있지 않아요. 〈조선독립대장 김일성〉이라는…》

《허허, 이 녀석아, 그 글을 그래 놈들이 여태 가만 놔뒀을줄 아느냐?》

《그럼 어떻게 했나요?》

《그거야 뻔하지.… 우리 조선사람들에게 그렇듯 큰힘을 안겨주는 글발을 악독한 그놈들이 그냥 놔뒀을리 없지.…》

《그래요?…》

소년은 의문이 풀리지 않는듯 잠시 고개를 외로 틀었다.

선실입구에 검은 복장을 한 경관이 나타났다.

《쉿! 저기 까마귀가 온다.》

풍뎅이를 쓴 사람은 시치미를 뻑 따고 앉아 궤짝에 감긴 짐바를 손질하는척 했다.

한마디의 귀속말을 주고받아도 대뜸 《불온분자》라는 딱지가 붙고 볼기를 맞아야 하는 1945년의 봄이다.

선실에 들어선 고노는 살진 빈대 한마리가 제복의 깃 고대로 기여오르는것도 모르고 살기등등해서 승객들을 쏘아보고있었다.

《짐들을 헤칠것!》

굵은 목통과는 어울리지 않는 비린청이 푸르끼레한 입술사이로 터져나왔다.

사람들은 짐을 헤쳤다.

고노는 제복의 혼솔이 툭툭 튀여나갈것처럼 팽팽한 엉덩이우에 뒤짐을 가져다붙이고 한참동안 방안을 맴돌았다.

완도어부의 짐에서 참외를 꺼내여 토막쳐보고(두만강세관에서는 조선녀자가 이고 가던 호박에서 권총을 발견했다면서) 홍기하전투소식이 실린 《동아일보》쪼박지를 가지고가는 라주 고학생의 귀뺨을 후리고나서 놈팽이는 소년의 보꾸레미앞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대여섯개의 강낭떡이 딩굴고있는 소년의 베보자기에는 토목수건으로 싸맨 또 하나의 작은 보퉁이가 들어있었다.

소년은 웬일인지 두손으로 그 보퉁이를 꼭 그러잡고있었다.

경찰의 군화코숭이를 지켜보는 검둥근 눈가엔 알지 못할 불안이 뒤척거리였다.

《무엇이나 있소까?》

고노는 침방울을 튕기며 보퉁이를 손가락질했다.

《…》

소년은 대답대신 사타구니앞으로 보퉁이를 더 바싹 끌어당기였다.

《귀나 천당갔소까?》

거리대같이 꺾센 고노의 손이 소년의 귀방울을 사정없이 잡아뜯었다.

소년은 보퉁이를 헤쳤다.

그러자 고노도 승객들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것, 류랑민의 보짐이라고 이름붙이기에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여라문개의 조약돌들이 보퉁이우에 나타났다.

그의 래력을 썩 잘 아는 풍뎅이를 쓴 사람도 그 소지품만은 금시 처음 보는듯 놀라운 표정을 그리였다.

그것은 조선의 바다가모래터나 개울가에서 드물게 볼수 있는 희귀한 조약돌들이였다.

수천수만년동안 파도에 씻기워 티끌 한점 찾아볼수 없는 그 돌들중에는 갓 낳은 닭알껍질처럼 희고 결이 매끈매끈한 조약돌들도 있었고 노란 바탕, 보라빛바탕에 비취색의 장석싸래기들이 박힌 조약돌도 있었다.

그 돌들은 꾀죄죄한 이 선실에 도란도란 흐르는 조국산천의 물노래며 백사장에 딩굴며 부서지는 하얀 물거품이며 수집음을 잘 타는 착한 누나의 얼굴처럼 아름답고 싱싱한 해당화향기를 고스란히 날라오는것 같았다.

고노는 허리를 낮추 굽히고 유심히 조약돌을 살펴보았다.

《아, 보물돌!》

나직이 뇌까리는 경찰의 울대뼈밑으로는 군침을 삼키는 소리가 꿀꺽 들리였다.

