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100(2011)년 제11호에 실린 글
□ 단편소설 □
1
여름방학이 흘러가고있었습니다.
어제 밤 일기장을 펼쳐놓고 벽에 걸려있는 달력에 눈길을 주었던 설경이는 흠칫 놀랐습니다.
(아니, 벌써 저렇게?!…)
방학숙제로 제시된 재미나는 수학문제풀이며 맑은 물이 바다처럼 출렁이는 학교수영장에서의 재미나는 물놀이, 학습반동무들과 함께 떠났던 흥미있는 자연관찰 등으로 날이 언제 오고 언제 가는지 설경이는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그런 날들중의 하루였습니다.
오전에 학습반동무들과 하루의 방학숙제를 마친 설경이는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학교로 나왔습니다.
방학이라고는 하지만 학교는 매일같이 많은 학생들로 흥성거렸습니다. 7, 8월 해양체육월간인지라 수영장에선 많은 애들이 떠들썩거렸고 학교운동장에선 축구학급애들이 앞으로 있게 될 전국중학교 축구학급경기참가를 위한 맹훈련을 하고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콤퓨터소조, 성악소조, 미술소조동무들은 자기들의 재능을 다지느라 그에 열중하고있었습니다.
설경이는 학교 문학소조원이였습니다.
문학소조원들은 매일 자기들이 쓴 수필이나 동요, 동시작품들을 소조선생님에게 보여드리고 지도를 받는것을 어길수 없는 일과로 여겼습니다. 지금도 소조원들은 소조선생님이 자기들이 쓴 글에 어떤 점수를 매겨주고 무슨 의견을 주실가 하고 가슴을 조이며 기다리고있는 중이랍니다.
드디여 선생님이 소조실로 들어섰습니다.
선생님이 매 소조원들에게 습작집들을 돌려주고있습니다. 누구에겐 《좀더 노력하세요.》 혹은 《자연묘사에 더 힘을 넣으세요.》라고 의견을 주기도 하고 또 누구에겐 《은유법들을 잘 활용하면서 쓰세요.》라고 깨우쳐주기도 하면서…
그런데 웬 일이겠습니까? 어째서인지 선생님은 설경이에게 습작집만 조용히 놓아주실뿐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는것이였습니다. 잠시 멈추어서서 무엇인가 말씀하실듯 하더니 그냥 돌아서는것이였습니다.
《오늘은 선생님이 회의에 참가하게 되여 동무들의 작품을 일일이 지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동무들은 선생님이 지적해준 부족점들에 대하여 잘 생각해보고 자기 힘으로 그 결함들을 고쳐야겠어요. 래일 다시 보겠습니다.》
선생님은 소조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소조실을 나섰습니다.…
설경이는 금시 울상이 되였습니다.
습작집에 매겨진 2점이라는 점수때문이였습니다.
애들이 오리라고 부르는 2점이 밤새 애써 쓴 작문의 글줄밑에 오똑 앉아있었습니다. 그것도 꽁무니에 세개의 의문표를 주런이 달고서 말입니다.
2점, 이것은 설경이가 문학소조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맞아보는 점수입니다.
옆에 앉은 향숙이가 손벽을 짜락 마주쳤습니다.
얼핏 눈주어보니 그 애의 습작집엔 5라는 점수가 장한듯 새겨져있습니다.
기쁜 나머지 사과알처럼 빨갛게 타오른 향숙이의 얼굴을 쳐다본 설경이는 입술을 옥물었습니다.
말 못할 안타까움이 마음속에 꽉 차올랐습니다.
오늘 방학숙제를 하던 아침까지만 해도 아니, 학교정문으로 들어서던 좀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둥둥 떠있던 설경이였습니다.…
설경이가 동화책에 눈길을 파묻고 정문으로 들어서는데 문득 이런 말이 날아왔습니다.
《종달새동무, 어떻게 땅에 내렸습니까?》
그 말을 던진 애는 키가 꺽두룩한 2학년 축구학급의 학급장이였습니다. 이름이 덕빈이던지…
《제가 하늘에 날려달랍니까?》
코밑을 쑥 문지르며 말을 받아주는 애는 덕빈이와는 대조적으로 키가 작달막하고 똥똥한 같은 학급의 병남이였습니다.
(싱검둥이들 같은거.)
