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100(2011)년 제11호에 실린 글
□ 단편소설 □
장 의 복
얼마전 형일이네 분단에서는 이달 강철생산계획을 맨먼저 넘쳐수행한 제철소 강철직장아저씨들에게 축하의 편지를 써보냈습니다.
그런지 며칠 안되여 로동자아저씨들로부터 회답편지가 날아올줄이야…
선생님이 반달눈에 웃음을 담고 한아이, 한아이 이름을 부르며 편지를 나누어줄 때마다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올랐습니다.
《…수원소학교 3학년 1반 김대성학생에게. 강철2직장 용해공 리철봉아저씨로부터.》
은방울 굴리는듯 한 선생님의 목소리에 이번엔 키가 작달막한 대성이가 고무공 튀여가듯 교탁앞으로 뛰여나갔습니다.
와하― 박수소리와 함께 웃음이 터져올랐습니다.
《다음은…》하고 선생님이 큼직한 봉투를 쳐들더니 형일이곁에 앉은 용수에게 눈길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용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학급반장인 용수는 공훈로장아저씨한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모두들 입이 터진 팥자루같아진 용수를 부러워 바라보았습니다.
서른두명의 아이들은 모두 편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형일이만은 편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동글납작한 얼굴은 금시 사과알처럼 빨갛게 익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눈길은 앞자리에 앉은 대성이의 도드라져나온 뒤통수에 가있습니다. 아니, 그가 읽고있는 편지우에 미끄러집니다.
그 애 손에 자기와 딱친구인 철봉아저씨가 보낸 편지가 있는것입니다.
그 애 어깨너머로 편지를 읽어가던 형일이 손은 어느새 대성이의 편지를 나꿔챘습니다.
순간 두눈이 왕밤알만 해진 대성이!
《내놔, 그건 나한테 온 편지야!》
조용한 교실에서 아니 글쎄…
형일이는 큰 눈을 한바퀴 굴렸습니다.
《내가 먼저 인차 보구 준다는데…》
《달라. 나한테 온걸 왜 네가 보니?》
대성이는 암팡지게 대들었습니다.
이때 선생님이 다가오셨습니다. 편지는 다시 대성이한테 넘어갔습니다. 형일이는 송곳눈으로 대성이의 뒤통수를 쏘아보았습니다.
《참, 형일학생한텐 회답편지가 없었지요. 편지를 안 보냈나요?》
선생님은 의아한 눈빛을 지으시였습니다.
《형일이도 편지를 썼습니다.》
학급장 용수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두 봤습니다.》
편지에 다시 눈길을 박던 대성이가 돌아보며 한마디 했습니다.
형일이는 나부죽한 얼굴을 숙이고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습니다.
《그래요? 이상하군요. 편질 쓴 동무들은 모두 회답을 받았는데 왜 형일학생만 못 받았을가요?》
형일이는 호― 하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습니다. 뭔가 말할듯말듯 입술만 가볍게 떨렸습니다.
《혹시 학급장동무가 어디다 흘리진 않았어요?》
걱정어린 선생님의 말씀에 용수는 편지를 모아가지고 선생님이 계시는 분과실로 찾아가던 일을 돌이켜보고있는지 눈을 깜빡였습니다.
그러다가 복도모퉁이에서 한 애와 부딪쳐 편지를 떨구었던 생각이 불쑥 났습니다.
《선생님, 그럴수 있습니다. 제가… 덤벼치다나니 형일동무편지를 흘린것 같습니다.》
한풀 꺾인 용수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닙니다, 그런게 아닙니다.》
형일이는 고개를 들며 선생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제가… 제가 편지를 도로 뺐습니다. 용수가 모르게…》
용수며 대성이랑 아이들의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듯 선생님은 고개를 기웃한채 그 자리에 서계시였습니다.
형일이는 그날에 있었던 일을 떠듬떠듬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형일이는 자기가 잘 아는 용해공 철봉아저씨에게 단숨에 편지를 써나갔습니다. 구역도서관 사서인 어머니가 구해준 책을 많이 보아온 형일이로선 편지를 쓰는 일은 식은죽먹기였습니다.
《…오늘도 쇠물을 많이많이 뽑고계실 철봉아저씨, 아저씨들은 정말 용감해요. 선생님은 아저씨들이 다 영웅이래요. 정말이예요. 아저씨들은 강성국가의 대문도 제일선참 두드리고있습니다. 〈똑똑똑〉이 아니라 〈둥둥둥〉하고 말이예요.… 나도 철봉아저씨처럼 이담에 꼭 용해공이 되겠어요.…》
형일이는 웃몸을 뒤로 젖히고 자기가 쓴 편지를 다시한번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뭔가 아주 중요한게 빠진것 같았습니다. 생각을 더듬던 형일이의 눈빛은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요전번 수학시험에서 그는 4점을 맞았던것입니다. 교과서에는 없는 문제가 나와 끝내 한 문제를 풀지 못했습니다.