고노는 금빛이 도는 조약돌을 두손에 골라들고 소년의 코앞에 바투 가져다댔다.

《어디서 훔쳤는가?》

《?!》

소년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쳐들었다.

파랗게 질린 입술을 반쯤 벌린채 그는 원망어린 눈길로 경찰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그놈의 손에서 느닷없이 조약돌을 가로채는것이였다.

(훔치지 않았어요. 훔치지 않았어요!) 하고 말없는 그의 눈은 부르짖고있었다.

《어디서 얻었는가?》

소년의 눈총에 기가 질린 고노는 슬쩍 말투를 바꾸었다.

《고향에서…》

《고향은 어디?》

《리원…》

소년은 귀찮은 표정으로 시들히 외마디 대답을 하군 하였는데 그 대답아래에 와야 할 말꼬랑지들은 매번 뭉그덩 잘라먹군 하였다.

《리원, 아 금광이나 있는 곳!》

고노는 구석진 곳에서 몇몇 청년들이 입을 싸쥐고 돌아가는것도 모르고 희떱게 소리쳤다.

소년도 옥물었던 입술을 터치며 픽― 하고 웃었다.

철광이 있는 곳을 금광이 있는 곳이라고 했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고노는 절반쯤 축낸 검색을 집어치우고 부랴부랴 선실에서 사라졌다. 그길로 그는 1등실에 찾아갔다.

퀴퀴하고 꾀죄죄한 3등실과는 달리 널직하고 채광이 밝은 이 방에서는 도꾜의 경시청에서나 칠수 있는 고급향수냄새까지 풍기였다.

응접탁 화분통들에는 마다가스까르에서 가져왔다는 산미규며 고무나무며 선인장들이 싱싱하였다.

원탁앞에서는 도꾜의 어느 주식회사의 이름난 기업가 히또와 한때 유격대 《토벌》을 지휘하다가 조선인민혁명군의 총알에 맞아 애꾸눈이 된 전 관동군참모 요시가와가 바둑을 두고있었다.

그옆 침대에서는 일곱살쯤 되는 히또의 딸 마쯔꼬가 코를 풀쩍거리며 바둑을 구경하고있었다. 히또가 요시가와의 바둑을 따면 그 애는 못생긴 입을 벌리고 히히 웃으며 그 바둑씨를 걸탐스럽게 치마폭에 싸담는것이였다.

마쯔꼬는 이번에 아버지와 함께 열흘동안 조선의 금강산에 가서 놀다가 온다.

그의 무릎우에서 돌연 먹다남은 사과가 떨어져 선실바닥에 데구루루 구을렀다.

고노는 얼른 그 사과를 주어 마쯔꼬에게 돌려주었다.

마쯔꼬는 고노의 볼편에 패인 험상스런 상처자리를 쿡쿡 찌르며 《돼지, 돼지!》 하고 깔깔대였다. 그리고는 엄지손가락과 두번째손가락을 집게처럼 꼬부려가지고 삐죽이 내밀린 고노의 코구멍털을 마구 잡아당기는것이였다.

고노는 그런데도 눈섭 한오리 찡그리지 않고 그 애의 살찐 볼을 다독다독 두드려주기까지 했다. 자기에게 미국제 회중전지를 선물한 아버지― 히또의 고마운 마음씨를 생각해서라도 그는 이런 모욕쯤은 참아야 하였다.(물론 그 전지는 배에 오를 때 고노가 히또의 시중을 잘 들어준 덕으로 받은것이지만.)

참모의 승리로 바둑놀이가 끝났을 때 고노는 기업가의 귀에 대고 방금 3등실에서 본 그 신기한 《보물돌》에 대해서 한참동안 늘어놓았다.

그는 이렇게 하는것으로 히또의 은혜에 값을 치르려는것 같았다.

광석으로 해서 부자가 되였고 또 광석으로 해서 이름을 날리고있는 히또에게 있어 《보물돌》이야기처럼 기쁜 이야기가 또 어디 있겠는가.