설경이는 커다란 두눈을 매섭게 딱 부릅뜨고 그 애들을 쏘아보았습니다. 설경이의 눈총을 받은 두 아이는 눈을 찡긋거리며 서로 마주보더니 홱 돌아서서는 냅다 뛰여갔습니다.
《하하하…》
웃음소리를 꽃보라처럼 날리면서 말입니다.
말없는 칭찬처럼 들려오는 그 웃음소리!
설경이는 웃입술을 생긋 쳐들며 웃음을 지었습니다. 보조개가 옴폭 패이는 고운 웃음입니다.
《종달새동무!》
이 말이 설경이의 귀전에 정겹게 맴돌고있습니다. 그럴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전 방학을 앞두고 진행된 군안의 중학교문학소조원들의 창작경기에서 설경이는 1등을 하였습니다.
그때 설경이는 《종달새》라는 제목으로 동시를 썼습니다.
소조선생님도 그 동시를 읽으시고는 《호호…》하고 즐겁게 웃으시였습니다.
문학소조실의 벽보판에 나붙은 그 동시를 저애들이 언제 보았는지…
감출수 없는 기쁨이 설경이의 마음속에 물결치고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여 칭찬을 싫어하는 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물론 설경이는 새침데기라고 불리우는 축에 속하지만 역시 칭찬을 받으면 좋아하는 다른 애들과 꼭같은 열두살내기랍니다.
(저 애들이 내가 2점 맞은것을 안다면?…)
그 싱검둥이들은 이렇게 이죽거릴지도 모릅니다.
《종달새동무! 오늘은 종달새가 오리를 잡수셨습니까?》
왈칵 서러운 눈물이 솟구칩니다.
(선생님은 너무하셔. 힘들게 써놓은 글에 2점이 뭐람, 2점이…)
참빗처럼 고르로운 설경이의 속눈섭이 바르르 떨리더니 끝내 눈물방울이 맑은 눈가에 핑그르르 고입니다.
설경이는 동무들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 두팔을 구부려 말없이 책상우에 올려놓고는 머리를 팔에 박은채 소리없이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2
설경이네 학교주위를 병풍처럼 빙 둘러선 나무들과 길가의 가로수들마다에서는 매미들이 맴맴 합창을 불러댑니다.
설경이는 텅 빈 소조실에 오도카니 앉아있었습니다. 다른 애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애들이 함께 가자고 팔소매를 잡아끌었지만 설경이는 도리머리를 저으며 뿌리쳤습니다.
동무들에게 눈물을 보인것이 부끄럽기도 하였고 자기가 우는것을 죄다 지켜본 애들과 함께 간다는것도 멋적은 일이였기때문입니다. 그리고 군에 회의가신 소조선생님을 기다려 2점준 리유를 꼭 알고싶었기때문이였습니다.
탁상등앞에서 설경이가 밤을 새우며 또박또박 쓴 작문과 동요, 동시들은 아직 2점이라는것을 맞아본적이 없습니다.
점수를 매겨주시고 그옆에 항상 《묘사가 잘 되였어요.》 혹은 《전번보다 많이 나아졌어요.》라고 정다운 글씨를 남겨주던 소조선생님입니다.
그런데 오늘 설경이가 이틀째 쓴 작문에 선생님은 2점이라는 점수와 함께 리해되지 않는다는 의문표를 세개씩이나 덧붙여놓은것입니다.
소리없는 어둠이 발볌발볌 교실안으로 기여듭니다. 희미한 달빛이 설경이의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줍니다. 이제는 저녁 8시도 퍽 넘었을것입니다.
복도에서 웬 남자애가 무슨 노랜지 목청을 길게 뽑으며 지나갑니다. 아마 좀전까지 운동장에서 공빼몰기훈련에 여념없던 축구학급의 어떤 애인 모양입니다.
듣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노래를 잘못 부르던 애도 마음을 푹 놓고 제법 감정을 살리면서 저렇게 가락을 넘기는가봅니다. 그 노래소리를 타고 설경이의 생각은 문학소조에 들어오던 한해전의 그날로 흘러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상급생언니, 오빠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중학교정문으로 들어서던 잊을수 없는 그날 호기심 많은 설경이의 눈길을 제일 끈것은 학교속보판에 나붙은 주먹같은 글발이였습니다.
꿈많은 소녀의 맑은 눈동자에 사진처럼 또렷이 찍혀진 그 글발은 다음과 같은것이였습니다.