형일이의 머리속에는 편지나 일기는 솔직하게 써야 한다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고 4점 맞은 이야기를 쓰면 철봉아저씨가 얼마나 섭섭해할가요. 늘 5점을 맞는다고 자기를 칭찬해주던 그 아저씬 아마 손맥이 탁 풀릴것입니다.
(다른 애들은 어떻게 썼을가?)
형일이는 왁새목을 해가지고 여기저기 둘러보았습니다.
축하의 인사말도 요란했고 자기 자랑도 요란했습니다.
용해공아저씨가 쇠물뽑는 장면을 크레용으로 그리는 애도 있고 편지와 함께 꽃보라를 봉투속에 넣는 애도 있었습니다.
새침데기 현정이는 요즘 나오는 노래가사를 편지마감에 적어넣고있었습니다. 미래의 독창가수인 자기가 부르는 축하의 노래라나요.
(일없어!)
마침 수업을 끝마치는 종이 울렸습니다.
형일이는 봉투를 교탁우에 올려놓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뒤따라 대성이가 따라나오더니 싱글거렸습니다.
《난 편지에 꼭 용해공이 되겠다구 썼어.》
《용해공? 넌 키가 작아 안돼. 나처럼 키두 크구 힘두 세야…》
《쳇, 앞으론 콤퓨터로 쇠물을 뽑는댔어. 우리 아버지가 그랬는데 뭐.》
역시 대성이는 고추알이였습니다.
사실 이 말은 대성이 아버지가 아니라 철봉아저씨한테서 형일이가 직접 들은 소리였습니다.
형일이는 씩― 숨을 내쉬였습니다.
5점을 맞는다고 자만하지 말고 더 많이 배워야 훌륭한 용해공이 될수 있다고 하던 철봉아저씨의 목소리가 금시 귀전에 들려오는듯 했습니다. 부끄러워났습니다.
그는 더 생각할 사이없이 교실로 향했습니다.
마침 교실엔 네댓명아이들이 편지마감을 맺느라고 코등에 내돋힌 땀도 씻을새없이 부지런히 연필을 놀리고있었습니다.
형일이는 교탁우에서 자기 편지를 슬쩍 꺼내 호주머니에 집어넣고말았습니다.…
《그랬구만요. 정말 솔직하구 깨끗한 마음이예요. 그 마음이면 능히 5점도 맞고 용해공도 될수 있어요.》
선생님은 나무랄대신 반달눈에 웃음을 그득 담고 형일이 어깨를 사랑스레 다독여주었습니다.
×
며칠후, 형일이한테 한통의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선생님이 가져다주랬어.》
용수가 싱긋 웃으며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겉봉을 스쳐보던 형일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철봉아저씨가?…)
그는 두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분명 철봉아저씨가 자기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고무풍선마냥 가슴이 부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대성이가 뒤를 돌아보며 형일이를 다그어댔습니다.
《빨리 뜯으라마.》
《나한테 온 편진데 넌 왜 보겠니?》
형일이는 코웃음쳤습니다.
마침 수업종이 울렸습니다.
형일이는 편지를 책상 안쪽 구석에 깊숙이 넣어두고 똑바로 앉아 선생님이 들어오시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눈앞에는 자꾸만 철봉아저씨의 검실검실한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한달전!
그날도 일찍 숙제를 끝낸 형일이는 어머니가 일보는 구역도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새 책들이 많이 나왔다는것이였습니다.
어머니는 형일이에게 《최우등생의 비결》을 내놓았습니다.
《재미있는 책 없나요?》
《온참, 소학교 학생이면 이런 책에도 재밀 붙여야지!》
이렇게 말하면서도 어머니는 《종달기자의 체험기》라는 새 동화책을 내주었습니다.
《히야―》
형일이는 동화책을 부둥켜안으며 《최우등생의 비결》은 도로 밀어놓았습니다.
《이런건 앞으로 얼마든지 풀 때가 있어요. 지금은 수업시간에 배워준것만 잘해두 5점을 땅땅 맞는데요 뭐.》
《에구, 넌 진짜 최우등생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멀었어.…》
《네?!》
처음 듣는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언제 거기에 머리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손에선 지금 《종달기자》가 빤히 쳐다보고있었으니깐요.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한창 재미나게 책을 보는데 키가 크고 얼굴이 검실검실한 웬 아저씨가 도서관열람실에 불쑥 들어서는것이였습니다.