히또는 검숭검숭한 털투성이 다리를 침대밑에 척 늘어뜨린채 눈덕을 손으로 덮고 죽은듯이 앉아있었다. 얼핏 보면 그는 마치 졸음을 청하고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상 이때 히또의 귀는 고노의 이야기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있었다.

《가세.》

히또는 될수록 자기는 그닥 흥미가 없는데 광석이야기가 나온것만치 할수없이 가봐야겠다는 투의 고달픈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면서 침실을 나섰다.

《나두 갈래, 나두!…》

잠시도 아버지곁을 떠나지 않는 마쯔꼬가 흥흥거리며 침대우에서 기여내렸다.

그 시각에 3등실사람들은 리원소년을 둘러싸고앉아 조약돌을 구경하고있었다.

《우리 고향 바다가에도 이런 돌이 있었소.》

《정말 귀하고 고운 돌이구만.》

《원통하구나. 옥돌처럼 곱고 아름다운 조국을 섬나라 오랑캐들에게 빼앗기고 낯설은 해적의 땅에 류랑이 웬말이냐!》

승객들은 조약돌을 만져보며 저마다 가슴속에 사무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한웅큼씩 퍼냈다.

《그런데 얘, 조약돌은 뭣하러 가지구 떠났니?》

라주의 고학생이 소년의 곁에 자리를 옮기며 물었다.

《…》

소년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눈자위에 고이던 눈물이 해진 무르팍에 뚤렁 떨어졌다.

히또와 고노와 마쯔꼬가 3등실에 들어선것은 바로 그 순간이였다.

소년이 미처 보따리를 꿍질 사이도 없이 히또는 소리없이 다가와 조약돌을 한줌 집어들었다.

마쯔꼬도 아버지처럼 꺼리낌없이 보퉁이에 덥석 손을 대였다.

그러나 리원소년이 보퉁이를 끌어안으며 눈총을 쏘자 그 애는 와뜰 놀라서 손을 움츠러뜨리였다.

그 조약돌은 너무도 오래 가지고 놀아서 이제는 보기조차 싫증나는 홍보석이나 인형아기따위보다 한결 더 좋은 놀이감이 될것 같았다.

마쯔꼬는 아버지의 곁으로 비실비실 가재걸음을 쳤다. 두손을 우로 냉큼 쳐들고 《달라, 달라!》 하면서 떼를 쓰기 시작했다.

히또는 비취색싸래기가 박힌 조약돌 하나를 딸애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런 다음 줌안에 든 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승객들이 사방에서 그들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라주의 고학생과 경상도청년은 소년을 가운데 두고 량옆에 마주 붙어앉아서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로 놈팽이들을 지켜보고있었다.

선실에는 긴장이 깃들었다.

숨도 크게 못 쉬고 기업가의 입을 지켜보는 고노의 꼬락서니는 흡사 판결을 기다리는 재판석의 피고처럼 보였다.

《흥!》

히또는 쌀쌀한 기운이 내풍기는 은테안경너머로 고노를 힐끗 넘겨다보고나서 소년의 보꾸레미에 조약돌을 집어던졌다.

성난 사자처럼 헛기침을 험험 해대면서 출구쪽으로 발을 떼던 그는 고노를 향해 씹어뱉듯이 말하였다.

《광석이 아니구 보통돌이요. 도꾜에 오면 우리 회사에 들리오. 광석표본실을 구경시켜주겠소.》

고노는 얼굴이 지지벌개서 애꿎은 칼집만 만지작거렸다.

그 서슬에 리원소년은 마쯔꼬의 손에서 조약돌을 가로챘다.

《으앙!… 으앙…》

마쯔꼬는 울음을 터뜨렸다.

히또는 걸음을 멈추었다.

고노는 군도를 절컥거리며 마쯔꼬의 곁으로 황황히 뛰여갔다.