《전국 중학교학생들의 글짓기경연에서 1등을 하여 학교의 영예를 떨친 5학년 3반의 안경심학생을 열렬히 축하한다!》
그밑에는 꽃목걸이를 건 그 언니의 모습이 연필화로 섬세하게 그려져있었습니다.
설경이는 부러움에 차서 그 언니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날밤 설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안경심언니와 손을 잡고 글짓기경연에 참가하러 평양으로 가는 꿈이였습니다.
《언니, 언니는 어떻게 되여 1등을 했나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단다, 일기도 매일 꼭꼭 쓰고…》
꿈속의 언니는 1등의 비결을 이렇게 다정히 속삭여주었습니다. 아쉽게도 꿈에서 깨여났지만 설경이의 마음은 노상 그날밤의 꿈속에서 살고있었습니다.
매 시간마다 새로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이랑, 달라진 중학교의 일과들이랑, 멋진 실험실습실들이며 정문가의 키높은 두그루 수삼나무랑, 새라새로운 소식을 알려주는 속보판 등 설경이의 눈동자에 비끼는 모든것이 일기장과 습작집에 빠짐없이 적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설경이는 습작집을 품에 안고 문학소조실의 문을 똑똑똑 두드렸습니다.
소조선생님은 쌍겹진 크고 시원한 눈에 웃음을 함뿍 담으며 물으시였습니다.
《이름은 어떻게 부르나요?》
호기심을 잔뜩 머금은 소조원들의 눈길에 그만 주눅이 든 설경이는 대답할 생각도 잊고 습작집만 쑥 내밀었습니다.
선생님은 습작집의 글자 하나하나를 놓칠세라 주의깊게 살펴보시였습니다. 설경이는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초조히 선생님의 얼굴만 바라보았습니다.
습작집을 다 읽고나서 선생님은 문득 물으시였습니다.
《설경학생은 노래를 잘 부르나요?》
설경이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왜 문학소조에 들어오려는가고 물으시면 어떻게 대답할가 하며 이불밑에서 곱씹고 또 곱씹어본 말마디들이 머리속에서 모두 도망쳐버렸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머리속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듯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정말 뜻밖의 물음이였기때문입니다.
《우리 문학소조원들은 누구나 다 노래를 잘 부른답니다. 우리가 쓴 동요나 가사에 곡을 붙이면 노래가 되니까요. 그럼 어디 한번 불러보자요.》
설경이는 조촘조촘 교탁앞으로 걸어나갔습니다.
(노래를 잘못 부르면 어쩌나? 아마 문학소조원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실거야.)
설경이는 마음을 사려먹고 다소곳이 인사를 하였습니다. 짜락짜락 흥이 난 박수소리가 울립니다.
설경이는 입술을 감빨며 또 머뭇거렸습니다.
짜락 짜락 짜락…
이번엔 더 큰 박수소리가 울립니다.
열두쌍의 눈동자가 설경이를 바라보고있습니다.
한결같이 다정한 모습들입니다.
그제서야 설경이는 크지는 않으나 가락맞게 들려오는 이 박수소리가 어서빨리 문학소조에 들어오라고 불러주는 동무들의 다정한 부름처럼 생각되였습니다.
어깨동무 세 동무 아동단동무
우리들은 나어린 프로레타리아…
청아한 목소리가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연처럼 소조실안을 감돌며 창가로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설경이가 제일 좋아하는 혁명가요 《아동단가》의 노래소리였습니다. 이윽고 소조실안에서는 짜락짜락 큰 박수소리가 오래도록 울리였습니다. 이렇게 설경이는 문학소조원이 되였습니다.
자박 자박… 어데선가 꿈속에서처럼 들려오는 발걸음소리, 설경이의 모든 신경이 바늘끝처럼 곤두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발걸음소리는 점점 소조실가까이로 다가오고있었습니다.
귀에 익은 그 발걸음소리에 심장은 벌써 콩콩 절구질을 시작하였습니다.
발걸음소리는 소조실앞에 와서 뚝 멎었습니다.
설경이는 자리에서 포시시 일어섰습니다.
모든 생각이 한꺼번에 다 사라졌습니다.
다만 한가지 생각, 자기가 애타게 선생님을 기다렸고 또 보고싶었다는 그 생각으로 눈물이 핑 도는것이였습니다.
3
《설경학생, 앉으세요.》
소조선생님이 설경이의 어깨를 가벼이 눌러앉혀주며 말씀하시였습니다.