퍼그나 인상이 좋아보이는 그 아저씨는 《새로운 용융기술》이라는 두툼한 책을 유리간막이 작은 문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빨리 봤군요.》
《책이 정말 좋습니다. 읽기가 막 재미나서 하루밤에 다 봤지요.》
《그래요? 호호.》
《참, 로문판 〈현대야금공업의 추세〉에 대한 책을 알아봤습니까?》
《호호호, 지금 여기서 제 주인을 기다리고있답니다. 그 책때문에 걸음은 좀 했지만…》
《그래요?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그 아저씨는 어머니가 내주는 책을 덥석 받아쥐더니 한장한장 펼치며 열람실 맨 구석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에 털썩 앉아버렸습니다.…
《저 아저씬 누구나요? 과학자나요?》
아저씨가 바친 책을 펼쳐보던 형일이가 소곤소곤 물었습니다.
《온참, 하루종일 쇠물을 뽑는 아저씨란다.》
《그럼 용해공아저씨예요?》
《오냐, 창의고안명수지.》
《네?!》
형일이는 무릎우에 놓고보던 책이 미끄러떨어지는줄도 모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저씨를 바라보았습니다. 먹으로 그은듯 한 시꺼먼 눈섭을 찡긋거리며 아저씨는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고있었습니다.
친하고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온 철의 도시, 아니 온 나라가 다 아는 제철소용해공, 아버지장군님께서 다녀가신 로앞에서 쇠물을 끓이고있는 용해공아저씨들만큼 훌륭한 사람들이 어디에 있나요?
아저씨들의 모습을 텔레비죤으로 보며 형일이는 자기도 크면 꼭 용해공이 되리라 결심한터였습니다.
어느덧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책을 읽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가 열람실엔 아저씨만 남았습니다.
어머니가 퇴근해야 할 시간도 훨씬 지났습니다.
《어머니!》
형일이는 조용히 벽시계를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난 어머니는 웬걸, 열람실이 환하게 불을 켜주고는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는것이였습니다. 밖에서 살금살금 기여들던 저녁어스름은 순간에 뺑소니치고 열람실엔 은은한 불빛이 차넘쳤습니다.
용해공아저씨는 그제야 고개를 들더니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것이였습니다.
《어이쿠!》
아저씨는 머리를 탁 치며 일어나더니 어머니에게 다가와 책을 내밀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이거 시간이 이렇게 간줄도 모르고 매번…》
미안한 표정을 짓던 아저씨는 그제야 형일이를 띄여보았습니다.
《아들앱니까?》
《네.》
어머니는 형일이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형일이는 씩― 웃고나서 아저씨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저씨, 오늘도 쇠물을 많이 뽑았나요?》
《쇠물? 그럼… 어제보다 두차지나 더 뽑았단다.》
《야!》
형일이는 두눈을 반짝이며 손벽을 쳤습니다.
《래일엔 더 많이 뽑을게다. 다 너의 어머니덕분이지.》
형일이는 어머니를 돌아보았습니다.
《너의 어머니가 좋은 책들을 많이 빌려줬거던…》
그 말에 어머닌 책으로 입을 가리우며 웃었습니다.
《참, 이 애도 크면 용해공이 되겠대요.》
아저씨의 눈섭이 이마에 껑충 뛰여올라갔습니다.
《정말이냐? 용해공이 되겠다는게, 응?》
형일이는 코밑을 쓱 훔치며 《예!》하고 아주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이거 오늘 소득이 아주 큰걸. 아주머니, 이거 막 힘이 생깁니다. 형일이라고 했던가? 그래 공부는 잘하냐?》
형일이는 두눈을 껌벅였습니다.
힘이 세냐고 물었다면 몰라도…
그렇지만 공부에서도 5점만 맞는 형일이는 자랑스러운 대답을 올릴수 있었습니다.
《됐다. 그럼 용해공이 될수 있구말구. 〈용해공친구〉 하하.》
어머니도 웃고 형일이도 깔깔 따라웃었습니다.
《아저씨, 쇠물을 뽑자고 해도 공불 잘해야 하나요?》
동글납작한 형일이의 얼굴엔 의문이 한가득 비껴있었습니다.