《난다?(무슨 일이야?) 나제 나꾸까?(왜 우니?…)》

그는 히또보다 더 숨이 차서 마쯔꼬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러자 마쯔꼬는 고노의 머리에서 경찰모를 잡아채여 리원소년에게 팽개쳤다.

그리고는 두주먹으로 고노의 면상을 암팡스럽게 두들겼다.

《내 돌 달라, 앙― 내 돌, 내― 돌을!…》

마쯔꼬가 앙탈을 쓰며 보퉁이를 거머쥐자 리원소년은 한쪽팔로 계집애를 가볍게 밀쳐버렸다.

《비켜! 이건 내 돌이야, 조선돌이야!》

《쳇, 저 콩알같은 계집애까지 총독행세를 하려 드는군.》

《나라를 빼앗더니 조약돌까지 빼앗아?》

히또가 서있는 뒤쪽에서 이런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누구인가는 혀를 찼다.

《압수하기 전에 돌려주라!》

고노는 눈을 부릅뜨고 발을 탕 굴렀다.

소년은 잠자코 있었다. 다만 선실에 들어설 때처럼 천정의 어디인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술을 더 옹골차게 깨물었을뿐이였다.

《칙쇼, 조선의 모든것은 다 일본것이다. 돌도 나무도 쌀도 사과도 다 일본것이란 말이다. 저 애가 누구의 딸인지 아는가?》

고노는 히또가 듣도록 마지막말을 특별히 높이 했다.

그는 이발을 앙다물고 리원소년에게로 다가갔다.

소년의 가는 몸은 경찰의 큰 주먹밑에서 단번에 부서질것 같았다.

으시대는 경찰의 모양에 기세가 나서 마쯔꼬는 더 높이 울었다. 울면 만사가 소원대로 될것이였다. 고노는 돌을 빼앗을것이고 그 돌은 자기의 놀이감으로 될것이다. 마쯔꼬가 소원하고 또 아버지가 바라는것이라면 고노는 달나라의 계수나무가지라도 꺾어올것이다.

게다가 돌임자는 일본사람들이 마음대로 다스리는 조선의 아이다.

《마쯔꼬, 그건 더러운 돌이야.》

멍청히 서있던 히또는 징겅징겅 다가와서 딸의 손목을 끌어당기였다.

마쯔꼬는 도리를 떨며 땅에 펄썩 주저앉고말았다. 조선아이의 허술한 보퉁이속에 들어있는 공짜배기 놀이감을 빼앗기 전에는 죽어도 자리를 뜨지 않을 잡도리였다.

히또의 입가에는 문득 경멸의 빛을 담은 한줄기의 웃음이 비꼈다. 소년의 뺨을 답새기려고 쳐든 고노의 팔을 손으로 밀막으면서 히또는 돌임자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바지주머니속에서 손칼을 꺼냈다. 손잡이끄트머리에 달린 노란 사슬만 봐도 눈맛이 당기는 그런 칼이였다.

《착한 아이, 이 칼을 줄게 그것을 달라.》

히또는 백만장자답게 너그러운 웃음을 담고 새끼손가락으로 자기의 칼과 소년의 보꾸레미를 엇갈아 가리켜보였다.

그놈의 길다란 손톱끝은 조약돌꾸레미가 아니라 소년의 심장까지도 금시 후벼낼것 같았다.

그는 이 허줄한 식민지나라의 소년이 자기의 말만 떨어지면 주저없이 돌을 내놓으리라고 믿는듯싶었다. 이 거렁뱅이같은 조선의 아이가 언제 이런 호사스런 칼을 만져나 보았겠는가.

소년은 말없이 머리를 흔들었다. 눈은 손칼이 아니라 천정을 견주고있었다.

고노는 주먹을 쥐였다폈다하며 안절부절 못하였다. 그 모양은 마치도 으르렁대는 사냥개같았다. 만일 히또가 조금이라도 부추기는 기미만 보였더라면 그는 영낙없이 주먹맛을 보였을것이다.