《선생님은 지난 이틀간 설경학생이 쓴 작문을 보았어요. 그제 작문은 인민군대원호물자를 가지고 희천발전소로 떠난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아 밥을 짓던 이야기이고 어제 작문은 방정식문제풀이방법을 놓고 벌어진 론쟁에 대한 이야기이고… 물론 묘사도 생동하고 문장꾸밈도 괜찮아요. 그러나…》
선생님은 하시던 이야기를 끊고 조용히 창문가로 걸음을 옮겨갔습니다. 설경이는 선생님의 다음말씀을 기다리며 굳어진듯 앉아있었습니다.
이윽고 선생님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졌습니다.
《난 설경학생이 쓴 그 이틀동안의 작문을 보면서 손맥이 다 풀렸어요.》
(?!…)
놀라와 두눈이 휘둥그래진 설경이는 선생님의 말씀이 도무지 리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좀전엔 작문의 묘사도 생동하고 문장꾸밈도 괜찮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또 손맥이 풀렸다고 하시는것은 무엇때문일가?)
선생님이 습작집에 표시해준것과 꼭같은 세개의 의문표가 설경이의 눈앞에 붕 떠오릅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계속 울려왔습니다.
《선생님은 그 작문에서 설경학생의 글짓기재간은 읽을수 있었으나…》
선생님은 말씀을 끊고 그대신 설경이의 앞에 빨간 뚜껑을 한 한권의 책을 내놓았습니다.
책의 겉표지에 《2학년 2반 문학소조원 길향숙》이라는 글자가 또렷이 안겨왔습니다.
불현듯 습작집에 새겨진 《5》라는 점수를 보고 짝자그르르 손벽을 치던 향숙이의 아련한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향숙학생의 작문과 설경학생의 작문을 대비해보세요. 그러면 선생님이 왜 설경학생의 작문에 2점을 주었는지 알수 있을거예요.》
이윽고 소조실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가 닫기고 선생님이 자박자박 걸음을 옮겨가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왔습니다.
… 깊은 밤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탁상등이 밝은 빛을 뿌려주는 책상에 마주앉은 설경이는 향숙이의 습작집을 세번씩이나 펼쳐보고 또 펼쳐보았습니다.
주체100(2011)년 8월 ×일
내 동생 향심이는 고울 땐 막 깨물어주고싶게 곱다가도 오늘 아침같은 땐 정말 밉살스럽다.
그때 나는 정말 멋진 꿈을 꾸고있었다. 내가 글쎄 전국 중학교학생들의 글짓기경연에서 단연 1등을 하고 영예의 1등상을 수여받는 꿈이였다. 환영곡이 요란히 울리고 나에게 상장이 수여되고 동무들이 안겨주는 꽃다발과 꽃보라속에 묻혀 나는 어머니와 소조선생님에게로 막 달려갔다. 어머니와 소조선생님이 환한 웃음을 담고 마주 달려와 대견하신듯 나의 어깨를 두드려주시였다. 그런데 갑자기 숨이 꼭 막혀와 나는 눈을 번쩍 떴다.
《하하! 우리 언니 눈감고 웃는걸 보니 자는척 했지?》
자그마한 손에 나의 코를 꼭 모두어쥐고있던 향심이가 내가 눈을 뜨니 까르르 웃으며 하는 말이였다. 《요걸 그저!…》 내가 주먹을 그러쥐며 몸을 일으키자 동생은 아래방으로 도르르 굴러내려갔다. 그리고는 진짜로 매맞은듯이 《어머니, 언니가 날 때려요.》하고 소리쳤다.
《너 또 언니에게 까불어댄거로구나.》
부엌에서 어머니의 지청구가 방안으로 날아들어왔다. 웃음이 섞인 다정한 질책이였다. 나는 동생에게 주먹을 내들어보이고나서 동생때문에 사라져버린 꿈을 다시 찾으려고 또다시 솔곳이 눈을 감아버렸다. 한동안이 지났는데도 그 꿈은 다시 오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가? 나는 방송에서 울려나오는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어마나 ! 경애하는 아버지장군님께서 로씨야를 방문하시기 위하여 어제 로씨야의 국경역 하싼을 통과하시였다는 소식이 방송에서 울려나오는것이 아닌가! 아니 그럼 이 무더운 8월의 뙤약볕을 맞으시며 조국을 떠나신 아버지장군님께서 지금 그 멀고먼곳에 계신단 말인가? 내가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방송에서는 불멸의 혁명송가 《김정일장군의 노래》가 힘차게 울려나왔다.