《그럼, 그게 기본이지. 5점꽃을 활짝 피워야 커서도 쇠물꽃을 피울수 있지… 지금 아저씨들은 아버지장군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 온 제철소의 CNC화를 다그쳐나가고있단다. 온 제철소를 CNC화하면 쇠물이 더 잘 나오고 쇠물이 더 잘 나오면 형일이랑 좋아하는 사탕, 과자랑 더 많이 폭포처럼 쏟아져나온단다. 어떠냐… 멋있지?》
형일이는 방그레 웃었습니다.
《그러자면 지금부터…》
아저씨는 책상우에 놓여있는 《최우등생의 비결》을 손에 들었습니다.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단다. 우리 일만 봐도 그렇지. 하루라도 공불 안하면 빛속도로 내달리는 과학기술을 도저히 따라잡을수 없단다. 결국 오늘에 쇠물을 꽝꽝 뽑아낸다구 만세만 부르며 공불 안하다간 래일엔 그 쇠물만큼두 뽑을수 없게 된단다. 자 〈용해공친구〉, 이젠 알만 하냐?》
형일이는 대답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머리속에 어머니가 하던 이야기가 떠오른것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것만 가지고는 계속계속 5점을 맞을수 없다는 그 말이…
그 말이 옳은것 같았습니다. 그후에 형일인 4점생이 됐으니깐요.
그래서 못 보낸 편지인데 아저씨가 먼저 보내왔습니다.…
하루수업을 마친 형일이는 집에 돌아오자바람으로 아저씨의 편지를 펼쳤습니다. 벌써 세번째로 읽어봅니다.
《…형일아, 너의 분단동무들이 우리 작업반아저씨들에게 편지를 보내왔더구나. 그런데 너의 편진 보이지 않아 이렇게 소식을 전한다.
우린 오늘도 하루계획을 넘쳐했단다. 우리 제철소를 강성국가건설의 앞장에 내세워주신 아버지장군님의 그 믿음에 보답하자고 아저씨들은 모두가 밤낮없는 전투를 벌리고있단다.…
그래, 공부하지 않으면 전진할수 없고 전진하지 않으면 뒤떨어지는게 현 시대의 흐름이란다.
짬시간이면 손에 책을 들고 공부도 하고 기술적문제를 두고 론쟁도 벌리며 쇠물을 뽑고있는 우리에겐 한초한초가 정말 귀중하다. 이 편지도 출강을 끝내고 잠시 휴식하던 짬에 쓴다.
과학과 기술을 모르고서는 한그람의 쇠물도 뽑아낼수 없는것이 바로 오늘의 용해공이다.
…참, 요즘 4점생이 됐다지?》
형일이의 나부죽한 얼굴은 금시 모닥불을 들쓴듯 달아올랐습니다.
누가 4점맞은걸 대줬을가… 혹시 입이 헤픈 대성이가 제 편지에 슬쩍 박아넣지 않았는지…
형일이는 밸이 울뚝거렸습니다.
(에이, 나쁜 소문은 더 빠르다더니. 참참…)
그는 다시 편지에 눈길을 박았습니다.
《…꼭 5점을 맞고 편지를 보내다오. 딱친구인 이 아저씨의 부탁이다.…》
(5점…)
형일이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습니다.
자기의 5점때문에 아저씨가 왜 이토록 마음 쓰는것인지 형일이는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다 쥐꼬리만큼 알고도 5점을 맞는다고 자만하며 공부를 게을리한탓입니다. 선생님은 늘 공부를 폭넓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5점을 맞는다고 위안하며 귀등으로 들은탓입니다.
결국 아저씨는 룡마를 타고 하늘을 날 때 자긴 땅에서 걸어가고있었습니다. 그러다가 4점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져버렸지요.…
형일이의 까만 두눈은 새로운 결심으로 반짝였습니다.
(아저씨, 꼭 5점을 다시 맞고 떳떳이 회답할래요. 꼭… 꼭…)
×
초생달은 어느덧 둥근달로 커져 형일이네 집 창가에 걸터앉아 문제풀이에 여념이 없는 형일이를 동무해줍니다. 형일이는 그 둥근달이 자지 않는 자기 모습같아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둥근달도 그믐달로 여위더니 그만 구름장이 불밑에서 잠꾸러기가 되였습니다. 그러나 형일이는 잠들수 없었습니다. 《최우등생의 비결》을 밝혀내느라 걸상처럼 책상앞에 붙박여있는 형일이의 마음속엔 자기 집 7층창가에서 바라보이는 제철소의 불노을이 둥근달처럼 환히 비쳐지고있었거던요.
어느날 형일이는 끝내 5점시험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학교적인 학과경연을 앞두고 오늘 학급에서 예비시험을 친것입니다.