그러나 히또는 그만한 모욕쯤에는 움쩍하지 않았다. 다만 눈자위에 알릴락말락한 붉은 반점들이 돋아올랐을뿐이다.

기업가는 손칼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다음 반대쪽주머니에서 금도금을 한 회중시계를 꺼냈다. 그는 모름지기 소년에게 손칼이 쓸모가 없거나 밥먹을 때 숟가락처럼 꼭 있어야 할것은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하고있는것 같았다.

《자, 손칼이 싫으면 이것을 주지.》

히또는 소년이 잘 볼수 있게 시계를 더 가까이 가져다댔다.

승객들의 열에 뜬 눈초리는 한꺼번에 리원소년에게로 쏠리였다.

그 많은 승객들이 가락지처럼 《흥정판》을 에워쌌으나 선실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콜록콜록 기침을 깇던 완도의 어부도 급작스레 찾아든 선실의 정적에 소스라쳐 입을 틀어막고 놀랜 눈으로 소년을 쳐다보았다.

오직 풍뎅이를 쓴 사람만이 궤짝우에 셈평좋게 퍼더앉아 주근주근 담배를 말아대고있었다. 반쯤 감을사 한 그의 왼쪽눈귀는 줄곧 누구인가를 비웃는듯 하였다.

《주―지 말어, 주―지 말어!》

갑자기 마쯔꼬가 아버지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그는 아버지의 손에서 회중시계를 막 빼앗으려다가 고노의 칼자루를 잡아흔들며 그를 리원소년앞으로 떠밀었다.

《빨리이―빨리이!… 뺏어달라!》

고노는 마쯔꼬의 자드락거리는것을 못 본척 하고 히또의 앞으로 한걸음 다가서서 애원조로 말했다.

《히또씨, 그건 너무…》

시계와 조약돌을 바꾸는것은 너무나도 억울한 흥정이라는듯이 경찰은 한숨까지 쉬였다.

히또는 고노의 애원을 들었는지 삼켰는지 그냥 소년의 앞에 버티고서서 회중시계를 들고있었다.

소년은 회중시계의 그 번쩍거리는 광택에 눈이 시그러운듯 얼굴을 숙이고 잠시 누빈 돗자리를 굽어보다가 《빈대!》하고 큰소리로 웨쳤다. 그리고는 살이 통통한 그 기생충을 종이고깔속에 훌떡 집어넣고 꼭두머리를 봉해버렸다.

그는 몇섬의 쌀이나 몇벌의 옷을 대신할수 있는 어마어마한 시계보다도 빈대라는 그 미련하기 짝이 없는 벌거지가 몇곱절 더 흥미가 있는 모양이였다.

회중시계를 쳐다보던 사람들은 일제히 소년의 종이고깔을 내려다보았다.

거의 같은 시각에 히또는 《흥!》 하고 코방귀를 뀌였다.

그는 자기가 흥정을 청하고있는 이 헌털뱅이소년이 틀림없이 시계라는 사치품을 한번도 구경하지 못했거나 설사 구경했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를 전혀 모르는 까막눈이라고 생각하였던것이다.

히또의 흰자위에 떠오른 붉은 반점들은 점점 더 커졌다. 이제는 시들시들한 그의 귀까지 닭의 볏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히또는 지구상에 아직도 《쎄이꼬》를 모르는 《바보》들이 득실거리는것을 한탄하면서 안주머니에 있는 지전장들을 보란듯이 꺼냈다.

《자, 이래도 싫은가?》

하고 그는 왼쪽손바닥에 번들거리는 지전뭉치를 놓고 의젓이 소년을 바라보았다.

지구상의 모든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그도 돈이 못하는 일이란 세상에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것이 분명하였다.

히또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네놈이 돈앞에서야 감히.》하는 거만한 표정이 떠올랐다. 어깨멜빵밑에서는 굵은 배통이 숨겹게 풀럭거리였다.

승객들의 눈초리는 다시금 히또에게로 달려갔다.