나는 뜨겁게 더듬어보았다.
올해 정초부터 아버지장군님께서 다녀가시고 다녀오신 내 나라의 수많은 공장길과 농장길 그리고 끝없는 전선시찰의 그 길들을, 온 나라 인민들과 우리 어린이들의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시여 하루도 쉬임없이 일을 하고계시는 아버지장군님! 우리 아버지도 출장지에서 돌아오면 푹 휴식을 하는 때가 많은데 아버지장군님께선?… 오늘은 또 머나먼 외국방문의 길을 떠나셨으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 없다. 아버지장군님을 만나뵈올수만 있다면 난 장군님께 말씀드릴테야. 《아버지장군님! 장군님께서 식사도 꼭꼭 하시고 밤마다 꼭꼭 주무시면서 건강하셔야 우리들의 기쁨도 더 커지고 학교에도 더 즐겁게 다닐수 있습니다.》 하고 말이야. 아마 내가 이렇게 말씀올리면 아버지장군님께선 내 부탁을 꼭 들어주실거야. 아버지장군님께선 우리 어린이들을 제일로 고와하시니깐… 정녕 아버지장군님의 그 사랑을 가슴에 안고 난 공부를 더 열심히 잘할테야.… 어느덧 시계바늘은 래일에로 씽씽 달려가고있다. 지금 아버지장군님께서 어디에 계실가?
아! 아버지장군님! 정말 그립습니다. 뵙고싶습니다.
향숙이의 글은 다음날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주체100(2011)년 8월 ×일
지금은 깊은 밤. 아버지장군님생각으로 우리 가정이, 아니 온 나라가 잠 못드는 그리움의 밤이다. 온 가족이 모여앉아 외국방문의 길에 계시는 우리 장군님의 소식을 담은 《로동신문》의 글줄을 자자구구 가슴에 새기며 장군님이야기로 꽃을 피우는데 향심이가 문득 벽에 걸려있는 세계지도앞에 나서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장군님께선 지금 어데 계실가요?》
과학자인 아버지도, 봉사일군인 어머니도 두눈만 슴벅일뿐 선뜻 대답을 못했다. 바로 이 시각에도 머나먼 외국방문의 길에 계시는 아버지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쳐와서이리라. 어찌 우리 한가정뿐이랴. 온 나라 인민의 간절한 마음이 저 멀리 로씨야의 하늘가로 끝없이 달려가고있다.…
아버지장군님! 장군님의 안녕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는 온 나라 인민들의 마음과 함께 평범한 소년단원인 저도 아버지장군님께서 부디부디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랍니다.
설경이의 눈길은 밝은 빛이 뿜어져나오는 탁상등에 가닿아있습니다. 문득 어느날 소조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동무들! 나는 문학소조원들이 쓰는 한편한편의 작품마다에는 아버지장군님의 품속에서 곱게곱게 피여나는 자기들의 행복한 생활이 꾸밈없이 담겨져있고 이 행복을 안겨주신 아버지장군님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의 노래가 뜨겁게 울려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파르스름한 달빛이 이슬에 함초롬히 젖은 두 소녀의 까만 머리칼이며 동실한 어깨를 부드럽게 비쳐줍니다.
어디선가 밤새들의 고운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설경이는 향숙이와 함께 철길뚝에 꽃을 심고있습니다. 설경이가 정성껏 심어가꾼 꽃이랍니다.
꽃이 시들지 말라고 화분채로 땅속에 묻어줍니다.
생기가 넘치는 파아란 잎사귀에 떠받들려 저저마다 고운 얼굴을 방싯 내여민 꽃, 흰나비들이 쌍을 지어 노란 꽃술을 가운데 두고 원을 지어 오붓이 모여앉은듯 한 고운 꽃, 노을처럼 빨갛게 타는 꽃송이도 보였습니다. 설경이는 파아란 비닐물통에 꼴깍 담아온 샘물을 심어놓은 꽃화분둘레에 살살 뿌려주었습니다.
아버지장군님께서는 이 철길을 따라 외국방문의 길을 떠나시였습니다. 오실 때에도 꼭 이 철길로 오실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설경이였습니다.