시험지를 나누어주며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진행될 학과경연에서 모두가 최우등을 하여 용해공아저씨들에게 또다시 편지를 보내자요…》
그 순간 형일이는 철봉아저씨를 그려보았습니다. 나의 5점을 누구보다도 기다리는 아저씨, 이 시험지를 보면 얼마나 기뻐할가요. 하루계획을 두배, 세배로 넘쳐할지도 모릅니다.
형일이의 마음은 아저씨에게로 막 달렸습니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아래층에 사는 대성이와 함께 제철소로 가는 뻐스에 올랐습니다.
대성이도 형일이 못지 않게 아저씨를 만나고 싶어했거던요.
뻐스에서 내리니 어마어마하게 드넓은 제철소전경이 두 아이의 눈에 안겨들었습니다.
하늘을 찌를듯 우뚝 솟은 굴뚝들이며 우람찬 용광로들, 은빛지붕의 요란하게 큰 건물들, 가로세로 쭉쭉 뻗어간 아름넘는 철관들, 쉼없이 오가는 대형자동차들과 구내기관차들…
《굉장하구나!》
《웅장하다야!》
두 아이는 숨넘어가는듯 한 환성을 연방 질렀습니다. 아이들의 감탄은 제철소정문앞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였습니다.
정문도 요란하게 컸습니다. 정문 량옆으로 주런이 세운 속보판들은 또 어떻겠습니까.
대성이가 입을 하― 벌리였습니다.
《속보판 봐라, 정말 크지? 우리 분단 속보판하구 대비도 안돼.》
《정말 그렇구나. 글자 하나가 네 머리만 하다야.》
형일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니깐, 저 내려긋기만 봐. 네 키만 한걸…》
대성이도 키득거렸습니다. 그러다 형일이의 팔을 툭― 치는것이였습니다.
《왜 그래?》
형일이는 갑자기 두눈이 동그래진 대성이를 돌아보았습니다.
《저기― 철봉아저씨… 아저씨가…》
《뭐? 어디… 어디…》
《저기 맨처음에 있지 않니? 어딜 보니? 속보판을 보라마.》
대성이는 제 먼저 속보판앞으로 뛰여갔습니다.
형일이도 뒤따라 갔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속보판에는 《선군시대 용해공의 모습》이라는 제목아래 끝끝내 새 창의고안을 또다시 성공한 철봉아저씨를 크게 자랑한다고 씌여져있었습니다. 그옆에는 쇠물이 이글거리는 로를 배경으로 환히 웃고있는 아저씨의 사진도 붙어있었습니다.
(야, 아저씬 끝내…)
형일이 가슴에선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랐습니다.
모든 일에서 자만하면 인차 뒤떨어진다고 차근차근 일깨워주던 아저씨.
공부를 잘하지 않으면 커서도 자기의 꿈을 실현할수 없다고 그토록 절절히 말씀하던 아저씨…
《야, 아저씨가 대단한데. 형일아, 빨리 가자!》
곁에서 대성이가 독촉했으나 형일인 그냥 아저씨를 쳐다보고있었습니다.
짙은 눈섭, 탐구와 열정의 불길이 어린듯 한 이글거리는 눈빛…
정말 아저씬 한 자리에 머물러있지 않고 저 높은 하늘을 훨훨 날고있는것 같았습니다.
일하면서도 공부하고 또 새로운걸 창안하고…
마치 날개짓을 멈추면 안되는 새처럼… 그런데 난…
형일이는 눈물이 쑥 솟았습니다.
아저씨, 용서하세요. 난 또 자만했지요 뭐. 예비시험에서 5점 맞았다고 기뻐할 때 또 한번 힘있게 날아오르는 아저씰 생각 못했어요. 다시 오겠어요. 나도 더 큰 5점을 맞고 다시 오겠어요.…
형일이는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손을 힘있게 들어 소년단인사를 했습니다.
비록 지금 자기의 5점회답편지는 가닿지 못했어도 형일이의 마음은 둥실 뜬 풍선처럼 가벼웠습니다.
그는 대성이의 손목을 꼭 잡았습니다.
《대성아! 우리 열흘후에 와서 아저씰 만나자.》
《왜 열흘후니?》
《응, 학교적인 학과경연에서 5점맞은 담에, 그때 아저씰 만나잔 말이야.》
대성이의 눈도 형일이의 눈처럼 이글거렸습니다.
대성이도 형일이의 마음을 다 안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웅장한 제철소는 말없이 돌아가는 두 아이 아니, 래일의 자기 주인들을 크나큰 목소리로 바래주고있었습니다.
우웅― 웅― 쉿― 쿵, 쏴아― 쏴아…