《히또씨, 그만두십시오. 그놈의 돌을 내가, 내가 뺏아서 드리겠습니다!》

두손으로 지그시 돈뭉치를 누르며 고노는 격해서 부르짖었다.

히또는 고노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고나서 쌀쌀하게 웃으며 소년의 무릎우에 돈을 내려놓았다.

소년은 흘끔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까만 눈섭이 놀란듯이 꿈틀거리였다. 그것은 일생동안 한번도 본적 없는 엄청난 돈이였던것이다.

《이 애, 호박이 넝쿨채 떨어졌는데 어서…》

뒤에서 누구인가 소년의 옆구리를 찔렀다. 고노를 만나려고 2등실에서 내려온 지주였다.

지주놈은 손으로 소년의 보꾸레미를 쿡쿡 찌르기까지 했다.

소년은 말이 없었다. 높이 쳐들고있는 그의 눈길은 승객들의 머리우 어딘가를 줄곧 바라보고있었다.

멀리 두고온 고향의 바다가가 눈앞에 펼쳐졌다.

3년전에 아버지를 바랬고 사흘전에는 다시 누이동생과 헤여져 서러운 류랑의 첫걸음을 떼던 백사장!…

그날 저녁도 고향의 바다가에는 갈매기울음소리가 처량하였다. 배고동소리 구슬픈 련락선갑판에는 고향을 떠나는 류랑민들이 가득 몰켜서있었다.

눈물로써 바래고 헤여지는 설음많은 리별속에 눈물에 젖은 인사들이 수없이 오고갔다.

《오빠! 나두 가자! 나혼자만 두구 가면 어쩌니? 나혼자만!…》

《갔다가 인차 온다지 않니. 그때까지 참으라는데두. 돌아오면 우리 함께 백두산으로 가자!》

오빠를 바래는 누이동생의 하소연도 애절하였지만 누이동생을 달래는 리원소년의 목소리는 더더욱 애가 끓었다.

리별의 그 눈물많은 사연은 출발을 알리는 배고동속에 삽시에 잠겨버렸다.

붕!―

배는 검은 연기를 뿜어올리며 선체를 들썩거리였다.

바로 그 순간 울상이 되여 란간앞에 서있던 소년은 배전밖으로 몸을 날리며 물우에 첨벙 떨어졌다.

《앗!》

하고 갑판과 뭍이 한꺼번에 비명을 지를 때 소년은 벌써 기슭으로 헤여나와 모래터에 왈칵 꿇어앉았다.

노을이 퍼져가는 저 멀리 서쪽 산정이며 정든 마을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소년은 어깨에 둘러멘 베보자기를 재빨리 펼치고 모래터의 조약돌을 골라 담기 시작했다.

《얘야, 어서, 어서!…》

《배가 떠난다, 얘!…》

《저런, 저 애가!…》

사람들이 와― 몰려와서 그의 어깨를 마구 잡아흔들었다.

그래도 소년은 얼이 빠진 사람모양으로 그냥 조약돌을 주어담았다.

그것은 고향을 떠나는 리별의 이 시각에 그가 가지고갈수 있는 마지막기념품이였으며 왜놈에게 등살을 벗기운 조국이 그에게 줄수 있는 마지막선물이였다.…

《싫어! 싫어! 안 바꿀테야, 안 바꿀테야!》

소년은 이렇게 부르짖으며 무릎우에 놓인 돈뭉치를 왈칵 집어던졌다.

빨락거리는 지전장들은 선실 여기저기에 넝마쪼각처럼 지저분하게 흩어졌다.

히또와 고노도 지전장을 뒤집어썼다.

《잘한다, 잘해!》

풍뎅이를 쓴 사람은 한입 터지게 들이켰던 담배연기를 흩날리는 지전장들을 향해 후― 하고 들씌웠다.

껄껄거리는 경상도청년의 통쾌한 웃음소리가 승객들의 머리우로 날아갔다.