설경이는 향숙이옆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향숙아, 난 너무나도 철이 없었어. 어머니가 말씀하신것처럼 응석과 어리광의 나이만 잔뜩 먹었어.)
설경이는 향숙이와 함께 눈길을 들어 수많은 애기별들이 깜빡깜빡 뛰노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버지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떠오릅니다.
(장군님께선 조국에 있는 우리들이 몹시 보고싶으실거야.)
설경이는 자기 생각에만 골몰해있었습니다.
끝을 모르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러다나니 소조선생님이 향숙이와 함께 조용히 뒤에 다가온것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설경학생!》
설경이는 와뜰 놀라며 일어났습니다. 선생님은 주의깊게 두 학생이 심은 고운 꽃을 바라보십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알고 나오셨을가?!)
《참, 기특한 생각들을 하였어요. 설경학생의 집에 불이 켜있길래 들렸댔어요. 어머니가 사연을 이야기해주더군요.》
선생님은 허리를 굽히며 꽃주위를 손으로 꼭꼭 눌러주시였습니다.
《어떻게 여기 철길뚝에 꽃을 다 심을 생각을 했어요?》
(뭐라고 내 맘을 표현할가?)
설경이는 머리를 갸웃하며 대답을 골랐습니다.
전번에 선생님에게 아픈 비판을 받은 뒤 몰라보게 말이 적어진 설경이였습니다.
《내가 어디 한번 맞춰볼가요?》
선생님이 방긋 웃으시며 물으시였습니다.
《예.》
설경이는 저도 모르게 따라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 두줄기 철길우로 아버지장군님께서 외국방문의 길을 떠나셨을것입니다. 동무들이 정성껏 심은 이 꽃들은 이제 외국방문을 성과적으로 마치시고 돌아오시는 장군님께 동무들의 충정의 마음이 담긴 향기를 함뿍 안겨드리게 될거예요. 아마 그 마음을 안고 동무들이 여기에 고운 꽃을 심었다고 나는 생각해요.》
《선생님, 우리들은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해보지 못하였습니다.》
향숙이가 웃음을 머금은 눈에 격정을 담고 선생님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였습니다.
《아니예요. 동무들의 눈빛이 바로 이 꽃들처럼 그 지극한 마음을 모두 말해주고있어요.…》
꽃들을 다 심고난 설경이와 향숙이는 선생님의 손을 다정히 나누어잡고 철길뚝우로 나란히 걸었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가 설경이의 마음속에 조용히 젖어왔습니다.
《우리 인민들의 마음속에선 지금 하루동안에만도 아마 수천수백만통의 전화와 전보들이 로씨야로 날아가고있을거예요. 그 내용은 우선 장군님께서 건강하신가 하는것이고 다음으론 그곳의 날씨가 어떤가 하는것일거라고 선생님은 생각한답니다. 그 사람들속에는 세계의 수많은 저명한 인사들도 있을거예요. 21세기의 태양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은 곧 온 세계의 한결같은 마음으로 불타오르고있어요. 우리 꼬마문학가들은 장군님께서 끝없이 이어가시는 그 사랑의 자욱자욱을 걸음걸음 따라걸으며 그 자욱자욱마다에서 흠모의 노래, 감사의 노래를 꽃피워야 해요.》
설경이는 선생님의 얼굴을 새삼스러이 빤히 올려다보았습니다. 머리속에선 평양의 밤하늘에 타오르던 축포와도 같은 무수한 별찌들이 뱅글뱅글 원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흠모의 노래, 감사의 노래!)
설경이는 입속말로 속삭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꼼짝않고 서있었습니다.
꿈많은 소녀 설경이, 열두살 소녀의 마음은 새처럼 자유로이 저 멀리 로씨야의 하늘가로 날고있었습니다.…
그날 밤 설경이네 집 창문가에서는 밤이 깊도록 불빛이 흘러나왔습니다.
설경이는 아버지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며칠째 밤을 밝혀가며 다섯편의 동요를 지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소조와 학급동무들은 설경이가 쓴 동요들을 유명한 시인의 시처럼 수첩마다에 소중히 옮겨베끼였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장군님을 그리는 수백만 소년단원들의 깨끗하고 고운 마음을 그대로 담은 아름다운 노래였기때문이였습니다.
그러나 설경이는 모르고있었습니다. 소조선생님이 설경이가 쓴 동요들을 도일보사에 보낸 사실을 말입니다.