고노는 어쩔바를 몰라서 갈팡질팡 이쪽저쪽을 뛰여다녔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히또는 흩어진 지전장들을 락엽처럼 밟으며 비칠비칠 문쪽으로 걸어갔다. 출입구앞에까지 다달은 그는 뒤로 돌아서서 소년의 얼굴을 퀭하니 바라보다가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며 밖으로 사라졌다.

아버지와 돈을 번갈아 지켜보던 마쯔꼬는 누빈 돗자리우를 기여다니며 돈을 주어모으기 시작했다.

고노는 홱 돌아서서 소년의 앞으로 다가갔다.

《빠가야로!》

철썩 소리가 나게 따귀를 붙이고 놈팽이는 조약돌이 들어있는 보퉁이를 무작정 거머잡았다.

소년은 이발로 고노의 팔을 힘껏 물어뜯었다. 그리고는 선실밖으로 쏜살같이 냅다뛰였다.

고노는 소년의 꽁무니를 따라갔다.

선실안의 승객들도 우르르 탕탕 갑판으로 쏟아져나갔다.

《여보시오, 순사. 죄없는 아이의것을… 그게 무슨짓이요!》

풍뎅이를 쓴 사람이 뒤로부터 고노의 손목을 틀어쥐였다.

《그래두 대일본제국의 경찰이라구? 공정치 못하오!》

라주의 고학생이 고노의 왼편 팔을 붙잡고 소리쳤다.

《고노야로!》

고노는 뒤발질로 두사람을 차버리고 허겁지겁 소년을 쫓아갔다.

다섯발자국만 더 따라가면 다시 조약돌보퉁이가 잡힐 아슬아슬한 순간이였다. 란간에 기대여선 소년은 더 뛰지 않고 맞받아오는 경찰을 야무지게 쏘아보고있었다. 돌덩어리처럼 굳게 모두어쥔 두주먹은 조약돌보퉁이를 꽉 그러잡고있었다.

《백두산에 가면 다 말할테다! 다쳐만 보지.》

총성처럼 터져나오는 소년의 맵짠 웨침소리에 고노는 멈춰서버렸다.

《백두산?》

고노는 이렇게 씨벌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였다.

리원에 철광이 있다는것은 잘 몰라도 백두산이 어떤 산인가 하는것은 그도 잘 안다.

백두산!

그렇다! 그 유명한 이름이 이 세상에 퍼진 날부터 조선사람들은 일본이 무서운줄도 모르게 되였고 총과 대포와 교수대가 무서운줄을 모르게 되였다. 저 아이도 그렇다.

고노는 더 따라가고싶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경찰님, 히또씨가…》

1등실에서 달려나온 료리사가 헐떡거리며 고노의 귀에 대고 무엇인가 쑥덕거리였다.

《뭐? 졸도? 정말인가?》

《정말입니다. 방금 침대우에서… 기절하였습니다.》

숨이 넘어가게 연방 두서없이 지껄여대는 료리사를 따라 고노는 1등실로 사라졌다.

《이눔애야, 그만이야 니가 이겼구나. 용타, 용아!》

경상도청년이 한달음에 뛰여와 소년을 부둥켜안았다.

《조약돌이 아니라 조국을 지켜냈소!》

라주의 고학생도 소년을 얼싸안았다.

모두가 얼싸안고 모두가 부둥켜안으며 장하다고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 꾸레미를 이제는 내가 간수할가?》

풍뎅이를 쓴 사람이 이렇게 말하며 소년의 보꾸레미에 손을 가져다댔다.

소년은 그의 손을 밀어버리고 빙그레 웃으며 아까보다 더 담차게 보퉁이를 그러안았다. 이새에 흐르는 피를 바다물에 탁 뱉고나서 그는 슬그머니 서쪽하늘가로 눈길을 돌리였다.

거기에는 옥돌처럼 곱고 아름다운 삼천리강산이 있었다. 나서자란 고향과 어머니조국이 있었다.

 

주체66(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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