그 시각 설경이는 아버지장군님께서 건강하신 몸으로 외국방문을 성과적으로 마치시고 조국에 돌아오셨다는 기쁜 소식을 안고 꿈나라에서 방실 웃음짓고있었던것입니다.
5
(내가 혹시 꿈을 꾸는게 아닐가?)
숨이 턱에 닿아 헐레벌떡 집으로 날아든 향숙이가 땀을 씻으며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설경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좀처럼 믿어지지 않아 손등을 꼬집어보았습니다.
하긴 너무나도 꿈같은 소식이다나니 손등을 꼬집어보았다는것도 잊고말았습니다. 다시한번 더 꼬집어보고서야 의사선생님들이 침을 놓을 때처럼 때끔 아파났습니다.
(정말인게로구나. 내가 쓴 동요 다섯편이 모두 신문에 실렸다는것이…)
가슴이 활랑거리고 숨이 가빠올랐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도일보사 기자선생님이 학교정문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날씬하고 곱게 생긴 녀기자선생님이 취재수첩을 펼치고 물었습니다.
《설경학생은 어떻게 되여 그런 훌륭한 동요들을 창작하게 되였나요?》
그러자 설경이는 입술이 초들초들 말라들고 혀가 굳어지는것처럼 생각되였습니다.
막 당황해났습니다.
설경이는 구원을 청하듯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교장선생님과 나란히 소조선생님도, 향숙이를 비롯한 소조동무들도 웃음을 머금고 서있었습니다.
소조선생님은 환하게 빛나는 두눈을 의미깊게 슴벅여주며 어서 마음을 푹 놓고 이야기하라고 미소를 보내줍니다.
설경이의 눈앞에는 걸음걸음 자기를 일깨워주시던 소조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설경이의 마음속에서는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습니다.
《얼마전에 저는 〈소년신문〉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진 나라 어린이들의 불행한 생활을 담은 내용의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배움의 종소리 울리던 학교들이 하나, 둘 장마당으로 변하고 즐거운 노래 넘치던 야영소들이 돈많은 사람들의 유흥장으로, 무도장으로 되였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담은 그 글을 보면서 살기 좋은 우리 나라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오늘의 행복을 지켜주고계시는 아버지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선군으로 우리들의 학교길을 지켜주시고 우리들의 희망과 꿈을 꽃피워주시는 아버지장군님, 장군님의 따뜻한 그 품이 아니라면 평범한 로동자의 딸인 제가 어떻게 오늘의 이 자랑을 받아안을수 있겠습니까?》
설경이는 여기서 말을 멈추었습니다. 생각할수록 받아안은 영광에 목이 꽉 메여와서였습니다.
다정히 미소를 보내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눈에 안겨왔습니다.
《저는 우리 선생님들도 자랑하고싶습니다. 우리들에게 희망의 나래를 달아주신 소학교선생님들, 나의 꿈과 희망을 배움의 종소리에 실어 저 푸른 하늘로 높이높이 띄워주시는 중학교선생님들, 제 마음속에 아버지장군님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의 노래의 아름다운 선률들만을 꽉 채워주신 우리 선생님들도 말입니다.》
박수소리가 터졌습니다.
소조선생님의 맑은 눈가에 물기가 반짝입니다.
아마도 훌륭한 제자를 키운 선생님들이 흘리는 그런 눈물일것입니다.…
《따르릉…》
과외체육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집니다.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듯 교실문들이 벌컥벌컥 열리며 숱한 애들이 웃고 떠들며 운동장에 모여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길을 설경이에게 모읍니다. 그때 설경이의 등뒤에서 총알처럼 쨋쨋한 웨침소리가 울렸습니다.
《설경동무!》
2학년 축구학급의 학급장 덕빈이였습니다.
그옆에서 병남이가 한손을 홱 내흔들었습니다. 어느새 마련했는지 색종이로 만든 꽃보라가 춤을 추며 날아내립니다.
《축하합니다!》
그 두 애가 합창이라도 하듯 선창을 떼자 온 학교학생들의 축하의 목소리가 터졌습니다.
설경이는 눈을 가늘게 모으며 가없이 맑은 9월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설경이네 집에서 날아온 비둘기들이 유유히 떠돌고있습니다.
어느 한 시구절에 있는것처럼 바라보아도 바라보아도 더 바라보고싶은 우리의 푸른 하늘로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